▲▼ 충북천년대종(忠北千年大鐘)
1999년 12월4일에 준공하여 2000년 1월1일 충북의 융성과 평화를 기원하며 21회 타종하여 새천년을 맞이하였다.
▲▼ 2007 충북의 꿈(Dream of Chungbuk 2007)
충북인 2007명의 꿈과 소망을 담아 제작된 김기종, 김만수의 작품이다.
▲▼ 광장에 복원한 용두사지철당간(龍頭寺址鐵幢竿/국보 제41호)
절에 행사가 있을 때, 그 입구에는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가 당간(幢竿)이다. 당간은 찰간(刹竿) · 장간(長竿) · 정간(旌竿) · 기간(旗竿) · 치간(幟竿) · 번간(幡竿) · 범장(帆檣)이라고도 한다. 당간은 주로 나무 · 돌 · 동(銅) · 철(鐵) 등으로 만든다. 당간의 끝에는 보통 당을 달아두지만 현재 당이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으며, 당간 또한 오랜 세월이 지남에 따라 도괴되고 파손되어 그 유례가 많지 않고, 대부분 당간을 지탱하는 지주(支柱)만이 남아 있다.
▲▼ 복원한 철당간의 용두
『향토문화대전』에는 이 철당간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설화를 전하고 있다. 팔도를 순례하던 연등사 주지 혜원이 청주 고을을 지나다가 하룻밤 쉬어가게 되었는데, 그날 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다음과 같이 일렀다. “용두사에 들어가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돛대를 세워라.”
아침에 일어나 급히 용두사 주지스님을 만나니, 그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의 내용을 알 수가 없던 중 혜원이 혼자 우암산에 올라가 초막을 짓고 청주 고을을 살펴보다가 어느 날 밤중에 고을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느끼고 그 길로 내려와 용두사 경내에 철당간을 세웠다고 한다.
다른 전설로는 예로부터 청주에는 홍수에 의한 재난으로 백성들의 피해가 많았는데, 어느 점술가가 이르기를 큰 돛대를 세워 놓으면 이 지역이 배의 형상이 되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결국 이곳에 돛대 구실을 하는 당간을 세워 놓으니 재난을 피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일렀다. 청주의 지형을 배에 비유한다면 배에서 중요한 부분인 돛대의 위치가 바로 이 당간이 있는 곳으로 지금도 이 당간이 있는 자리가 청주시에서 가장 번화한 중심 거리인 성안길이다.
▲▼ 용두사지철당간(龍頭寺址鐵幢竿)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남문로 소재(국보 제41호)원형
철당간이 서 있는 곳은 고려시대 청주의 대표적인 사찰이었던 용두사가 있던 자리이다. 이 당간은 화강석으로 지주를 세우고 그 사이에 둥근 철통 30여개를 연결하여 세운 것인데, 현재는 20개만이 남아 있다. 이 중 밑에서 세 번째의 철통에 <용두사철당기>가 새겨져 있다. 명문이 새겨진 철당간으로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이다.
철당기에는 당간을 세우게 된 내력과 건립연대, 그리고 건립에 관여한 사람들의 관직명이 적혀 있어, 당시 지방경영과 관련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내용은 "962년 청주 호족 김예종이 병에 걸리자 철당간을 바쳐 절을 장엄할 것을 맹세하며 사촌형 희임 등과 함께 철통 20단을 주조하여 높이 60척의 철당을 세운다."라 적혀 있다.철당기의 끝에 '준풍 3년'(962년)에 주성하였다고 한것은 고려 광종 때 사용했던 독자 연호를 실물로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 직지교(直指橋)
첫댓글 언제 또 여기까지 눈을 돌리시고....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