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자
야생화를 사진에 담으면서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산을 오르는 중에도 땅에 떨어진 돈이라도 찾아낼 양으로 반경 5m 내외의 땅바닥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러다 처음 보는 야생화라도 만나면 횡재한 듯 날뛰며 사진에 담곤 한다. 8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혼자 장수군에 있는 한적한 야산을 찾았다가 지난 장마에 산길이 없어지는 바람에 막다른 골짜기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카메라 삼각대로 수풀을 헤치고 겨우 빠져나온 모습은 흙탕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돌돌 흐르는 계곡물에 머리를 감고 절 퍼 덕 주저앉아 숨을 고르는데 허리만큼 높이 자란 영아자가 떡하니 옆에 서 있었다. 도감을 뒤적일 때마다 “언제 이 꽃을 만나나?” 고대하고 있었으니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작고 볼품이 없어 보여 조금은 실망했던 꽃이기도 하다. 초롱꽃목 초롱꽃과 홍노도라지속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학명은 Asyneuma japonicum (Miq.) Briq.으로 비교적 높은 산 중턱 아래의 골짜기 주변 산길에서 만날 수 있다. 줄기는 곧게 서고, 키는 50∼100cm 내외이며, 약간 모가 난 줄기에 전체적으로 털이 나 있다. 곧게 선 줄기에는 잎이 어긋나지만, 어린잎은 잎자루가 있으며 언뜻 취나물을 닮았다. 보통 잎이 길고 톱니가 뾰족하지만 둥근 심장형 모양에 톱니가 둔한 개체도 있다. 보라색 꽃은 7∼9월에 잎겨드랑이에 총상꽃차례(긴 꽃대에 꽃자루가 있는 여러 개의 꽃이 어긋나게 붙어서 피는 형식)로 피며, 꽃잎은 깊게 5개로 갈라져서 젖혀지므로 갈래꽃같이 보이지만 통꽃에 해당한다. 수술은 5개이고 수술대에 털이 나 있으며, 수술로 둘러싸인 1개의 암술은 길이 1.5cm 내외로 끝이 셋으로 갈라져 꽃가루받이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가느다란 꽃잎은 피어나면서 뒤로 심하게 말려서 언뜻 보면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네를 닮았다. 그래서인지 영아자의 영문명은 Phyteuma japonicum으로 광녀라는 뜻이 있다. 강원도에서는 미나리싹이라고도 부르며, 이른 봄에 어린 순을 나물로 먹거나 뿌리는 장아찌를 담아 먹기도 한다. 꺽으면 하얀 즙이 나오며 씀바귀처럼 쓰지 않아 쌈채나 무침으로도 좋은 산나물이다. 각종 무기질과 비타민, 단백질 등이 풍부하며 한방에서는 허한 기운을 돋우게 하거나 한열, 천식치료에 사용한다고 한다. 염아자, 여마자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