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내지 않는
심중의 말이 들리는가?
조조가 후한의 재상으로 있던 시절
양덕조(양수)가 그의 충복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시 재상 관저에 문을 세우고 있었는데
막 서까래를 얹으려는 무렵
조조가 공사 현장에 들렀다.
조조는 현장을 한참 보다가 문(門)에다 활(活)자를 쓰라고 지시하고는 돌아갔다.
양덕조는 이를 보고 곧 문을 헐고
새로 짓도록 지시하며 말했다.
"문 안에 활자를 넣으면
넓을 활(闊)자가 된다.
재상께서는 문이 너무 넓다고 느끼신 것이다."
- <세설신어> -
조조는 훗날 위나라의 시조가 되어
진정한 삼국전쟁의 승자가 되는 인물이다.
비록 <삼국지연의>에서
그는 '난세의 간웅'으로 불리며
권모술수의 능한 악인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사실은 환관의 자손으로 태어나
수많은 고난을 딛고
천하를 쟁패하는 입지전적인 영웅이다.
전쟁터에서는
다양한 전략과 전술로 전쟁을 이끈
탁월한 지략가였지만,
자신이 좋아하던 관우에 대해
끝없는 신뢰와 변하지 않는 사랑을 보인 로맨티스트의 면모도 보이고 있다.
한편 문장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졌고,
여러 가지 상황에 대처하는
임기응변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그에 관한 유명한
'망매해갈(望梅解渴)' 고사 하나를 살펴보자.
대군을 이끌고
반란군 장수를 정벌하러 가던 조조는
큰 위기에 봉착한다.
마실 물이 떨어져 군사들이
하나둘 쓰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망연자실하여 그 광경을 바라보던 조조는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저 산을 넘어가면
커다란 매실나무 숲이 있다.
지금이면 매실이 활짝 열려 있을 것이니 조금만 더 가면 된다.
모두 힘을 내라!"
이 말을 들은 조조의 군사들은
모두 머릿속에
새콤한 매실의 맛을 떠올리게 되었고,
입에 침이 가득 고인 군사들은
갈증을 해소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흔히 사람을 속이는
잔꾀로 비유되기도 하지만,
조조의 탁월한
임기응변 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사람의 본성을 읽고
심리를 이용하는 조조의 다재다능한
능력이 담겨 있는 이야기다.
전쟁터에서 쓰러져 가는
군사를 살리는 데 정도와 인의를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산 너머에
매실나무가 없다고 하더라도,
당장 목이 말라 쓰러지는
장병을 아무 대책 없이
바라만 보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조조는
고지식할 정도로
도와 의를 고집하던
그 당시에 가장 실용적이며
혁신적인 인물로 손색이 없다고 보인다.
아무런 말도 없이
자신의 뜻을 전달함으로써
넓은 문을 헐게 한 위의 고사를 보면
조조의 재치를 알 수 있다.
조조는 자신의 관사가
지나치게 넓게 지어지는 것을 보며
마음의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의 심복인 양덕조가 왔을 때 자신의 뜻을 알 수 있는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난 것이다.
양덕조는 조조의 심중을 정확하게 읽었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조조의 뜻을 받들었다.
어떻게 보면
조조보다 오히려 한수 위의
인물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조조는 해답을 알고 문제를 냈지만
양덕조는 조조의 머릿속에 있는
해답을 찾아냈다.
하지만
이러한 탁월한 능력과
자신의 실력을 뽐낼 줄은 알았지만
겸손할 줄 모르는 태도가
조조의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을 보면
양덕조의 능력이 뛰어나기는 했지만,
진정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머리는 좋았지만
사람을 읽고 판단하는 능력은 부족했던 것이다.
만약 정말 뛰어난 사람이었다면
천하의 간웅이라는 조조의 인물됨을 읽고, 자신의 능력을 다 보이지 않고
감추어두지 않았을까?
여기서 '말'이라는 측면에서
이 고사를 생각해보기로 하자.
우리는 이 장면을 보면서 '말'은 꼭
'말'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조와 양덕조라는
두 고수는 비록 한 마디의 말도
주고 받지 않았지만
서로의 생각을 정확하게 읽고 행동에 옮겼다.
오랜 심복이라면
이 정도로 리더의 뜻을 읽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