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타당성 착각
시스템1은 사소한 증거만 있어도 쉽게 넘겨짚도록 설계되었지만,
넘겨짚은 정도를 스스로 파악할 수 있도록 설계되지는 못했다.
보이는 것이 전부다 보니 눈앞의 증거만 중요할 뿐이다.
확신은 논리적 일관성에서 나오기 때문에 내 의견에 확신이 있다면
시스템1과 시스템2가 일관된 이야기를 구성했다는 뜻이다.
이때 증거의 양과 질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빈약한 증거로도 아주 좋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중요한 믿음 중에는 증거가 전혀 없는 것도 있다.
유일한 증거라면 우리가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도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다.
우리가 아는 것이 얼마나 적은가를 생각하면, 우리 믿음에 대한 확신은 터무니없다.
하지만 그래서 필수적이기도 하다.
타당성 착각
수십 년 전, 땡볕 아래서 땀을 흘리며 문제를 해결하는 군인 여러 팀을 지켜본 적이 있다
시간은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이스라엘 군에 복무할 때였다.
나는 심리학 학사 학위가 있었고, 보병 장교로 1년을 지낸 뒤에 심리 분과에 배속되었다.
그곳에서 장교 훈련을 받을 후보들을 평가하는 작업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았다
우리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군이 개발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중에 '지도자 부재 집단의 도전'이라는 시험이 장애물이 설치된 야외에서 진행되었다.
서로 모르는 여덟 명의 후보가 계급장을 떼고 자신을 식별하는 번호표만 붙인 채 한 팀이 되어,
땅에 있는 긴 통나무를 들어 높이 2미터가 조금 안 되는 벽까지 끌고 간다.
그런 다음 팀 전체가 벽 건너편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이때 통나무는 땅이니 벽에 닿지 않아야 하고, 사람 몸도 벽에 닿아서는 안 된다.
잘못해서 벽에 닿으면, 그 사실을 분명히 알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흔한 방법은 몇 사람이 장대를 거대한 낚싯대 그리우듯 비스듬하게 기울여 붙잡고
다른 사람이 그 장대를 기어올라 벽 너머로 건너가는 방법이다.
아니면 다른 사람의 어깨에 올라타 벽 너머로 건너뛸 수도 있다.
이때 마지막 사람은 너머지 사람들이 비스듬히 붙잡고 있는 장대를 펄쩍 뛰어올라 붙잡은 뒤,
공중에서 장대를 타고 건너편으로 무사히 뛰어내린다.
이 지점에서 실패가 많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곤한다.
나는 동료와 함께 이 시험을 지켜보면서,
누가 책임자 역할을 하는지, 누가 지도자 역할을 하려다 퇴짜를 맞는지,
각 군인은 팀 전체에 어떤 식으로 협조하는지 기록했다.
우리는 완고한 사람, 고부고분한 사람, 거만한 사람, 인내하는 사람, 성마른 사람, 집요한 사람,
잘 포기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관찰했다.
자기 의견이 팀에서 퇴짜를 맞은 뒤로는 열심히 협력하지 않는 경쟁적 악의도 목격했다.
위기가 닥쳤을 때의 반응도 다양해서, 실수로 팀 전체의 노력을 허사로 만든 동료를 꾸짖는 사람도 있고,
지친 팀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때 앞에 나서서 팀을 이쓰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진짜 본성이 드러나리라고 생각했다.
각 후보에게서 받은 인상은 하늘 색깔만큼이나 분명하고 강렬했다.
후보들의 여러 차례의 시도를 지켜본 뒤에는 그들의 지도력을 요약하고,
누가 장교 훈련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점수를 매겨 결정해야 했다.
우리는 서로 상의하면서 우리가 받은 인상을 검토했다.
이 과정은 특별히 어렵지 않았다. 각 군인의 지도력을 이미 파악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지도력이 강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겁쟁이거나 거만한 바보 같은 사람,
그저 그렇지만 속수무책은 아닌 듯한 사람도 있었다.
꽤 나약해 보이는 사람도 적잖았는데, 그들은 장교 후보에서 제외했다.
각 후보를 다각도로 관찰한 결과가 일관된 이야기로 수렴되자,
우리는 평가를 확신하면서 우리가 관찰한 모습이 곧 미래의 모습이라고 느꼈다.
팀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앞장서서 팀을 벽 너머로 이끈 군인이 그 순간에는 지도자였다.
그가 훈련이나 전투에서도 이번 시험에서처럼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예상하는게 당연해 보였다.
다른 예상은 우리 눈앞의 증거와 맞지 않았다
각 군인의 행동에서 우리가 받은 인상이 전반적으로 일관되고 명확한 탓에
우리가 공식적으로 내놓은 예상 역시 분명했다.
머리속에 대개 똑같은 점수가 떠올랐고, 거기에 좀처럼 의심을 품지 않았으며,
전혀 다른 인상을 받지도 않았다. 우리는 주저 없이 단정했다.
"이 사람은 절대 해낼 수 없다."
"저 친구는 그저 그렇지만 무리 없이 해낼 것이다."
"그 친구는 스타가 될것이다."
우리는 예측을 의심하거나, 완화하거나, 모호하게 말할 필요를 못느꼈다.
그러다가 문제가 생기면 '물론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개개의 후보에게서 분명한 인상을 받긴 했어도
우리 예상은 대개 부질없다는 것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 예측이 정확하지 않다는 증거는 차고 넘쳤다.
우리는 몇 달에 한 번씩 피드백 시간을 마련해 사관학교에서 생도들의 행동을 살피고
우리가 예전에 평가한 내용과 한동안 그들을 지켜본 지휘관의 의견을 비교했다
결과는 늘 똑같았다. 사관학교에서 그들이 어떤 성과를 낼지 에측하는 우리 능력은 보잘것 없었다.
우리 예상은 눈 감고 찍는 것보다 크게 나을 것도 없었다.
우리는이 실망스러운 소식에 한동안 풀이 죽어 있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여기는 군대가 아닌가.
쓸모가 있든 없든, 반복되는 일상을 따라야하고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다음 날 또 한무리의 후보가 도착했다.
우리는 이들을 장애물이 설치된 야외로 인솔해 벽을 마주 보도록 세워놓았고,
'이들은 통마무를 들어어올렸다.
그리고 예전처럼 몇 분이 지나 이들의 본성이 드러는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우리 예측이 형편없다 한들 우리가 후보들을 평가하는 방법은 달라지지 않았고,
판단과 예측에 대한 자신감도 그대로였다.
놀라운 일이다.
우리 예측이 엉터리라는 증거가 나왔으니
후보들을 판단할 때 자신감을 잃어야 마땅한데도 그렇지 않았다.
그 증거에 따라 우리 예측을 조정해야 했지만 역시 그러지 않았다.
우리 예측이 무작위 추측보다 나을 게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타당하다고 느끼며 예측을 멈추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뮐러리어 착시가 떠올랐다.
두 직선이 길이가 같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다르게 보이는 착시다.
나는 두 경우의 유사성에 무릎을 치면서,
여기에 '타당성 착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 인지 착각을 처음 발견한 순간이었다.
수십년이 흘러, 내 생각과 이 책의 힉심주제의 많은부분을 이 오래된 이야기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군인이 앞으로 어떤 능력을 발휘할지에 대한 우리 에상은
바꿔치기, 그리고 특히 대표성 어림짐작의 분명한 예였다.
우리는 군인의 행동을 인위적 상황에서 한 시간 괄찰한 뒤에
그가 장교 훈련을 어떻게 해낼지, 전투에서 지도력을 어떻게 발휘할지 알 수 있다고 느꼈다.
우리 예상은 전혀 회귀하지 않았다. 우리는 사소한 증거를 가지고 주저없이 실패와 성공을 예상했다.
보이는 것이 전부였던 셈이다.
우리는 직접 관찰한 행동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 후보가 장교가 되었을 때의 멉무수행 능력을 결정할 요소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그 무지를 반영할 방법도 없었다.
돌이켜볼 때 이 이야기에서 가장 놀라운점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보편적인 사실을 알면서도
개별 사례에 대한 우리 예측을 여전히 확신했다는 것이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때의 우리 태도는
니스벳과 보기다가 수업 시간에, 발작을 일으킨 낯선 사람을 도와주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라고 이야기하자
학생들이 보인 반응과 비슷햇다. 그들은 분명 제시된 기저율을 믿엇지만,
영상에 나온 사람이 낯선 사람을 도울지 돕지 않을지를 판단하는데는 그 통계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니스벳과 보기다가 증명했듯이, 사람들은 일반적 사실에서 좀처럼 특정 사례를 유추하지 않는다.
판단에 대한 주관적 확신은 그 판단이 옳을 확률을 합리적으로 평가한 결과가 아니다.
해당 정보가 조리 있고, 머릿속에서 그 정보를 처리하기가 편안해서 생기는 느낌일 뿐이다.
불확실성을 진지하게 인정해야 하는데도 판단을 확신하는 까닭은
머릿속에서, 꼭 옳지는 않더라도 조리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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