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농산물 가격정책의 수혜자는 소비자가 아니다
한도숙 칼럼 농업을 망가뜨리는 세력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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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의 농민들이 지난 15일 창녕농협공판장에서 양파. 마늘 TRQ 조기도입과 증량을 발표한 정부정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양파를 내다 버렸다.
이런 일은 한국농업에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비일비재한 일이다. 올봄 양파마늘의 작황은 100년만의 가뭄으로 최악인 상태다. 가뭄이든 홍수든 자연재해가 나면 일단 농산물은 생산량이 줄어든다. 게다가 품질은 최악으로 떨어진다. 좋은 가격은 상품이 되는 것에만 인정된다.
결국 농가는 빚더미를 떠않을 수밖에 없다. 물론 시장에도 가격상승이라는 문제가 나타난다. 소비자는 덜 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농가는 농약을 마시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렇게 100년만에 나타났다는 한해는 농가경제를 파탄냈다. 그런데정부는 농가경제복구대책은 내놓지 않고 수급조절과 가격안정이라는 정책과제만 쏟아 낸다.
농식품부가 지난 7월2일 발표한 ‘주요 수급불안 품목 수급안정대책’ 보도자료에 의하면 양파와 마늘에 대하여 “양파는 수급조절 매뉴얼에 따라 지난 6월 하순 부터 계약재배물량 조기출하를 시행하며 마늘 비축물량(2천톤)을 방출하고 있다. 생육후기 고온과 수확기 고온·가뭄 영향으로 수급부족이 예상되면서 (평년수요량 대비 양파는 140천톤, 마늘은 41천톤 이상 부족) ‘가수요가 유발’되고, 높은 가격도 지속되고 있다.”고 동향을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해소하기위해서 농식품부는 가수요 차단을 위해 “저율관세할당물량(TRQ) 조기도입 공고(6.29)와 7월중 양파·마늘 부족물량 대상으로 TRQ를 증량할 계획이다.’ 이러한 조치에도 양파·마늘 가격이 하락하지 않을 경우, ‘민간 직수입물량 확대’ 등의 추가대책을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발표했다. 게다가 한술 더떠 “소비자 가격안정을 위해 전국 농협 하나로마트 등을 통해 양파·마늘·배추·무·대파·감자 등을 할인판매 행사를 추진(7.1∼13일 전국 350여개 매장에서 시중가 대비 20∼50% 할인행사 추진(가격불안시 연장))하고 있다.”며 농산물 가격을 낮추지 못해 안달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가격을 안정(?)시키려면 농가 경영안정에도 정책이 뒤따라야 할 터이지만 눈을 씻고 들여다보아도 농민들의 고통과 신음소리는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가격이 올라가면 정부가 바구니물가를 낮추어야 한다고 분노하지만 싼 가격의 농산물이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가면 득실을 계산하지는 않는다. 정부의 ‘저농산물가격정책’이 과연 소비자들에게 이익으로 돌아오는지를 심각하게 계산해 봐야 한다. 실제로 가계경제에 부담이 되는 교육비와 통신비, 자가용에 쓰이는 기름값, 주거비, 의료비 등은 여전히 비싼 편이다. 실제 OECD가입국 중 상위그룹에 드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농산물 값은 OECD가입국 중최하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다시 끄집어 내보면 이렇다. 61년 5.16쿠테타 후 박정희는 경제개발 계획을 내놓았다. 그 중심은 수출이었다. 뭐든 만들어 수출해야 했다. 매해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달성했다. 그렇게 국민을 한곳으로 모아냈다.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민족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한강의 기적이라는 신화를 썼다.
그 신화를 위해 잃은 것도 너무 많았다. 그중심각한 것이 농업이다. 농업 농촌 농민의 해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는 그때 씨앗을 뿌린 것이다. 우리나라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은 값싼 노동력이라는 필요조건이 존재했다. 농촌의 인력은 값싼 노동력이었다. 그것을 유지하기위한 ‘저농산물가격정책’ 또한 필요조건이었다. ‘저농산물가격정책’은 농가경제를 흔들고 농가는 그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파산하고 노동자로 이동한다. 이는 필요조건을 넘어 노동시장의 충분조건이 되었다. 남아도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산업예비군이 충분하니 자본은 노동자와 갈등할 이유가 없다. 자본기업은 값싼노동력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자본을 축척하는 기회를 가졌다.
지금까지 진행된 일관된 정책 속에서 이득을 본 것은 결국 자본가들뿐이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대부분인 사회에 소비자 물가지수는 먹거리에서 가름 난다고 봐야한다. 그 먹거리가 저농산물 가격정책의 결과물인 농산물 아닌가. 노동자들은 스스로 봉을 자처하고 있는 꼴이다.
‘저농산물가격정책’의 시발은 남덕우 전 경제기획원 장관이다. 그는 서강대 경제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1969년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재무부 장관으로 발탁된 뒤 1974∼1978년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내며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주도했다.
그는 2007년에도 박근혜 대통령후보의 측근이었다. 그가 경제기획원을 맡으며 내놓은 농업개발의 계획은 전체인구 중 5~7%로 농업인구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농업개발보다는 산업사회를 위한 농촌희생을 담보한다는 선언과 같은 말이었음을 그때는 많이들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박정희의 경제개발을 주도한 세칭 '서강학파'의 시초이자 대부로 꼽히는 남덕우는 한국농업의 오늘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서강학파의 끈질긴 ‘개발 신화’에 우리는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농민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몸으로라도 막겠다고 나서는 식용쌀 수입도 서강학파의 끈질긴 정책개입의 결과물이다. 거대자본의 산하 삼성경제연구소나 엘지경제연구소가 농업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이 농업개발을 위해 연구하는 것이라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는 바로 노동환경의 안정에 있고 그를 통한 농산물 가격통제라는 그림을 그려 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농산물 수입정책의 논리나 해외농업개발의 논리를 그들이 제공하고 있다는 의구심은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농민들이 주장하고 있는 ‘무역이익공유제’ 는 악어에게 눈물을 보여달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존경해 마지않는 전회식 선생께서도 구체적으로 무역이익 공유제를 주장하시지만 설령 법이 제정 된다하더라도 악어가 흘리는 눈물을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 분명하다. 자본기업은 사회사업을 달가워하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