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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주년 광주비엔
날레 기념전
『 한국현대미술-메이저 물결 』
2024.9.7(토)~10.20(일)
무등현대미술관 1F
전시감독
이명환
초대작가
권여현 김용식 김재관 이명환
이승택 정송규 차기율 한만영
※ 이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시지원사업 공모선정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미술_메이저 물결> 展
- 예술다움, 작품다움으로 구별된 독창적 실체의 한국 현대미술 -
이번 < 한국 현대미술-메이저 물결> 기획전시는 동양권에서 세계현대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메카 격인 제15회 광주비엔날레 30주년을 기념하여 무등현대미술관이 갖는 특성을 보인 로컬색채 공간에서 한국 현대미술에서 있어서 작가들 각자의 고귀한 정신을 얹은 창작의 결과물들이 말 그대로 독창적이고 독보적 가치의 아이덴티티를 담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정신과 의식이 진정성을 가져 흔한 예술 인물들과 차별화되어 연구적 의의가 높은 <예술가다운> 작가를 조명하는 전시이다.
이 전시는 비할 데 없이 높은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라는 뜻이 담겨있는 무등산의 로컬 아이덴티티를 품은 무등현대미술관의 기획전시로 아르코 시각예술 창작산실 지원사업을 통해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물결은 다른 의미로 현대한국미술의 흐름, 경향, 파장, 파문, 주도 등 창시자 즉, 유일한 독창적 표현을 생산하는 현재의 한국미술계에서 주요활동을 하는 시각예술가들이다. 독보적 창 작업을 보이며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에 서 있거나 그러한 중심을 향해 걷는 시각 예술가적 기질과 정신을 읽게 된다.
예술가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거나 자신의 완전한 정체성을 풀어내는 방법론을 찾기 위해서는 창작 작업을 통해 자기 성찰, 연구 및 자신의 지식과 버전을 창조해야 했으며, 비 예술인들에게는 처음에는 이기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본질에서 우리가 사는 사회에 의해 형성된 방대한 정체성과 인간 경험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고 공감대를 끌어내고 있다.
주제의 아이덴티티를 탐구하는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정체성을 찾아가고 반영하는 다양한 방법은 작업실행을 통한 정체성 탐구로 이어져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정체성 등의 측면을 반영하지 않는 예술작품을 어떻게 제작할 수 있겠는가의 반문에 대한 이번 전시에서 예술작품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예술은 인간 조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매개체이며, 정체성 및 자기 발견과 같은 주제는 미술사적 시각에서 볼 때 넓게 확장된 인간의 직간접 경험의 일부이기도 하다.
정체성은 창작예술가들에게 일관된 관심 주제로 드러내는데, 그 이유는 삶이 종종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생의 역사에 대해 스스로 성찰하도록 요구하는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을 보여주는 이유가 중심이기 때문이다.
현대 미술가가 범람한 시대에 <예술가다움>으로 인정받기까지 예술 외길을 걸어온 궤적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데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Garbage in garbage out) 라는 격언의 의미를 새기며 그 중심에 서 있는 예술가다움의 의식과 창작작품의 아덴티티가 있음이라...,
전시감독 : 이명환(청주 공예비엔날레 기획위원 역임)
<한국 현대미술_메이저 물결> 展
- 예술다움, 작품다움으로 구별된 독창적 실체의 한국 현대미술 -
글: 전시 감독 이명환(청주 공예비엔날레 기획위원 역임)
이번 < 한국 현대미술-메이저 물결> 기획전시는 동양권에서 세계현대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메카 격인 제15회 광주비엔날레 30주년을 기념하여 무등현대미술관이 갖는 특성을 보인 로컬색채 공간에서 한국 현대미술에서 있어서 작가들 각자의 고귀한 정신을 얹은 창작의 결과물들이 말 그대로 독창적이고 독보적 가치의 아이덴티티를 담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정신과 의식이 진정성을 가져 흔한 예술 인물들과 차별화되어 연구적 의의가 높은 예술가다운 작가를 조명하는 전시이다.
사회의 모든 직업군을 총칭으로 대신에 하는 전문직업 즉, 전업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칭송과 맞바꾸는 < ooo 답다>라는 말 자체의 쓰임에 가장 적합한 작가들의 작업 여정의 과정에서 생산되는 창작물의 일면만 보더라도 작가다움이 물씬 풍긴다. 우리는 때론 이들의 작가를 통하여 <창작의 향기>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창작 그 자체가 세레모니의 징표가 되는 상징성을 지니며 작가의 아이덴티티가 드러나는 독창성이 한국 현대미술에 깊게 각인되어 조명받아야 할 당위성을 동반하게 되는데 이는 꼭 놓치지 말아야 할 즉, 그냥 덮어져 소멸하여 가지 말아야 할 작가의 가치를 발굴하여 사회에 알려 주는 기회이다.
세상에는 아마추어작가 또는 부업으로 예술을 생산하는 자칭 예술가라 하는 부류들도 많고, 예술가로 사칭한 시각예술가답지 않은 부류들도 많다. 전업 작가의 경계를 허물며 온갖 기회를 만들어 예술가처럼 살아가는 부류들도 많다. 하지만 공감할 수 있고 수용할 수 있는 창작예술작품은 분별된다.
이번 전시가 갖는 의미는 예술가처럼, 예술가같이, 흉내 내기로 만족하는 차원과 구별되는 아주 특별한 다른 차원의 예술가다운 궤적을 남기는 우리 동시대의 또 <다움>의 세계를 조명하고 연구하는 전시이다.
어휘적으로 즉, 사전적 의미로 “ 답다”는 일부 명사나 어근의 뒤에 붙어 그것이 지니는 성질이나 특성이 있다“ 뜻을 더하는 형용사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누구나 붓만 들면 자칭 화가라 말하는 시대에도 예술가답게 작품을 세상에 던지는 층은 그 존재가 구별된다. 예술가다움의 작품은 가슴속 깊이 파고드는 독창적 메시지의 파장(물결, 파문, 파란, 영향력, 카리스마...,)이 크기 때문에 예술품답다는 결과를 얻어낸다.
이번 전시는 아르코 시각예술 창작산실 지원사업을 통해 로컬이 중심이 되어 범국가적으로, 범세계적으로 현대한국미술의 위상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독창적인 시각예술가를 소환하는 기획전시로 비할 데 없이 높은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라는 뜻이 담겨있는 무등산의 로컬 아이덴티티를 품은 무등현대미술관의 기획전시이다.
물결은 다른 의미로 현대한국미술의 흐름, 경향, 주도 등 창시자 즉, 유일한 독창적 표현을 생산하는 현재의 한국미술계에서 주요활동을 하는 시각예술가들이다. 독보적 창 작업을 보이며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에 서 있거나 그러한 중심을 향해 걷는 시각 예술가적 기질과 정신을 보이는 전국에서 활동하는 평면, 입체, 설치, 미디어 등 다양한 연령대의 시각예술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가 아낌없이 칭송할 수 있는 < 예술가다움 >이라는 작가의 희로애락의 시간이 함축되어 재현된 작가의 시각화된 DNA 결과의 다양성을 한 공간에 헌정하는 기회를 마련하여 관람자에게 한국 현대미술에서 절대적으로 놓칠 수 없는 독보적 표현의 다양성 접근과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여 이해력을 높여주어 현대미술을 읽는 정신과 의식을 수용할 기회의 전시가 되고자 한다.
예술가답지 않은 부류들은 표면적으로 내 세울 예술창작물이 부재하거나 존재 자체가 없어 겉치레로 맞바꾸기로 하여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예술가처럼 꾸밈과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시대에는 정작 창작물이 없는 예술가들이 층을 이루는 비현실성도 존재하는 아이러니 함이 동시대를 이루고 있음을 구분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우리 시대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현상의 일례로 세상에 잘 알려진
할리우드의 대 스타 중 샤론 스톤은 팬데믹 시대에 활동을 자제하며 세상을 암울하게 만든 충격적인 코로나 19 전염병을 견뎌내기 위해 그녀의 대응은 화가처럼 그림을 그렸다. 그녀의 격렬한 신체적 퍼포먼스가 그림을 그려내고 있으나 그 건 어쩌면 연기의 연장일 수도 있다.
처음에는 숫자로 색칠하는 시리즈로 시작하여 팬데믹(pandemic)의 언택트(un-contact)로 황량한 동안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자신의 전용 스튜디오를 갖춘 공간에서 진지한 시간을 전개하며 자기 자신, 마음, 중심을 재발견했다고 말하는 추상화는 마치 독일의 현대추상미술의 거장 작품처럼 또는 Gerhard Richter(1932- )처럼 그려내어 2023년 알루슈 갤러리에서 "Shedding"이란 타이틀로 화가처럼 개인전을 개최함으로써 예술가다운 시대의 화가들과 비교되어 많은 시사성을 남기는 무척 흥미로움으로 기록되고 있다.
<예술가답다>라는 말함은 인정의 의미가 수반된다. 또 다른 예술가 개인으로부터, 예술계로부터, 사회로부터의 인정이다.
현대 미술가가 범람한 시대에 <예술가다움>으로 인정을 받기까지 예술 외길을 걸어온 궤적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데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Garbage in garbage out) 라는 격언의 의미를 짚어보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예술가와 창작작품의 아덴티티 있다.
창의성을 통한 개인의 아이덴티티와 진정성의 표현
우리의 미술계는 양화 도입(1910 고희동 추정) 이후 한국 현대미술 창작자들은 예술을 자신의 역사화와 자기 발견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으며, 보편적이거나 특정한 문화적 공유 경험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을 조명하는 작업에 주력하는 것이 예술가의 숙명으로 여겨왔다.
예술가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거나 자신의 완전한 정체성을 풀어내는 방법론을 찾기 위해서는 창작 작업을 통해 자기 성찰, 연구 및 자신의 지식과 버전을 창조해야 했으며, 비 예술인들에게는 처음에는 이기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본질에서 우리가 사는 사회에 의해 형성된 방대한 정체성과 인간 경험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고 공감대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실천이 이어졌다.
주제의 아이덴티티를 탐구하는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정체성을 찾아가고 반영하는 다양한 방법은 작업실행을 통한 정체성 탐구로 이어져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정체성 등의 측면을 반영하지 않는 예술작품을 어떻게 제작할 수 있겠는가의 반문에 대한 이번 전시에서 예술작품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예술은 인간 조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매개체이며, 정체성 및 자기 발견과 같은 주제는 미술사적 시각에서 볼 때 넓게 확장된 인간의 직간접 경험의 일부이기도 하다.
정체성은 창작예술가들에게 일관된 관심 주제로 드러내는데, 그 이유는 삶이 종종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생의 역사에 대해 스스로 성찰하도록 요구하는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을 보여주는 이유가 중심이기 때문이다.
작품과 주제의 아이덴티티 정의
정체성은 주제가 무엇을 의미하며, 때로는 과거의 어떤 측면이 현재 주제에 존재 상태를 형성했는지 밝히는 탐구를 포함하여 정체성의 아름다운 부분은 그것이 융합되고, 해체되고, 변형될 수 있으며, 항상 유동적이고 심지어 저항 상태에 있는 내부 및 외부 자극의 연속적인 배열로 존재하게 된다.
다양한 시각에서의 작품의 아이덴티티는 타인과 예술가의 영향과 욕망에서 나오는 자신의 버전을 기록하기 위해 현재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철학 하는 창의적인 형태로 보면 된다.
창작예술의 정체성은 종종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것, 존재가 창작의 중요함을 확인하기 위해 추가적인 형태의 개성을 추구하여 다른 창작품과 식별되는 것으로 연결되어 예술가와 관람객 자신의 독특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서로가 교감할 수 있는 예술가다운 예술작품다움이 있는 전시의 목적이다.
예술답게 예술가답게 철학을 지니게 되는 한순간의 선택은 작가역량의 몫
이승택(1932.4.7.~)은 한국 현대미술 전위예술의 아버지로 칭송한다. 비 조각, 비 물질 예술로 바람이나 연기, 불과 같은 물질적 질량이 없어 눈으로 인식할 수는 있으나 만질 수 없는 자연 현상을 매개체로 다뤄 마치 외계로부터 건너온 듯한 발상은 지구상에서 가장 생경한 메이저 창작이라는 와이드 풍경을 창조해 냈다. 글로벌 미술계에서도 작품다움을 인정하는데 특히 뉴욕 구겐하임 수석학예사는 이승택의 작품은 세계에서 유일하며 인류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는 데에 주목하는 이유라 했다.
이승택은 한국 근현대미술의 과도기에서 특징지어지는 서양화 사조의 유입과 답습을 선택한 많은 일련의 작가군으로부터 이탈하여 독불장군처럼 외길 한평생 세상을 거꾸로 보고, 거꾸로 생각하고, 거꾸로 살아온 예술철학이 세상에서 유일한 기념비적 작품다움을 탄생시켰다.
숭고한 대자연을 상대로 예술가답게 연금술사(鍊金術師)적 정신을 담아낸 물성의 변주곡으로 잘 알려진 비 조각'의 출발점으로 조명되는 '고드랫돌 연작작품(영국: 테이터 모던 현대미술관 소장작품)은 묶기 행위를 통하여 기존재료에 대한 변형을 일으켜 마치 물성에 대한 착시를 일으켜 생명력에 대한 환영을 불러오는 효과로 귀결되는 작업과정에 몰입하였다.
때론 물질과 물질의 개입에 의한 돌연변이를 일으켜 이전에 존재 자체가 없던 물질이 창조된다. 또한 물성을 핵분열시켜 생명력을 불어넣는 등 4차원적인 발상들의 구현 정신과 고령에도 평생 몸이 반응하는 창작적 움직임이 경이롭다.
이러한 두 개 이상의 비예술적 오브제를 조합하여 새로운 미학적 상징성을 지닌 3차원의 구조로 창조된 예술을 일컫는 아상블라주(assemblage)는 1950년대 프랑스의 Art Brut 창시자로 숨 쉬는 조각이라는 개념을 추구했던 장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 의해 최초사용되었다.
이승택은 14회 광주비엔날레(총 예술감독 이숙경 영국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큐레이터_주제: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_ 23.04.07~23.07.09 )에서 <무제(이 물건으로 무엇을 만들어도 좋습니다) 1967_9~2001_2023> 작품으로 참여했다.
"보는 것만으로 참여가 될 수 있다"라는 안내 문구가 관람객의 사고력 개입의 확장으로 <인터렉티브>의 개방성이 부여된 시각예술가의 탈권위적 태도를 취하면서 예술 감성 향유의 즐거움과 예술에 접근하는 예술을 읽고 사용하는 상상력을 보장했다.
2024년도는 제15회 광주비엔날레가 30주년을 맞이하는 때를 같이하여 베니스 비엔날레 최초 국가관 운영시스템 도입 시기인 1995년 백남준, 곽훈, 전수천, 김인겸, 윤형근 등과 함께 한국관 개관작가로 참여했던 30주년 해로서 한국 현대미술의 탈 로컬화에 따른 글로벌 미술계의 관심을 지속해서 받아오면서 한국미술의 지향성이 드러나고 있다.
김재관(1947~)은 한국 로컬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중심에서 활동하며 주목받는 예술가다움이 넘친다. 세계적으로 거론되는 서양의 현대 미술가들의 발상을 초월한 시대를 앞선 작품다운 궤적이 조명되고 있다.
영국의 데미안 스티븐 허스트(Damien Steven Hirst, 1965~)의 알약 연작작품 발표 훨씬 이전인 1970년대에 이미 김재관은 컬러 타점에 의한 것처럼 스마트한 원형 점이 반복적 패턴으로 그의 갠버스에 정착되어 작품다움을 드러냈다. 이 일은 훗날 청주시립미술관에서의 초대개인전을 통하여 연구 조명되었다.
김재관은 기하학적 추상(Geometric abstraction) 작가로 그리드(Grid), 지오- 옵티컬(Geo·Optical) 개념의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철학적 시각을 열어왔다. 캔버스 연작은 기하학적 작업이 2D 공간에서 시간을 꿰어 쾌적을 남기는 예술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때로는 3D 매개체가 등장하여 작가의 기하학적 추상의 미학과 철학을 잘 대변하는 구실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한다. 작품은 작가의 대변인 구실을 한다는 말은 작품 자체가 모든 것을 알려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기하학적 형태의 변화를 모티브로 삼는 것은 서구의 중세시대 미술에서 나타난 주 드 페르스펙티브 ( Jeu de perspective 원근법 놀이 )로 시점의 변화를 얻기 위해 2차원 표면에 입체적 표현이 될 수 있는 합리적인 시스템을 고안해 1점(선형)과 2점 또는 3점 투시도(원근법)의 개입이 절대적이었다.
이는 관점이 시각적 현실의 직접적인 전사일 뿐만 아니라 더 넓은 문화적 요구 내에서 비롯된 표현의 한 형태로 나타내기 위한 시도였듯 김재관의 선형적 원근법이 가능한 구조물(Structure)이 건축된 기하학적 대상은 소실점을 피하고 비스듬하지만, 평행선을 사용하여 국부적인 공간성을 암시하는 비스듬한 또는 평행한 투시로 렌더링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선형 원근법은 처음에 건물의 외부와 내부를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아마도 인간 작품 중 가장 중요하고 영감을 주는 것이다.
선형 원근법 사용의 기원은 내러티브 ( Narrative )를 상연할 수 있는 건축적 구조 즉, 더 흥미로운 구성의 허구를 만드는 데 건축학적 구조의 주요 구성 요소인 기하학적 포장의 개념을 차용하고자 하는 욕구 충동으로 시작하였다.
작가의 핵심키워드는 하나의 언어와 기호화의 융합적 모티브를 찾아 활용하여 기하학적 옵티컬(Optical) 이미지를 창작하던 시기를 거쳐 평면의 상징적 구조로서의 그리드가 일루전 (illusion)을 갖게 되면서 옵티컬 구조로 변형되는 시기로 넘어간다.
이런 일련의 작업은 마치 우주과학 공상 영화에서 GPS에 의해 한 점의 대상이나 위치들이 그리드 자오선들과 함께 나타나 Spectacle 한 광경을 연상시킨다.
2000년대 방형 신화( Myth of Cube )의 서술적 나열에 의한 정형과 착시 즉 트럼뻬 레 지으(tromper les yeux: 눈을 속이다)를 이끌어 내기 위한 이차원과 삼차원의 교차방법을 선택하여 지속적인 창조신화를 재구성 구현해 오고 있다.
김재관 작품의 미학적 바탕은 15세기 선 원근법과 20세기의 그리드(Perspective Grid)로 설정하고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드러낸 표상과 해체라는 가소성적 시각을 설정하고 하나의 언어와 기호 속에 활용하는 것이 핵심키워드이다.
예술에서의 수학적 형태에서 선형 원근법은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Filippo Brunelleschi, 1377-1446)가 1415년경에 고안했으며, 1435년 수학을 예술과 과학의 기초로 여겼던 건축가이자 작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에 의해 성문화되었음을 기록하고 있으며 당대 여러 화가의 이상형으로 구현한 구상 그림들에 적용되었다.
최첨단 디지털 문명의 시대에 서 있는 김재관 작품에서의 선형 원근법은 추상 기하학으로 완성도를 섬세함의 극한의 단계까지 끌어 올리고 있다. 그 작품들은 마치 먼 미래에 지능형 생명체들이 서식할 수 있는 추상적인 구조의 공간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김재관은 노령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업에 대하는 학구적 자세가 작품다움을 함축해 내는 원천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 예술적 젊음의 본질을 이루는 세련된 기하학적 미학의 가치가 왕성한 에너지를 지녔기에 작가답다.
한만영은 개념미술의 파라다이스를 일궈낸다. 섀도 드로잉 (shadow drawing)은 그 자체가 작가의 미학적 철학을 상쾌하고 명료하게 개념화한 발상이 자신의 대표적 작품다움과 작가다움이 담겨있다.
정송규는 현미경(microscope) 시각의 미학적 확산을 통하여 픽셀(Pixel)화한 랜드스코프 (landscape) 세계를 창작 정신의 대상으로 삼아 축소된 우주 공간 격인 캔버스 위에 고무 스템프 (stamp)의 하모니적 향연을 전개함이 작가답고 작품다움으로 가득 채워졌다.
카오스적인 세상을 질서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세레모니 과정이 경이로운 마이크로 추상 구성주의(Abstract constructivism)적 작품다움으로 창조해 냈음에 주목하게 되는데 일련의 반복적 채움의 긴 여정의 몰입과정이 성스럽다 못해 고귀한 예술적 고행의 결과물을 낳고 있다.
카오스의 어원은 "입을 벌리다(chainein)"라는 뜻을 지녔으며, 혼돈이 아니라 '거대한 틈', '텅 빈 공간(공허)'을 의미하면서도 우리 시대에 카오스(χαος)는 '무질서, 혼돈'의 뜻으로 보려는 경향이 높다.
하지만, 원래는 '아직 정해지거나 구분되어 있지 않은 순수한 청정'으로 세상의 모든 유형과 무형 모든 것들을 담을 수 있는 무한의 빈 공간이라는 개념 위에 마이크로 추상 구성주의(Abstract constructivism)적 미학의 개입의 발산(發散)의 결과물인 독창적 작품다움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헤아릴 수 없는 수치의 자의적인 반복은 자동화 개념으로 만들어진 세상을 얘기하게 되는데 질서의
재배치 즉 구성적인 미학의 본질인 되는 말초 신경계(神經系) 적 시각의 재현이 신화가 되어 겸허하게 들려주고 있다.
이는 물성 본질의 특성을 잃지 않는 범위에서 도달할 수 있는 원자의 개념을 이입시켜 모든 물질이 기본적인 최소 입자로서 유사한 형상으로 출발하듯 모든 이미지의 원자는 픽셀 화 (모자이크의 의미가 담긴 영어 Pixelation 혹은 Pixelization 이라는 표현은 우리말로는 '픽셀 화'라고 함) 한 작품으로 Pixelate-Mosaic이라는 용어와 맥을 같이 한다.
원자(原子)라고 함은 근본이 되는 물질이라 하여서 한자로 근본 原을 사용하였고, 서구에서는 기원전 450년경에 고대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Democritus)가 그리스어로 부정을 뜻하는 á 와 자름을 뜻하는 tomos의 합성어 átomos는 '자를 수 없음'을 뜻하는 단어가 탄생했다.
색상과 물체를 관조하는 방향과 마주하는 수직인 단위 면적에 대한 밝기를 나타내는 휘도를 독립적으로 분할 할 수 있는 화면상의 가장 작은 단위인 픽셀(pixel)의 미학을 담아내는 추상 풍경
(Abstract landscape)의 개념 전개가 읽힌다.
서구의 현미경적 시각의 미학을 들여다보면 추상화의 아버지 격인 바실리 칸딘스키( 1879, Kyiv, Ukraine~1935, Saint Petersburg, Russia)는 미생물을 닮은 형상을 특유의 음악적, 시적 감수성을 가미한 걸작을 그려낸 최초의 추상미술은 픽셀이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먼 현대문명의 전 단계인 근대문명의 시대적 배경에서 예술작품다운 서정적 추상화의 작품다움으로 세상으로부터 주목받았다.
정송규의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나노분해와 나노시각에 둔 작품은 픽셀화된 추상 또는 진경(眞境) 또는 실경(實景) 랜드스코프 (landscape)가 되어 작품다움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선택은 마치 픽셀의 수가 많아서 화면이 더 선명한 LED 세상을 보여주는 찬란한 첨단 현대문명을 잉태시키는 디지털 공학적 선명도를 구현하고 있다.
일찍이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거장 말레비치(Kazimir Malevich:1879~1935)는 흰 그림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절대주의를 처음으로 구현한 〈검은 사각형〉을 통하여 빛에 대해 언급하며 White와 Black컬러에 각기 다른 빛이 존재함을 인상주의 핵심키워드의 출발이 되는 스펙트럼에 의한 자연광의 컬러 분석을 역설하였다. 정송규의 마이크로 구성주의적 작품에는 미립자 개체별 빛과 그러면서도 밀집의 빛이 어우러져 마치 빅뱅 이후의 우주의 질서를 보는 듯하다.
엄밀히 말해서 구상의 최소단위는 원자이자 픽셀이기에 확대된 추상성과 확대된 구상성이 공존한다.
마치 밤하늘의 별들을 키워드의 미학으로 삼아 개념화한 김환기의 작품을 구상적이자 추상적인 랜드스코프로 보는 이유이기도 하듯 정송규의 작품은 우리 시대에 조명받아야 할 작가다움과 작품다움의 단일 개체의 집합뿐만 아니라 공간 영역을 확산하는 마이크로 구성주의적 시간과 빛으로 함축되어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권여현은 인류의 인문학적 가치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신화, 역사, 철학, 종교 등 모티브로 하여 사회에 밀착된 일상 속의 스토리를 작가의 성찰을 거쳐 재구성된 현실의 기억을 신비주의적 시각으로 배열하여 야릇한 생경한 현실을 나열하는 창작방법을 구현하고 있다.
그의 색조는 붓 터치와 하모니를 이뤄 환상적이며 환각적인 감성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현대적 감성의 예술다움이 표출된다. 인체와 풍경의 와이드 미학적 배치가 주는 특성작가의 기념비적 예술작품다움을 상기시켜준다.
이는 기독교 세계관을 성찰 키워드로 한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이 최후의 걸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_폴 고갱, 1897년작>을 통해 인류의 생명과 삶의 고귀함을 다뤘듯 어찌 생각하면 권여현 작품다움의 미학의 근본이 고갱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권여현의 작품다운 명화가 되는 가득한 요소들을 통하여 창출한 신비한 시간을 접하고 있다.
차기율은 형이상학적인 물성을 갖는 표상의 설치작품으로 세상에 각인됐다. 오로지 그 영역에서는 차기율만의 작품다움과 작가다움이 존재한다.
차기율의 작품은 사실적 현상의 진솔한 모티브로 넘어선 사유의 전형이 되는 포괄적 추상성을 띤 형이상학적인 형상으로 결과에 다다르면서 세상에 유일한 존재가 성립되는 작품다움이 눈여겨 진다.
이명환에 대한 미술평론가 김영재는 개념미술의 선구자로서 ‘예술을 다시 한번 정신에 봉사하게 하고 싶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마르셀 뒤샹의 작품처럼 우아하고 논리적이다. 그러나 이명환의 작품은 현미경적인 생태환경에서부터 최첨단 공상과학소설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착상되면서도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라는 점이 뒤샹과 다르며, 백남준의 미학을 현실 세계에서 보여주고 있다.
뒤샹과 백남준이라는 20세기 양대 거장에서 출발하여 이명환의 작품은 이상적이면서 낭만적, 도덕적 예술로 발전한다. 그 끝에는 인류의 번영이 있다.
이명환의 <시각적 신화>작품은 우리의 신화를 모티브로 하여 신체에 제안하는 생소한 조형성을 구현한 개념작품으로 입체이자 설치작품다움이 다분하다.
김용식은 90년대 말부터 구현해 오고 있는 "영원과 한계" 우주론적인 시야를 통하여 무한한 공간에서의 유한의 생명체의 초월적인 발상의 모티브를 드러내고 있다. 때론 축축한 양수의 공간의 은유적 접근을 보여주며 모든 잉태하는 생명체의 존귀함을 단일한 드러냄의 주제로 삼아 구상적 기호화로 발현하는 표현방법을 선택해 오고 있으니 충분히 작가다움을 발견할 수 있겠다.
작품다움의 커뮤니케이션과 전시 관람을 통한 교감
세상은 커뮤니케이션과 정보화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AI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가 인간을 대신하여 인간처럼 생각하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디지털 세상에서 방대하게 기록 저장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사고의 과정이 생략된 인간의 지식을 좀 더 빠르게 요점 화하고 구체화한 결과물에 불과하다. 인간처럼..., 예술가처럼은 예술의 본질을 드러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 한계는 오로지 실체(實體)적 예술가의 모티브, 미학, 관점, 감성만을 통하여 완성하여 예술다움과 예술가다움의 완성이 이뤄짐을 이번 전시를 통하여 드러내고자 한다.
창작공학의 관점에서 창작의 Odyssey 키워드는 주제설정과 모티브-> 실험적 실천-> 다양성의 매개체 개입과 실험 -> 미학적 관철을 통한 작품완성 -> 작품 개념 서술 ->평가 등의 창작 루트로 모험이 맺어지는데 예술가의 의식, 시간, 공간의 차이에 따라 작품 정체성에 대한 고뇌와 희열의 반복적 상황을 거처 창조의 짙은 향기를 낸다.
예술작품을 창작 생산하는 예술가와 창작품을 수용하는 관람객 간의 작품이 갖는 아이덴티티 즉, 작품 개념에 대한 공감이 이뤄질 때 예술작품은 빛을 발하게 된다.
예술다움의 창작품이 예술가의 닉네임과 평판이 된다. 이 전시 예술가들의 작품을 직관하며 Career(예술 활동 성적표)는 예술가다움과 작품다움을 직접 규정하는 얼굴이 아님을 간파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