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의 진화 -
"무작정 당신이 좋아요" 하며 사랑으로 한 몸 되어
분홍빛 황홀감에 빠진 연인들의 미래엔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처녀가 결혼하여 아기를 낳고 주부로 거듭나는 과정을 살펴보면,
싱글 시절 이성을 향한 아름다운 외모 가꾸기는 점점 번거롭고 귀찮아 흉한 부분만 대충 가린다.
그리고 민낯을 서서히 드러낸다.
남의 남자 눈에 띄어봤자 현실은 새끼 딸린 어미의 모습이 아니던가.
긴 세월 여신조차 탐낼 정도로 아름답게 가꾸던 긴 생머리는
아무렇게나 휘감아 고정하는 것을 반복하던 끝에 결국 뭉텅 잘라 단발머리로 만든다.
황당해하는 남편 앞에서 "머리를 새롭게 하고 왔으면 예쁘다는 말 한마디쯤 해주면 안 되나!" 하고 선수를 친다.
그리고 며칠 뒤 줄리앙 석고상처럼 빠글빠글한 파마머리로 나타나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온종일 분주한 아줌마한테 딱 맞는 머리가 아닌가.
매일 그려야 하는 눈썹화장이 귀찮아 아예 자대고 그린 것처럼 문신을 해버린다.
그리고 거울 앞에 앉아 낯설게 달라진 모습을 보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옷은 호피 무늬 같은 옷이 좋다.
그래야 뭐가 묻어도 티가 안 나니까.
남편이 입을 옷은 유부남 느낌이 물씬 풍기는 무게감 있고 고급스러운 옷을 고른다.
있어 보이면서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색감이 포인트다.
자칫 주변 처녀들의 설렘을 자극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세상사는 지혜라고 생각하며...
한 벌쯤은 멋있고 꽤 괜찮은 것으로 장만해 옷장 속에 보관만 한다.
그리고 가끔 꺼내 입혀보며 남편의 스타일을 점검 관리한다.
부부 동반 모임 또는 학부모 호출 때 쪽팔리면 안 되니까.
그리고 로맨스는 사치스러운 것.
아저씨로 변한 허리 없는 남편을 바라보며 돈 버는 기계 다루듯 성능 유지관리에 정성을 쏟는다.
관리를 소홀히 하다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지 맘대로 날뛰면 안 되니까.
자식 키우는 어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로지 돈,
가끔 남편의 얼굴에서 지폐가 오버랩되어(겹쳐) 보이기도 한다.
오로지 돈만이 우리 가정을 지키고 내 새끼들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
손에 쥔 돈이 곧 행복이라는 굳건한 믿음에,
양팔 걷어붙이고 체면 생각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돈 모으는 일에 몰두한다.
앵벌이 호주머니라도 털어올 기세다.
처녀 시절, 남편을 현혹하던 아름답고 가녀린 이미지는 철 지난 사치스러운 추억일 뿐
억세고 강한 아줌마가 되어 언어도 수준급으로 격상된 과감한 화법을 구사한다.
목소리는 커지고 단순 직설적이며 조건반사식 감정을 자주 드러낸다.
도떼기시장에 내놔도 확실하게 존재감을 부각 시킨다.
아이들 관련해선, 둥지를 지키는 어미 새처럼 날카롭고 공격적이며 예민한 보호본능을 발산한다.
자식은 곧 나의 분신이니까.
쉬는 날 늦게까지 잠자는 남편을 기어이 깨워 아이들과 함께 처녀 시절 데이트하던 장소로 소풍을 가보지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튀는 아이들을 정신없이 쫓아다니다 보면,
옛 분위기는 고사하고 "내가 여기를 왜 왔나!" 하는 후회막심한 생각이 든다.
돌아오는 길에 백화점에 잠깐 들렀다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나던 장난감 진열대 앞에서
갑자기 아이들 눈빛이 달라지더니 난생처음 겪는 사투가 벌어지고, 결국 적지 않은 경제적 손실을 입은 후 겨우 빠져나온다.
백화점 문을 나오며 다짐한다. 내 생전에 반복되는 실수는 없다고...
그리고 어느 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우연히 몇 가닥의 새치와 거칠어진 피부를 발견하고는 놀란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처녀 시절 유산으로 보관된 물건들을 꺼내놓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곰팡이 핀 킬 힐과 줄어든 스키니 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울적한 마음에 깡 소주를 삼키며 남편을 원망하듯 바라본다.
이상으로 처녀가 아줌마로 진화하는 과정을 살펴봤는데, 쓰잘데 없는 상상을 했네요. ^^
2020년 5월 23일 할 일 없는 양재천변 늙은이 열운(洌雲)이 쓰다.
첫댓글 2017년 10월 20
연인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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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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