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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라는 경고 말씀 창3:1-5, 계22:18-19
요즘 우리사회에서 조국게이트에 대해 검찰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소문으로 나던 것들이 하나 하나 밝혀지고 있지만 당사자는 자기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그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조국자녀들의 비리를 가지고 상대방들의 자녀들의 문제까지도 뉴스화시키면서 본질적인 문제를 덮으려하는 형태를 볼 수 있다. 조국 부부가 학교비리나 가족일가의 금융비리나 자녀들을 입학시키고자 위조로 작성되었던 상장이나 수료증같은 것이나 아들의 입학자료들이 없어졌다는 뉴스를 듣노라면 세상 사람들은 감히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한 것을 두고 누구나 한마디씩 내뱉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일에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해선 뭔가 첨가하고 뭔가 삭제한다고 하는데 그런 결과가 나중에 밝혀지게 되면 그에 상당한 징벌을 받게 되는 것이 상식인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에게 주신 말씀을 우리가 바로 믿고 바르게 살아야 할텐데 사람에 따라서 시대에 따라서 교단에 따라서 교회에 따라서 제각각 해석하거나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지킨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공자님의 말씀에도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라는 말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말씀을 주시고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그 말씀에 더하지도 말고, 거기에서 빼지도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킬지니라는 말씀을 신명기 4:2와 12:32에서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 마지막 22장에서도 엄중하게 말씀을 하심으로써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확고한 기준을 주셨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능력이 있어 양날이 있는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그리고 관절과 골수를 찔러 가르고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판별하느니라. 그 어떤 피조물도 그분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나니, 오직 만물이 우리가 회계해야 하는 그분의 눈앞에 벌거벗은 채로 명백히 드러나게 되느나라(히 4:12-13)고 하셨듯이 그 날 그분 앞에 서면 모든 것들이 부끄럽게 드러나고 책망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 세상에서야 징계받으면 징계에 따라 감옥도 가고 벌금도 내고 그 자리에서 물러서는 경우도 있지만 심판자앞에서는 천국행이냐 지옥행이냐? 영생이냐 영벌이냐의 문제이므로 너무 중요한 신앙상의 문제들이다. '기록되고 말하여진' 하나님의 말씀들 곧 살아 있는 '인격'으로서의 성경이 경고 하는 것에는 성경의 일점일획이라도 함부로 고치지 말라는 세가지 중요한 경고가 등장한다.(신명기, 잠언, 요한계시록)
(신 4:2)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그 말씀에 더하지도 말고, 거기에서 빼지도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킬지니라.
(신 12:32)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은 무엇이나 지켜 행하고, 너는 거기에 더하지도 말고 거기에서 빼지도 말지니라.
(잠 30:5-6)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를 신뢰하는 자들에게 방패시니라. 너는 그분의 말씀들에 더하지 말라. 그분께서 너를 책망하실 터인즉 네가 거짓말쟁이로 드러날까 염려함이라.
(계 22:18-19) 이는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듣는 각 사람에게 증거함이니 누구든지 이것들에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삭제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의 책과 거룩한 도성과 이 책에 기록된 것들에서 그의 부분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처럼 성경에는 신명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잠언에서 그리고 마지막 요한계시록 22장에서도 이 말씀을 아주 강력하게 경고하는 말씀으로 기록해 놓았다. 왜 이런 말씀을 주셨는가 생각하면 시대가 갈수록 성경말씀을 변개하는 세력들이 있을 것이란 아셨으므로 미리 경고로 주신 말씀이시다. 말씀을 변개하는 것에 알기 위해선 우리는 우선 "필사본"에 관한 사본들에 대한 기본적인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들이 보는 성경은 대략 두가지 계열의 성경들은 삭제가 된 성경도 있고 첨가된 성경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행하도록 명령되는 것을 계속해서 '빼는' 사본들은 "알렉산드리아 계열" 사본들(시내사본과 바티칸 사본)이고, 그리스도인이 행하도록 되어 있는 것에 계속해서 "더하는" 사본들은 "서방계열" 로마카톨릭 사본들이다. 알렉산드리아 사본들이 로마 카톨릭사본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알렉산드리아인들"은 "안디옥"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행6:5) 곳에서 등장한다.(행6:9). "안디옥"에서는 처음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고, "최초의 성경 교사들"이 있었다.(행11:26) "안디옥"은 또한 최초로 "선교사들"을 파송하기도 했다(행13:2-3). 바로 이곳에서 신약성경의 시리아-비잔틴 원문, 곧 안디옥 원문이 유래되었고 이 계열을 따라 우리가 킹제임스성경을 전수받은 것이다. 이 원문이 바로 에라스무스, 베자, 스테파누스, 엘지버 형제들, 트리니테리안 성경공회의 원문이다.
한편 알렉산드리아인들은 스테반을 죽인 살인자들과 거짓말쟁이들과 연관이 있다(행6:11-14). 알렉산드리아는 구원받지 못한 성경교사인 아볼로의 연고지이며, 그는 불완전한 계시를 받은 자였다(행18:24-26).
이 도시애서 유래한 원문, 곧 알렉산드리아 혹은 이집트원문은 심각한 삭제들로 유명하다. 제롬(348-420)이라는 사람의 가장 큰 업적은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였는데 그가 사용한 사본이 알렉산드리아 계열이고, 구약성경은 처음에는 70인역에서 번역하였으나, 3차 번역에서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직접 번역하였다. 그가 번역한 이 라틴어 성경을 보통 불가타성경 또는 라틴 벌게이트라한다.
이 알렉산드리아 사본에 의해 네슬, 알란드, 메거츠, 웨스트코트와 홀트 등의 개역성경을 포함한 세계성서공회의 원문이 나왔으며, 모든 기독교대학들과 신학원들과 대학들은 이 원문에서 나온 ASV, NASV, NIV, RSV,RV 등을 추천한다. 성경에는 성경을 함부로 고치지 말라는 세가지 중요한 경고가 등장한다.(신명기, 잠언, 요한계시록) 그러나, '코란', '탈무드','몰몬경', '외경'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에 '첨가'를 시키고 있다.
최초의 성경변개
최초의 '성경 변개'는 창세기3장에서 사탄이 "긍정적 사고방식의 능력"을 통해 이브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든 것에서 시작된다.
사탄이 이 지구상에서 제일 처음 내뱉은 말은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3:1)였다. 이브가 행동을 취했을 때, 그녀는 긍정적 사고방식에 따른 행동을 취한 것이다. 이 땅 위의 첫번째 죄는 한 여인에 의해 범해졌는데, 그것은 성경 개정자들의 죄와 같은 것이었다.
이브는 창세기 3장2절 여자가 뱀에게 이르되 우리가 동산의 나무의 열매는 먹어도 되나에서 '마음대로'라는 말을 삭제했다 왜냐하면 창세기2:16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에서 마음대로를 삭제했다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였는데 3장3절에서는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에 관하여는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그것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에서, 원문에는 없었던 만지지도 말라는 말을 첨가하고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에서 너희가 죽을까 염려하노라로 말로 바꾸었다. 이처럼 삭제하거나 변개하더라도 의미는 전달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원 말씀을 변개시키는 것은 성경자체를 부패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탄은 결코 "말씀의 주요원리"나 "믿음의 근본 사항" 혹은 성경의 "주된 가르침"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지만 사탄이 문제 삼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자체이다.
그래서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삭제하거나 첨가함으로로써 성경을 변개시키는 일을 꾸준히 해온 것이다. 성경을 변개시킨다는 말은 성경을 부패시킨다는 말로 부패한 음식을 먹었다면 큰일나듯이 부패한 성경을 읽으면 교인들로 하여금 지옥을 가게 한다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사탄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는데, 사탄은 말씀의 엄중함을 부정하고 있다.
(창 3:4-5)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는데 사탄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 오히려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된다는 거짓말로 이브를 미혹한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조금씩 변개시키는 것이 바로 모든 타락의 근원이다. 우리는 이것을 "세속적 고등교육"이라 부른다. 그 어떤 것이든지 하나의 명제로 귀착되는데, 그것은 "절대 진리는 없다.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며 당신은 현명하게 행함으로써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문제에 대해서 일찍이 이 땅에 살았던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신약성경에서 들려주는 말을 주의 깊게 읽어 보라.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다수사본에 의해 기록된 킹제임스성경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성경들로는 이 두 구절에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고후 2:17)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킴으로써(부패시키는) 이익을 취하는 여러 사람들과 같지 않고 오직 성실함으로써 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로서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고후 4:2) 오히려 수치스러운 일들을 버리고 교활함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속임수로 다루지 아니하며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우리 스스로를 각 사람의 양심에 추천하노라.
(골 2:8) 아무도 너희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라. 그것들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른 것이며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니라.
(딤전 6:20) 오 디모데야, 네게 맡겨진 것을 지키고, 비속하고 허황된 말장난과 거짓되이 일컬어지는 과학의 반론을 피하라.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성경해석의 가장 기본은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한다는 원리를 이해하여야 한다.
우리들은 주님 다시 오실 때 까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주님만 따라가야 다른복음을 듣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시대에 하나님의 계명을 바로 지키는 것은 왜 중요한가? 각 시대를 통한 불변하는 영원한 복음은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각 시대마다 구체적인 행위로 표현되었습니다.
노아시대 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창7:1)는 구체적인 행위를 요구하셨고 노아는 주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습니다(창7:5).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때에도 하나님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은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창19:17)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지구의 마지막 시대에도 온 인류를 위한 당신의 복음을 구체화하여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지 않으실까? 지금까지의 부분적인 사건들은 결국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우리의 거울이 되고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고전10:11). 온 인류의 영원한 운명이 달려 있는 이 마지막 시대의 기별은 무엇일까요? 당신은 어떻게 알고 있으며 또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을까?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의 유무는 "누가 내 마음의 주인인가? 누가 내 생애의 주인인가?"에 대한 답변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에서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지키고 행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일점 일획이라도 삭제하거나 첨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온 인류가 귀 기울여야할 최종적 구원의 기별은 계14장에 나온 세 천사의 기별입니다. 그 첫째 천사의 기별은 이러합니다.
(계 14: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우리가 어떻게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분의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계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오늘날 믿는 자가 많이 있지만 참된 성도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믿음을 지키는 자입니다. 구체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계명은 어떤 계명입니까? 바로 그 계명은 구체적으로 이렇게 하나님이 친수로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출 20:8, 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이는 엿새 동안에 주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안식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주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요한계시록 14장에 나타난 세 천사의 기별에 대한 순종의 유무에 따라 나머지 계시록 22장까지 두 갈래 길을 가게 됩니다. 계 14장의 세천사기별이 계시록의 나머지 부분, 전부를 관통하는 황금줄입니다. 순종과 불순종의 두 길을 보여주는 구원과 멸망의 분깃점입니다.
계시록 15장은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계15:2) 부를 노래가 나옵니다. 유리 바닷가에서 부를 놀라운 구원의 노래, 승리의 노래는 아무나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천사의 기별을 받아 들일 사람 곧 셋째 천사의 기별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는 기별에 순종하여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계15:2) 부를 노래인 것입니다.
계16장에는 7재앙이 나옵니다. 그 재앙은 세천사의 기별을 거절한 자들 곧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한 자들에게"(계16:2) 내리는 것입니다.
계17장에서는 두번째 천사의 기별, 바벨론이 무너지리라고 했는데 "큰 바벨론"(계17:5)의 정체를 폭로해 줍니다.
계18장은 두번째 천사의 기별, 바벨론이 무너지리라고 했는데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계18:21)할 것과 그 바벨론 중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18:4)는 하나님의 탄원입니다. 그것은 둘째 천사기별의 성취입니다.
계19장은 세번째 천사의 기별, 짐승의 표를 받는 자들에게 불과 유황으로 고난이 임하겠다고 했는데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산 채로 유황불 못에 던지우는"(계19:20) 내용으로 세번째 기별의 성취를 보여줍니다.
20장에서 22장까지는 세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인 자들이 누릴 놀라운 영광과 행복을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21:26-27)
얼마나 분명한 사실입니까? 당신은 이 주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부르심에 응답한 자들은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계21:26-27).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한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13:8)
요한계시록에는 기록된 자들이 받을 복이 나오는데 어떤 사람들이 복을 받을 것인가 알아 보겠습니다.
1:3 이 대언의 말씀들을 읽는 자와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그것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때가 가깝기 때문이라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나서 내게 이르시되 기록하라. 이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께서 이르시되 그러하다. 이것은 그들의 수고를 그치고 안식하게 하려 함이니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뒤따르리로다, 하시더라
16:15 :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나니 깨어 있어 자기 옷을 지키고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여 그들에게 자기 수치를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9:9 : 그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부름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이르되, 이것들은 하나님의 참된 말씀들이라, 하기에
20:6 :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릴 권능을 갖지 못하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로다
22:7 :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더라.
22:14 그분의 명령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것은 그들이 생명나무에 이르는 권리를 소유하게 하며 그 문들을 지나 그 도시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로다.
2. 하나님 말씀을 삭제하므로써 부패된 교회
(1) 연옥에서 천국으로 인도된다는 로마카톨릭 교회
우리가 알다시피 개혁교회와 로마카톨릭의 교회에서 말하는 10계명은 다르다. 로마카톨릭 성경엔 2계명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라는 계명이 삭제되었고 10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나누어서 9계명과 10계명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로마카톨릭하면 죽은 영혼이 가는 곳이 천국과 연옥과 지옥이 있다고 한다. 성경에 없는 것을 첨가한 연옥에 대해 알아보자.
쟈크 르 고프의 『연옥의 탄생』 요약
2세기와 4세기 사이 종말론적 지평에 덜 심취하게 된 기독교가 개인적 죽음과 최후 심판 사이에 영혼들이 처하게 될 상황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어떤 죄인들의 영혼들은 이 기간 동안 아마도 시련을 거쳐 구원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때 새로운 신앙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12세기에 이르러 연옥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연옥에 대한 신앙은 우선 불멸성과 부활에 대한 신앙을 내포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죽음에서 되살아난다 할 때 그의 죽음과 부활 사이에는 무엇인가가 일어날 터이니까 연옥은 불멸성이 일회적인 삶을 통해 얻어지는 것일 때 어떤 인간들이 영생에 도달하도록 주어진 보완적 장치였다. 힌두교나 카타르교처럼 계속적인 환생을 믿는 종교들에는 연옥 신앙이 없다. 16세기 종교혁명후 카톨릭 교도들과 프로테스탄트 교도들 사이에 신랄한 논쟁에서 신교도들이 카톨릭교도들에게 가장 격렬히 비난한 것은 연옥에 대한 신앙이었다. 루터가 '제3의 처소'라 일컬었던 연옥은 그저 "지어 낸"것일뿐이지 성서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연옥은 유대교와 기독교 이전의 다른 종교들과 문명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연옥의 개념이 형성되고 확립되는 시기는 4세기에서 12세기기까지 시기로 보고 있다. 연옥이 형성되기 이전에는 천국과 지옥의 이원적 구조였다면 연옥이 탄생하면서 삼원적 구조의 저승으로 변화한다. 연옥이 탄생되기 이전 기초적인 교의를 탄생시킨 사람으로 2-3세기의 오리겐을 들 수 있다. 오리겐은 연옥에 관련하여 4가지 기여를 하였는데 사후 저승에서의 정화 개념을 구체화하고 가벼운 죄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를 구분 지었고 사후 인간의 심판을 낙원, 연소하는 불에 잠깐 머무르는 자, 아주 오래 머무르는 자로 나누었다. 또한 정화기간에 대한 계산도 시도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경우는 대신 기도해주는 대도의 효력을 인정하였다. 또한 그는 천년 왕국설에 대해서 비판을 하였다.
이후 12세기 라틴 기독교 세계가 성장하는 상황에서 이전과는 달리 자유로운 중산층이라는 새로운 계층을 탄생시켰고, 이것이 새로운 저승 공간인 연옥의 탄생에 영향을 주었다. 연옥의 탄생은 중세인의 사후 운명에 있어서 천국의 문이 넓어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연옥 이전에는 지옥으로 떨어질 자들도 연옥의 탄생으로 가능한 죄의 범주 속에 들어가도 천국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저승체계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중세인들에게 있어 교회의 영향력을 더욱 깊게 하고 넓히는 효과를 가져왔다. 또한 넓어진 천국의 문은 중세인들의 직업에 대한 제약을 완화시켰다. 그 예로 연옥이전에 고리대금업자는 지옥행이 결정된 자였지만 연옥 탄생이후에는 연옥을 통해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가 되었다. 저자 쟈크 르 고프는 이러한 변화를 중세 이후의 자본주의의 태동과 조심스레 연계시키고 있다고 한다. 연옥의 탄생은 중세인들에게 그들을 제약하는 사상적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줌으로써 사상의 지평을 넓히고, 새로운 세계로의 변화를 이끌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연옥이 확립되고 민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전파된 14세기는 일반적인 중세의 끝과 맞물려 있는 시기이며, 사상적 변화가 많이 일어난 시기이다. 연옥은 여러 가지면에서 중간적 장소이다. 시간적으로 그것은 개인적 죽음과 최후 심판 사이의 중간에 온다. 그들이 말하는 연옥이란 또한 공간적으로도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위치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승의 시간과 공간과는 다르며, 중세의 이른바 경이로운 상상 세계에 속한다. 그러나 연옥은 저승의 3대 처소들 중에 가장 오래 걸려 정의된 것이고 지옥이나 천국에 대한 자세한 논급 없이도 연옥을 다루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였다.
(2) 침례를 세례로 변개한 복음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기에 앞서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침례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으셨을 때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오사 그분 위에 머무셨다고 했다.
침례는 죄에 대해 죽었다는 의미와 죽음에서 다시 부활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고서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졌으면 당연히 물가에 가서 침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성서공회에서 번역한 개역성경에는 침례라는 말 대신 세례라는 말이 차지한다. 침례를 세례로 변개시킨 것이다. 침례는 예수님이 물속에 온전히 잠기셨던 것처럼 그렇게 침례를 받아야 하는데 침례교회나 순복음 교회나 오순절교회를 제외한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세례를 주고 있다. 개역성경에도 침례대신 세례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거부감 없이 그렇게 의식을 행한다고 볼 수 있다. 종교개혁을 한 마르틴루터가 개혁하지 못한 것은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는 것과 침례를 세례로 행하는 의식을 개혁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생각한다. 정말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의식이나 용어부터 본래대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침례를 받기 위해선 말씀에 대한 확신과 결단이 필요하다.
(3) 조용기 목사의 삼박자 구원과 5중 복음에 현혹되다
조목사에게 복음이란 '삼박자 구원'을 말하는데, 이는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것'(요삼 1:2)을 말하는 것이다. 즉 삼중 축복의 복음은 영혼의 구원, 생활의 복, 건강의 복이 그것이다. 이는 대부분 사람들이 이것을 얻고자 교회에 나온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예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구원의 고지를 점령하셨기 때문에 영육간에 하나님의 은총이 그곳에 이미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죄를 짓지 말라고 말하는 대신에 '당신은 죄 용서함을 받았고 이미 죄를 이겼다'는 사실을 먼저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한다. 죄와 싸워보지도 않고 죄를 이겼다는 조목사는 자신의 설교의 기본 내용으로 삼박자 구원과 함께 '오중 복음'을 말한다.
오중 복음은 중생의 복음, 신유의 복음, 재림의 복음, 성령 세례의 복음, 축복의 복음인데, 이것이 바로 순복음 메시지 이며 모든 설교자가 전해야 할 메시지라고 강조한다.
박명수 교수는 조용기 목사가 강조하는 오중 복음의 출처를 오순절 운동의 맥락에서 살펴보면서, 19세기 말의 근대 복음주의의 연장선에서 설명한다. 오순절 운동이 주장하는 바는 근대 복음 주의에서도 사용하는 중생, 신유, 재림에 방언과 관련시킨 성령세례를 더한 것인데, 조용기 목사는 여기에 축복의 복음을 첨가한 것이 특색이라는 것이다.
이 삼중의 축복의 복음이 곧 조용기 목사의 설교의 특징인데 이 땅에서 잘먹고 잘사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 된다. 죄사함받고 천국가는 것은 나중의 문제이다.
2018년이 창립 60주년을 맞은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내로라하는 대형교회 중 하나다. 한국교회사 주요 이슈에도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자인 조용기 목사의 족적은 화려(?)하다.
조용기 목사는 창립 60주년을 맞아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된 기념예배 및 행사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길을 회상하며 ‘성령의 역사’라고 자평했다. 조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60년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고, 성령님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심으로 부흥을 이뤄 주셨다”고 말했다. 또 조용기 목사는 “성령의 역사는 99.9%고 내 노력은 0.1%도 안 된다. 희망의 삼중 축복(영·환경·건강의 축복)과 긍정의 5중 복음(구원·성령충만·신유·축복·재림복음), 4차원의 영성이 성령이 내게 주신 무기였다”고 강조했다. 조 목사의 설교대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60년 역사를 과연 ‘성령의 역사’로 볼 수 있을까?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58년 5월 18일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천막을 짓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때를 창립 시기로 본다. 이 때 다른 개신교교회와는 달리 방언과 신유(신의 힘으로 병이 낫는 것) 등으로 신자들을 끌어 모았고, 1973년 여의도에 교회를 짓고 본격적인 부흥이 이뤄진다. 1970년대 경제 성장과 맞물려 아픔과 고통 속에 있던 서민들은 조 목사의 신유 집회에 이끌렸다. 교인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1984년 40만명, 1992년엔 70만명을 넘어서며 1993년에는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 교회로 기록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교인 수는 14만 5000명이 감소한 55만 500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교인 수 감소는 필연적 수순이었다. 먼저 교인들이 하늘처럼 모신 창립자 조용기 원로목사의 가족은 범죄로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 지난해 5월 여의도순복음교회에 130억여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 목사와 장남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은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3월에는 조 목사의 차남 조민제 국민일보 회장도 신문 편집제작시스템 용역 대금을 부풀려 2억원의 신문발전기금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확정 판결을 받았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또 한국교회사를 어지럽힌 ‘이단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교회이기도 하다. 창립과 함께 엄청난 부흥을 이뤘던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당시 개신교 주류 교단으로부터 ‘사이비’로 규정을 받았다.
교인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때인 1983년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는 제68회 총회에서 ‘조용기, 권신찬 이단 사이비 연구대책위원회’의 보고서를 채택하고, 조 목사를 ‘사이비’로 규정했다. 이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사이비이단문제상담소(소장 최삼경 목사)가 1993년 4월 27일 발간한 ‘상담소자료집 3-사이비이단에 대한 대책과지침I’에 자세히 명시돼 있다. 이 지침서는 당시 예장 통합 전국 교회와 교역자들에게 통보됐다. 이 자료에 따르면 조용기 목사를 사이비로 규정한 근거로 제시한 것 중 하나는 “기성교회 교인 뺏기와 같은 일로써 많은 교회와 교역자들에게 피해를 줌으로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상처를 입히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조상숭배, 부활처녀 소동, 치병안수사건, 목사안수 남발, 무분별한 성찬예식, 성령의 증거, 신앙운동, 삼박자 구원 등을 문제 삼았다. 조 목사에 대한 이단‧사이비 논란은 예장 통합 제77회기인 1992년까지 10년 동안 지속됐다. 그 사이인 1988년 국민일보가 창간됐고, 이듬해 조 목사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한기총이 탄생했다. 조 목사가 한기총 전면에 나서지 않았지만 그 중심축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1993년 예장 통합 측은 연합사역 영역에서 조 목사에 대한 사이비 시비를 해제했다. 이후 주요 교단에서 조용기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대한 이단‧사이비 시비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중요한 점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교리가 달라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후 여의순복음교회 교단지 국민일보는 한국교회 보수 교단들을 대변하며 ‘이단·사이비’ 배척에 앞장서고 있다.
2008년 세대교체로 이영훈 담임목사가 교회의 수장이 됐지만, 이 목사도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에 당선됐다가 직무 정지를 당하는 등 한기총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교세의 증가를 ‘성령의 역사’로 평가한다면 더 이상 교인수가 늘지 않고, 오히려 급감하고 있는 현재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 평가는 한국교회 교인들의 몫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가 주장한 삼박자 오중복음의 내용은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번영복음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조용기목사의 가까운 동역자들이 번역복음의 선구자들이기 때문이다.
(4) 번영복음은 부패한 복음이다
번영복음은 영혼 구원은 이미 받았으니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 덕에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다. 번영복음은 한국교회를 위협하는 가장 큰 병원균이다. 번영복음은 기독교의 탈을 쓴 이교요 사교다. 번영복음의 밑바탕에는 탐욕을 섬기는 우상숭배뿐 아니라 범신론이라는 이교 사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단보다 위험한 이 사상이 한국교회 구석구석에 퍼져 있다. 번영복음에 빠진 한국교회 현실을 솔직하게 분석하자.
번영복음은 한마디로 성경을 180도 뒤집는 가짜 복음이다. 하나님 대신 세상을 사랑하라는 마귀의 속삭임이다.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구원을 썩어 없어질 세상 제물과 맞바꾸는 어리석음이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짓밟는 사상이다. 이 거짓 사상이 우리의 타락한 본성, 곧 탐욕과 결합되어 우리를 영원한 죽음으로 몰아간다. 이것이 오늘 한국교회 성도와 교회의 비리와 타락을 낳는 주된 원인이다.
1) 번영복음의 기원
번영복음의 역사적 기원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전개된 '신사고 운동' 즉 긍정적 사고방식이다. 건강한 마음가짐 그 자체에 그 모든 것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상이다. 그리고 진짜 뿌리는 인간의 타락한 욕심이다. 그런 탐욕을 극복하려고 주신 것이 복음인데 번영이라는 이름의 이 거짓 복음은 오히려 그 나쁜 뿌리를 자라게 하여 우리 마음과 삶과 사회를 온통 더럽힌다. 우리 시대의 번영복음은 인간의 마음에 담긴 탐욕이 신사고 범신론을 만나 새 모양을 갖춘 것으로, 맘몬과 더불어 범신론의 신도 섬기는 이중의 우상숭배다. 번영복음의 근저를 이루는 범신론은 특히 힌두교에서 온 것으로서, 범신론은 우리 자신을 포함해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신이라고 주장한다. 범신론은 피조물을 하나님의 위치로 격상시킨다. 번영복음은 특정 시대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 본성에 관련된 문제이다. 지금 한국교회가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지성적으로 거의 바닥에 떨어져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다. 이 안타까운 상황을 초래한 주범이 바로 세상에 대한 사랑이요 그것을 정당화시키는 번영복음이라고 생각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비리와 부패가 바로 번영복음이 낳은 썩은 열매다. 오늘날 번영복음을 논하는 이유'에서 가장 먼저 교회 세습 문제를 언급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다. 세습의 핵심 문제는 교회의 사유화다. 교회 세습은 돈, 권력, 명예 등 썩어 없어질 이 세상의 것을 물려주고 물려받는 것으로서, 세습을 시도하는 일은 교회가 세속적 번영의 실체가 되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교회가 영원을 잊은 채 땅의 것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단면으로서 번영복음의 전형적인 보기다.
조 목사를 비판한 이유는 첫째, 조 목사가 한국교회 번영복음의 원조이다. 한국의 수많은 목사들이 세계 최대라는 교회 규모에 감동을 받아 조 목사의 가짜 복음을 많이 배우고 널리 퍼뜨렸다. 그런 점에서 조 목사의 번영복음의 실체를 바로 파헤치지 않고서는 한국교회 개혁이 어렵다고 판단되어 그의 사상 분석에 많은 힘을 쏟았다.
둘째, 조 목사의 영향력에 비해 제대로 된 비판서가 없다. 영어권에서는 사실 번영복음 비판서가 많이 나와 있고 번영복음 전도사들에 대한 분석도 꽤 깊이 있게 파헤쳤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필이나 슐러보다 조 목사의 사상에 대한 분석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
- 노먼 빈센트 필과 로버트 슐러의 번영복음은 한국교회의 번영복음과 큰 차이가 없다. 조용기 목사가 두 사람의 사상을 거의 직수입했기 때문이다. 노먼 빈센트 필(1898-1993)은 감리교 목사였지만 목사라기보다는 성공학의 대부로 활동한 사람이다. 신사고의 핵심 사상을 활용하여 현장에서 대히트를 기록한 인물로서 필의 영향으로 미국과 한국의 많은 교회가 번영복음에 물이 들었다. 그는 [가이드포스트 발간인이고, 그의 책 [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 : 긍정적 사고의 힘]은 베스트셀러였다.
로버트 슐러(1926-2015)는 필의 사상적 제자로서 자존감, 자기 사랑, 꿈의 실현 등을 강조한 사람이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슐러는 필보다는 목사다운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기본 원리는 똑같이 신사고에 바탕을 둔 번영복음이다. 필이 평생 성공을 구가한 반면 슐러는 수정교회를 아들에게 세습했으나 교회가 파산하여 2012년 수정교회 건물이 가톨릭에 매각되었다. 조용기 목사는 두 사람에게서 많이 배웠고 특히 슐러와는 가까운 친분을 유지하였다. 차이도 있다. 조 목사는 두 사람과 달리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을 많이 강조하였고 번영복음과 신사고 역시 십자가 아래 꼭꼭 숨겨 놓았다. 실은 그래서 더 위험하다. 책이나 설교에서 십자가나 보혈이 갑자가 많이 등장하는 경우 그 자리를 파 보면 그 아래는 십중팔구 범신론 사상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번영복음의 사상적 원조인 신사고가 미국 고유의 사상인 만큼 미국교회도 번영복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분별력이 있는 교회들은 번영복음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들은 안타깝게도 한국에 있는 교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비리나 부패 역시 한국교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2) 미국 조엘 오스틴에 대한 미국교회의 시각은 어떤가?
조엘 오스틴(Joel Osteen,1963~)은 오럴 로버츠 대학(오순절주의자 오럴 로버츠 설립)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하고 아버지가 담임하던 휴스턴 레이크우드교회에서 방송 일을 담당했다. 그의 아버지가 1999년 갑자기 죽은 후 10월 담임목사로 부임했고, 신학도 하지 않은 그가 인간 내면의 본성에 호소한 결과 미국에서 출석교인이 가장 많은 교회로 성장시켰다. 그의 책 <긍정의 힘(Your best life now)>(2004)은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늘 밝고 긍정적인 말만 한다. 오스틴이 말하는 복은 '행복, 기쁨, 평안, 만족'이고 그 방법은 '승리, 성공, 건강, 풍요'다. 오스틴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내용을 보면 사실상 남의 권리를 가로채는 얌체 같은 짓이다. 그런데도 교인들은 그런 거짓 가르침을 아멘으로 받는다.
한국 교인들은 오스틴에 대해 미국보다는 훨씬 호의적인 것 같다. 두란노에서 그의 책들을 번역, 판매했다는 점과 교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앞 다투어 그의 책을 추천했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런 책을 출판해 큰돈을 번 출판사나 그런 책을 주님의 이름으로 추천해준 유명한 인물들을 보면 우리 한국교회가 성경적 사고, 성경적 세계관 부분에서 얼마나 허약한지 정말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3)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과 번영복음과는 어떻게 다른가?
신명기에서 28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믿고 순종하면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던 구약의 메시지는 번영복음 과 어떤 점에서 상충되는데 이 말씀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산 결과 안정된 삶을 누리는 것과 그런 삶을 목표로 추구하는 것은 다르다. 사실상 이 땅의 번영 자체가 모순이다. 죄로 인해 인간과 하나님 사이가 갈라졌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순간 하나님의 풍요에서 멀어졌다. 이 뼈아픈 상실을 상징하는 단어가 '가시와 엉겅퀴'다(창 3:17-18) 이제 인간들은 가시와 엉겅퀴 가운데서 땀 흘리며 힘겹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인간이 죄로 이 땅의 풍요를 잃어버리는 순간 하나님께서 더 나은 풍요를 약속하셨다. 이 땅에서 땀 흘리는 고생이 있겠지만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과 구원, 참된 번영을 얻는다. 그리고 이것은 여자의 후손,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재물, 권세, 명예는 복이라기보다 하나님이 맡기시는 책임이다. 우리 영혼을 죽일 수도 있기에 참으로 위험하고 무거운 책임이다.
한국교회는 영적 무감각함이 심각한 지경이다. 신학자, 목회자 등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둔감하니 교인들도 바른 판단력을 갖기 어렵다. 성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분별력을 훈련하라는 것이다. 한국 교회에는 거짓 선지자가 정말 많다.
(5) 영혼구원이 진정한 복이다
우리 시대에 혹 하나님이 주시는 부흥이 일어난다면 그 모양은 성도들이 주도하는 개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루터나 칼뱅 같은 신학자들이 주도하던 500년 전과는 달리 이제는 목회자나 신학자가 아닌 일반 교인들이 말씀의 참 뜻을 깨닫고 올바른 영적 방향을 인식하고, 믿음과 삶을 새롭게 나가는 움직임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기 때문에 이젠 한국교회가 심판에서 구원의 길로 가야한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영접하느냐 아니하느냐에 따라 멸망과 영생, 심판과 구원을 알려주고 있다. 요한복음 10:10, 마귀가 오는 것은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죽이는 것은 마귀이며 마귀의 속성은 오직 거짓뿐입니다. 마귀는 진리를 말할 수 없으므로 마귀가 쳐놓은 올무에 서 우리를 살리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어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그 길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죄로 말미암아 끊어졌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예수님께서 이어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이를 가리켜 화목케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화목제물로 이 땅에 오셔서 여러분이 받아야 할 멸망과 저주와 심판을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이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이 땅에서 풍성한 생명을 누리다가 죽음 이후에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왕노릇하며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영생을 얻었다는 것은 예수님은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죽으러 오셨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결코 호락하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신 유일한 목적은 영생과 구원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생명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모든 신앙의 출발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 즉, 구원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부모님과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그들이 예수 믿고 구원 받기를 원해서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구원의 확신, 구원의 감격이 중요한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이라는 기초 위에 다른 모든 신앙이 세워지는 것인데, 구원의 확신이 없고, 흔들리기에 세워지는 것 같다가도 금방 무너지고, 더 깊이 있는 영적 세계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워진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께서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말씀의 실현 때문입니다. 영혼구원이 바로 교회 사명인 것입니다. 그래서 2019년도 행복침례교회는 "말씀으로 세우고, 사랑으로 행하는 교회"라는 표어로 특히, 영혼구원에 포커스를 맞추고 사역해 나가려고 합니다. 교회가 영혼구원이라는 본질을 잃어버리니까 사교 클럽 내지 세상 동아리가 된 것입니다. 성령 받고 난 제자들이 한 일이 다른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즉,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복음 전하다가 감옥하고, 복음 전하다가 돌에 맞고, 복음 전하다가 순교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구원의 기쁜 소식도 거부하면 심판이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안 믿으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닌, 심판과 멸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냥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라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진리의 말씀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서는 많이 이야기하지만 정작 믿지 않았을 때의 심판에 관해서는 침묵합니다. 상대방이 기분 나쁠까봐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이 이야기 하지 않는다고 심판이 면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이 사랑하는 친구가 지옥 불에 떨어지게 놔두시렵니까? 상대방이 듣기 싫어한다는 이유로 여러분마저 입을 다물고 있다면 그 영혼은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언젠가는 알아서 믿겠지....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복음을 전하겠지.... 아니요. 영생과 구원 되시는 예수님을 전해서 한 영혼이라도 구원 받게 하는 것 아닐까요? 그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고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구원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 믿고 개인구원 가족구원이 이루어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