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정종
명리정종命理正宗-神峰通考 총목차
神峰張先生命理正宗 序
장신봉선생 명리정종 서
神峰子曰:天之所賦者命。
신봉자 왈 : 하늘이 부여한 것은 명이다.
窮達殀壽,繫諸氣稟之先,雖聖賢鬼神莫能移,故君子居易以俟命,惟不知命,無以爲君子。
궁달요수, 모인 여럿 기의 우선을 연결하는데,비록 성현귀신이지만, 옮길 수 없으므로, 군자는 사명으로 쉽게 거하고, 오직 명을 알지 못하여, 군자가 되는것이 없다.
然命之理,溯其源則肇於軒轅氏,始有干支之降,師大撓作甲子,遂以人之年月日時所生,謂之命焉!
따라서명의 이치는 그원칙을 다시 추적 헌원씨가 비롯하고, 시작은 간지의 내림이 있으며,대요씨가. 갑자를 지어 스승이고,따라서 사람의 년월일시로 태어난것이. 명이라 했다.
蓋與天賦之命其揆一也,但先未有書,至唐袁守成始作指南五星書,呂才作合婚書,
一行禪師作星曆書;
대개 여천부의 명은 헤아림이 하나지만, 먼저 서가 있지 않았고, 당에 이르러 원수성은 지남오성서를 시작했고, 여재는 합혼서를 짖고,일행선사는 성역서를 지었다;
五代有轆轤書;오대 록로서이다
前宋有殿駕書;송 이전은 전가서가 있다
南宋遼金有喬拗書;남송료금은 교유서
元有耶律楚材書, 원은 야율초재서가 있고,
裴大猷有琴堂虛實書, 배대유는 금당허실서가 있으며,
均以人之生年五行納音所屬身命限度爲之主,七曜四餘爲之用。
균으로 사람의 생년 오행납음 소속인 신명한도가 주가 되고, 7요4여가 되어 사용했다.
明朝徐均作子平書,專以日干爲主本,月令爲用神,歲時爲輔佐,則命書之作至此盡矣。其故何歟?
명조 서균은 자평서를 짖고, 오로지 일간으로 주본이 되고, 월령은 용신이 되며, 세 시는 보자가 된 즉, 명서로는 이에 이르러 다 지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蓋五星之爲說,祇以生年爲主,月與日時或遺焉。或以納音爲主,干與支或遺焉。
대개 오성으로 된 말은, 지신으로 생년이 주가 되고, 월과 함께 일 시 혹은 새로운것인가
孰若子平之理獨得其中。
홀로 그 중을 얻은 자평의 이치만 하겠는가.
日通月氣,歲與時爲脈絡,日爲身主,月爲巢穴,歲與時爲門戶,得於此而不遺於彼,通於上而不遺於下,抑有餘補不及,中正之道孰外是焉。
일은 월기를 통하고, 세와 더불어 시는 맥락이니,일은 신주가 되고, 월은 소혈이 되며, 세와 더불어 시는 문호가 되고, 이에서 얻으며, 그에서 새로운것이 없다.위에서 통하며 아라에서 새로운것이 없어, 억은유여한 보 불급이며, 중정의 도는 숙외인 것이다.
愚涉獵群書,頗詣旨趣,獨觀命理, 有《五星指南》、《琴堂書》、《子平淵海》書宗,其理出之正,法立之善,但其中間頗有不根之言,進退之說,無確然一定示人之見。
우섭렵군서,안지지취,독관명리는, 오성지남..자평연해서종이 있으며, 그 이치가 나온 바른것은,서는 법의 선함이지만, 그 중간 안유 불근한 말이고, 진퇴의 말은,확연히 하나로 보인 사람의 봄이 없었다.
後世緣此立說益多益滋人惑,雖授受不過襲謬,殆若行者迷道,問盲人指示焉!
是以究之窮陬極壤,盡皆招搖售術,聽其言則是,校其理則非,瞽目惑心,竟無一人能捋其堂陛而撮其樞要也。
嗚呼!非惟誣人,實自誣也,予深慨焉!由是細心講究已四十餘年矣。
오호라! 무인만이 아니라, 사실 스스로 무당이고, 일어나지 않았다! 이유는 이미 40여년을 세심강구했다.
一旦恍然覺其有一者,似是之非不慚膚見,乃立五星正說、五星謬說、子平諸格正說、子平諸格謬說、動靜說、蓋頭說、六親說、病藥說、雕枯旺弱生長八法說、人命見驗說,蓋取諸尊崇正理,闢諸謬說之意,名之曰《命理正宗》,授諸梓而刊之,極知誣誕罪不容逭,尚俟知者正其得失,庶有補六藝中之萬一云爾。
조고 왕약 장생 8법설은, 인명은 징험설을 보고, 대개 여럿 존숭정리를 취하고, 여럿 잘못된 해적설을 의미하여, 이름으로 왈 명리정종인데, 여러 약으로 가르치며 책을 내고, 극지무탄죄 불용관이었고, 항상 알게한것은
득실을 바르게 얻고,모두 6예중으로 도와 만의 하나를 전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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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張楠,張神峰)의 명리역>
1454~1529, 자는 신봉(神峰), 호는 일수, 강서성 임천현 서계출신, 강호의 郞中,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여 관계에 입성하지 못하고 40여년 醫易과 더불어 강호에서 명리술사를 했다.
神峰通考命理正宗(神峯通考,신봉벽류,명리정종)-위천리가 교정, 술사로서 구체적 사주풀이, 오성학(七政四餘學), 용신론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학설을 주장했다.
재관중시, 다양한 격국, 신살, 납음을 사용한다. 그는 대대로 벼슬한 사대부 집안 출신이지만 연거푸 과거 시험에 낙방한 나머지 실망해 그 원인을 알고자 당시 명술을 연구하고 동시에 의술까지 공부해서 아예 술사의 길을 걸었으며 그가 가는 곳마다 사주 실감과 인술이 뛰어났기에 사람들이 고맙고 존숭해서 그를 <강호의 郞中>이라고 불렀다.
당시 醫命術에 밝은 그의 명성은 천하에 널리 알려졌기에, 청대의 <고금도서집성-성명부명류, 청(淸) 강희연간(康熙年間에 진몽뢰(陳夢雷) 등이 원본을 편찬했고 강희 45년(1706)에 완성했다>에 명대의 유명한 술사 12人 명단 속에 넣어져 후세에 전하고 있다.
그는 <신봉통고>(1526년 저술)1권(나중에 6권으로 증편)에서 연해자평를 읽고 자평술을 처음으로 비평해 저작을 남긴 인물이다. 사주의 간명에서 동정설, 개두설, 육친설, 병약론, 등이 후대에 전해지는데, 이는 바로 장남의 醫易적 사고에서 나온 寶庫다.
-장남(神峰)은 자평학의 시조 서자평을 明代의 서균(徐均)이라고 했다. 이 주장은 극소수의 학설이고 오로지 明代의 張楠(신봉)이 홀로 주장한 학설이다.
明의 萬育吾(민영)는 그의 저서 <三命通會>제7권 '子平說辨' “濯纓筆記(탁영필기)에 서자평은 五代~송나라 초 徐居易(자평)라고 주장하였고 東海人이고 別號는 沙滌先生인데 蓬萊叟라고도 하며 太華의 서쪽 棠峰洞에 은거하였다고 했다. 明代 楊淙은 增校한 <淵海子平>의 추천사에서 자평은 宋末의 徐升(자평,徐大升,徐大昇,徐公升,徐彦昇))이라고 주장하였다. 오대말에서 송대초 설거정이라는 설도 있다.
명리정종(命理正宗) : 明의 장남(神峰)의 저술,
책의 서문에 “서균(徐均)이 자평(子平)을 지어 일간을 위주로 근본을 삼아 월령에서 용신을 구하고 세시(歲時)로 보좌하였으니 이에 命書는 완전하게 되었다” 라고 해 연해자평의 이론을 수용한 것이다.
명리정종(命理正宗)은 자평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10干을 12地支에 대입하여 모든 격국(格局)을 완성시켰는데 실제사주를 각 격국(格局)에 대입하여 오류가 있는 내용은 비판한 후 대안을 제시하였다. 오성정설류, 오성류설류, 남녀합혼설, 총론자평류설류, 동정설, 개두설, 병약설, 조고왕약4병설, 손익생장4약설, 등 학설류와 정관격을 위시하여 시상일위귀격, 잡기재관인수격, 등 격국의 다양한 예와 10干, 12地支의 간지와 간지법칙, 五行의 생극제화와 희기, 길신과 흉신류, 감명실무를 다룬 뒤 희기편, 계선편, 6神편, 오행원리소식부, 현기부, 만금부, 인원소식부 등 명리이론을 다루고 있다. 원천강의 오성삼명지남을 體로 삼아 내용을 전개하고 있고 천문 점성학적 내용을 명리학으로 연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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