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구 교수의 불교와 과학] 38. 전도몽상
내겐 과거라도 타인에겐 미래일 수 있어
보는 관점에 따라 절대 시공간은 사라져
열반하신 숭산(崇山, 1927-2004)스님은 광인(狂人)과 보통사람의 차이를 간단히 ‘집착’이라는 한마디로 설명하여 많은 학자들을 감탄시켰다고 한다. 스님의 참 뜻을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보통사람들은 더 이상 마음을 두지 않는 일에 광인은 매달려 온 신경을 쓰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그 일이 하찮거나 더 이상 마음을 써도 쓸데없는 일인 줄 알아 그 일을 놓아버린 것이다. 광인은 그것이 허망한 일인 줄 모르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거기에 매달리는 것이다.
심하면 ‘없는 것’을 있다고 생각하여 헛것을 보기도 한다. 전도몽상(顚倒夢想)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교는 보통사람들도 사물을 뒤집어 본다고 한다. 그래서 제법무아나 ‘공’을 말하고 『반야심경』은 ‘원리 전도몽상’을 말하나 이들 가르침이 범부의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사람이 전도몽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쉽게 설명한 과학자가 있으니 아인슈타인이다. 아인슈타인은 과거 현재 미래의 순서나 동시성(同時性)이라는 것이 인간의 편견이나 집착에 불과할 뿐 절대성이 없음을 쉽게 설명하였다.
서울과 부산사이를 달리는 열차가 일정한 속도로 서울을 향해 달리고 있다고 하자. 선로는 직선이고 기차의 한 가운데에 관측자 ‘갑’이 앉아 있다고 하자. 그리고 차가 달리는 선로의 바깥에, 서울과 부산의 정확히 중간지점에 ‘을’이 땅을 밟고 서있다고 하자. 기차가 달려 갑과 을이 만나는 순간, 즉 을이 기차의 앞쪽과 뒤쪽으로부터 꼭 같은 거리에 있을 때, 을이 기차의 앞쪽과 뒤쪽에서 동시에 번개가 친 것을 보았다고 하자.
을이 보았을 때 기차의 앞뒤 쪽에 동시에 번개가 쳤다는 것은 기차의 앞에서 출발한 번개의 빛과 뒤에서 출발한 빛이 동시에 을에게 도착하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갑이 볼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빛이 을에게 도달하는 데는 약간이나마 시간이 걸리므로 이 시간동안 기차는 서울 쪽으로 조금이나마 전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갑의 위치는 을보다 서울 쪽으로 이동한 상태에서 번개 불을 보게 된다. 갑이 서울 쪽으로 전진한 상태에서 빛을 본다면 앞에서 온 빛을 먼저 보게 되고 뒤에서 온 빛을 나중에 보게 될 것이다. 즉 갑은 기차의 앞쪽에 먼저 번개가 쳤고 뒤쪽에는 나중에 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을에게 동시에 일어난 일이 갑에게는 동시가 아닌 것이다. 만일 기차가 뒤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면 갑은 기차의 뒤쪽에 먼저 번개가 쳤고 앞쪽은 나중에 쳤다고 볼 것이다.
("을이 보았을 때 기차의 앞뒤 쪽에 동시에 번개가 쳤다는 것은 기차의 앞에서 출발한 번개의 빛과 뒤에서 출발한 빛이 동시에 을에게 도착하였다는 뜻이다. 빛이 을에게 도달하는 데는 약간이나마 시간이 걸리므로 이 시간동안 기차는 서울 쪽으로 조금이나마 전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기차의 앞쪽에 먼저 번개가 친 후 뒤이어 기차 뒤쪽에 번개가 쳤을 것이다. 그러므로 갑은 기차의 앞쪽에 먼저 번개가 쳤고 뒤쪽에는 나중에 친 것으로 보일 것이다." ㅡ 댓글에서 옮겨옴)
기차의 앞뒤 쪽에 번개가 친 사건 하나를 놓고 사건이 일어난 순서에 세 가지 주장이 있는 셈이다. 앞이 먼저라는 의견, 뒤가 먼저라는 의견, 앞뒤가 동시라는 의견 이렇게 세 가지 의견이 있는데 셋이 모두 관성계에 있다면 셋 중 누가 옳다는 것을 알아내는 방법은 없다. 외부에서 힘을 받지 않고 서로 등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사람을 관성계에 있다고 하는데 관성계에 있는 사람은 남과 비교하지 않고서는 자신이 움직이고 있는지 어떤지 알 수가 없다. 절대시공간이 부정된다면 절대운동이 없기 때문이다.
관성계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 사람이 본 것이 옳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의 기본가정이다. 인과관계가 없는 사건이라면 나에게 과거인 것이 남에겐 미래일 수가 있다. 서로 다른 입장 중 어느 입장이 더 옳다는 법이 없다. 이것을 모르면 사물을 뒤집어 보는 것이다.
김성구
이화여대 명예교수
[출처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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