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5:29-34절
고전15장은 부활장이라 했습니다. 15장에서 4번째 단락으로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은 경겅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당시에는 죽은 사람을 위한 세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오늘날에는 하지 않는 죽은 자를 위한 세례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난해한 구절이기 때문에 잘 다루지 않고 또 학자들도 30-40가지 학설을 말하고 있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크리스톰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크리소스톰(Chrysostom)의 기록에 의하면,(말시온파)중에 세례지원자가 죽을 때 그들은 죽은 자의 침상아래 산 사람을 숨겨 죽은 자에게 접근하면서 그와 함께 이야기하고, 그가 세례받기를 원하는지 물었는데, 그때 그가 대답이 없으면 아래 숨은 사람이 그를 대신해서 그가 세례 받는 것을 원한다는 뜻으로 대답을 하여 그들이 그 죽은 자를 대신하여 그에게 세례를 준다는 것입니다.
위의 여러 가지 주장들은 본문에 잘 부합되지 않을뿐더러 정통 교회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바울의 주장은 당시에 시행되던(특히 이단파에서) 죽은 자를 위한 세례를 인정한 것이 아니고 단지 그것을 죽은 자의 부활을 위한 그의 논증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한 것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박윤선, 고린도서, p.240)
그러면 왜 이단들이 행하는 것을 끌어다가 바울은 부활에 대해 설명을 했을까요?
죽은자가 다시 산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대인논증이라 하는데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인의 것을 끌어다가 인용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부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죽은자의 부활은 당시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육체의 부활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교인 중에는 이원론이라는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인간의 몸을 어둡고 부패한 무덤으로 보았기 때문에 사후세계는 육체 없이 영혼만 존재하는 세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비록 교회는 나왔으나 여전히 부활을 인정하지 못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때에 사두개인과 같습니다. 사두개인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7명의 남편과 살다가 죽으면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당시 고린도에서 성행하던(죽은 자를 위한 세례)를 들어 부활에 대하여 강력한 변증을 했던 것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즉, 당신들이 죽은 자들을 위한 대리 세례를 시행하는 것은 그들이 미래에 부활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 그러니까 사후 세계에 부활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으라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미혹하는 자들을 경계하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30-32절에서 바울은 부활과 성도가 자초하는 위험과의 긴밀한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육체의 부활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교인 중에는 이원론이라는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인간의 몸을 어둡고 부패한 무덤으로 보았기 때문에 사후세계는 육체 없이 영혼만 존재하는 세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비록 교회는 나왔으나 여전히 부활을 인정하지 못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육체를 부인하면 삶이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아무렇지 않게 짓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혼만 천국을 간다고 믿으니까,
어느 남자 집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욕을 못 참겠다면 죄를 짓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십계명은 도덕법에 속합니다.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덕질을 하고 등등이 그렇습니다. 성도는 이런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당시 고린도에서 성행하던(죽은 자를 위한 세례)를 들어 부활에 대하여 강력한 변증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즉, 당신들이 죽은 자들을 위한 대리 세례를 시행하는 것은 그들이 미래에 부활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 그러니까 사후 세계에 부활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으라는 것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30-32절)
부활이 없다고 하면 우리가 고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먹고, 마시고, 기분대로 살다가 그냥 죽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사람이 한번 죽는 것으로 부활도 없고 심판도 없고 그냥 끝난다면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하겠습니까?. 될대로 되라고 막 살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자동차 문을 열어 놓고 다니면 차안에 물건을 가져가라는 신호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한국에 와서 차동차 뒷문을 열어 놓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랬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우째던지 구질구질하게 가난하게 살 필요 없이 그냥 한판 멋지게 은행을 털고 돈이나 실컷 쓰고 죽는것이 낫지 않겠는지요. 고생하면서 길게 사느니 한판 멋지게 살다가 죽는 것이 훨씬 좋지 않겠어요?.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못합니다. 왜냐?. 죽음에 대한 두려움, 죽음 후에 오는 공포 때문입니다.
히9: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요5:29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당시 바울 사도는 복음을 증거하면서 언제 죽을지 기약이 없었어요. 그 당시 사도들은 모두다 그랬습니다. 그렇기에 늘 위험을 무릅쓰고 복음을 증거했기 때문에 잡히면 죽는 것입니다. 매일 목숨을 내놓고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죽을 위험을 수없이 겪으면서 복음을 증거하며 마치 도망자처럼 살았습니다,
고후11:23-33절에 보면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고, 감옥살이도 더 많이 하고, 매도 더 많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며.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고. 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했고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다’. 말씀합니다
만약에 부활이 없다면 왜 그렇게 살겠느냐는 말입니다. 부활 신앙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삶이 가능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선교사들이 왜 목숨걸고 외국 오지에 나가서 선교를 할까요? 첫째는 사명때문이지만 천국에 소망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초기에 얼마나 많은 분들이 신앙 지키다가 죽음을 당했습니까?. 이분들이 왜 이렇게 죽음을 당하면서도 선교하고 설교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죽음 후에 부활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믿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은 후에는 선,악간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믿고,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믿기 때문입니다(갈6:6).
많은 사람들은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가는 지옥은 지금 당하는 고통의 천만 배입니다. 물 한 모금조차 없는 불가마를 생각해 보세요.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차라리 죽고 싶지만 죽을 수가 없습니다. 영원토록 그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눅16장).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33-34절)
부활이 없다느니, 천국을 보여 달라느니 하는 이런 사람들의 말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냥 죽으면 끝난다는 그런 말에도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 더 의를 행하고 선하게 살고, 천국 갈 소망을 갖고 부활을 기대하고 살아야 합니다.
빌3:11절 바울 사도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다, 꼭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선한 일 많이 하고 살아야 합니다.
구원은 예수를 믿으면 누구라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후에는 반드시 선,악간에 심판이 있습니다. 또 행한대로 심은대로 상급을 받기 때문입니다. 롬2:6,계20:12절. 그러므로, 예수 믿는 믿음이 틀림없다면 구원받는 것은 확실하다면 지금 부터 선한 일, 좋은 일 많이 하고 살아야 합니다. 롬2:7마25:23절.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섬기고, 복음 전하고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마치려 합니다.
세월을 남비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쓰임 받는 인생을 살면서 천국 가서 상 받을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계22: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아멘. 우리 모두다 성경을 바로 알고 하나님을 바로 알고 주님과 동행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의정부 등대지기 하늘산소
퍼온 설교문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