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의 젖줄 요천수(蓼川水)
(전)남원문화원장 이병채
남원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예로부터 조산에 둑을 쌓고 금지 고리봉에 뱃고리를 잡아매고 객산인 교룡산의 산세 또한 강하고 주산인 백공산의 지맥이 약하다 하여 이를 보강하기 위해 시내 한복판에 선원사 절을 지었다는 설외에 남원의 젖줄인 요천수는 소금배가 이곳 남원까지 올라왔었다는 설과 함께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만 지면관계로 그중 몇 가지만 간추려 기술코자 한다.
요천(遙天)의 발원지는 장수 영취산과 장안산 사이 지지계곡에서 발원해 장장 60여 ㎞ 전남 곡성군 곡성읍 동산이 소재 섬진강 제방까지이다. 동산 리는 세 곳의 물줄기가 합류되는 지점으로 섬진강 요천 수지천이 합쳐지는데 대강에서 이곳까지를 섬진강의 별칭인 순자강이라 부른다. 이는 우리고장 남원의 젖줄로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국가 1급 하천이다.
요천(蓼川)이라는 지명은 여뀌 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다. 남원의 옛 문헌 「용성지」에 실려 있는 조선초기의 문인 강희맹의 시 「고주은영요화안 / 孤舟隱映蓼花岸」 구절에 여뀌가 등장한 것으로 비춰볼 때 조선 초기 이전부터 요천이라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요천둔치 남원문화원에서 건립한 요천 쌈지공원 비문에 새겨진 강희맹의 시 「한 줄기 긴 시내가 오래된 나루에 닿아있고 바람은 푸른빛의 오리를 건드려 세단한 물결을 일구네. / 외로운 배는 여뀌꽃 언덕에 숨은 듯 보이는 듯 / 분명 그림 속에 사람이 있는 것 같도다. 를 조아려 본다. 그리고 요천수를 바라보며 보다 아름다운 꿈이 실현될 수 있는 요천수는 세느강보다 더 아름다운 시를 쓰게 해 줄 어떤 시인을 기다려본다.
예술과 낭만의 나라 프랑스 파리는 유럽여행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의 상징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많은 명소도 있지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루브르박물관과 오세르 미술관 사이에 흐르는 세느강이다.
이 강은 미라보 퐁네프다리와 함께 주변경관이 잘 어울려 프랑스여행자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세느강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오염된 회색빛 물결에 강의 폭이 좁아 관광지 역할을 다 못하나 주변의 조형물과 건축물 등과 조화를 이루어 그 가치는 세계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여기에 비하면 요천강은 그 주변을 좀 더 조화롭게 잘 가꾼다면 요천(蓼川) 그 자체만으로도 세느강보다 월등히 우수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언젠가 스위스 루체른 호에서 배낭여행 떠난 우리나라 대학생의 익사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는 알프스에서 눈이 녹아 만들어진 호수로 수온이 바깥온도보다 현저히 낮다는 사전지식 없이 뛰어들었기 때문이겠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슴 아픈 일이다. 아무튼 루체른 호 스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구 6만 5천의 도시이며 호수를 가로지르는 14세기 건축물 카펠교와 조화를 이루어 은빛으로 부서지는 햇살과 함께 투명한 물속은 바닥이 다 보이도록 깨끗하고 아름다워 우리나라 강을 보고 자라온 젊은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요천수를 스위스의 루체른 호와 프랑스의 세느강 경관을 합친 작품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오염된 폐수, 매연으로 가득한 공장 굴뚝하나 더 세우는데 급급해 하지 말고 생태계의 보고 지리산의 자연이 준 자원을 충분히 활용해 한국의 전통미를 살려서 자연과 인공으로 잘 조화된 한 폭의 그림을 상상할 수 있는 요천수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의 경관 예술적 가치로 꾸며진다면 세계적인 명소로 손색이 없을 것이고 지리산 권을 스쳐가는 남원이 아닌 서남권의 중심도시 육성을 위한 청사진을 펼쳐보고 싶다.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나일강이나 황하강 유프라테스강이나 티그리스강처럼 5백년 사직을 일궈낸 서울의 한강 등 모두가 강을 끼고 문화와 문명이 발달하였다. 남원역시 요천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었고 남원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왔다. 때문에 남원인 들은 요천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보다 아름답고 깨끗한 요천이 되도록 가꾸고 관리하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오늘에 서울을 가꾸어 온 한강의 옛 이름은 아리수(阿利水)이며 낙동강 하류로 세종지리지 김해도호부에 나오는 삼차수(三叉水)도 강(江)이 아니다. 더욱이 그 유명한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에 나오는 살수(薩水)역시 수(水)인데 이를 큰 강으로 나타내고자 살강(薩江)이라 부를 수는 없다. 살수란 말을 태종실록 4권(1402페이지) 11월27일 조사의 (趙思義)의 군사가 안주(安州) 살수(薩水)가에 주둔했었는데 밤에 물을 건너다 얼음이 깨져 죽은 자가 수 백 명이었다는 기록에 있듯이 오래된 이름이다.
요천수처럼 예전에 우리나라의 강 이름은 수(水)로 불린 예가 많다. 견우직녀의 전설에 나오는 하늘의 큰 물줄기라는 은하수(銀河水)도 은하강이 아니다. 남원의 젖줄 요천수 또한 옛 이름 그대로 부르는 게 좋다하여 일부 강으로 부르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수(水)로 부르고 여뀌요자를 쓴다. 이는 남원인의 오랜 정서와 함께 살아 숨 쉬어 왔으며 요천주변에 흐드러지게 핀 여뀌 꽃들은 요천의 기암괴석과 함께 어우러져 이곳을 찾는 뭇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뿐만 아니라 예부터 남원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남원 8경이 있다.
교룡낙조(蛟龍落照) 축천모설(丑川暮雪) 금암어화(錦岩漁火) 비정낙안(飛亭落雁)선원모종(禪院暮鍾) 광한추월(廣寒秋月) 원천폭포(源川瀑布) 순강귀범(鶉江歸帆) 등 모두가 요천 주변에 위치하고 있어 아름다운 절경들이지만 지금은 십수정의 정자나무와 동림교 위 팽나무를 제외하고 옛정취가 사라지고 찾아볼 수 없는 것들도 많다.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홍수기가 오면 요천이 범람하여 제방이 무너질까봐 고지대로 대피소동까지 이어졌었다. 다시 말하면 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요천수를 건너야 할 교량이 없어 통행의 불편과 저지대 침수 및 제방유실붕괴등 홍수와 전쟁이었다. 동국여지승람 문헌기록을 보면 이상과 같은 수방대책의 일환으로 선인들께서도 노력해온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요천임수(蓼川林藪) 동장수(東帳藪) 창활수(昌活藪) 율림(栗林) 보허림(補虛林) 유림(柳林)등 조성실적과 금리사정(射亭)에 수림을 만들었다는 기공비(紀功碑)를 비롯 식정마을에 세워져 있는 방축기념비 등 기록들을 볼 수 있다.
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요천정비 사업으로 교량가설 등 요천직강공사가 시작되면서 장남제(1984/612만 톤) 동화댐(1987-1909/32,242천톤) 고기댐까지 요천으로 유입되야 할 빗물이 농업용수 및 상수원으로 갇혀 흐를 물이 없어 아름다웠던 요천의 옛 정취를 잃어가고 있어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정성드려 가꾸고 손질해 나간다면 옛 정취를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되는바 남원의 젖줄 요천수를 배경으로 세계적인 관광도시의 볼거리는 남원의 역사문화 및 요천수의 자연생태 관광 먹거리는 추어탕 보고 듣고 즐길 거리는 지리산소리 동편제 판소리를 가꾸고 보존관리토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