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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으로 소천보(小天普), 동남(東南)으로 도덕봉(道德峰) 사이에 있는 비교적 표고가 높은 지대에 자리잡은 산간(山間) 동리(洞里)이다. 동쪽으로 용암봉(龍岩峰)을 시이에 두고 산내면(山內面) 용전리(龍田里)와 경계를 이루었고, 서쪽으로는 고정리(高亭里)와 이웃했다. 남쪽으로 중산(中山)과 다실재를 경계로 하여 산외면(山外面)과 연접하였고, 북쪽으로는 소천봉을 분수령(分水嶺)으로 하여 신곡리(新谷里)와 경계를 이루었는데, 사방으로 산에 둘러싸인 아늑한 마을이다. 동리(洞里)의 이름은 본래 뒷실이라 했는데 이는 신라시대(新羅時代) 때 도악현(島岳縣)에 딸렸던 오곡(烏谷)이라는 지명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곧 오곡(烏谷) 뒤쪽에 있는 골짜기라 하여 뒷실(後谷)이라 했는데, 당시에는 이곳 일대가 오악현(烏岳縣)의 땅이었음을 알 수 있다.그 후 뒷실이 도실로 변음되고, 다시 도곡(道谷)으로 표기된 것이 현재의 지명이다. 또 마을 동쪽에 있는 도덕령(道德嶺) 고개 밑에 있는 골짜기라 하여 도곡(道谷)이라 했다는 말이 있고,고갯길에 이른 산길이 멀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는 다른 일설도 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이래 도곡리(道谷里)로서 법정(法定)리가 되었으며, 현재는 뒷뒤실(上道谷), 아랫뒤실(下道谷, 솔방(松坊)등 세 자연 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1) 윗뒤실(上道谷, 上後谷)
아랫뒤실 동쪽에 있는 부락으로 용암봉(龍岩峰) 기슭에 있다. 상도곡 또는 윗도곡, 뒷실이라고도 한다. 약 240년 전에 경북(慶北) 달성(達成)에서 가선(嘉宣) 박광택(朴光澤)이 은거(隱居)하기 위하여 입촌한 후로 순천(順天) 박씨(朴氏)의 세거지가 되었으며, 최근 도화재(道華齋)라는 재사(齋舍)를 건립하였다. 또 그 후에 김해(金海) 김씨(金氏). 경주(慶州) 이씨(李氏), 달성(達城) 서씨(徐氏)도 이 마을에 입촌하여 현재도 살고 있다.
■ 장군뱅이
윗도곡 동쪽에 있는 산등성이로 옛날 장군이 살았다고 한다.
■ 뒷들(後坪)
윗도곡 뒤에 있는 들이라 하여 생긴 지명이다.
■ 용담고개
윗도곡에서 산내면 용전리(山內面 龍田里)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 산 정상에는 성터가 있으며 임진왜란 때 산 아래 사는 주민들이 왜적을 방어하고자 축조했다고 전해 온다. 산이 하늘에 닿일 만큼 높다는 뜻에서 소천봉(小天峰)이라 하지만 고정리(高亭里) 쪽에서는 옛날부터 뒷말리 산성으로 불리운다.
■ 용암봉(龍岩峰)
도곡리(道谷里)와 산내면 용암리(山內面 龍岩里)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높은 산이다. 신선이 용마(龍馬)를 타고 내려와서 이 곳 바위 위에서 놀았다 하여 붙인 이름인데 해발 686m이다.
■ 도독봉(道德峰, 도적봉, 도덕령, 도덕치, 도독모치, 도독못째)
윗 뒷실에서 산외면 희곡(山外面 希谷)으로 넘어가는 도덕령(道德嶺) 고개가 있는 산 이름이다. 도덕령은 도덕치, 도독모치, 도독모째라 하여 도둑과 관련된 지명을 띠고 있다. 밀주지(密州誌)에 도덕봉 정상에는 천지(天池)라 부르는 813간이나 되는 못이 있다고 했으며, 그 못을 중심한 이 일대의 산은 고려 시대 때 초적(草敵)들이 관군(官軍)과 대치하여 싸운 곳이라 했다. 그러므로 도덕령, 도덕봉, 도독지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도덕령(道德嶺), 도덕봉(道德峰), 도덕지(道德池)로 뜻을 순화시킨 것이라 한다.
■ 주산등(主山嶝)
윗뒤실(上道谷) 북쪽에 있는 산이다. 송이버섯이 많이 난다고 한다.
■ 장등(長嶝)
큰골 북쪽에 있는 산등성이인데 등성이가 길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 희실고개(희시골, 希谷峙)
도곡(道谷)에서 산외면 희곡(山外面 希谷)으로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이다.
■ 당고개(堂峙)
상도곡(上道谷)에서 안정(雁亭)으로 가고 또 산내면 오치(山內面 烏峙)로 가는 고개인데, 고개 마루에 행인들이 돌을 던져 모은 당(堂)이 있어 당고개라고 한다.
■ 삼막골(三幕谷)
道德嶺(도둑재)로 가는 길목에 옛날 세 집(三呼)막이의 마을이 있었다고 하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 소리밖골(聲外谷)
도덕령 북쪽에 평평한 골짜기가 있는데 바깥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이라 하여 생긴 지명이다.
■ 수곡골
도덕봉(道德峰) 장기 바위 아래에 있는 골짜기를 가리킨다.
■ 송골(小谷, 峽谷)
수곡골 북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를 가리키는데 손골(峽谷)의 전음(轉音:*소리가 와전됨)으로 된 지명이다.
■ 큰골(大谷)
도덕못재 북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골이 크다는 뜻이다.
■ 점골(店谷, 정골)
윗뒷실 북쪽에 있는 평평한 골짜기의 이름이다. 정골이라고도 한다.
■ 칠당골
윗도곡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 못골짝(池谷)
상도곡 뒤쪽에 있는 지명으로 옛날에는 못이 있었다. 지금도 작은 웅덩이 같은 못의 흔적이 남아 있다.
■ 분득골(分得골)
상도곡 앞 산에 있는 골짜기의 이름이다.
■ 상주지골
상도곡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 서당골(書堂谷)
하도곡 뒤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이 곳에 서당(書堂)이 있었다 하여 생긴 지명이다.
■ 방우뱅이
상도곡 남쪽에 있는 바위인데 주위에 나무를 심어 그늘이 좋아 마을의 정자껄이 되어 있다.
■ 문바위(將棋바위, 將棋岩)
도덕봉과 도덕지 사이에 있는 바위인데 그 모양이 문짝 같기도 하고 장기판 같기도 하여 문바위(門岩) 또는 장기바위라고 했다. 옛날 신선들이 이 바위에서 장기를 두면서 놀았다고 전해진다.
■ 흰듬(白崖)
소리밖골 북쪽에 있는 층듬인데 빛깔이 희고 병풍모양으로 층을 지어 펼쳐져 있어 생긴 이름이다.
■ 당뒤(땅띠, 堂後)
도덕봉 문(門)바위 아래에 있는데 당(堂)의 뒤에 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북쪽을 큰당뒤(大堂後), 남쪽을 작은 당뒤(小堂後)라고 한다. 당뒤의 된소리 발음으로 땅띠라고도 한다.
■ 돌옷바위(石茸岩, 석유방우)
하곡동 앞 산 중턱에 있는 바위인데, 바위에 돌옷(石茸)이 많이 난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석이(石茸)을 석유로 발음하여 석유방우라는 일명도 있다.
■ 큰거렁(양당거렁)
도덕령과 안정당골(堂谷) 등에서 모인 물이 상하도곡(上下道谷)을 지나 고답(高踏)으로 흐르는 계천(溪川)을 가리킨다.
(2) 아래뒷실(下道谷, 下後谷)
윗뒤실의 서쪽이고 솔방의 남쪽에 있는 도곡리의 중심 부락이다. 옛날에 유천(楡川)에서 산내면 용전으로 가는 도덕령 고개 밑 길목 마을이었다. 조선 중기에 경산전씨(慶山 全氏)가 이 마을에 들어와 세거(世居)했으며, 영조 때 김해 김씨(金海 金氏)가 정착한 후로 누대(累代)의 세거지(世居地)가 되었는데, 구한말(舊韓末)에 김한규(金漢奎)가 학선정(學仙亭)이라는 제사(齋舍)를 세웠다.
■ 매운샘(將軍샘)
하도곡(下道谷) 남쪽 절터 구미의 금정사(金井寺) 경내에 있었던 샘이다. 옛날 어느 떠돌이 중이 이 절에 나타나 샘물을 마셨는데 별안간 장군으로 변하여 어디론지 가 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그 후 이 샘이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메워버렸기 때문에 매운샘 또는 장군샘이라 한다.
■ 도둑못(道德池, 天池)
도덕령 옆에 큰 못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다 메워졌다. 일명 천지(天池)라고도 했다.약 80년 전에 도곡리에 거주했던 김상두라는 사람이 돈을 들여 이 못에 제방을 쌓고 물을 가두어 다시 못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 행주소(함지소)
도덕령에 있는 소택지의 지명으로 함지처럼 생겼다. 가뭄이 심하여 이 못에 물이 마르면 동네의 처녀를 골라 소복을 입히고 이 못에 와서 행주질을 시키면 곧 비가 내린다는 전설이 있다. 못의 모양이 함지박 같다고 하여 함지소라 했으며, 처녀들이 가뭄에 행주질을 하며 비를 빈다고 하여 행주소라고도 한다.
■ 가진번지골
하도곡 남쪽에 있는 골짜기의 지명이다.
■ 감나무골
하도곡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감나무가 많았다.
■ 까꿀내미
하도곡 남쪽에 있는 등성이의 이름이다.
■ 꾀밭굽
하도곡 황새등 북쪽에 있는 골짜기다.
■ 낙화산(봉우재, 落花山)
석이암 남쪽에 있는 산으로 봉화불을 올렸다 하여 생긴 지명인데, 낙화산을 말한다.
■ 농바우딩이
도덕령 천지등 동남쪽에 있는 등성이의 이름으로 농처럼 생긴 바위가 있었다.
■ 도운암(道雲庵)
가지번지골에 있는 절이다.
■ 문어대가리산
도곡리 동남쪽에 있는 산으로 아주 먼 옛날에 이 일대에 해일이 져서 산 윗부분이 문어대가리만큼 남았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 삼밭골(痲田谷)
도곡리 땅띠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이 일대에 삼밭이 많았다.
■ 승새미갑골짝
도룡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그 곳에 우물이 있어 숭새미라 했다.
■ 솔방고개(松坊峙)
솔방에서 신곡리(新谷里)로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인데 그 곳을 솔방산이라 하고 산 속에 절이 있어 솔방절이라 했다.
■ 용담고개
윗도곡에서 산내면 용전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안정바램이산(용암봉;龍岩峰)이라고도 한다.
■ 찬새미들(冷泉坪)
아랫도곡 앞에 있는 들인데 차가운 물이 나오는 샘이 있었다.
■ 천지등(天池嶝)
하도곡 동쪽에 있는 산등성이로 감나무골, 새청등, 샛들, 정골 등이 이웃해 있다.
■ 홍당물들
아랫도곡 서쪽에 있는 들판의 이름이다.
(3) 솔방(松坊)
상도곡, 하도곡 부락의 북쪽에 있으며 소천봉(小天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옛날부터 피난 부락이다.솔방은 송방(松坊)으로 표기하며 울창한 소나무가 있는 방리(坊里)를 말한다. 그러나 이 곳 솔방은 임진왜란 때 인근의 여러 동리가 모두 왜적에게 쑥밭이 되었지만, 빽빽하게 들어선 소나무에 마을이 가려 전쟁의 참화에서 '솔방' 그대로 빠졌다는 逸話가 전해 온다.솔방은 송두리째라는 이 지방 사투리지만 이로 인하여 이 마을은 세상이 어지러울 때마다 숨어 사는 곳으로 알려져 왔으며, 솔방이 그대로 동 이름이 된 것이라 한다. 옛날부터 이 마을에 입촌한 사람이 많았으나 자세한 내력을 알 수 없고 구한말에 입촌한 성주 도씨(星州 都氏)의 후손들이 지금까지 살고 있으며, 그 후 청도 김씨(淸道 金氏)와 안동 권씨(安東 權氏)도 이 마을에 들어와 살고 있다.
■ 작은 하늘산(小天峰)
솔방 뒤쪽에 있는 동리의 주산으로 작은 하늘산 또는 소천봉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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