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까??
35년 전 외아들인 남동생을 공부시키자는 친정부모님 뜻을 거역할 수 없어서 여고시절
동구여상에 입학하며 대학 진학의 꿈을 포기하고 대기업인 대우실업 계열사에 입사했습니다.
회사에서 열심히 모범사원으로 근무하며, 멋진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했습니다.
<Y.B2(YoungBells)의 추억으로 시작된 우리>
30여 년 전 남편과 나는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사내데이트를 하였습니다.
직원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몰래 한 사랑. 서로 사귀기로 약속하고 아래의 첫 편지를 시작으로 70여 통이 넘는
순수한 편지를 주고 받으며 5년 열애 끝에 결혼을 했습니다.
(잘 보관하고 있는 이 편지들은 언젠가 남편의 수필집을 만드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인생의 벗에게
하늘의 비는 찌푸리다 큰 용단을 힘있게 마침내는 내리셨구료!
당신의 아름다운 용단은 숭고하게만 밀려 오는구료.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오랜 시간을 꼭 울어야만 하는지를,
내 자신에게 반문해본다'라고 .........
(이하생략)
위대한 친구, 위대한 애인, 위대한 연인 모든 위대한 것을 한 몫에 갖고 싶구료.
이 순간의 모든 심정을 더욱 더 찬란히 빛낼 수 있도록
당신의 고운 손에 나의 손을 살며시 포개고 있습니다.
(이하생략....)
인생의 멋진 돛을 달겠소!
1977. 12. 6 당신(YOU)의 친구 YB2 昇이가"
<10억 빚을 갚다>
결혼 후 회사를 그만두고 컴퓨터ㆍ미싱자수 제조업을 시작했습니다.
휴일도 잊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5년만에 큰 돈을 벌었습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공장과 고급 주택을 소유하면서
부유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딸아이 생일파티에 드레스를 입히고 반 전체 친구들을 초대할 만큼 말이죠.
그러나 여러 가지 봉제사업의 환경의 변화와 IMF위기가 다가올 무렵인 1994년 사업실패 후 건물은 경매로 넘어가고
우리 고급주택은 터무니 없는 가격에 정리했지만 수억의 빚은 남아있었습니다. 각 금융권의 최고장, 압류통지서,
소장 등 받을 수 있는 것은 통첩은 다 받아 봤습니다. 채권자와의 소송으로 1년을 보내기도 하였고, 구청에 자동차세를
못 내서 차를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힘들고 지쳐 있을 때 남편의 고향친구인 진준환씨 부부에게 점심초대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친구부인이 '열심히 잘 살던 친구가 힘들어 졌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워서 만나자'고 했다면서
길동에 있는 명성교회 오후 예배를 같이 참석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일단은 식사도 대접을 받았으니 예의상 예배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나는 꾸준히 교회에 다니려고 노력했고, 차츰 우리 아이들까지 모두 등록을 하였지만, 남편은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나가기 시작하고 얼마 후에 나는 지금까지도 생생한 꿈을 꾸었습니다.
토를 하는데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꿈과, 뒤엉킨 머리카락을 목에서 꺼내도 꺼내도 계속 나오는 그런 꿈, 후련한 느낌? 뭐 그런기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후로 여러 집사님들께 꿈이야기를 하였더니, 그 동안 지은 죄와 어려웠던 한을 푸는 것이고 성령이 도와주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는 현실은 힘들었지만 주일은 나름대로 열심히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설 명절을 바로 앞두고 수임료가 차압되어 고향에 못 내려가는 가슴 아픈 일도 겪어 보았고, 쌀이 떨어져서 시누이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얻어 온 누룽지로 식사를 대신 한 적도 있었습니다. 점심 값이 없어서 주먹밥을 만들어 차안에서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가끔 점심을 굶기도 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국화 풀빵 냄새가 겨울바람에 솔솔
풍겨 와도 천 원짜리 한 장이 아까워서 망설여야 했습니다. 이렇듯 내가 너무 지치고 힘들어도 마음만은 편안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10억 빚 갚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 노력했습니다. 수억의 빚을 갚으면서 주위에 실수를 하지 않고
신용을 지킬 수 있도록 늘 하나님이 지켜 주신 것은 분명히 은혜입니다!
<10억 빚 뒤에 찾아온 손님, 암!>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더니...10억 빚 갚기’를 이뤄 낸 뿌듯함에 빠져 있을 무렵,
우리가족에게 검은 그림자가 다가왔습니다. 남편에게 돌발난청이라는 손님이 찾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고... 갑작스러운 질병에 놀란 우리 부부는 내친 김에 여기저리 검사를 해
보았습니다. 검사결과 남편의 목에서 감상선암이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 그래서 요즘 피곤해 하고, 짜증을 자주 내고, 목소리도 조금씩 변했던 거였군요. 미안해요. 여보....
내가 일에 바빠서 당신에게 소홀했군요.’
청력 상실에서 암까지 발병한 남편이 한없이 작고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즉시 갑상선 양쪽을 다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고, 그 후 5번의 방사선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드디어 완치되었다는 결과를 통보받았습니다.
물론 평생 동안 호르몬 약을 먹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긴 했지만,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암 치료를 하는 동안에 교회에 같이 가보자고 여러 번 권유를 하고 희망을 했지만, 남편은 여전히 미루고 핑계만
대고 심지어는 화까지 내며 도저히 갈 생각을 안 했습니다. 자꾸권유하면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쁘게 하고 하나님께
죄를 지을 것 같아, 나 혼자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래도 사회에서는 성실한 남편이니 구원하여 주세요 라고....
<꿈에 그리던 석사학위 복을 입다>
보험영업을 시작한 후 발바닥이 아프도록 뛰어다녔고, 발품 팔아 우리가정의 목표인
<10억 빚 갚기>를 이루어 내면서 경제적인 고통과 힘겹게 정신없는 바쁜 일상을 보냈습니다.
자꾸 나이가 들어갈수록 잔병이 생기고 갱년기 우울증까지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좀더 긴장하며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하던 중에 마음 한 켠에 늘 못다 한 대학공부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못하였고,드디어 49세의 불혹의 나이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 하였습니다.
주말을 이용하여 경영학과 스터디그룹에서 선후배님과 동료 학우들과 돈독한 우정을 쌓으면서, 눈이 침침하고,
손가락이 아프고,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열심히 공부한 결과 졸업하기 힘들다는 방송대학교를 4년만에 무난히 졸업을 하였지요.
고객들과 지인이 많아서 주말마다 있는 애경사는 남편이 대신 다녀 주었고, 보험회사에서 영업우수대리점인 저에게는
공짜로 갈 수 있는 해외여행도 여러 번 기회가 있었으나, 한 번도 가지 않고, 열심히 스터디공부에 참여하여 이루어 낸 것입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국민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하여, 2년 동안 금융.보험전문 MBA 석사 과정까지 마치게 되어서 올해2월
졸업을 하였습니다. 대학진학을 그토록 갈망했었는데, 대학원까지 졸업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6년 동안 하고 싶은 공부를 정말 원없이 해서 행복했습니다. 나이가 많은데도 6년 안에 무난히 졸업할 수 있었던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남편이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저는 15년 전부터 삼성화재 재무설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우수대리점으로 인증받고,본사의 지원을 받아 성동구
성수동에 아담한 사무실을 개점 하였고, 지금은 이 곳에서 우리 네 식구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각자 맡은 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우리 네 식구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공부하며 일하자는 컨셉"입니다.
남편은, 보험대리점 영업을 가장 곁에서 도우며, 아픔을 치유하는 동안 즐겨 찾던 술을 멀리하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으려고
이화여대에서 2년 동안 수필을 공부하여서 "수필과비평"에서 신인상을 받아서 등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동신문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딸은 신인가수 "지아이엠"을 등록하고, 펜들의 뜨거운 반응과 함께, 능력있는 후원자를 만나서 멋진 기획사를 만드는 일을
계획하고 있으며, 방송통신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군에서 제대한 아들까지 보험대리점으로 등록, 합류하였고, 올해 국민대 경영대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다사
다난한 세상에 가족이 함께 모여서 식사 한 번 하는 것도 어렵다는데, 가족이 함께 식사하고, 회의하고, 공부하고 일할 수 있으니.... 정말 행복합니다.
남편은 작년7월부터 고향선배님의 소개로 성수동 성당을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6개월 동안 개근하여 년말에
"막시모"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았습니다. 주변에서는 교회를 다니면서 왜 남편은 성당을 다니게 하느냐고 막무가내로 말리지만
저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돌발난청이 한쪽만 오고, 갑상선암도 아주 초기에 발견하여 수술한 럭키한 환자로, 좋아하던 술도 거의 안 먹게 하시고,
성당까지 다니게 해주신 놀라운 일에 감사할 뿐입니다. 요즈음에는 구역예배도 잘 참석하고, 주일에 못 가면 토요일 예배에
다닐 정도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내 인생의 오후 한 시>
내 나이 쉰 넷,긴 인생을 시계로 비유해 볼 때, 나의 위치는 점심 먹고 난 오후 1시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여상을 졸업하고
취업한 이후 지금까지 35년 동안 일을 했습니다. 직장생활과 자수공장, 슈퍼, 햄버거집 등을 운영하고, 보험 영업을 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빚을 갚느라 긴 세월을 보내다 보니, 피로와 각종 스트레스, 그리고 유방종양, 백내장, 비염 등 건강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공부도 힘들만큼 지쳤습니다.
A man not old, but mellow, like good wine.
사람은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포도주처럼 세월이 가면서 익어 가는 것이다.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은 첫 번째 선택의 결과입니다. 정말로 힘들었지만 행복했습니다.
이제 포도주처럼 익어가는 인생의 아름다운 노후를 위해서 두 번째 선택을 하려고 합니다.
장애인들 목욕봉사나 청소, 밥퍼주기, 또 월 얼마씩 금전적으로 보탬을 드리는 봉사도 해 보았지만, 내 전공인 재무설계사로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봉사하고 나누는 삶을 살라는 것이, 바로 하나님에 내게 주신 숙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힘들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그 어려운 공부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이유가 바로 이거였구나......’
요즈음 저에게는 신앙생활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5년 동안 다니던 길동에 있는 명성교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말씀삶 공동체인 성락성결교회로 옮겨 와서 새로운 신앙생활
즉 하나님 말씀의 거룩한 리더십으로 그리스도인의 삶과 세계를 변화시킨다! 비전을 가슴에 새기며, 지금은 '담임목사님과 5주간'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시간 시간 너무나도 감동적입니다.
15년전 교회를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내 마음 속에서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야!
분명히 예비해 놓으신 무언가가 있을 거야 라는 기대감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태까지 살아 온 경험에서 볼 때 분명히
그랬습니다. 모든일을 세심하게 준비해 놓으시고 어려운 고비를 단계 단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요즈음에 더욱더 성경말씀을 사모하게 되고, 교회 안에 들어오면 편안하고 행복함을 절실히 느끼면서 가슴이 떨리고
들뜨는 첫사랑의 기분으로 많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성락성결교회에서 믿음이 좋으신 많은 권사님을 보면서 부러웠습니다.
저도 늦었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교회생활을 해서 훌륭한 권사 직분을 받는 꿈을 꾸면서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겠습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사랑합니다! 지금까지 온 것은 모두 주님의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