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높고 푸른 하늘 말고,가장 먼저 떠오르고 맞이하는 것이 낙엽이고
이들이 가기 전 마지막 붉은 정렬을 쏟아내는 것이 단풍이다.
나훈아 가수는 '낙엽이 가는 길'을 이렇게 노래했다.
지나 온 한 여름 비바람과 벌레들이 조금은 괴롭혔지만, 왕성했던 젊은 날이 아쉬웠다.
가지에 맺은 정을 두고, 찬 바람에 밀려 떠나 가지만,
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내가 몸담았던 가지를 못살게 하더라도 내년 봄에는
다시 오리라고 굳게 믿고 떠난다. 가지에 맺은 그 정을 못잊어 하며....
차중락은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에서, 정렬에 찬 푸르던 잎이 이제 단풍으로
곱게 곱게 물들어, 그 잎새에 사랑의 꿈을 고이 간직하려 했는데,
사랑하는 이는 낙엽따라 떠나 버렸다고.... 어찌할 거냐고,어찌하오,어찌하오...
떠나가 버린 임을 그리다, 26세에 요절하였고,
배 호는 '고엽'이라는 노래에서, 창가에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낙엽 소리.
저 낙엽은 무심하게 내 사랑을 묻어 버렸네,
사랑하는 임이 떠난 후에, 같이 걷던 그 낙엽 쌓인 길을
홀로 걷는 다고 슬퍼하며 호소하였고,
'마지막 잎새'에서 그 시절 푸르던 청춘 어느덧 낙엽 되어, 낙엽 지고,
달 빛만 싸늘한 허전한 가지, 그 가지를 바람도 살며시 비켜 가건 만, 그 얼마나 참았던
사무친 상처 길래, 흐느끼며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
그 잎새 같은 신세가 되어 친구 등에 업혀서 노래하다 역시 28세에 요절하였다.
낙엽이 다시 정들었던 가지를 찾는다고 희망을 노래한 나훈아는
80을 가까이 바라보며 활발한 연예 활동을 하고 있지만
차중락과 배호는 낙엽과 같이 떠난 임을 그리고 슬퍼하다가
모두 11월에 젊은 나이에 천당으로 갔다.
그들의 노래 가사에서 우리의 삶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가을 꽃을 말하면 국화가 아닐 수 없다.
국화는 노지에서도 겨울을 날 수 있는 쑥과 같은 과의 종류이다.
겨울에도 꽃과 잎 파리가 죽어 가지만
뿌리가 살아 남아 다음 해에 새 순이 돋고 꽃이 핀다.
대부분의 식물들이 봄,여름,가을을 지나면서 가을에는 결실을 맺고
열매로 다음 해를 기약하지만, 국화는 서정주의 시에 표현된 것 처럼
봄에는 소쩍새의 사랑 소리를 들으며 잎이 피고,,
여름에는 먹구름 속에서 천둥 소리를 들으며,청춘을 발산하다가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한 뒤, 그 뒤안 길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꽃이라고 했다.
서둘러 결실을 바라지 않고, 늦 가을에 서야,
찬란한 색갈과 향기를 선사하는 그런...
젊은 시절을 온갖 시련과 외로움과 고통과 그리움을 지나
성숙한 모습으로 거울 앞에 나타난 누님 같은....
요즈음은 지방마다 국화로 치장한 전시회를 열어
그 아름다운 국화꽃의 향연을 자랑한다.
어제 저녁 사온 덜 핀 국화꽃 화분을 책상 앞에 사다 놓았더니
갑자기 시골 누님 생각이 난다. 보성군 복내면 산골짜기로 시집갔던 누나 집을
생도 3학년 때 휴가 중에 찾아간 적이 있다.
길삼으로 바쁘게 베틀에서 배를 짜고 있다가 반갑게 내려와 맞으며,
씨 암탉을 잡아 백숙을 요리해 주셔서 ,잘 먹고 귀대했던 기억이 새롭다.
길삼으로 여려운 살림에 지금은 아들 둘에 딸 하나를 잘 길러
모두 편히 잘 살고 있다,
어렸을 적 나를 업어 주면서 어머니를 도왔다고 하나, 기억이 없다.
나 보다 13세 위 이니 그럴 만도 하다.
조금 자랄 무렵 ,누님이 바닷가에서 해물을 캐와 바지락을 먹었던 기억은 있다.
남들에게는 결실의 계절에 젊음을 늦게 발산하는 국화 꽃 처럼
나의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거울 앞에 선 완숙한 여인처럼
멋진 신사가 됐으면 .....
그러나 지금 나의 삶은 어떠한가,
친구 의사 박모 누구는 나보고 독거 노인이라고 농담쪼로 이야기한다. 맞다.
혼 숙에, 혼 밥에, 혼 돌이 이다.
마누라가 딸 집으로 떠난 지가 꽤 오래 되었다.
천당으로 가서 영원이 오지 않는 다면 ,얼마나 외롭고 서운하고 슬플까!
그러나 마누라는 곧 오리라는 기대에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진다.
마누라가 집에 와 바야 ,어떤 특별한 이벤트라도 있을 리 없겠지만....
먹고, 입고, 씻고, 세탁하고, 집 청소하고,자는 것이 매일 같이 반복 된다.
라면에 막걸리, 누룽지에 포도주, 햄버거에 콜 라,
통닭에 맥주, 밖에 나가면 김치찌게, 설농탕 ,된장찌게, 하얀 순두부,
서울에 동서들이 셋이 있는 데, 교대로 식구들을 동반해서 나를 모시겠다고 하나,
말과 행동도 조심해야 하고,번거롭고 부담만 간다.
마누라 친구들이 김치, 파 김치를 문고리에 걸어 놓고 간다.
머니 머니 해도 약속이 없어, 혼자 걷다가 반가운 친구가 밥 먹자고
할 때가 기쁘고, 만나면 부담 없는 동질감을 느낀다.
이렇게 메뉴도 다양하지만 누님의 씨 암탁 백숙과 부억에서
바가지에 보리밥 .무우채. 고추장. 참기름으로 비벼 주셨던
어머니 비빔밥 만 못하다..
집에 오면 구름이가 출입문 가장 자리 출입구가 잘 보이는 곳에 방석을 물어다 놓고,
그 위에 누어, 흐릿했던 눈 빛이 반짝이면서 문 앞에서 기다린다.
하루 종일 구름이는 나를 기다렸을 것이다.
사료 몇 십 알을 주면, 반가워서 꼬리를 치며, 메끄러운 마루를
수십 바뀌를 돌다가 지쳐 쓰러진다,
그리고는 다소 곳이, 내 침대 밑, 옆에서 잠이 든다.
소쩍새 사랑노래, 천둥소리, 다 지나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그리고 어떤 50대의 완숙한 여인 같은,
그런 아름답고,멋진 모습이 아니다.그냥 욕심없는 자연 그대로 착하고 순진한 모습이다.
친구들아! 가을은 슬픈 계절이 아니다.
곱게 물든 단풍 처럼, 싱싱한 국화 꽃 처럼, 씩씩하게 활기차게 살자
화이팅! 사랑해! 한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