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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색, 동양의 사상체계를 담다
태곳적부터 인간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힘없는 존재였다. 카오스, 즉 무질서의 세계는 두려움의 공간이고 질서의 세계인 코스모스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 평화를 예견한다. 그래서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삶은 안전을 담보한다. 오방색은 우주와 인간의 질서를 상징한다.
음양오행 사상은 고대의 동양에서 우주에 대한 인식과 사상을 정립한 원리이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음과 양에 의해 생겨나고 소멸한다. 또한 하늘의 별을 볼 때 항상 제자리를 지키는 항성恒星보다 일정한 괘도 없이 떠도는 별인 행성行星의 신비로움이 인간의 길흉화복에 관여할 것이란 믿음을 가졌다. 그래서 해와 달의 음양과 5개의 행성, 즉 목성·화성·수성·토성·금성·수성을 우주관의 기본으로 삼았다. 지구의 구성요소인 나무木·불火·물水·흙土·쇠金의 5원소가 상호 작용함에 따라 자연과 인간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전통적인 색채의식은 기원전 1세기 경 전한前漢시대에 성립된 음양오행 사상으로 전개되어 왔다.
오방색은 음양오행 사상에 따른 방위와 상징을 나타낸다. 동방東方은 태양이 솟는 곳으로 나무가 많아 항상 푸르기 때문에 청색을 의미하고 봄을 의미하며 탄생하는 곳으로 양기가 강하다. 서방西方은 쇠가 많다고 생각하고 쇠의 색깔을 희게 보아 백색으로 표현하였고, 가을을 의미하며 해가 지는 곳으로 음기가 강하다. 남방南方은 언제나 해가 강렬해 적색이고 만물이 무성하여 양기가 왕성한 곳으로 여름을 의미한다. 북방北方은 깊은 골이 있어 물이 있다고 여겨 이를 검게 보아 흑색으로 표현하였고 겨울을 의미한다. 중앙中央은 땅의 중심으로 해와 가장 가까운 곳이라 여겨 광명을 상징하는 황색으로 표현하였다.
음양오행의 상징적 원리는 색깔뿐만이 아니라 신체와 감정, 계절, 맛, 소리에도 적용했다. 그 원리로서 한의학의 기본이 마련되었고, 음악의 체계가 수립되었고, 한글의 창제가 가능했으며 한양의 도시설계에도 적용되었다.
신분을 색으로 상징하다
오행의 각 기운과 연결된 청·적·황·백·흑의 다섯 가지 순수한 기본색인 오방색은 오정색五正色, 오색五色, 오채五彩라고도 하였다. 오방색 사이에 위치하는 중간색이 오간색五間色이다. 서방金과 동방木 사이에는 벽색碧色, 동방木과 중앙土 사이에는 녹색綠色, 남방火과 서방金 사이에는 홍색紅色, 남방火과 북방水 사이에는 자색紫色, 북방水과 중앙土 사이에는 유황색硫黃色이 놓인다.
오래전 동양에서는 신분의 높낮이를 오방색 옷으로 적용해왔다. 우주의 중심을 상징하는 황색은 황제의 색이다. 조선의 국왕들은 고구려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적색 곤룡포를 입었다. 시대에 따라 약간씩 다른 면모를 보이긴 하지만, 관직에서도 품계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여 위계질서를 잡고자 했다.
조선에서는 당상관인 정1품에서 3품까지는 적색을, 당하관은 청색을, 품계가 낮은 7품에서 9품은 녹색 관복을 입었다. 여성의 예복인 원삼은 황후가 황원삼을, 왕비는 홍원삼을, 비빈은 적원삼을 입었고, 공주나 사대부 집안 부인들은 녹색원삼으로 신분을 과시했다. 민간의 평상복으로 이러한 색깔의 옷을 금지한 사연은 염색에 들어가는 노동력과 경제성에도 원인이 있겠으나 색깔로써 신분질서를 정립할 필요성이 우선하였던 셈이다.
단지 혼례 때만 고귀한 신분을 상징하는 옷을 허용했다.
생활과 문화 속으로 뿌리내리다
오방색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저세상으로 떠날 때까지 삶의 여러 영역에 관여해왔다.
아기가 태어난 지 21일 되는 삼칠일이나 백일에는 백설기를 먹는다.
중요한 행사에 등장하는 백설기는 백색이 신성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적색은 벽사의 의미로 활용되었다. 인간을 해코지하는 귀신은 언제나 음기가 서린 곳을 좋아한다.
양의 색깔인 적색은 액을 면하게 해준다. 동짓날 집안 여기저기에 팥죽을 뿌리는 것도 악귀를 물리치기 위함이다. 아기가 태어난 집에서 두르는 금줄과 간장항아리에 담구는 고추 또한 적색이 가진 주술의 위력을 보여준다.
혼례식에서 신부의 얼굴에 연지 곤지를 바르는 것도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함이다. 상가喪家에서 전문적으로 울음을 파는 곡비哭婢는 반드시 손톱을 빨갛게 물들였고, 여름날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는 풍습도 벽사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적색으로 그린 부적은 주사朱砂에 황성분이 있어 살균이나 해독작용을 하는 측면도 있다.
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선물하는 것도 이러한 색채의 벽사 기능이 이어져온 풍습이다.
청화백자나 청백리淸白吏에서 보듯이 청색과 백색을 지향하는 우리 민족의 의식 또한 오방색이 갖는
의미와 상징에 연유한 경우라 하겠다.
옛 사람들은 우주를 관장하는 제왕 밑에 각 방위를 수호하는 신령스러운 동물이 있다고 보았다.
고구려 석실 무덤의 동방에는 청룡, 서방에는 백호, 남방에는 주작, 북방에는 현무의 사신도나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좌청룡·우백호 또한 오방색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궁궐이나 사찰, 사당 건물의 단청 또한 오방색을 기본으로 삼는다. 단청은 건축물의 주재료인 나무를 보호하는 물리적인 목적과 건축물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한 정신적인 목적이 결합된 형태이다.
자연에서 색깔을 빌려오다
오방색의 5가지 색깔은 전통적으로 자연의 산물인 식물이나 동물, 광물로 만들어 썼다.
동쪽에 해당하는 청색은 석청石靑이나 군청群靑과 같은 광물질이나 쪽풀藍에서 얻는다.
서쪽에 해당하는 백색은 고령토나 백악과 같은 흙성분의 광물질이나 조개껍질로 만든다.
동양화에서 사용하는 백색은 대부분 합분蛤粉인데 이것은 무명조개나 굴 수컷 껍질을
약한 불에 구운 후 미세하게 갈아서 만든 것이다.
중앙에 해당하는 황색의 광물성 안료로 대표적인 것이 석황石黃이다.
식물성으로는 해등나무 껍질에 구멍을 내어 흘러내린 즙을 굳힌 등황藤黃과 방충성이 있어 책표지에도
사용한 황벽黃蘗이 있다. 선명한 색을 내는 치자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남쪽에 해당하는 적색은 광물질인 주사朱砂가 대표적인데 그림은 물론 칠기나 부적, 도장을 찍는 인주,
약재 등에도 사용했다. 홍화나 풀의 일종인 꼭두서니로 만들기도 했다.
북쪽에 해당하는 흑색은 주로 소나무 그을음에 아교를 섞어 만든 먹이 대표 격이다.
광물질로 흑석지가 있고 약용식물인 통초通草를 태워 만든 통초회도 있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의 색채의식
시대의 변화에 따라 나라마다 색채관이 변하기 마련이지만,
중국에서 발생한 음양오행과 오방색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선명하게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건축과 의복 등 생활색채의 활용에 있어서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은 황실에서만 사용이 가능했던
황색 대신 적색을 선택했다. 적색은 황색 다음으로 고귀한 색이다.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中華思想에서 비롯된 자기중심적 색채관은 자연스럽게 강렬한 적색에 집중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적색은 즐거움이고 명절의 색이다.
그리고 행운과 돈을 부르는 색으로 사랑받는다.
한편, 백색은 애도의 색이며 흑색은 상처의 색이자 악의 상징색이다.
중국은 오방색의 종주국이지만 격동의 근세와 사회주의 정치체제에서 전통의식이 상당부분 사라져 버렸다.
일본에서 오방색의 의미는 더욱 희박하다. 섬나라가 갖는 지리적 환경으로 인해
타 문화를 흡수하되 변형시키는 본능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모 씨름판 네 귀퉁이에 늘어뜨리는 색실타래 청방靑方·백방白方·적방赤方·흑방黑方은
오방색의 전통이 남아있는 사례이다. 일본의 색채는 화려하다.
그러나 장식품이나 상품에서와는 달리 거리나 사찰에서 보는 색은 우리보다 훨씬 단조롭고 무채색에 가깝다.
이는 스스로를 낮추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국민성에 기인한다.
논리적이고 배려심이 강한 일본인들의 가치관이 색채에 반영된 결과이다.
우리나라는 색채의 조화보다 오방색과 같이 색이 가진 고유의 상징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태극문양에서 보듯 음양의 대비와 남녀, 임금과 신하, 스승과 제자 등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유교 전통이
오방색의 상징적 의미와 결합하였다.
유교사상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러한 전통색을 체계적으로 정립하여 한국의 색을
세계화시키는 일이 우리들에게 숙제로 남아 있다.
글ㅣ사진ㆍ성기혁 경복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사진ㆍ문화재청
오방색(五方色) - 색의 조화, 천지만물의 조화
(오방색)
우리 민족은 고대인의 특성 가운데 하나인 태양숭배사상과 경천사상에 따라 예부터 백색을 신성한 색으로 다루었는데, 이 흰색은 물감을 들인 색인 아닌 무색, 즉 있는 그대로의 흰색을 말하는 것으로 무색 그 자체가 자연을 의미한다.
또 서구의 미시적이고 분석적인 색채관과는 달리 색깔에 대하여 모든 유사색을 종합적으로 포함하여 표현하는 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검다, 희다, 붉다, 푸르다, 누르다라는 표현으로 여기에 새, 시, 샛 등의 접두사 붙어 그 빛깔의 의미를 강조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무속신앙, 도교에 관련하여 중국의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이 수용되어 소재나 색채에서 구체적인 형상과 의미를 내포하는 표현이 이루어졌다. 그것은 오행에 근원을 둔 오방색으로써 고구려 고분 벽화의 사신도에서 채색화의 시원으로 발견되었으며, 이는 이후 각 신분과 용도에 맞게 설정된 복식, 공예품, 왕궁과 사찰에서의 단청을 비롯한 전반적인 색채의식을 형성하는 근간이 되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크게 두 가지 색채인식을 가지고 있는데, 한 가지는 백색과 남색으로 대표할 수 있는 우리 고유의 색 선호사상인 탈채색(脫彩色) · 금채색(禁彩色)사상이며, 다른 것은 원색을 사용하여 주술적인 목적과 색에 의미와 상징성을 부여한 무교(巫敎)사상과 음양오행사상이다. 여기에서는 색을 볼 때의 감각, 즉 시각적 체험으로의 반응보다는 관념화되고 지식화 되어있는 우리 민족의 의식화된 색사용과 색보기인 오방색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음양오행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문화권에서 우주인식과 사상체계의 중심이 되어온 원리로서 우주의 본원에는 음(陰), 양(陽)의 두 기(氣)가 있음으로 천지 만물은 이 두개의 기로 이루어졌다는 역학적인 이론과 천문학적 철학으로 발전한 것이다. 무극에서 음과 양의 기운이 생겨나 하늘과 땅이 되고 다시 음양의 두 기운이 다섯 가지 원소를 생산하였는데, 이것이 목, 화, 토, 금, 수의 오행이다.
그리고 이 오행에 상응하는 오색은 청, 적, 황, 백, 흑이다.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의 오행은 운행(運行)함에 있어서, 서로 조화를 이루는 일과 서로 충돌하는 일이 생기는데 그것이 상생상극(常生相剋)이다. 다시 말하면 오행은 따로 떨어져서 존재하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영향을 끼쳐 도움을 주기도 하고, 물리치기도 하고, 낳아주기도 하며 극(剋)하기도 하는데, 이와 같이 물고 물리며 주고받는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오행에는 오색이 따르고 방위가 따르는 것이다.
중앙과 사방을 기본으로 삼아 오방이 설정되며, 색상 또한 오방이 주된 골격을 이루고 있는 양의 색으로써 오색을 기본색으로 배정하고 그 다섯 방위사이에 놓이는 사이색을 음색이라고 한다.
음색은 녹색, 벽색(짙은 푸른색), 홍색, 유황색, 자색이다.
황(黃)은 오행 가운데 토(土)로 우주중심에 해당하고 오방색의 중심으로 가장 고귀한 색으로 인식되어 임금만이 황색 옷을 입을 수가 있었다.
청(靑)은 오행 가운데 목(木)으로써 동쪽에 해당하고 만물이 생성하는 봄의 색으로 창조, 생명, 신생을 상징하며,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색으로 사용되었다.
백(白)은 오행 가운데 금(金)으로 서쪽에 해당하고 결백과 진실, 삶, 순결 등을 뜻하며 우리민족이 흰 옷을 즐겨입는 원인이기도 하다.
적(赤)은 오행 가운데 화(火)에 상응하며 만물이 무성한 남쪽이며 태양, 불, 피 등과 같이 생성과 창조, 정열과 애정, 적극성을 뜻하며 가장 강력한 벽사의 빛깔로 쓰여졌다.
흑(黑)은 오행 가운데 수(?)에 상응하며 북쪽이고 인간의 지혜를 관장한다.오방색 쪽보
이와 관련하여 생활에서 어떻게 색이 사용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의생활에서는 혼례 때 부인들의 가례복인 녹의홍상은 오행의 상생과 관련하여 장수하고 부귀가 충만하도록하는 기원의 뜻을 담고 있으며, 신부의 얼굴에 바르는 연지곤지도 시집가는 여인을 투정하는 음귀에 대한 축출의 의미에서 사용되었다. 또 돌이나 명절에 오색천을 이어 만들어 어린아이에게 입히는 색동저고리 역시 오행을 갖추어 나쁜 기운을 막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것이다.
식생활에서 간장항아리에 붉은 고추를 끼운 금줄을 두르는 것은 나쁜 기운의 근접을 막기 위한 것이며, 팥죽, 시루떡도 음의 기운을 물리치고자 하는 것이다. 또 잔치상에 오르는 국수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국수위에 올려진 오색고명은 오행에 순응하는 복을 비는 의미가 더하여져 있다.
주생활에서 우리 선조들은 건축재료로서 붉은 빛이 나는 황토를 사용하였으며, 새해가 되면 한해의 안녕을 빌고 재앙을 물리친다는 기복과 벽사의 의미에서 붉은 부적을 그려 붙였다. 또 목조건물에는 단청을 칠하여 건물의 보존과 장식은 물론 왕궁과 사찰의 위엄을 표현하였다.
그 밖에 민화, 무속화, 공예품 등에서도 벽사기복의 의미가 나타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선조들에게 오방색은 단순한 빛깔로써의 색만이 아닌, 방위와 계절을 나아가 종교적이며 우주관적인 철학관을 형성하였다. 그들은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오행에 따른 오방색을 용도와 신분에 맞게 구분하여 사용하였다.
이것은 현대인들이 시각적인 이미지로 색을 사용하며 보는 것과는 다른 선조들의 색채관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된 듯하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소망을 잘 헤아리고 나아가 이러한 전통적 색이미지를 어떻게 살려 나아갈지를 머릿속 깊이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단청무늬)
오방색이 적용된 음식: 아기의 첫돌 잔칫상, 경단, 무지개떡, 떡국이나 잔칫국수 위에 올려놓는 고명등
오방색이 적용된 환경: 음양 오행 사상의 색채 체계는 동서남북 및 중앙의 오방으로 이루어지며, 이 오방에는 각 방위에 해당하는 다섯가지 정색이 있고, 각 정색 사이에는 다섯가지 간색이 있다.
정색의 동쪽은 청색, 서쪽은 백색, 남쪽은 적색, 북쪽은 흑색, 중앙은 황색이며, 이중 청, 적, 황색은 양의 색이고 흑과 백은 음의 색이다. 간색으로는 동방의 청색과 중앙의 황색 사이에 녹색이 있고, 동방의 청색과 서방의 백색 사이에는 벽색, 남방의 적색과 서방의 백색 사이에는 홍색, 북방의 흑색과 중앙의 황색 사이에는 유황색, 북방의 흑색과 남방의 적색 사이에는 자색의 다섯가지가 있으며 모든 간색은 음의 색이다. 이와 같은 정색과 간색의 10가지 기본색을 음양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은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고 화평을 얻는 중요한 일로 생각하였다.
오방색이 적용된 건축물: 단청에 오방색이 쓰인다
불교의 사찰과 궁궐에서 사용하던 단청은 이러한 오방색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예인데, 이 다섯가지 오방색을 방위와 위치에 따라 완벽한 조화를 이루도록 계획되었다. 천장은 천상의 세계를 나타내기 때문에 천계의 신격이 나타나도록 하고, 천장을 떠받치는 부재는 5색 구름과 무지개가 그려지고, 기둥에는 구름처럼 너울이 드리워지고, 기둥 아래에는 현세의 존엄성을 푸른 색과 붉은 색의 단조로움으로 나타냈다. 또한 단청의 무늬마다 그 뜻이 내포되어 있는데 박쥐문은 복과 자손 번창의 의미를 나타내고, 연화문은 불교에서 대자 대비와 극락 정토를 상징하는 것이다.
색동저고리도 오방색을 사용한 예이다
색동 저고리에 오행의 색인 적,백,황,청,검정 외에 다른 색을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일가요?
오행의 색을 섞어 변화되기 바라는 점을 반영한 것일까요?
색동저고리의 색동
돌이나 명절에 어린아이가 입는 저고리로 까치저고리라고도 한다.
명 절 때는 여자 아이가 많이 입고, 돌날에는 남자 아이도 입는다. 색동저고리에 관한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①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따라 액땜을 하고 복을 받기 위하여 5방색(五方色)을 이어붙여 입혔다고도 하고, ② 승려들이 자신의 자녀(子女)와 다른 사람의 자녀를 구별하기 위하여 입혔다는 전설도 있다. ③ 여인들이 바느질하고 남은 여러 색의 비단 조각을 모아 두었다가 아기의 돌에 색을 맞추어 이어붙여 입혔다고도 한다. 궁중에서도 4월 초파일에 어린 왕자가 색동 관사로 지은 두루마기를 입었다는 기록이 있다.
근래에는 남아·여아 모두 돌이나 명절에 입고, 깃·끝동·옷고름 등에는 금박을 박아 여인들까지 생일이나 명절에 즐겨 입는다. 색동은 저고리의 소매 부분에 주로 쓰고 섶에도 쓴다. 주로 적색·백색·황색·초록색·분홍색·청색(6색)을 쓰고, 때로는 자주·연두·남·보라 등도 쓴다.
그러나 원래는 음양오행설에서 주장하는 남쪽은 적색(火), 북쪽은 흑색(水), 동쪽은 청색(木), 서쪽은 백색(金), 중앙은 황색(土)인 오방색을 기준으로 하여 흑색은 빼고 다른 몇 가지 2차색을 추가한 것으로도 본다. 남아의 돌에는 색동저고리 위에 남색 돌띠를 띠고, 여아는 자주색 돌띠를 띠는 풍습이 있다.
[출처] 색동저고리 [色─ ]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 저고리//
설날이면 듣던 동요다.
설날 아침 색동저고리에 다홍색 비단치마의 설빔으로 차려 입고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장면이 아닐까 싶다.
옛날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면 남녀를 막론하고 어린아이들은 색동저고리를 입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었다.
양쪽 소매 깃에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흰색, 검은색의 다섯 가지 색을 잇댄 색동저고리는 그 모습이 화려하기도
하거니와 음양오행에서 말하는 오방색(五方色)을 시현한 것으로 액땜을 하고 복을 받는다는 뜻도 간직하고 있어
부모들도 어떻게든 자녀들에게 색동옷을 해 입히려 했다.
명절이면 여자아이들은 색동저고리에 치마, 배자(저고리 위에 덧입는 단추가 없는 짧은 조끼 모양의 옷),
두루마기를 입고 조바위(뒤를 덮을 수 있는 부녀자용 방한모)나 굴레(남녀 어린이가 쓰던 방한모)를 썼으며
주머니와 노리개를 차고 타래버선(유아용 누비버선)과 태사혜(신발)를 신었다.
남자아이들도 색동저고리, 풍차바지(유아용의 밑이 터진 바지), 조끼, 마고자(저고리 위에 덧입는 방한복의 하나)를 입고 그 위에 두루마기를 입었으며 전복(소매, 섶이 없고 등솔기가 허리에서부터 끝까지 트여 있는 조선 후기 무관들이 입던 옷으로 조선 말기 이후에는 문무 관리들이 평상복으로 입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어린이들이 명절에 입기도 한다)을 더 입기도 하고 복건(머리에 쓰던 건으로 원래는 유생들이 썼으나 그 후에는 사내아이가 명절이나 돌 등에 썼다)을 쓰고 타래버선과 태사혜를 신는 것이 정장이었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 색동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고구려 벽화다.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여자들은 대부분 주름치마를 즐겨 입었는데 수산리 고분의 여성은 주름마다 색이 다른 색동치마를 입고 있다. 또한 신라에서는 무관의 직책을 깃의 색으로 구별하는 등 색에 대한 관념이 상당히 발달해 있었으므로 색동옷도 이미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당시의 색 배합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오늘날과 같이 된 것은 음양오행설의 영향을 받은 이후로 보인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색동저고리를 즐겨 입은 것은 고려시대 이후라는 설이 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색동 옷감이 많이 쓰였고 궁중에서도 4월 초파일에 어린 왕자가 색동 두루마기를 입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색동의 유래는 확실치 않다. 음양오행설에 따라 액땜을 하고 복을 받기 위해 오방색을 이어 붙여 입혔다고도 하고, 승려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다른 사람의 아이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입혔다는 설도 있다. 여인들이 바느질하고 남은 여러 색의 비단 조각을 모아 두었다가 아기의 돌에 색을 맞추어 이어 붙여 입히면서 만들어졌다고도 한다.
원래 음양오행설에서 주장하는 오방색은 남쪽은 적색(火), 북쪽은 흑색(水), 동쪽은 청색(木), 서쪽은 백색(金), 중앙은 황색(土)이라는 논리에서 나온 색이다. 이 오방색은 색동저고리 외에도 우리 생활 주변에서 널리 사용됐는데 전통 혼례 때 신부가 바르는 연지곤지, 간장 항아리에 붉은 고추를 끼워 두르는 금줄, 잔칫상의 국수에 올리는 오색 고명, 붉은 빛이 나는 황토로 집을 짓거나 신년에 붉은 부적을 그려 붙이는 것, 궁궐·사찰 등의 단청 등이 그 예다.
예로부터 색을 사랑했고 또 지혜롭게 이용할 줄도 알았던 우리 민족은 이런 화려한 색깔을 색동저고리와 단청은 물론 아이들의 연이나 장난감, 떡 같은 먹거리에도 쓸 줄 알았다.
우리 민족이 색깔에 얼마나 섬세했는지는 흰색도 장독대에 곱게 내려 쌓인 눈처럼 눈부신 설백색, 노르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한지의 지백색, 뽀얗고 화사한 쌀밥의 유백색, 가을밤의 달빛을 담은 흰 도자기의 소색. 그리고 난백색(현대에는 무슨 색인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등 다섯 가지 색깔로 분류했을 정도다.
때문에 색동에 오방색만 쓴 것이 아니라 오방색이 만나 만들어지는 오간색(녹색, 벽색, 홍색, 유황색, 자색)도 사용됐다.
색동은 저고리뿐만 아니라 치마, 마고자, 두루마기 등에 사용되었으며 이 색동옷은 까치설날, 즉 섣달 그믐날 즐겨 입는다고 하여 까치저고리 또는 까치두루마기 등의 별명이 붙기도 했다.
오늘날 색동옷은 색깔이 더욱 다양해지며 어린아이는 물론 어른들도 많이 입고 있으며, 주머니나 포장지 등 각종 디자인에까지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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