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일생은 기도하는 일생입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기도와 능력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명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며, 기도를 통해서 그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사실 기적이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기적이지만 손가락 하나로 우주를 지으시고 하늘의 별들을 베푸신 하나님께는 별 일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은 날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기적을 일으켜서 나를 도우시지는 않지만, 날마다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기적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먹이고 입히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면 왜 일합니까? 열심히 일하는 것은 우리지만 그 열매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월급을 받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손길로 주신 것임을 믿기에 그 고백으로 금쪽같은 십일조를 떼어 드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질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치료하시는 것과 병원에서 치료하는 것을 서로 상반된 개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생각 구조는 참으로 편협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좋은 사람은 기도해서 낫고, 믿음이 적은 사람은 병원에서 고생하면서 낫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한 말을 한다면 병원 문턱에만 들어서는 사람은 그 사람이 목사이든, 장로이든 다 믿음이 개떡같은 사람인 것입니다. 약과 의원도 나의 병을 치료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하나님의 손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도 내가 돈을 주니까 치료해주지 하는 생각보다는 나의 병을 치료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이니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병원엘 가든지 안가든지 우리는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기가 걸렸든지 암이 걸렸든지 치료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엠 바운즈는 이런 말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효험을 믿는다고 하지만 기도에 자신을 던지려고는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모양만 믿음으로 살고, 실제로는 환경을 따라서 산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병들어 죽게 된 히스기야의 기도의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기도하는 장면과 하나님이 그의 병을 치료해주시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병은 죽고 살지 못할 병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결정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1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히스기야의 발병은 앗수르의 침입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히스기야의 병은 산헤립이 유다를 공격해온 초기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히스기야에게 죽기 전에 모는 일들을 정리하고 국정도 인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그냥 병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그는 죽을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제 재산을 정리하고 갈 준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그의 병은 의사가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었습니다. 절대절망, 그는 하루아침에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절망을 만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때 히스기야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2-3절을 보겠습니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이것은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즉각적으로 보인 반응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즉각적으로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여호와께로만 향하겠다는 다짐을 나타내는 행동입니다. 그는 자기의 평상 업무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모두 물리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에만 전심전력하여 매달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기도하는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진실로 기도했고, 들으심을 입었던 것입니다. 5-6절입니다.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을 십 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사랑의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를 차마 뿌리치지 못하셨습니다. 시51:17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3절을 보면 자신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히스기야는 단지 자신을 긍휼히 여겨주실 것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생명을 무려 십 오 년이나 연장해 주셨습니다.
엡3:20은 하나님을 "우리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라고 소개합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구한 것은 자신이 진실과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한 것, 곧 하나님 앞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허락하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더 연장해 주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병을 고치시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주권이나 치료를 위한 기도는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사람의 이력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2세 : 경기중학교 수석 입학
15세 : 경기고등학교 수석 입학.
고교 입학 4개월만에 대입 검정 고시 전국 수석
16세 : 서울대학교 문리대 차석 입학
21세 : 미국 미시간 주립대 박사 과정 수석 합격
24세 : 박사 학위 취득
24세 : 미국 사우드 플로리다 대학 조교수
27세 : MIT 원자력 공학과 연구원
28세 : 뉴욕 공대 전기물리학과 부교수
43세 : 한국전력 사장
51세 : 한국 과학기술처 장관
지금까지 열거한 이력들은, 전 과학기술처 장관이었던 정근모 박사의 이력입니다. 이 정도의 실력과 재능이라면, 아무리 험한 세상일지라도, 별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현대 과학의 일인자라 할 수 있는 정 박사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냥 점잖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글을 읽어보면, “마치 야곱이 얍복강 나루에서 기도한 것처럼, 밤새도록 주님께 기도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의 아들이 만성신장염을 앓게 되자, 그는 그의 콩팥 하나를 아들에게 떼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수술이 잘못되어, 황달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황달은 흑달이 되어, 아들은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부부는 교회에 나가, 그 아들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 달렸음을 믿고,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과학과 의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심한 좌절감과 우울증으로 염세적인 사람이 되었고, 급기야는 두 번씩이나 자살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래서 정박사 부부는 그 아들을 끌어안고 울면서, 아들을 치유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정 박사는, 그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정말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체험하는 순간들이었다. 이건 나의 전공인 과학의 힘으로도, 인간의 의지나 설득으로도,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관계로도 해결할 수 없는 한계 상황이었다. 나는 인간의 창조주요 절대자인 하나님 앞에, 한없이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다.“
모태 신앙인이었던 정 박사는, 그동안 교회 생활에는 불충실하고 세상일에만 전념했던, 지난날의 생활을 회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롱아일랜드 중앙감리교회>를 교포들과 함께 개척하기도 하면서, 신앙 생활에 열심을 다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부족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정근모 박사. 그러나 그도, 이 험한 세상을 홀로 살아가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오늘 히스기야와 같은 기도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