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성(3:1-8)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1)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2)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3)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4)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5)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6)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7)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8).”
본문개관
로마서 2:17절 이하에서 바울은 율법을 어긴 유대인은, 그가 언약백성이라고 자처하더라도, 이방인과 똑같이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였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소유하고 할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이상, 율법과 할례가 그들을 이방인보다 더 나은 위치에 서게 하거나 그들의 보호막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도 죄인으로서 이방인들과 똑같은 심판의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연히 제기되는 질문은 두 가지이다. 첫째, 유대인 됨의 나은 것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는 것이다(3:1). 둘째, 유대인이 율법을 어긴 일로 죄인이 되어 이방인과 똑같은 심판의 자리에 서게 된다면,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성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다. 유대인의 불신앙이 하나님의 신실성을 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3:1-8절은 기본적으로 이 두 핵심적인 질문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바울의 답변이다.
3:1-8절은 제기된 핵심적인 질문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유대인들의 나음과 할례의 유익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바울의 답변을 제시하고 있는 부분(3:1-2). 둘째, 언약에 대한 유대인들의 불 성실성이 하나님 편에서도 불 성실성을 가져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결코 그럴 수 없다”는 답변을 제시하고 있는 부분(3:3-4). 셋째, 인간의 불의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의가 죄가 많은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 풍성함을 말하는 바울의 복음이 오히려 악을 조장하고 있다는 오해와 관련된 바울의 답변을 제시하고 있는 부분(3:5-8). 첫째 문제와 관련하여, 바울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달리 하나님의 말씀을 위임받았다는 점과 관련하여 그들의 우위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의 우위성은 하나님에게 대한 그들의 언약적 책임의 포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언약에 대한 성실성을 위한 것임을 강조한다.
둘째 문제와 관련하여, 바울은 설사 하나님이 범죄한 유대인들에게 심판을 선언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불의하지 않으시고 의로우심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자신의 언약에 성실하지 않는 거짓말하는 자는 아니다. 바울은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성에 대한 문제는 9-11장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더 이상의 구체적인 설명은 유보한다.
셋째 문제와 관련하여, 바울은 인간의 범죄가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더 들어낸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정당하지 않은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오히려 바울은 자신의 복음이 죄를 조장하며 반 율법주의라는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임을 강조한다.
본문주해
①하나님의 신실성
바울은 로마서 2장에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이 소유하고 있지 않은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바울이 거듭 주장한 것은 유대인들의 특권에 대한 부인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지 않는 한 유대인들도 마지막 심판 때 이방인들과 똑같이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제 바울은 마치 유능한 선생이 학생들로부터 제기될 수 있는 질문을 먼저 제기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하는 것처럼, 2장에서 그가 주장한 내용으로부터 자연히 제기 될 수 있는 여러 질문들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한다. 문제의 핵심은 유대인 됨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답변한다. 양자됨, 영광과 언약들, 율법, 예배와 약속, 그리스도의 출생 등이 있지만(9:4-5), 바울은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을 첫째로 본다. 여기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은 무엇을 지칭하고 있는가? 어떤 주석가는 “유대인들이 맡은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특별한 약속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꼭 그렇게 제한시켜 볼 이유는 없다. 오히려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들은 물론, 십계명, 메시야의 예언, 율법을 포함하고 있는 구약성경 전체를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성경이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것은, 그 어떤 민족에게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구약성경을 통하여 자신을 유대인들에게 계시하시고, 그들에게 어떻게 믿을 것,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 유대인들과 인류에 대한 그의 최종적인 계획과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두 번째 제기될 수 있는 질문, 곧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맡겨졌지만, 그들 중에 어떤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성실한 자들이 있는데, 그들의 불신앙과 불성실 때문에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성이 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언약 백성의 도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도 똑같이 그들에 대한 약속을 폐기하고, 그들에 대한 자신의 신실한 의무를 중단하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은 강한 부정을 뜻하는 강조형 “그럴 수 없느니라”라는 문구를 사용한다.
사람의 불신앙과 불성실함이 있다하더라도 하나님의 약속과 그의 신실성이 폐기되는 경우는 결단코 있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답변한다. 사람은 믿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든 믿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이점을 입증하기 위해 시편 51:4절 하반절,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 이기려 하심이라”를 인용한다. 왜냐하면 성경보다 더 강한 증언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편 51편은 다윗왕이 부하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후, 선지자 나단의 책망을 받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통회한 기도문이다. 다윗은 자신의 범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어떠한 판단을 하시더라도 하나님은 의롭다는 사실을 고백하였다. 그런데 바울은 다윗의 고백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확대 적용하여, 하나님께서 언약에 불성실한 이스라엘 민족의 죄에 대하여 심판을 하신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신실성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언약에 대한 그들의 불신앙과 불성실과 대조하여 하나님의 의와 그의 신실성은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바울은 5-8절에서 다시 3:3-4절로부터 제기될 수 있는 두 가지 질문을 가정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제시한다. 첫째,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들어낼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럴 경우 우리의 불의로 하나님이 득(得)을 보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일에 일조(一助)를 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당연히 우리의 불의에 대하여 진노를 발하시는데, 그럴 경우에 우리의 불의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과연 불의하시느냐는 질문이다. 바울은 이 질문과 관련하여 “결코 하나님은 불의하지 않으신다”고 답변한다. 바울은 오히려, 만일 우리의 불의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날 경우 하나님이 우리의 불의를 심판할 수 없다고 한다면, 온 우주의 도덕적 통치자시며,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심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바울은 이러한 반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는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보는 하나님 자신의 신실한 성품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힌다.
둘째,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겠는가? 만일 심판을 받지 않는다면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행하자는 주장이 나오지 않겠는가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과 관련하여 바울은 아무리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더욱 드러나고, 그의 영광이 되었다 하더라도, 나의 거짓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다는 답변을 전제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행하자는 말이 나올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바울은 우리의 불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폐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가르침, 예를 들면,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많다는 자신의 가르침(참조 롬 5:20)을, 마치 그가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행하자는 주장을 한 것으로 자기를 오해하고 비난하는 자들이 있는데, 자신은 결단코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자신을 그렇게 비난하는 자들이 있으면 저들은 마땅히 정죄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