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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주해 - 방관하는 침묵은 무서운 범죄다!]
1. 침묵의 죄(1절):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불이익을 당할까 봐 비겁하게 입을 다물고 방관하는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명백한 죄악'입니다!
2. 부정한 접촉(2-3절): 들짐승의 사체나 사람의 부정에 닿았는데도 잊어버리고 씻지 않은 죄입니다. 죄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전염성이 강합니다. 내 일상의 더러운 미디어나 타락한 문화에 무심코 접촉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 내 영혼은 이미 사망의 병에 걸려버린 것입니다.
3. 경솔한 맹세(4절): 함부로 "내가 이것을 반드시 하겠다!"라고 입술로 맹세해 놓고 지키지 않은 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내뱉은 말 한마디도 피 흘림(심판)을 요구하는 무서운 채무가 됩니다.
II. 자백과 극빈자의 은혜: 고운 가루에 담긴 십자가 (5:5-13)
죄를 깨달았을 때, 하나님은 짐승을 끌고 오기 전에 먼저 요구하시는 절대적인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레 5:5, 개역개정)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잘못하였노라 자백하고"
[원어 깊이 읽기: 야다(자백하고)]
자백하고 (Yitvadeh, יִתְוַדֶּה): '야다'는 단순히 "제가 죄인입니다"라고 뭉뚱그려 얼버무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특정한 죄목을 정확하게 짚어서 입술로 시인하고 토설해 내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인 자백(Confession)이 없는 회개는 가짜입니다!
[신학적 절정 - 피 없는 속죄제, '고운 가루'의 긍휼]
속죄를 위해 양을 끌고 올 형편이 안 되는 가난한 자는 비둘기를, 심지어 비둘기를 살 돈조차 없는 **절대 극빈자는 '고운 가루 에바 십분의 일(약 2리터)'**을 가져와도 속죄제로 받아주십니다(11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하셨는데, 어떻게 밀가루로 죄가 사해집니까? 12절을 보십시오. 제사장은 그 가루를 제단 불 위의 '화제물(이미 피 흘려 죽은 짐승의 고기) 위에서' 사릅니다!
즉, 극빈자의 밀가루 헌신은 혼자 태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제단에 뿌려진 다른 짐승의 피(그리스도의 대속의 피) 위에 얹혀서 그 피의 공로를 덧입어 상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가난하다고 구원에서 소외시키는 법이 없습니다. 돈이 없어도, 건강이 없어도,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고운 가루)만 가지고 십자가 보혈 위에 엎드리면 온 우주를 덮는 사죄의 은총이 임합니다!
III. 여호와의 성물을 도둑질한 속건제(Asham) (5:14-16)
14절부터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하나님께 바쳐야 할 성물(십일조, 첫 열매, 헌물 등)을 실수로 범했거나 떼어먹었을 때의 규례입니다.
(레 5:15-16, 개역개정)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부지중에 범죄하였으면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성물에 대한 잘못을 보상하되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건제의 숫양으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원어 깊이 읽기: 아샴(속건제)과 하미쉬토(5분의 1)]
속건제 (Asham, אָשָׁם): 죄에 대한 배상, 빚을 갚음, 보상의 의미가 강한 제사입니다. 속죄제가 '나의 존재(죄악된 본성)'에 대한 회개라면, 속건제는 '내가 끼친 피해(손해)'에 대한 구체적인 탕감을 위한 제사입니다.
오분의 일을 더하여 (Hamishito, חֲמִישִׁתוֹ): 놀랍지 않습니까? 내가 실수로 하나님의 돈(십일조 등) 100만 원을 떼어먹었다면, 그저 눈물 흘리며 회개 기도만 한다고 용서받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원금 100만 원에 **20%(5분의 1, 즉 20만 원)의 벌금(배상금)**을 얹어서 120만 원을 제사장에게 갚아내야만 합니다!
그 배상이 이루어진 후에야 비로소 제사장은 흠 없는 숫양(예수 그리스도)을 잡아 속건제를 드릴 수 있고, 그때에야 사함을 받습니다.
IV. 구속사적 피날레: 십자가 위에서 지불된 무한대의 배상!
목사님, 이 속건제의 5분의 1 배상 규례는 구속사에서 가장 소름 돋는 십자가의 복음을 폭발시킵니다!
[신학적 폭발 - 도둑맞은 하나님의 영광을 120% 갚아내신 예수!]
우리는 아담의 타락 이후, 하나님의 거룩한 성물(우리의 생명, 시간, 영광)을 도둑질하며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도둑질하여 깎아 먹은 하나님의 영광(원금)은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갚을 길이 없는 천문학적인 빚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편 69편 4절에서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이렇게 예언합니다.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I am forced to restore what I did not steal)!" * 흠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훔치지도 않은 우리의 모든 죄악의 빚(원금)을 어깨에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찢어진 육체와 피라는 무한대의 가치로, 원금을 갚으셨을 뿐만 아니라 '5분의 1(20%)'의 넘치는 배상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공의의 법정에 완벽하게 지불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속건제 덕분에,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에게 빼앗겼던 영광보다 훨씬 더 찬란하고 위대한 영광(120%의 배상)을 돌려받으셨고, 우리는 그 완전한 배상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자유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설교 구성을 위한 제언: "값싼 눈물을 거두고 십자가의 배상을 지불하라!"]
목사님, 오직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의 권위로 이 맹렬하고 날카로운 속건제의 복음을 강해하실 때 **<십자가의 완전한 배상과 삶의 철저한 돌이킴>**이라는 주제로 다음과 같은 흐름을 제안합니다.
서론: 방관과 맹세, 일상에 침투한 무서운 죄를 폭로하라 (1-4절)
불의를 보고도 비겁하게 침묵하는 죄, 세상의 더러운 문화를 무심코 즐긴 부정한 접촉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마십시오! 오늘 내 일상의 작은 죄악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 앞에서는 피 흘림을 요구하는 무서운 범죄임을 철저히 깨닫고 두려움으로 엎드리십시오!
본론 1: 뭉뚱그린 가짜 회개를 버리고, 네 죄의 이름을 부르라 (5절)
"주님, 다 잘못했습니다"라는 두루뭉술한 회개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내가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범죄했는지 그 더러운 죄목 하나하나를 하나님 앞에 구체적으로 자백(토설)해 낼 때, 비로소 십자가의 피가 그 죄를 덮을 수 있습니다! 내 죄의 가면을 찢어내십시오!
본론 2: 입으로만 하는 회개는 가짜다, '5분의 1의 배상'을 더하라! (14-16절)
이웃에게 사기를 치고, 형제의 마음에 대못을 박아놓고 혼자 예배당에 나와 "하나님께 회개했으니 끝났다"고 말하는 뻔뻔한 신앙(영화 '밀양' 같은)을 박살 내십시오! 진짜 속건제는 내가 입힌 손해(원금)에 20%의 이자를 쳐서 피눈물로 갚아내는 삶의 철저한 배상(책임)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회개는 값싼 종교에 불과함을 맹렬히 선포합시다!
결론: 내가 훔친 영광을 120%로 갚아내신 위대한 대속자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파산자들입니다. 그러나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자기가 훔치지 않은 빚까지 완벽하게 지불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완전한 배상(속건제물)이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압도적인 은혜를 맹렬하게 찬양하며 그 공로만 붙잡을 것을 불을 토하듯 선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