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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함-사랑에 진실하기
파트너에게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러냈을 때, 창피하거나 불편하다는 느낌보다는 편안하고 온화한 느낌이 더 강하게 들면 우리는 아주 새롭고 중요한 사실에 눈뜨게 된다. 즉 사람 사이의 아주 친밀한 관계는 우리에게 지리멸렬한 현실 세계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아무런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는 성스러운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쓰고 있던 가면을 벗는 것과 같은 성스러운 행위 - 진실을 털어놓고 내면의 갈등을 함께 나누며, 자신의 욕망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것 ㅡ 는 두 개의 영혼이 더 깊은 곳에서 만나게 해준다. _존 웰우드John Welwood
◇ 거짓의 시작
정의로움의 핵심은 진실을 말하는 것, 우리 자신과 세계를 있는그대로 -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 바라보는 것에 있다. 특히 진실을 말하는 것은 정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정의와 공정함에 대해 깨닫는 계기도 대개는 어른들에게 정직해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을 때이다. 하지만 사회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갈수록 거짓말을 더 많이 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일상의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거짓말을 한다. “오늘 기분 어때요?"라는 인사를 받으면 대부분은 자신의 진짜 상황과는 관계없이 "좋아요", "괜찮아요"라는 식으로 둘러대지 않는가. 일상생활에서 거짓말을 하는 까닭은 괜한 갈등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혹은 상대의 기분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다. 예컨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저녁 식사 같이 할래요?”라는 말을 들으면 자기 속마음을 솔직히 털어놓거나 딱 잘라서 거절하지 못하고, 약속이 있다거나 집에 일찍 가봐야 한다는 식으로 즉석에서 핑계거리를 지어낸다. 같이 식사하고 싶지 않다고 솔직히 말하면 상대가 상처를 받을 것 같아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그냥 정중하게 거절하는 것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곤혹스러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사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이런 식으로 거짓말하는 법을 배운다. 어른들이 내리는 벌이 무서워서, 혹은 어른들을 실망시키거나 상처 주기 싫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여러분도 어렸을 때 정직이 최선이라는 말을 듣고 그대로 실천했다가, 모든 경우에 항상 정직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당황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른이 묻는 질문에 자기가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대답했다가 혼이 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눈치껏 거짓말을 할 줄 모르면 고통이 따른다는 생각이 어릴 때부터 마음속 깊이 새겨진다. 거짓말은 자기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정직해야 하지만, 동시에 적당히 거짓말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당연히 아이들은 혼란에 빠진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어른들이 얼마나 거짓말을 자주 하는지 알게 된다. 어른들 가운데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나도 그랬다. 어릴 때 나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세계에서 자랐다. 하지만 곧 어른들은 자기네가 한 말을 실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형제자매들 가운데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선물이나 상도 가장 많이 받은 아이는 어른들 입맛에 맞춰서 거짓말을 잘하고, 어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눈치껏 재빨리 할 줄 알았다.
◇ 만들어진 남성성과 거짓말
그동안 내가 사랑했던 남자들은 자신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거나, 나와 갈등을 빚는 상황이 되면 이를 피하기 위해 항상 거짓말을 했다. 도로시 디너스타인Dorothy Dinnerstein은 『인어와 미노타우로스: 성적인 계약과 인간의 불안The Mermaid and the Minotaur:Sexual Arrangements and Human Malaise』이라는 획기적인 책에서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었다. 즉, 독립심이 강하고 사회적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어머니가 가부장적인 가정에서는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남자아이가 깨닫게 되면 아이는 혼란에 빠지고 분노에 휩싸인다는 것이다. 그런 아이가 자신의 분노를 해소하고 어머니를 더 무력하게 하기 위해 택하는 방법 중 하나가 거짓말하기다. 거짓말은 아이에게 어머니가 권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나아가 어머니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거짓말이 권력을 손에 넣는 한 가지 방법이라는 것을 배운다. 물론 여자들도 그렇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여자들의 경우힘이 없는 척하기 위해서도 거짓말을 한다는 점이다.
우리사회가 여자들보다 남자들의 거짓말에 더 관용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권력과 특권이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 주어지는지 이해해야 한다. '남자가 된다는 것being a man', '진짜 사나이real man'라는 말에는 남자는 필요하면 규칙을 무시하고, 법을 넘어선 행동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가부장제 사회가 영화, TV, 잡지 등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주입하는 것은 권력을 가진 남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그들을 남자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자유로움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남성들에게 '정직한 것은 곧 나약한soft 것'이라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거짓말을 무시로 할 수 있고, 거짓말이 초래할 결과 따위에는 초연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남자를 강하게 만들며, 소년과 성인 남자를 구분시켜준다고 믿게 만든다.
존 스톨텐버그 John Stoltenberg 는 남성성의 종말 양식 있는 남자들을 위한 책The End of Manhood: A Book for Men of Conscience』에서 가부장제 문화에서 제시하는 이상적인 남성상은 남자들이 스스로 거짓 자아를 만들어내고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만 따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남자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남자는 울면 안 되며 마음의 상처나 외로움, 고통을 표현해서도 안 된다고 배운다. 남자라면 거칠어야 하고 자신의 참된 감정을 감출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세상 모든 것에 대해 무감각하고 초연해야 한다고 배우기도 한다. 이런 가르침은 남자 어른들이나 혹은 가부장제에 물든 어머니에게 배우게 된다. 진보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자라서 자기감정을 마음껏 표현하도록 배운 남자아이라도 또래 아이들과 놀거나 운동을 하거나, 혹은 수업 시간이나 TV 등에서 전혀 다른 남성상을 접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 다른 남자아이나 기성세대가 요구하는 가부장제의 남성성을 선택할 수도 있다.
빅터 사이들러victor Seidler는 『남성성의 재발견Rediscovering Masculinity 』이라는 뛰어난 저작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남자아이들은 말을 배울 때 언어를 통해 자기 자신을 감추는 법도 아주 재빨리 터득한다. 또한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마스터 '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 남자들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행과 고통이 다른 사람 탓이라고 비난하도록 배운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고통이 혹시 자신들이 아무것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막연히 짐작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이 어릴 때부터 익혀온 남성성이 뭔가 편협하고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자신의 참된 감정으로부터 소외된 남성들은 거짓말을 쉽게 한다. 왜냐하면 생존 전략으로 익혀온 남성성이 그런 행동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타인과 관계를 맺는 능력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도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남자들이 자기들보다 약자인 사람, 특히 여성들에게 폭력적이고 난폭하게 굴 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행동을 하고서도 자신에겐 잘못이 없다고 믿는데, 왜냐하면 자신은 여성에 의한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에서는 남자들 - 어린이든 어른이든 - 이 여자들보다더 힘이 세고 우월하다고 믿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배적인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불사해야 한다고 믿는다.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인간관계에서 지배권을 쥐기 위해 거짓말을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가부장제 문화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전제는 한 집단이나 개인이 다른 집단이나 개인을 지배할 때 사랑이 싹틀 수 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남자가 여자와 아이를 지배하면서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정신분석학자인 칼 융Carl Jung은 다음과 같은 당연한 이치를 강조해마지않는다. "권력의지(지배하려는 의지)가 팽배한 곳에서는 결코 사랑이 충만할 수 없다." 여성에게 남성과의 관계에 대해서 물어보면 인종이나 계급에 상관없이 남자들의 권력의지, 남자들이 구사하는각종 거짓말들, 여자를 통제하고 복종시키기 위해 정보를 독점하는양태들에 대한 풍부한 사례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 공평한 사랑
남성의 지배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여성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남자들이 (모든 남자는 아니더라도 많은 남자들이) 필요하다. 가정 폭력의 예를 들어보자. 근래에 가정 폭력 문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것은 나쁜 짓이라는 것에는 모든 사람이 동의한다. 이로 인해 가정 폭력은 줄어들었지만 대신 아내에게 심리적인 테러를 가하는 경우는 늘어났다. 이런 방법을 쓰면 사회도 어쩔 수 없다. 거짓말은 이런 심리적 테러 가운데서도 매우 강력한 무기다. 그러나 남편이 아내를 지배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면, 남편은 그 대가로 엄청난 것을 잃게 된다. 바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신뢰는 모든 사랑의 토대다. 거짓이 신뢰를 좀먹는 곳에서 참된 *유대 관계는 생겨날 수 없다. 자기 가족을 지배하는 남자들도 아내와 자식들은 지속적으로 보살펴줄 수 있다. 하지만 보살핌과 사랑은 다르다. 그런 남자들은 사랑과 영원히 담을 쌓게 된다.
남성 지배 사회를 철폐하기 위해 노력하는 남성 사상가들은 남자들이 권력의지를 벗어던질 때만 사랑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스톨텐버그는 『남성성의 종말』에서 남자들이 정의를 사랑하게 될 때, 즉 사랑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남자들은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되찾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평함justice은 사람들끼리 맺는 관계 속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다.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과 공평한 사랑의 관계를 맺을 때 남자들은 가부장제의 남성성이라는 숨 막히는 족쇄에서 헤어날 수 있다. 스톨텐버그는 남성성의 종말』 가운데 남자들은 어떻게 해야 여자들과의 관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까」라는 장에 이렇게 썼다. “남녀 사이의 공평한 사랑은 가부장제의 남성성이 부각되는 상황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공평한 사랑보다는 여전히 가부장제의 남성성에 계속 집착할 때 여성과의 관계가 어떻게 귀결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 양식 있는 남자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충실하겠다고 결심한다는 뜻이며, 다른 남자들이 남성성이 어떻다는 둥 떠들더라도 개의치 않고 당신의 사랑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충실하고, 공명정대한 사랑을 실천한다면 거짓이 둘 사이의 충만하고 애정이 넘치는 관계에 금이 가게 하거나 사랑을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 가부장제와 여성의 거짓말
우리 문화에서는 남성적인 가치와 행동 체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따라서 가부장적인 사고의 핵심에는 거짓말을 묵인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론 남자들만 다른 사람을 지배하기 위해 거짓말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가부장제의 남성성이 남자들을 진정한 자아로부터 소외시키듯이 가부장제의 여성성을 받아들이는 여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여자란 약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할 능력이 없으며, 둔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믿는다. 거짓이라는 가면을 쓰도록 사회화된 것이다. 러너의 기만의 무도회는 이 문제를 주요한 주제로 다룬다. 이 책에서 러너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여성들이, 특히 가정에서 어떻게 가짜 행동과 거짓말이 구조적으로 정착되는 데 기여하는지를 밝히고 있다. 여자들은 원하는 것을 손에 쥐기 위해 걸핏하면 남자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남자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또는 자신이 상처받기 쉽고 남자들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실제로는 그렇게 느끼지 않으면서도 그런 것처럼 감정을 위장하는 형태로 나타내기도 한다.
◇ 거짓말 멈추기
우리 문화가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주요한 까닭은 거짓말이 널리 용인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존재와 정체성이 비밀과 거짓으로 덮여 있으면 그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거짓과 가식이 가득 찬 곳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당신이 잘 되길 바란다는 것을 믿을 수 없고, 그래서 모두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튼튼한 토대가 형성되지 못한다. 사랑이 결여된 이런 환경에서는 아무리 현명한 행동을 하더라도 결국은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진실을 말하는 문화를 재건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거짓과 가식을 정직과 진실보다 더 높이 쳐주고 쉽사리 허용한다면 그런 문화는 영영 만들어질 수가 없다. 거짓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허용되는 바람에 사람들은 정직하게 말하는 게 더 쉬운 상황에서도 거짓말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박학다식한 정신분석학자에서부터 홀로 득도한 영적인 스승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병든 정신을 일깨우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정직하게 진실을 이야기할 때 삶은 말할 수 없이 충만해지고 정신도 한층 맑아지고 안정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선뜻 현재 상황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그들의 충고를 따르려 하지 않는다. 사실 누군가가 이제부터 정직하기로 마음먹고 일상에서부터 실천하면 주변 사람들조차 '별종' 취급을 하는 게 현실이다.
오늘날 우리는 진실과 정직을 두려워하고, 정직하고 진실되게 행동하면 손해를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고 믿게 되었다. 심지어 정직한 사람은 순진해서 사회적으로 루저(패배자)가 되기 쉽다고 믿기까지 한다. 진실보다는 거짓말을 어떻게 잘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부추기는 문화적 프로파간다의 융단폭격에 우리 모두 희생되고 만 것이다. 그런 거짓을 선동하는 프로파간다의 선봉에 서있는 것이 소비문화이다. 그중에서 광고는 공적으로 인가받은, 거짓말 문화의 첨병이라고 할 수 있다. 광고는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결핍감에 시달리게 하고, 늘 무언가를 원하게 만듦으로써 시장경제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소비문화 입장에서는 우리 사회에 사랑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대신 거짓말은 탐욕적인 광고 세계를 더욱 살찌우고 있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을 제대로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을 감추기 위해 거짓 자아를 만드는 데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가식의 가면 아래에서 진정으로 우리가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잊고 말았다. 거짓과 가식의 가면을 벗어던지는 것은 정직하고 명쾌한 자아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다. 거짓과 비밀은 우리를 짓눌러서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질환을 유발한다. 지금까지 거짓말을 밥 먹듯 해온 사람은 정직한 생활을 하게 되면 이런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부담이 깡그리 사라지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일단 거짓말을 멈춰보라. 그러면 효과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페미니즘 운동이 싹튼 초기에 여성들은 남자들을 좀더 제대로 알고 싶고 그들의 참된 모습을 사랑하고 싶다는 열망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또한 남성들도 여성을 제대로 알고 여성을 있는 그대로(즉, 남성들의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어낸 판타지로서의 가짜 자아가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있는 육체적, 정신적 존재로서의 여성으로 사랑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남자들이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라고 촉구했다. 그런데 정작 남자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을 털어놓자, 어떤 여자들은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희한하게도 그런 여자들은 남자들이 자기감정을 좀체 드러내지 않던 과거로 되돌아가기를 원했다. 즉 사귀는 남자가 자신의 속내와 신념,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으면 그 남자에 대해 가지고 있던 판타지를 그대로 투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리고 있던 남자의 멋진 이미지와 환상이 그 남자의 실체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을 직시할 용기가 없는 것이다. 또한 솔직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남자 앞에서 가식적인 모습으로 속임수를 부리기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많은 남성들의 내면에는 어린 시절 상처받은 모습 그대로의 소년이 웅크리고 있다. 그 소년은 억압적인 부모와 가부장제 질서에 눌려 침묵을 강요당한 채, 자신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기회를 한 번도 갖지 못했다. 또한 많은 여성들의 내면에도 상처받은 모습의 소녀가 웅크리고 있는데, 그 소녀는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들의눈길을 끌고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진짜 감정을 숨기고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교육을 줄기차게 받았다. 남자든 여자든 진실을 말하는 상대를 막아서는 안 된다.그렇게 되면 우리 사회에는 거짓말이 더 낫다는 생각이 팽배할 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진실에 기꺼이 귀를 열줄 알아야 한다. 게다가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최고로 가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거짓말은 사람들을 기쁘게 할지는 모르지만, 그런 상황에서는결코 사람들 사이에 진정한 사랑이 싹틀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