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2004년 9월 25일..... 다시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 아닌 다른 암벽등반 동호인들의 주의와 안전에 대한 확인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라도 이 글을 써야 될 것 같다.
추석전의 연휴를 생각하며 즐거운 맘으로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 부지런히 열심히 컴퓨터 작업을 해나갔다.
24일 아침 함께 등반하기로 한 지금은 고인이 되신 병균 형의 전화가 왔다. 속초로 먼저 출발한다고 한다...
에휴~ 나도 일을 빨리 끝내고 일찍 합류하고 싶지만, 직장에 매인 몸이라 아쉬움만 남기고 또 일속에 파묻힌다.
밤 11가 다되어서야 일을 끝내고 배낭도 못 꾸리고 바로 출발하였다. 설악동에 도착하니 25일 새벽 2시 40분 정도... 1시간 정도 짐을 꾸리고 1차짐을 비선대에 올린 후 다시 내려와 자전거를 타고 비선대에 올라가니 5시가 넘는다.
하늘의 별은 왜 이리도 촘촘한지...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병균 형을 찾아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다.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눈이 떠지고....
아침식사 준비를 하며 하늘을 보니 날씨가 우리를 축복해주는 듯 맑기만 한 게 마음이 너무나도 상쾌하다...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적벽등반을 위해 장비를 챙기고 부식 정리도 하여 필요한 건 저녁에 시내에 가서 사오기로 하고 등반 준비를 서둘렀다.
10시쯤 산장을 나서 적벽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아직 한 팀도 붙지 않아 코스의 선택권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일단은 내가 선등을 나가기로 하고 어프로치를 가볍게 올라 교대길을 오르기로 하다.
첫 피치를 오르는데 하단 트레버스 지점의 홀드들이 별로 기분 좋지 않게 박혀 있는 게 너무 매달려서 큰 하중을 주면 안될 곳이 몇 군데 눈에 띈다. 조만간 홀드 정리를 해야 될 듯 싶다.
2개의 행거를 지나 자유등반 지점에서 팔 길이가 조금 모자란다. 백을 하여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홀드를 확인 후에 과감하게 오르니 어렵게 올라진다.
행거 하나하나를 지나며 슬링이 낡은 것은 교체를 하고 1피치를 지나 2피치까지 올라갔다. 슬링을 교체하면서 오르니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2시간 정도 걸렸나 보다.....
확보지점에 도착하여 완료를 외치고 슬링을 하나 더 걸어 확보지점을 보강하고 빌레이 준비 완료.... 다음은 병균 형이 오를 차례이다.... 내가 오르는 동안에 출발 지점엔 다른 팀 4명이 와서 등반을 기다리고 있었다. 병균 형이 오르기 시작하고 행거 두 개를 지났을 때 사진 한 컷...
다음은 내가 약간 헤맨 곳인 자유 등반 지점... 그리고 병균 형의 이 생의 마지막이 된 지점이다... 병균 형이 두 번 정도 오르려고 시도하였으나 힘이 부치나 보다... 병균 형의 이 생의 마지막 한마디 "나 매달릴게" 하는 소리... 그리그리에 줄을 바싹 당겨 놓고 나의 "그래 매달려" 하는 소리에 병균 형이 두 손을 놓는 순간....... 갑자기 "팅"하는 소리와 함께 병균 형의 몸이 아래로 날아가는 것이다.
나는 순간 "앗"소리 밖에 나오질 않는다.
침묵 침묵.............. 빤히 바라보면서 제발 제발...... 멈춰야하는네.......
밑에서 등반 준비를 하던 다른 팀의 한 명과 부딪히면서 뒷머리를 바위에 부딪히는 듯하다. 잡아야 하는데...... 4명이 모두 확보를 하지 않고 있어 피하기 급급하다......
'바바박' 소리를 내며 쓸려 내려가는 병균 형의 몸을 바라보는 나의 속은 제발 멈춰야 하는데.... 말도 나오지 않는다.......
아~ 그러나 나의 바램은 잠시 뒤에 두 눈을 감아버리는 걸로 끝을 맺어야 했다. 순간 멍해지는 나......
아래에 있는 팀에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어 봤으나... 모르겠다는 대답 뿐....
잠시 정신을 차리고 이제는 내가 탈출을 해야 할 때이다... 아래에 있는 사람한테 자일 끝을 내려주고 행거에 걸어달라고 말하니... 자일 끝에 매달려 있는 카라비나가 잠금 카라비나가 아닌 일반 카라비나란다.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일반 카라비나라니"....... 그럼 병균 형이 잠금 카라비나가 없었단 말인가?.....
일단은 내려가서 확인을 해봐야 하는 일이니...... 마침 나한테 션트와 쥬마, 그리그리가 모두 있어서... 내려가는 데는 별로 지장이 없었다. 장비를 모두 회수하면서 내려가니 구조대원들이 올라온다. 내가 아는 후배 강태웅이 먼저 올라오면서 나를 알아본다.
우선 자일 끝을 확인하니 일반 카라비나도 보통 일반 카라비나가 아닌 퀵드로용 카라비나가 걸려 있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꼼꼼한 병균 형이 안전벨트에 잠금카라비나를 쓰지 않다니....
생각도 잠시 뿐, 사고 수습을 해야겠기에 우선은 산을 내려가야 되었다. 관리공단 차량을 이용해 우선 공단 사무실로 향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또 황당한 일을 겪어야 했다.
등반신고를 하지 않고 등반을 하였으니 과태료 부과를 하여야 한다고 하며 용지에 사인을 하라고 종이를 내민다.
참 어이가 없다... 등반 신고를 안 한 내 잘못도 있지만... 굳이 지금 이렇게 해야 되는 건지... 차후에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서 해도 될 일 아닌가???...
(난 솔직히 사고경위에 설명하기 위해 관리공단 사무실에 가는 줄 알았다.) 사인을 안하고 묵묵 부답으로 있었더니.... 그 중 한 명이 하는 말 "그냥 사인 거부로 넘겨"..... 하도 어이가 없어, 사인을 해주고 나오면서 욕 밖에 나오질 않는다... 함께 동행한 경찰관들도 뭐라고 한마디씩 한다....
속초 시내 지구대를 거쳐, 속초경찰서에서 진술서를 쓰고... 조서를 받으면서 같은 내용을 몇 번 설명하고... 힘든 하루를 보내다.
속초병원에 들러 병균 형의 시신을 확인하고..... 죽은 사람의 표정이 넘 편안하게 보인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통 없이 갔다는 생각이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
병균 형의 부인인 경미가 도착하고..... 나는 죄인이 되어 경미에게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고.... 검찰 지휘가 떨어져 그날 밤 늦게 시신은 파주로 옮겨가고....
나는 설악으로 들어가 비선대에 있는 남은 장비를 정리하여 다음 날 파주로 바로 달려갔다. 경미의 고통 어린 울음소리와 함께 한 이틀...
벽제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하여 나온 고인 최병균.... 항상 밝고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인데... 우리 산악회 사람들 뿐 아니라, 주위의 친구분들이 모두 좋아했던 사람...
그 사람은 갔지만.... 내 가슴속에서 영원히 잊지 않고 살아 있을 거다..........
마지막으로 암벽등반 동호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꼭 안전 수칙을 꼭 지키고 방심하지 말고 확인 또 확인하고 등반하기를 바란다….
참고로 우리 팀의 사고 뒤 2주만에 같은 장소에서 2명이 떨어져 1명 사망, 1명 중태란 소식이 또 들렸다.....
이상은 사고 당사자의 사람과 산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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