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투르판역에서 밤 11시 2분에 기차를 타고 새벽 4시 50분에 도착했다. 4인실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2인실 2개, 6인실 2개를 예매했다. 며칠 전 6인실 상단에서 이동했는데 조금 불편하여 4인실 취소표가 나오면 바꿔달라고 윤스리에게 요청했다. 그랬는데 어제 표가 나와서 예약했는데 윤스리가 실수(?)로 2인실로 예약을 했다. 마음 같아서는 세종아빠님이나 히메에게 자리를 바꾸어 주고 싶었으나 중국기차는 탈 때부터 신분증을 제시하고 타기도 하고 신분증 검사가 철저해서 눈물을 머금고 나만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6인실 침대칸의 2배 요금이 4인실이고 3배 요금이 2인실이니 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1.5배 비싼 요금을 내고 타는 셈이다. 지금까지 내가 타본 최고 등급이 4인실이었는데 웬 호사냐 싶다.
중국 기차의 침대칸은 6인실은 방의 칸막이가 없이 한쪽 벽면에 상중하 3개의 침대씩 총 6개의 침대가 있고 4인실은 방문이 따로 있고 한쪽 벽면에 상하 2개씩의 침대가 있다. 2인실은 한쪽 벽면에 2개의 침대가 있고 실내에 화장실과 작은 의자가 별도로 있다.
객실에 들어서니 아래층에는 아주머니가 자다가 깼는지 인상을 쓰고 나를 째려 본다. 일단 캐리어를 구석에 밀어 놓고 이층으로 올라왔다. 잠시후 승무원이 여권 검사를 한다. 여권에 기차표가 연동되어서 여권 검사만으로 승차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잠을 자려 누우니 아래층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코를 고는 편이라 조금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편하게 코를 골아도 미안하지 않을 듯 하다.
유원남역에서 나오니 택시기사가 호객행위를 한다. 눈탱이를 맞지 않으려면 DD를 불렀을 때 가격을 확인한 후에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 검색결과 400위안정도는 주어야만 하는 상황인데 280을 부른다. 더 깎을 필요없이 부르는대로 주기로 했다. 중간에 고속도로 통행료 50을 더하면 330이다. 적당한 가격이다. 둔황까지는 1시간 30분정도가 걸린다.
숙소에 도착하니 문이 닫혀 있다. 기사가 전화를 해서 직원을 깨운다. 원래 계획은 짐만 맡기고 가는 것인데 체크인을 해 준다. 근처에 문 연 식당이 없어 비상식량을 열었다.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느낌이다.
07:40 막고굴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무지하게 많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넘쳐나는 중국에 온 느낌이다. 신강은 사람들이 많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매표소부터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너무 복잡하여 순서대로 잘 움직여야 한다. 2관옆 매표소에서 표를 받고 1관에서 다큐영화 2편(약 40여분)을 보고 대형버스를 타고 막고굴로 진입한다. 1관으로 들어오면 버스까지는 그대로 밀려서 버스를 타게 된다.
버스를 타고 분을 가면 그토록 고대하던 막고굴 앞에 도착한다.
한국어 가이드가 10시부터라서 그 동안 특굴을 신청했다..특굴을 보는데 1인당 400위안(한국돈 85000)을 투자했다. 일반 관람료까지 포함하면 입장료만 거의 1인당 14만원이다. 이걸 보러 왔으니 비싸도 봐야 한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둔황에는 총 735개의 석굴이 있고 그 중 벽화가 있는 석굴이 452개이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무작위로 7개의 석굴을 볼 수 있다. 사진은 외부전경만 찍을 수 있고 석굴 내부는 촬영불가다. 그래서 답사기에 사진을 올릴 수 없다. 오늘 들어갔던 석굴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332호굴
수나라시대에 개착되었으며 석굴 정면은 석가삼존이다. 들어가는 기준으로 향좌측은 가섭이고 향우측은 미륵이다. 천장에는 천불이 조성되어 있고
뒷벽에는 열반상이 있다. 향우측벽에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이 있다.
16호굴
당나라시기에 개착하고 청나라 시기에 보수했다고 한다. 천불 모두에 보개를 그렸으며 천장벽화는 송나라시기의 불화이다.
17호굴
그 유명한 장경동이다. 무엇보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곳이다.
335호굴
당나라시기에 조성되어 청나라시기에 보수했다. 벽화는 686년 시작해서 702년 완공했다. 유마힐거사와 문수, 사리불이 그려져 있다. 고구려의 조우관을 쓰고 있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극락도도 그려져 있다.
323호굴
당나라때 개착하고 청나라때 보수했다. 천장 천불에 각각의 존명이 새겨져 있으며 향우측 장건과 한무제의 그림이 있고 그 내용을 쓴 방제가 있음.
뇌신이 있고 인도의 아소카 왕에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427호굴
입구에 목재로 만든 전각이 있으며 그 전각은ㅊ송나라 때 만든 것이다. 목재전각은 송나라 때 4개, 당나라 1개 가 남아 있다고 한다. 수나라때 조성하고 송나라 때 보수했다. 입구 바로 옆에 기부자의 상이 있는데 부인이 호탄공주이다. 우측 보살은 폐르시아 양식을 보인다고 한다.
428호굴
북주때 개착하고 청나라때 채색했다. 천장에 서까래가 있고 원숭이 그림도 보인다. 벽면 상단의 불상은 따로 만들어서 부쳤다. 향좌측에는 노사나불이 있으며 그 몸에 아수라가 새겨져 있다.
향좌측벽 중단에는 본생담 사신사호 장면이 새겨져 있다.
259호굴
북위때 개착했고 이불병좌상이 있으며 사르나트식 가사를 착용하고 있다. 반가좌, 교각좌의 미륵불이 측면에 새겨져 있다.
249호굴
서위때 개착하고 청때 보수했다. 정면 천장벽 뇌신, 풍신, 아수라, 우사 등이 그려져 있다. 정면 천장 향좌측 서왕모와 사신도도 있다.
61호굴
가이드가 서비스로 하나 더 보여준 곳이다.
오대십국때 개찰하고 유력 호족인 조씨들이 만들었다. 오대산도 그려져 있고 신라왕자, 고려(고구려)왕자, 신라승탑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네모퉁에 사천왕이 있고 측벽에는 참배행렬도가 있다.
이제부터는 특굴이다.
275호굴
북량시기에 개착한 것으로 가장 오래된 몇 개의 석굴 중 하나이다. 사르나트 양식과 중국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천장만 송나라 벽화이고 나머지는 북량시기의 벽화이다.
세종아빠님이 좋아하는 가슴만지는 벽화가 있다. 북량시기의 굴이 3개 있는데 그 중 제일 아름답다고 한다.
45호굴
당나라 8세기에 만든 굴이다. 주실정면은 1불 2제자 2보살 2천왕으로 구성되어 있다. 황제얼굴을 그려놓았으며 좌측벽 관음 33응신도,
우측벽 관무량수경변상도를 그렸다.
여기까지 가이드와 함께 했다. 이후에는 가이드없이 일반관람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밀려서 보고 나왔다. 4개의 굴이 개방되어 있다.
막고굴박물관
이름이 박물관이 아니고 좀 복잡했다. 몇 개 석굴의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이곳도 사람들에 밀려서 다녔다. 모형으로 대리 만족할 수 밖에 없다.
답사를 마치고 막고굴을 나서니 5시이다. 재입장이 불가능하여 그 안에서 시원한 음료수도 한잔 못하고 미지근한 물과 비스켓으로 버텼다. 오래도록 보실 분들은 시원한 물과 요깃거리를 준비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17: 15 백마탑
구마라집과 함께 불경을 둔황으로 가져온 백마가 죽어서 그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인데 명, 청대에 재건했다.
라마탑이다.
18:00 저녁식사
윤스리가 우리가 안가면 혼자라도 둔황야시장으로 온다고 해서 함께 저녁 먹으러 왔다. 아주 다양한 메뉴를 각각의 가게에서 구입해서 먹을 수 있다. 다들 만족도가 높다.
낮에 함께 가이드 투어를 한 한국 사람들이 명사산은 밤에 가면 드론쇼도 해서 좋다고 한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야간에 가기로 했는데 나와 히메는 피곤해서 숙소로 먼저 들어오고 윤스리와 세종아빠님은 명사산으로 향했다. 윤스리가 명사산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 간다..윤스리 짜요!!
그래서 오늘 나의 답사기는 여기까지다.
첫댓글 정말 대단합니다ㅡ
그리고 맛있겠습니다
막고굴은 아쉬움이 많았고 야시장은 먹을 게 많아 좋았습니다..
둔황연구소의 사진자료를 찾아서 각석굴 사진을 업데이트 했습니다.
17굴 장경동...
홍변 스님은 명품을 좋아해요.
에르메스 가방이 두 개나 걸려 있습니다. 찾아보세요.
(본문의 둔황연구원 홈페이지 사진)
스님 좌우 나뭇가지에 가방이 걸려있군요
홍변스님은 가방을 좋아하시긴 하셨나봅니다.
맛난거 드시고 체력 보충하셔서
기다려지는 답사기 올려주셔요
감사합니다.
저는 향좌측 가방에 더 눈길이 가네요.
소헌님 말씀대로 잘 먹고 잘 다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나지금이나 생필품이니까요ㅡ
당시에는 바랑 같은 보자기류였을텐데
상당히 편리함에 앞서 가신듯한 재미있는 그림입니다
잘봤습니다
초목님 덕분에 힘내서 다니고 있습니다.
더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