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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18)
(18) ‘수산나와 두 늙은이’ 이야기를 통해 본 우리의 갈 바
“여러 힘든 상황이 있지만 업보로 생각하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하겠다.” 엊그제 대한민국 통수권 자란 이의 발언이다.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라고도 하였다. 이 말의 의미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할 테면 해 봐라. 난 흔들림 없이 내 부인을 지키겠다’는 협박이요, ‘누구든 내 부인을 건드리지 마라’는 경고이다. 가슴 아픈 것은 ‘누구든’에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포함된다는 점이다. 어떻게 국민을 향화여 협박성 발언을 서슴지 않는지 모골이 송연할 따름이다. 민주주의가 완성된 듯해 보였던 이 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나. 0.7%를 원망한 들, 아직도 지지한다는 20%의 국민에게 나라의 갈 길을 물은 들 해답은 없다.
그렇다면 80%의 국민들은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할까? ‘공정’, ‘정의’에 자주 인용되는 ‘수산나와 두 늙은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갈 바를 생각해 본다. 수산나(Susanna)는 로마가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에서 제2 경전으로서 인정하는 70인 역 『구약성경』의 ‘다니엘서 13 장(개신교의 히브리 판은 성경은 12장으로 구성되었다)’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성경에 묘사된 수산나는 뛰어난 미인으로 남편 요아킴과 바빌론에 살았다. 요아킴이 워낙 명망가여서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부의 집을 방문하였다. 수산나의 집에 출입하던 사람 중에는 재판관이자 장로인 두 늙은이가 있었다. 이들은 수산나의 미모에 반해 재판관과 장로란 지위를 이용하여 욕망을 채우려 하였다.
어느 더운 날 수산나가 시종들을 내보내고 정원에서 혼자 목욕할 때, 담을 넘은 두 늙은이는 수산나에게 달려들어 관계를 맺자고 강요한다. “자, 정원 문은 잠겼고 우리를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너와 관계를 원한다. 그러지 않으면 어떤 젊은이가 너와 함께 있었고 바로 그 때문에 너는 하녀들을 내보냈다고 증언하겠다. 사람들은 우리가 장로이고 재판관이기에 우리 말을 믿을 것이다.” 수산나는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였고 두 늙은이는 수산나가 젊은 남자와 간통했다는 거짓말을 퍼트려 법정에 세웠다. 수산나는 간통죄로 결국 사형 선고를 받았다.
수산나는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하느님께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하느님은 수산나의 누명을 벗겨 주고자 다니엘에게 성령을 불어 넣었다. 다니엘은 “나는 이 여자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외친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면서 왜 그런지 이유를 물었다. 다니엘은 여인을 심문도 확증도 없이 하는 처단은 잘못된 일이라면서 재판관이 되어 두 늙은이를 분리해 심문한다.
간통 장면을 어디에서 목격하였는지 묻자, 한 늙은이는 ‘유향나무 아래’에서라 하고 다른 늙은이는 ‘떡갈나무 아래’에서 목격했다고 진술하였다. 이렇게 거짓말이 드러나고 늙은이들은 결국 사형에 처해졌다. 이 이야기는 부패한 권력(두 늙은이)에 대한 용기와 저항(수산나), 진실(다니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간의 본성과 정의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를 그린 그림은 작가에 따라 다르다. 16세기 베네치아의 대표 화가 틴토레토(Tintoretto, 1518~1594)의 작품에서 수산나는 거울로 자신의 아름다움에 취해 주변 상황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왼쪽 아래에서 두 늙은이가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치 관객 역시 늙은이들과 함께 수산나의 몸을 훔쳐보는 듯한 구도이다. 바로크 시대의 거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그림 역시 유사하다. 늙은이들은 강인한 근육질로 이 둘에 둘러싸인 수산나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겁먹은 듯한 수산나의 모습과 틴토레토 그림처럼 수산나의 알몸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바로크 시대의 거장인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의 그림은 저들과 다르다. 한 늙은이가 수산나의 몸을 덮은 수건을 벗기려하는 순간을 포착했고 그녀는 슬픈 표정으로 그림 밖의 관객을 간절한 눈길로 쳐다본다. 렘브란트는 그림 밖의 관객들에게 수산나의 진실에 동참하기를 호소한 것이다.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라는 위협성 발언을 들은 우리의 행동은 어떠해야 할까? 불의의 권력에 맞서는 수산나와 다니엘이 돼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정의와 진실을 찾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다니엘처럼, “나는 이 여자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외쳐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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