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1절에서 분봉 왕 헤롯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헤롯은 2장에 나오는 헤롯 대왕과 다른 사람입니다. 주전 4년에 헤롯 대왕이 죽자, 로마 정부는 헤롯 대왕이 다스리던 영토를 그의 아들들에게 분배해 주었는데, 헤롯 안디바는 갈리리와 베뢰아를 다스리도록 허락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헤롯은 헤롯 안디바인데 그는 분봉왕이었습니다.
분봉왕이란 4분의 1의 영토를 다스리는 작은 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왕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됩니다. 소문을 들은 다음 헤롯이 하는 말이 이는 세례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일반 민중들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16장 14절을 보면 예수님을 가리켜서 세례요한 또는 엘리야, 예레미야라고도 했다고 전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예수님을 가리켜서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라고 불렀던 이유는 예수님에게서 능력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면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에 의해서 지금의 상황을 해석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봅니다. 능력은 세례요한과 엘리야같은 선지자들이 과거에 행했기 때문에 능력을 행한다면 세례요한과 엘리야라고 예수님을 바라보았다는 것이죠. 이유야 어찌 되었든지 오늘 말씀은 예수님을 가리켜서 세례요한이라고 말하는 헤롯의 말로부터 시작되는데 이 말씀의 의도는 이것입니다. 예수님도 세례요한처럼 마지막은 순교, 십자가의 죽음이 있을 것을 암시하는 장면인데요.
그렇다면 왜 헤롯은 예수님을 세례요한이 부활해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을까요? 그가 저지른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헤롯이 세례요한에게 저지른 과오가 3절부터 시작되는데 전에 라고 했습니다. 과거에 라는 말입니다. 헤롯은 동생을 죽이고 그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습니다. 이것을 세례요한은 부당한 일이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죽이고 싶어도 백성들이 세례요한을 선지자로 떠받들기 때문에 죽일 수 없었습니다. 헤롯의 생일날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춤을 추고 그 춤에 감동받은 헤롯이 무엇이든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마침내 살로메는 세례요한의 목을 원하고 난처한 상황이지만 이미 약속한 헤롯은 세례요한을 죽이고 맙니다.
이 일이 3절에 전에 라는 단어 속에 있었던 일입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것처럼 헤롯이 예수님을 세례요한으로 착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헤롯은 과거에 묶여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항상 세례요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에 묶이게 되면 보는 것마다 세례요한과 연관되고, 어떤 일이든지 이것은 내가 죄를 지어서,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이라는 해석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과거와 죄에 묶여있는 사람의 내면 상태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혹시 과거의 해결 못한 죄가 있으십니까? 아직도 남아있는 그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해결 받으십시오. 고백하고 주님의 용서하심을 누리십시오. 회개 다음에는 삶으로 복음을 따르면 됩니다. 이것이 진리 안에서 자유 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마치 세례요한이 보여준 삶의 자세가 그랬습니다. 헤롯에게 너의 행동은 옳지 않다고 말했기 때문에 죽음까지 갔습니다.
새벽을 깨우리로다라는 책의 저자인 김진홍 목사님이 계명대학교에서 철학 교수로 교편을 잡던 시절에 한 학생이 "진리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답니다. 김진홍 목사님은 저명한 철학자들의 진리 개념을 정리해서 답변을 해 주었는데, 그 학생은 다짜고짜 그런 것 말고 선생님께서 평생 그 하나를 위해 살 수 있고, 생명까지 바칠 수 있는 그런 진리가 무엇인지 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물쭈물 하던 김진홍 목사님은 결국 자신이 그런 진리를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교수직을 버리고 신학교에 입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기독교는 진리의 종교입니다. 그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이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면서 끝까지 지킨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례요한과 헤롯을 비교해 봅니다. 헤롯은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진리를 외면하고 마침내 감옥에 넣고 죽입니다. 그런데도 자유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보고도 저 사람은 내가 죽인 세례요한이 부활해서 나타난 사람일거야, 나는 이제 큰일 났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왕이라 할지라도 진리를 외면하면 죄와 두려움에 묶이게 됩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서 어긋난 일은 자신에게 불이익이 온다 할지라도 그 목소리를 냅니다. 왜냐하면 하늘에 검증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는 자존감과 확신 있는 믿음은 아무리 날카로운 칼끝도 위협할 수 없고, 이런 사람은 돈으로도 유혹할 수 없고, 권력으로도, 미인계로도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죽인다고 해도, 아니 죽여도 그 진리는 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은 자유롭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묶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런 자유인의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까? 진실한 성품으로 두려움 없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싶지 않습니까?
오늘 주님은 세례요한을 다시 부활시키시고, 예수님을 육신의 모습으로 다시 이 땅에 보내시지 않으십니다. 지금은 나를 사용하십니다. 아무리 작은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붙들리면 그가 강한 사람입니다. 이를 가리켜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합니다.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목소리, 진실한 삶으로 작은 예수님의 제자로 오늘을 살아가시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