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백두대간 14차(댓재~피재) 산 행 일 : 2013. 05. 25.(토) 산행코스 : 댓재 ~ 황장산 ~ 큰재 ~ 지장산 ~ 덕항산 ~ 구부시령 ~ 건의령 ~ 피재 (거리 25km) 산행참가 : 23명. <산행코스>
댓재에서 산행 준비를 마친 분들이 단체 인증을 하자는 요청에도 아랑곳 않고, 뭣에 쫓기는 듯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권샘만이 홀로 백두대간 댓재 출발을 신고한다.
<댓재(810m)> 두타산과 덕항산을 잇는 백두대간 마루금에 있는 댓재는 삼척시 미로면과 하장면을 연결하는 고개로, 옛부터 삼척지방에서 하장, 정선을 거쳐 서울로 가는 주요 고갯길이었다. 꼬불꼬불 급경사의 15km에 이르는 도로는 차로 오르는데도 현기증이 날 만큼 위험한 고갯길이다. 대나무가 많다는 뜻에서 유래된 댓재는 일명 죽현(竹峴), 죽치령(竹峙련嶺)이라고도 한다. 오늘날은 4,5km 이르는 댓재 옛길이 복원되어 또다른 산행길의 멋을 더해준다. 1984년 10월 지금의 도로가 개통되기까지는 영동(강릉지방)과 영서(원주지방)를 넘나들던 옛 고갯길로서 보행자들의 수많은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다. 먼저 떠난 분들을 쫓아, 후다닥 황장산 방향 댓재 들머리로 들어선다. 황장산 정상 도착.
<황장산(黃腸山, 1,059m)>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과 미로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황장목을 쓰기 위해 왕실에서 일체의 벌목과 개간을 금하는 봉산(封山)으로 정하면서부터 황장산으로 부르게 된 산이다. 다시 말해서 왕실의 관곽(棺槨)재와 궁궐 건축에 쓰일 황장목(黃腸木)을 확보하기 위해 지정한 황장봉산(黃腸封山)이라는 보통명사가 ‘황장산’(黃腸山)으로 고유명사화한 것이다. 이곳 강원도 삼척의 황장산(黃腸山)은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인 문경의 황장산과 동명이산(同名異山)인데, 이름의 유래가 옛날에 황장목이라는 질 좋은 소나무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점과 함께, 현재에는 황장목은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점 까지도 공통점이 있지만, 문경의 황장산이 100대 명산에 이름을 올릴 만큼 빼어난 산세를 자랑하는 반면에, 이곳 삼척의 황장산은 북쪽의 두타산과 남쪽의 덕항산이라는 두 곳의 100대 명산 사이에 낀, 그저 평범하고 순하기 이를 데 없는 산봉우리라는 점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질 좋은 소나무를 적송 또는 금강송이라 하는데, 이들은 주로 강원도나 경북 북부지방에서 자라며, 잔가지가 적고 곧게 자라서 중요한 목재로 활용하였다. 그런데 한때 이런 적송(赤松)이 외지로 반출되는 집산지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춘양역이었기에 춘양목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런 적송이 오래되어 300년 이상 고목이 되면 속에 송진이 배어들어 누렇게 되므로 황장목(黃腸木)이라 하며, 잘 썩지 않아 적송 중에서도 최고로 질이 좋은 소나무로 분류되었고, 황장목이 생산되는 산을 황장산(黃腸山)이라 불렀다. 황장산을 뒤로하고 완만한 능선길을 한참동안 따르니, 나무로 경계를 지어 놓은 쉼터를 지나게 되고,
어둠이 가시기 시작할 즈음에 1069봉에 도착하는데, 정상에는 3등 삼각점과 ←황장산 2.5km, →큰재1.9km 이정표가 있다.
1069봉을 뒤로하고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잠시 내려서니, 준경묘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준경묘(濬慶墓)>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이며,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 전주이씨(全州李氏)의 17세 손으로 목조의 아버지인 이양무(李陽武, 고려 의종 때 정중부와 함께 무신정권을 수립했던 이의방의 동생인 이인의 아들)장군의 묘이다. 조선 개국을 합리화한 용비어천가 첫장에 등장하는 목조. 익조. 도조. 환조. 태조. 태종 중에서, 목조 '이안사'는 전주에 살다가 전주 산성별감과 기생을 사이에 두고 다투어 사이가 나빠져, 처가인 강원도 삼척으로 피해 왔다. 목조 이안사는 부친이 죽자 이곳에서 장사 지냈고, 모친이 죽자 동산리에 장사 지냈다. 그 후 별감이 다시 삼척으로 부임한다기에 함경도로 이주해 여진에서 벼슬을 했다 한다. 목조가 한 도승의 예언대로 '백우금관'으로 양친을 안장한 뒤, 5대에 이르러 조선을 창업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오늘날 이양무의 무덤을 준경묘라 부르게 된 것은 고종 36년(1899년)에 그동안 실묘(失墓)하였던 이곳 이양무의 묘와 이곳에서 4km 정도 떨어진 하사전리에서 그의 부인 묘를 찾아 대대적인 묘역 정비공사 후 이양무의 묘를 준경묘(濬慶墓)라 하고, 그의 부인 묘를 영경묘(永慶墓)로 정하면서다. 이 일대는 울창한 송림으로 되어 있어 원시림의 경관을 구경할 수 있는 산수가 수려한 곳으로, 이 곳의 낙락장송인 황장목들은 경복궁 중수 때 자재로 쓰였다고 한다.
<준경묘에 얽힌 조선 개국 설화>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 이안사가 전주를 떠나 삼척으로 왔는데, 삼척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 이양무 장군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묘 자리를 찾고 있던 중, 산 속에서 한 도승이 동자승에게 하는 얘기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는데, "이 곳에 장사를 지내면 5대 안에 한 나라를 개국하는 그런 인물이 태어날 것이다. 그러려면 반드시 개토제(開土祭) 때 100마리 소를 제물로 바쳐야 하고, 금으로 만든 관을 사용해야 한다." 이에 목조는 궁리 끝에 100마리의 소(百牛)는 흰 소(白牛)로 대신하고, 금으로 만든 관(金棺)은 황금빛이 나는 귀리짚으로 대체했다. 그렇게 해서 예언대로 이성계가 태어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백우(百牛)를 흰소(白牛)로 대신하여 천년 갈 조선이 5백년만 유지되었다고도 하고, 준경묘 사방 5봉산 수명이 각각 1백년이라서, 조선왕조의 수명이 500년이 되었다고도 한다. 좌전방으로 가야 할 1027봉이 보인다.
1062봉 내림길에 산나물을 채취하러 온 부부를 만나는데, 인근 주민으로 짐작되어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산나물과 야생화가 지천인 등로를 따르다 보면,
야생화 양탄자가 깔려있는 조림지를 지나게 되고,
이내 큰재에 도착한다. 옛날 북진 때는 맞은편 숲으로 대간길이 이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좌측 임도를 따라 오르게 되어 있다.
<큰재>
삼척시 하장면 속암리에서 동쪽의 귀네미 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대치재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1,062봉에서 1Km쯤 떨어진 곳으로, 귀네미 마을에서 개간지로 넘어오는 임도와 대간능선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이곳에는 오랫동안 이용하지 않아 희미해지긴 했지만 고무릉리 감나무골과 통하는 오솔길도 있다. 옛날 대간북진 때는 보이지 않던 풍력발전기 때문인지 포장도로가 새로이 신설되어 있다. 큰재 이정표.
큰재에서 임도를 따라 대이리군립공원(귀네미마을 고랭지 채소밭)으로 향하는 백두들.
임도에서 돌아본 지나온 1,062봉 모습.
'번천국유임도'라는 이름을 가진 임도를 따라 차단기를 통과하여 능선 위로 올라서니,
좌측으로 1027봉에서 환선마을 울미산(661m) 방향으로 뻗은 지능선이 조망된다.
능선 위로 오르자 앞쪽으로 풍력발전기들이 시야에 들어오며,
우측에 백두대간(건의령~댓재) 등산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귀네미 마을 고랭지 채소단지 가장자리로 이어진 능선을 따른다.
귀네미마을 고냉지채소단지 전경. (지금은 대이리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수몰지구 이주민들의 삶의 터전인 귀네미마을 고랭지 채소밭> 1985년 백두대간 서쪽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에 광동댐이 만들어 지면서, 광동리, 조탄리, 숙암리 등에 살던 37가구 주민들이 이주하여 집단으로 마을을 형성한 곳으로, 고랭지 배추가 주산물인 귀네미마을이다.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산골로 이주하여 일군 터전이며, 민초들이 역경을 극복한 질긴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들은 팍팍하고 가파른 산비탈을 개간하여 전국 제일의 고랭지 배추밭을 일구는데 성공하였다. 그들에게는 천혜의 행운도 따랐다고 하며, 그들이 성공하기까지는 자연조건도 그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습기를 함유한 안개 상습지역이고 바람까지 거센 지역이라 고랭지 채소를 경작하기에는 좋은 조건을 가진 곳이라고 한다. 야생화로 장식된 꽃밭길 너머로 풍차가 있는 풍경 ! 야생화의 환영을 받으니 뿌듯함도 느껴지고,
이곳이 유럽이 아닌 한국의 풍경임에 새삼 감탄한다.
대이리군립공원 전망봉으로 오르는 백두들.
돌아본 대간길은 꽃밭 길!
커다란 물탱크가 설치되어 있는 전망봉에는 밴치도 놓여져 있다.
귀네미골 건너 서쪽 방향 파노라마.
전망봉을 뒤로하고 덕항산을 향해 잠시 숲으로 들었다가,
다시 채소밭 가장자리로 나오게 된다. 대간 능선은 앞쪽 1027봉을 올랐다가 우측으로 이어지지만, 등로는 임도를 따르다가 봉우리를 우회하여 이어진다.
환선봉 방향 3.7km 이정표를 지난다.
전망봉을 내려서는 백두들.
아직 채소를 파종하지 않은 밭을 가로지르기도 하며,
1027봉 우회길로 접어든다.
잠시 후 시멘트 포장 임도를 다시 만났다가는,
이내 우측 숲으로 들어가고,
숲속 등로는 오솔길을 따라 평탄하게 이어지다가,
다시 채소밭 가장자리로 나오면,
우측 아래로 귀네미 마을이 조망된다.
<등로에서 바라본 귀네미(牛耳谷) 마을> 태백시 하사미동 귀네미 마을의 유래는, 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의 형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