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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탄옹(賣炭翁)
숯 파는 노인
伐薪燒炭南山中(벌신소탄남산중)
滿面塵灰煙火色(만면진회연화색)
兩鬢蒼蒼十指黑(양빈창창십지흑)
賣炭得錢何所營(매탄득전하소영)
身上衣裳口中食(신상의상구중식)
可憐身上衣正單(가련신상의정단)
心憂炭價願天寒(심우탄가원천한)
夜來城外一尺雪(야래성외일척설)
曉駕炭車輾冰轍(효가탄거전빙철)
牛困人飢日已高(우곤인기일이고)
市南門外泥中歇(시남문외니중헐)
翩翩兩騎來是誰(편편양기래시수)
黃衣使者白衫兒(황의사자백삼아)
手把文書口稱敕(수파문서구칭칙)
回車叱牛牽向北(회거질우견향북)
一車炭, 千余斤(일거탄, 천여근)
宮使驅將惜不得(궁사구장석부득)
半匹紅紗一丈綾(반필홍사일장능)
繫向牛頭充炭值(계향우두충탄치)
(白樂天)
숯 파는 노인
남산에서 나무 베어 숯을 굽는다.
얼굴은 온통 재와 그을음,
귀밑머리 희끗하고 손가락은 새카맣다.
숯 팔아 번 돈을 어디에 쓰냐고?
몸에 걸칠 옷과 먹는 식량일세
가엾다, 홑옷을 걸치고도
숯값 내릴까 추워지길 바란다.
밤새 성 밖엔 눈이 한 자나 쌓여
새벽에 숯수레 몰아 얼음자국 남긴다.
소는 지치고 사람은 허기진데 해는 벌써 중천,
저자 남문 밖 진흙 바닥에서 한숨 돌리는데,
훨훨 날 듯 두 마리 말 달리며 오는 이 누구인가?
황색 옷 입은 사자와 흰옷의 시종 아이.
손에는 문서 들고 입으로는 칙령이라 소리치며
수레 돌려 소 몰아 북쪽으로 끌고 간다.
수레 가득 실은 숯, 천 근이 넘건만
관리들이 몰고 가니 아쉬워도 어찌하지 못하네.
붉은 베 반 필과 비단 열 자
소머리에 걸어주고 숯 값으로 친다네.
이 시(詩)는 매탄옹(賣炭翁) 숯 장사하는 노인(老人) 백성(百姓)을 포악(暴惡)한 관리(官吏)가 칙명(勅命) 사칭(詐稱)으로 수탈(收奪)하는 고발성(告發性) 시(詩)다. 궁시(宮市)는 당(唐)나라때 궁중(宮中)에서 필요한 물자(物資)를 강제적(强制的)으로 싼값에 수매(收買)하는 기관으로 환관(宦官)들이 거래했다고 한다. 관권(官權)을 앞세워 민생(民生) 재산(財産)을 수탈(收奪)하는 기관으로 전락(顚落)하고 있는 타락상(墮落相)을 보고 백거이(白居)가 시(詩)로 고발(告發)하고 있다. 백낙천(白樂天)은 중당기(中唐期) 시인(詩人)이다. 그가 남긴 시(詩)는 3800수(首)라 한다. 평생(平生)을 시작(詩作)에 몰두(沒頭)했다는 증거(證據)다. 대표작(代表作)으로는 장한가(長恨歌), 비파행(琵琶行), 유오진사시(遊悟眞寺詩), 매탄옹(賣炭翁) 등이 있다. 유오진사시(遊悟眞寺詩)도 장행시(長行詩)다. 때는 원화 9년 가을 팔월이라, 달은 상현달, 나는 오진사를 유람했는데 절은 왕순산에 있었다. 산을 떠나, 사오리, 쯤 되는 곳, 먼저 졸졸 흐르는 물소리 들린다.
여기서 말과 수레를 두고 푸른 개울 굽이를 걸어 건넌다. 손에 푸른 대지팡이 짚고, 여울의 깨끗한 돌을 밟고 지난다. 점점 이상하게도, 눈과 귀 환 해지고, 세상의 시끄런 소리 들리지 않는다. 산 아래서 산 위를 바라보니, 처음에는 오를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안에 길이 있을 줄을 그 누가 알았으랴! 편평한 바닥 길이 꺾여 바위 위까지 통했다. 번간 아래에서 한 번 쉬었다가, 돌 감실 곁에서 다시 한번 쉬었다. 감실 간격은 길이가 한 길이 넘었고, 문에는 빗장이 전혀 없었다. 내려다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돌에는 풀이 귀밑머리처럼 늘어져 있다. 흰 박쥐들이 놀라 나오는데, 쌍쌍이 나는 것이, 눈 흩날리듯 했다. 고개 돌려 절문을 바라보니, 푸른 언덕에 끼어있는 붉은 집이 있다. 손톱 같이 산 중턱이 열렸는데, 그 사이에 절이 위치해 있었다. 절문에 드니 평지는 없었고 땅이 좁아 빈 곳도 거의 없었다. 방의 회랑과 누대의 전각이 산봉우리 따라 높아지고 낮아진다. 바위와 낭떠러지에 흙은 조금도 없었다. 나무은 마르고 단단한 것이 많았고, 나무뿌리는 길게 돌을 감싸고 있었다. 울룩불룩한 뿌리는 뱀처럼 서리어 있다. 소나무가 어지러워 다닐 길 없고 사시사철 울창하고 무성했다. 가지는 늘어져 하늘거리고 빛은 푸르고 그 운치는 바람 속의 음악 소리 같았다. 햇빛과 달빛이 들지 못하여 푸른 나무 그늘이 섞이고 이어져있다. 그윽한 새소리 때때로 한 번씩 들리니, 들으면 마치 가을매미 소리 같았다. 처음에는 빈위정에서 쉬면서 자리에 앉았으나 편안하지 않았다. 잠시 북쪽 문을 열어보니, 만 리 먼 곳까지 환하게 밝았다. 처마 걸쳐 가랑비에 무지개 서고 마룻대를 둘러 구름이 돌아 흐른다. 붉은 해가 소나기 사이에 보이는데 흐리고 개는 것이 한 내에 같이 있다. 들판의 푸른 기운이 초목에 모이고 내 시야는 중국 벌판을 삼킨다. 위수는 가늘어 보이지 않고 한나라 언덕은 주먹보다도 작다. 물러나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얽히고 굽은 것이 붉은 난간에 비친다. 산 위의 사람들도 뚜렷하여 하나하나 멀리서도 볼 수 있었다. 앞에 마주보이는 다보탑 바람에 풍경소리는 사단을 울린다. 난 두공과 지게 창 부드러운 장식이 금벽처럼 번화롭다. 이러기를, 옛날 가섭 부처가 이 땅에 앉아서 열반하였다고 한다. 지금까지 쇠 바리때가 남아있어 아래에는 손자취가 뚫려있단다. 서쪽으로 옥상전이 열려있고 흰 부처가 삼엄하게 늘어서 있다. 흙먼지 붙은 옷을 털고 영설안에 예배하였다. 겹겹이 쌓인 눈을 가사로 삼고 우박을 꿰어 흰 머리로 삼았다. 핍진히 보고 귀신의 공인가 했는데, 그 자취는 결코 꾸민 것이 아니었다. 다음으로 관음당에 오르는데 미처 이르지도 않아 전단 향기가 난다. 계단에 올라 두 신을 벗고 발을 거두어 예배하는 자리에 올랐다. 여섯 기둥에 거울은 없고 사방 자리에는 금 세공품을 놓아두었다. 칠흑 같은 밤에 절로 빛이 밝아지고 등촉 타는 것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여러 보석들이 번들거리고 푸른 구슬과 산호가 번쩍이었다. 하늘 음악처럼 바람이 불어오고 서로 부딪쳐 그 소리가 쟁쟁거린다. 흰 구슬은 늘어진 이슬이 맺힌 듯 붉은 구슬은 떨어지는 핏방울 같았다. 부처 머리 위에 점철되어 합하여 칠보관이 되었다. 한 쌍의 병은 흰 유리이고 색은 가을 물의 차가움과 같았다. 병 너머로 사리가 보이는데 둥글게 구르는 것이 금단 같았다. 옥피리는 어느 시대의 물건인가? 천인이 지원에 시주하였다. 부는 소리는 가을 학의 소리 같아 신령한 신선을 내려오게 할 수 있었다. 이 때는 마침 가을이었는데 보름달이 한참 둥글었다. 보당에 확 뚫린 세 개의 문 달이 그 앞에 와있었다. 달과 보당이 마주 보여. 수정 빛이 선명함을 다투었다. 사람을 비춰 마음과 뼈가 차가운데 저녁이 다하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에 남탑로를 찾으니 어지러운 대나무 선연히 늘어져있다. 숲이 깊어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데, 가을 나비가 파뜩 파뜩 날아다닌다. 산속 과일은 이름도 모르는데 길게 뻗혀 길을 끼고 무성하였다. 배고픈 것을 족히 면할 수 있어서 따다가 그 맛을 보니 달콤새콤하였다. 길 남쪽의 푸른 골짜기는 신비롭고 자줏빛 천에는 흰 종이돈이 있었다. 만약에 한해가 있다면 조서를 내려 풀을 깎아버리게 했다. 땅이 맑고 깨끗한 까닭에 비리고 누린 음식을 못 올리게 했다. 큰 바위가 네댓 개나 쌓여 높고 기울어지고 또 깎여있었다. 조물주는 무슨 의도로 바위 동쪽에 치우쳐 쌓아놓았는가. 차고 미끄러워 사람 자취 없고 이끼 얼룩이 마치 꽃종이 같았다. 내가 와서 위쪽으로 올라서 아래를 보니 못을 헤아릴 수 없었다, 눈이 어지럽고 팔다리가 흔들려 감히 머리를 숙이고 살펴보지 못했다. 바람은 돌 아래에서 일어나고 사람을 하찮게 여겨 올라가 친다. 의복은 날개 같아서 펼쳐서 날아오르고 싶었다. 높고 높은 삼면의 산봉우리 칼끝을 모아 놓은 듯 뾰족한 봉우리. 가끔씩 흰 구름이 지나가고 구름 터진 틈으로 푸른 하늘 드러난다. 서북으로 해가 넘어갈 시간 저녁 햇볕 붉게 둥글었다. 푸른 병풍 밖, 아득한 천 리 붉은 둥근 모래판으로 달려 내려갔다. 동남쪽에 달 뜰 시간 밤기운은 맑고 질펀하였다. 백 길이나 되는 푸른 못 아래 황금빛 둥근 쟁반이 쏟아져 나왔다. 푸른 물, 물빛은 쪽빛 같았고 밤낮으로 길이 졸졸 흘러갔다. 주변을 돌아 산을 둘러 돌아가니 아래로 내려 보니 푸른 고리 같았다. 혹은 퍼져 천천히 내려가고 혹은 부딪쳐서 빠른 여울물이 된다.
가장 깊은 곳은 넓고도 맑아서 교룡의 침처럼 둥둥 떠서 나온다. 몸을 비스듬히 그 안으로 들이면 돌길이 매어 달린 듯이 더욱 험난하다. 덩굴 붙잡고, 굽은 나무 밟으며 계곡물 마시는 원숭이를 아래로 쫓는다. 눈이 흩어지니 백로가 놀라 일어나고, 붉은 상어에 놀라 비단결처럼 뛰어오른다. 쉴 곳을 정하고 세수하고 양치하여 다 씻고 나니 팔다리가 피곤하였다. 옅고 깊은 모든 골짝 물이 투명하니, 가히 뇌와 간이라도 비출 것 같았다. 오직 바닥 보이는 맑음이 좋아 찾으려 했으나 그 근원을 알지 못했다. 동쪽 언덕에는 괴석이 많고 돌을 쌓아놓은 것이 푸른 옥돌 같았다. 변씨와 화씨가 죽은 지 오래되어 좋은 옥돌이 많이도 버려졌었다. 혹 때때로 광채를 끌어들이고 밤에도 별과 달이 이어졌다. 가운데 꼭대기가 최고봉이라 하늘을 밭치는 푸른 옥 줄기 같도다. 올라가려 해도 갈 수가 없으니, 어찌 내가 능히 잡아당겨 갈 수 있을까? 위에는 백련지 연못이 있어 흰 꽃이 푸른 물결을 덮었구나. 이름을 들었어도 가보지 못했으니, 사는 곳이 사람의 세계는 아니었으리라. 또 한 조각, 돌이 있는데 크기가 사방 한 자의 벽돌과 같았다. 벽 절반 위에 꽂아 두었으니 그 아래로 만 길이나 매달려 있었다. 사람들이 이르기를, 과거에 스님이 있었는데, 앉아도 선을 이루지 못했었단다. 정심석이라 이름을 지어 노인들이 대대로 전하여왔다. 물러나 신선 사당에 올라가 아뢰니 덩굴풀이 면면히 자라났도다. 옛날에 들으니, 왕씨의 자식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랐다고 했다. 그 서쪽에 쇄약대가 있는데 여전히 지출전과 마주보고 있다. 때로 다시 밝은 달 뜬 밤이면 황학의 말이 위에서 들린다고 하였다. 돌아서 화룡당을 찾았더니 두 늙은이가 수염이 반백이었다. 생각해 보니, 불법을 들을 때 예인단을 보면서 기뻐하였으리라. 다시 천굴 아래로 돌아와 바꾸어서 용완연을 만들었다. 계단 앞에는 돌구멍이 있는데 비가 내리려 하면 흰 연기가 생긴단다. 왕년에 경전을 베끼는 중이 있었는데 몸은 고요하고 마음은 정성스럽고 순수했다. 저 구름 밖 비둘기 느끼어 수 천 번을 퍼덕이며 떼 지어 날았다. 내려와 돌속에 물을 보태고 날아가서는 바위 아래 샘물을 들이킨다. 하루에 세 번 씩 왕복하면서 시절마다 언제나 교만하지 않았다. 자신을 다스려 이루어 성승이라 불렸는데 제자를 양난이라 명명하였다. 이 연화의 게송을 외웠는데 그 수가 백억 천 개를 채웠다. 몸은 부서져도 입은 부서지지 않았으며 혀는 붉은 연꽃 같았다.
해골은 지금 보이지 않지만 돌함에는 아직도 그것이 남아있다. 가루 발린 집에는 오도자의 그림이 있었는데 붓으로 그린 채색그림이 옛날처럼 선명하였다. 흰 병풍에는 저수량의 글씨가 있었는데 먹빛이 금방 말라 버린 것 같았다. 신령한 경지와 이색적인 자취들 두루 살려보아도 끝이 없었다. 한 번 돌아다니면, 오 일 밤낮 다녔고 돌아 가려하니 머뭇거려졌다. 나는 본래 산에 사는 사람인데 잘못 시대의 거물에 끌려들었다. 나를 끌고 와서 책을 읽게 하고 나를 추천하여 관리가 되게 하였다. 이미 문학으로 과거에 올라 욕되게도 간쟁하는 관리가 되었다. 졸렬하게 곧아서 시대에 맞지 않아 유익이 없으면서 녹만을 함께 먹었다. 이 때문에 스스로 부끄럽고 두려워 불안해하면서 항상 기뻐하는 일이 적었다. 일은 이루지 못하면서 심력은 다하여 늙지도 않았는데 몸은 이미 쇠약해졌다. 이제 비녀의 끈을 풀고 벼슬길에서 물러나니 비로소 근심에서 벗어났음을 깨달았도다. 산수에 노닐게 되어 내게 소홀하고 완고함이 가득 하여도 들판의 사슴처럼 구속됨을 끊어버렸다.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구속됨이 없어 못 속의 물고기를 놓아 주어 바다로 들게 하였다. 한 번 가면, 어느 때나 돌아오나 몸에는 거사의 옷을 입고 손에는 도덕경을 들고 돌아다녔다. 끝내는 고향의 이 산에 머물러 살며 영원히 이 땅 안의 인연에 감사한다. 나는 이제 마흔 살이 되었지만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한가로우리라. 만약 칠십 살이 내 생애라면 여전히 삼십 년은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遊悟眞寺詩 元和九年秋 八月月上弦 我遊悟眞寺 寺在王順山 去山四五里 先聞水潺湲 自茲捨車馬 始涉藍溪灣 手拄靑竹杖 足蹋白石灘 漸怪耳目曠 不聞人世喧 山下望山上 初疑不可攀 誰知中有路 盤折通巖巓 一息幡竿下 再休石龕邊 龕間長丈餘 門戶無扃關 俯窺不見人 石髮垂若鬟 驚出白蝙蝠 雙飛如雪翻 回首寺門望 靑崖夾朱軒 如擘山腹開 置寺於其間 入門無平地 地窄虛空寬 房廊與臺殿 高下隨峯巒 巖崿無撮土 樹木多瘦堅 根株抱石長 屈曲蟲蛇蟠 松桂亂無行 四時鬱芊芊 枝梢嫋淸翠 韻若風中絃 日月光不透 綠陰相交延 幽鳥時一聲 聞之似寒蟬 首憩賓位亭 就坐未及安 須臾開北戶 萬里明豁然 拂簷虹霏微 遶棟雲回旋 赤日間白雨 陰晴同一川 野綠蔟草樹 眼界呑秦原 渭水細不見 漢陵小於拳 却顧來時路 縈紆映朱欄 歷歷上山人 一一遙可觀 一一遙可觀 風鐸鳴四端 欒櫨與戶牖 恰恰金碧繁 云昔伽葉佛 此地坐涅槃 至今鐵鉢在 當底手跡穿 西開玉像殿 白佛森比肩 抖擻塵埃衣 禮拜永雪顔 禮拜永雪顔 貫雹爲華鬘 逼觀疑鬼功 其跡非雕鐫 其跡非雕鐫 其跡非雕鐫 上階脫雙履 斂足升瑤筵 六楹排玉鏡 四座敷金鈿 黑夜自光明 黑夜自光明 黑夜自光明 碧珮珊瑚幡 風來似天樂 相觸聲珊珊 相觸聲珊珊 赤珠滴血殷 點綴佛髻上 合爲七寶冠 雙甁白琉璃 色若秋水寒 隔甁見舍利 圓轉如金丹 圓轉如金丹 天人施祗園 吹如秋鶴聲 可以降靈仙 是時秋方中 三五月正圓 寶堂豁三門 金魄當其前 月與寶相射 晶光爭鮮姸 照人心骨冷 照人心骨冷 曉尋南塔路 亂竹低嬋娟 林幽不逢人 寒蝶飛翾翾 山果不識名 山果不識名 足以療飢乏 足以療飢乏 足以療飢乏 足以療飢乏 足以療飢乏 詔使修蘋蘩 詔使修蘋蘩 詔使修蘋蘩 詔使修蘋蘩 嵬欹敧且刓 造物者何意 造物者何意 造物者何意 苔點如花牋 我來登上頭 下臨不測淵 目眩手足掉 目眩手足掉 風從石下生 薄人而上搏 衣服似羽翮 開張欲飛騰 開張欲飛騰 峯尖刀劍攢 峯尖刀劍攢 決開露靑天 西北日落時 夕暉紅團團 夕暉紅團團 夕暉紅團團 夕暉紅團團 夜氣淸漫漫 夜氣淸漫漫 寫出黃金盤 寫出黃金盤 日夜長潺潺 周廻繞山轉 周廻繞山轉 或鋪爲慢流 或激爲奔湍 泓澄最深處 浮出蛟龍涎 側身入其中 懸磴尤險難 捫蘿蹋樛木 下逐飮澗猨 雪迸起白鷺 雪迸起白鷺 歇定方盥漱 濯去支體煩 淺深皆洞徹 可照腦與肝 但愛淸見底 欲尋不知源 東崖饒怪石 積甃蒼琅玕 卞和死已久 良玉多棄捐 良玉多棄捐 夜與星月連 夜與星月連 拄天靑玉竿 冋令上不得 豈我能攀援 上有白蓮池 素葩覆淸瀾 聞名不可到 聞名不可到 又有一片石 大如方尺甎 揷在半壁上 其下萬仞懸 其下萬仞懸 坐得無生禪 號爲定心石 長老世相傳 却上謁仙祠 蔓草生綿綿 昔聞王氏子 羽化升上玄 其西曬藥臺 其西曬藥臺 時復明月夜 上聞黃鶴言 廻尋畫龍堂 廻尋畫龍堂 想見聽法時 歡喜禮印壇 復歸泉窟下 復歸泉窟下 階前石孔 階前石孔 往有寫經僧 身靜心精專 感彼雲外鴿 羣飛千翩翩 來添硯中水 去吸巖下泉 一日三往復 時節長不僣 時節長不僣 弟子名揚難 誦此蓮花偈 數滿百億千 數滿百億千 舌根如紅蓮 顱骨今不見 石函尙存焉 粉壁有吳畫 筆彩依舊鮮 素屛有褚書 素屛有褚書 靈境與異跡 周覽無不殫 一遊五晝夜 欲返仍盤桓 我本山中人 誤爲時網牽 牽率使讀書 推挽令效官 旣登文字科 又忝諫諍員 拙直不合時 無益同素餐 以此自慚惕 戚戚常寡歡 無成心力盡 未老形骸殘 今來脫簪組 始覺離憂患 及爲山水遊 彌得縱疎頑 野麋斷覇絆 行走無拘攣 池魚放入海 一往何時還 身著居士衣 手把南華篇 終故此山住 永謝區中緣 我今四十餘 從此終身閑 若以七十期 猶得三十年>
백낙천(白樂天) 거사(居士)가 이시(詩)는 아주, 마음먹고 정말 장시(長詩)를 썼다. 총(總)257행(行)의 장장문시(長長文詩)다. 시(詩) 가운데 그림이 있다. (詩中有畵) 문사철(文史哲) 인문학적(人文學的) 사적(史的) 자료(資料)가 차고 넘친다. 오진사(悟眞寺) 전경(全景)을 그림 그리듯이 사진 찍듯이 의경(意景)의 시어(詩語)로 구석, 구석을 낱낱이 묘사(描寫)하고 있는 시사(詩史) 명시(名詩)다. 오진사(悟眞寺)는 서안(西安) 종남산(終南山) 연봉인 왕순산(王順山) 자락에 있는 사찰(寺刹)이다. 오진사(悟眞寺)는 서진(西晉)265~316 이전에 창건했고, 수(隋)나라 때 중건(重建) 하였고, 수당대(隋唐代)를 살았던 선도(善導)스님이 정토종(淨土宗)을 (開創)하여 정토종(淨土宗)의 조정(朝庭)이 되었다. 백낙천(白樂天)은 불교적(佛敎的) 심안(心眼)이 깊어져서 이 시(詩)는 42세 때 지은 대표적(代表的) 작품으로 꼽는다. 기록에 의하면 백낙천(白樂天) 시(詩)는 목동(牧童)들도 흥얼거릴 정도로 유명하여 그가 남긴 유작시(遺作詩)는 3,800수(首)라고 전한다. 21세기 오늘날에도 백난천(白樂天) 백거이(白居易)의 시(詩)는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에서는 사랑을 받고 있다. 오진사(悟眞寺)를 유람하게 된 것은 42세 때 부친상(父親喪)을 당하고 나서 좌찬선대부(佐賛善大夫) 재직(在職)하던 중에 이 시(詩)를 지었는데, 모두 130개 운(韻)과 1,300자(字)에 달하는 백낙천(白樂天) 문학(文學)의 대표적(代表的) 산수시(山水詩)로 꼽는다. 이 장편시(長篇詩)를 운(韻)에 맞추어서 작시(作詩)했다고 하니, 정말 감탄사(感歎詞)가 절로 나온다. 두보(杜甫)의 시(詩)도 보면 그 많은 유작(遺作) 시(詩)가 다 운(韻)에 맞게 작시(作詩)를 했다. 백낙천(白樂天)의 유오진사시(遊悟眞寺詩)는 그 당시 산수(山水)를 읊은 시(詩)라 생태학적(生態學的) 생물보고(生物寶庫)이다. 화옹이 여여법당에 이 귀중한 시를 올렸으나 몇 사람이나 다 볼 것인지는 의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인문학적(人文學的) 가치를 전혀 알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늘은 백낙천의 시제(詩題) 유오진사(遊悟眞寺詩)를 반추(反芻)해 보았다. 여여법당 화옹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