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 : 歲 暮
舊 歲 看 看 盡 (구세간간진) 묵은 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新 愁 次 第 來 (신수차제래) 새로운 근심이 차례대로 오네
升 除 人 自 老 (승제인자로) 보태고 덜어도 사람은 늙으며
節 序 物 相 催 (절서물상최) 계절에 따라 만물 서로 재촉해
雪 壓 梅 魂 冷 (설압매혼랭) 눈이 내린 매화 꽃은 싸늘하나
風 暄 柳 眼 開 (풍훤유안개) 바람 따뜻해서 버들 눈 트이네
擁 爐 還 獨 坐 (옹로환독좌) 화로 끌어 안고 홀로 앉았으니
誰 勸 凍 醪 杯 (수권동료배) 그 누가 찬 술잔이라도 권하리
<어 휘>
* 看看 : 보다, 살피다, 조금 후에
* 升除 : 곱하고 나누기, 보태고 덜기
* 梅魂 : 매화
<감 상>
이 시를 지은 분은 具容 (1569- 1601) 선생으로, 공의 字는 대수(大受), 號는 죽창(竹窓)이시다.
본관은 능성(綾城)으로 16대 인조 임금의 외숙(外叔)이다. 공은 1590년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1596년에 평안도 태천(泰川) 현감, 1598년에 강원도 금화 (金化) 현감 3년을 재임 중에 32세의
젊은 나이로 관사에서 별세하였다. 재임 중에는 선정(善政)을 펼쳐서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
공은 시문(詩文)에 뛰어나서 일찍부터 당대의 내로라 하는 시인들인 권필(權韠), 이안눌(李安訥),
차천로 (車天輅), 김상헌(金尙憲) 등과 가까이 지내며 주옥같은 시편들을 세상에 남겼다. 이러한
공의 시들은 '죽창유고(竹窓遺稿)'라는 저술을 통해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공은 대체로 다감하고
정겨운 서정시들을 많이 지었으나, 공이 살던 시대가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의 국난기였던 까닭
으로, 시대와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시들도 적지 않게 전한다.
오늘 소개한 시는 오언 율시로, 시제(詩題)는 세모(歲暮)라고 전한다.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는
세모에는 누구나 일말의 감회가 있게 마련이지만, 공의 경우에도 역시 한 해가 저무는 시점에서의
감회를 표현하고 있다. 오고 가는 계절의 변화속에 인간의 늙음과 만물의 질서를 거론하며, 당시의
시인의 외로운 처지를 통해 그 속내를 보여주고 있다. 추위 속에 화로를 끌어 안고 좋아하는 술 한잔
함께 나눌 벗이 없음을 드러내는 시구(詩句)에서 공의 고독감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