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03.
군에서 경비소대장을 맡았을 때 저녁 근무에 배치됐다. 훈련이 있는 낮 근무는 선임 부사관이 맡았다. 상관에게 훈련 지휘를 부사관한테만 맡겨도 되느냐 물었더니 "소대장은 병력 사고 예방을 위한 면담에 신경 써라"고 했다. 실제 해보니 동생뻘 되는 병사에게 애로 사항 들어주고 토닥이는 게 주된 일이었다.
▶ 그때 부하 면담에선 근무 초소를 바꿔달라는 요구가 많았다. "고속도로만 보여 우울하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 같은 이유였다. '육체적으로 고되다'는 말은 드물었다. 대부분 "힘내서 근무하라"고 달랬지만, '아이가 힘들어한다'는 부모 연락까지 오면 위쪽에선 휴가를 보내라고 했다. 탈영 사고보다는 낫다고 했다.
▶ 육군 신병교육대에서 3년째 수류탄 투척 훈련을 중단했다고 한다. 수류탄 폭발로 인명 사고가 생기자 훈련을 중단했고, 그 뒤 실전 수류탄 한 번 안 던져보고 제대하는 병사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야외 훈련 때 얼굴에 바르는 위장 크림도 병사들이 피부가 민감하다며 거부하면 어찌 못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군 간부들은 '내가 군인인지 유치원 교사인지 모르겠다'며 혀를 찬다. 실제 병사로부터 "아저씨" 소리를 들은 간부가 있다.
▶ 한국 군이 이렇게 된 건 부모의 극성이 한 원인이다. 조금만 실전에 가까운 훈련을 하면 부모가 민원을 넣는다고 한다. 미군처럼 악천후에서 훈련하는 건 꿈도 못 꾼다고 한다. 실탄 사격 훈련도 실전 상황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고 예방 방식으로 한다. 부모와 소대장이 소통하는 카톡방까지 생겼다. 전문가들은 "군인에겐 정신적 자립이 필수적인데 군대에 와서도 부모가 계속 개입하니 독립이 어려워진다"고 했다.
▶ 군 내에 팽배한 보신주의도 문제다. 군 간부들이 훈련 내용이 아니라 사고 때 문책당할 걱정부터 한다. 징병제의 한계라고 보는 분석도 있다. 영국은 직업 군인들로 구성돼 있고 아르헨티나는 주로 징집병이었는데, 양쪽이 붙은 포클랜드 전쟁은 영국의 압도적 승리였다. 8년 전 연평도 포격 때 철모에 불이 붙은 줄도 모르고 대응 사격을 하던 해병대 병사 역시 징집병 아닌 지원병이었다. 우리는 핵무장한 북한군 120만과 대치하고 있다. 그런 나라의 군대가 3년간 수류탄 투척 훈련조차 하지 않았다니 할 말을 잊는다. 모두에게 '미군이 있어 전쟁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가 깔려 있다. 그러나 2015년 북의 지뢰 도발 때 많은 병사가 전역을 연기하고 국방 의무를 다했다. 이런 병사들이 훨씬 더 많다고 믿고 싶다.
최경운 논설위원 codel@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