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에 상품화되고 20년도 넘어서는 세월에 그들이 핑계되면서 나를 속이는 것을 양심으로 느끼지 않고서는 더이상 연장할 수 없는 기한의 만기가 도래하는 시점이 바로 2024년 12월 1일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을 원망하지 않았지만 그건 그가 내게 행한 일로 미안함을 느끼고 있음을 내가 느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대통령에 내가 분노를 느끼는 이유는, 그가 내게 행한 노무현전대통령의 행위를 비난하면서, 내가 어리숙다 생각하여 나의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이 자신의 양심의 불법으로만 가능한 이득을 얻고, 다른 이들을 이용하고 버렸던 그 마음을 내게 품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대통령 그는 사람들앞에서 잘보이길 바라는 마음에, 사무엘에게만 허락된 제사 집행을 하고 다윗을 죽여서 이세상의 권력이 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잡으려했던 사울이 어찌 종말을 맞았는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울의 그 욕심때문에, 사울의 아들이라는 그 환경만으로 요나단은 왕위를 물려받기는 커녕 사울과 함께 젊은 나이에 전쟁터에서 죽었다.
박근혜 전대통령과 최순실. 정말 할말이 없다. 내가 그 누군가를 나무라고 그의 잘못을 지적한다면, 그가 벌을 받을때 그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칠 여지가 그 양심에 남아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행한 죄값을 치른 후에 그 양심에 물어봐야,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영생하고자 무당이 섬기는 신을 의지하였다면, 그들은 저승에서 받을 벌이 있음을 본인들의 행위로 알고 저승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악신에 꾐에 빠져 영생하고자 더 저승에 벌을 쌓았으니, 죄도없이, 욕심이 꽉찬 가인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아벨의 피가 하늘에 상소하였듯이, 이세상에서 그들에게 당한 영혼들의 피가 하늘에 닿지 않았겠나.
그들은 저세상에 이승에 쌓은 재물을 가져갈 수 있는가? 그들이 이승에서 누렸던 권력과 친분이 저승에서 도움이 되겠는가? 70이 넘어가면 저승에 갈 날이 얼마 안남았다. 저승에서 받을 벌이 두려워 어떻게 그 벌을 줄이기라도 할까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며 배상과 그 사죄를 할 시간이 모자름에도,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누룰 수 있었던 힘과 권력을 찾아다녔던 마음이, 무당이 섬기는 신을 향하나, 죄를 행하는 자신을 받아주던 악신이 저승에서 형벌을 내릴 날을 기대하며 악신인 자신에게 속아 더 죄를 짓고 벌을 쌓은 그들에게 자신에게 속았음도 알려주어 벌을 주면서 더 기뻐하고자 함을 저승에서 돌이킬 수 없는 그때에, 후회할 텐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대통령때, 이들은 대책을 세우는 척하면서 핑계를 대며 대책을 세우지도 않고 자신들의 욕심을 부당하게 채우는 데에만 열심이었다. 그렇게 나를 바보대하듯이 아무런 말도 없이 내가 동의하지 않은 것들에, 내가 당시 오뎅을 먹던 장면을 연상케 하는듯 오뎅을 먹는 척을 하며 나를 기만하려 하였고, 마치 내가 동의한 듯이 꾸며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고 시간의 연장을 반복하였으니, 공의로운 하나님이 없다면 어찌 내가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겠는가?
문재인전 대통령때 아닌가 국익을 위해 나의 세상에 상품화시킨것을 더 연장한 것이.
이명박근혜정부시절 그들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말이 안통할거라 내영혼이 내게 알려주니, 남들처럼 누군가와 함께 보낼 수 있었던 나의 젊음이 사라져 가고 있음이 체념화 되고 있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정부때 내가 그리 간곡하게 내 젊음이 사라짐을 나의 부모가 나이 많음을 써내려갔지만 이명박근혜정부를 지나서 더이상 내가 젊다라고 볼 수 없는 시기에 그 정부는 전 정부의 편의를 봐주려, 아무런 대책조차 없이, 나의 부모가 아직 건강하다는 말도 되지 않는 핑계를 대며 미안함을 내비친 후에 나중에 들려온 말은 나를 절망하게 만든 50이라는 말이었다.
그 누가 50에 젊은 사람들만이 그 반려자와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누릴 수 가 있는가? 내가 잘못도 없고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반복하여 그 시기를 번복하여 연장하며, 그 주체들중에는 오히려 악을 행하던 이들이 있었음을 본인들이 알면서, 어찌 50이란 말이 입에서 나오면서 본인들이 극민을 위해서 정치를 한 다 생각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2024년 12월 1일 그들이 더이상 속이는 자신들의 양심을 드러냄이 없이는 기간을 연장할 수 없음을 본인들이 체감하는 그들이 양심이 그들의 불법을 명백히 증거하는 기한이 도래하는 때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침을 뱉고 돌을 던졌으며, 결국엔 예수님을 못박으면서 예수님이 예수님이 아니어서 자신들의 죄가 그저 잊혀지기를 바랐으나,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우던 강도도 예수님이 죄가 없이 벌을 받음을 알았으니, 가장 작은자에게 행한것이 곧 예수님께 행한 것임을 알게되고, 자신들의 죄를 지적하던 예수님의 예수님 자신에 대한 말씀이 진실이었음을 깨달았으니, 그들이 통곡하며 자신의 죄를 뉘우칠 기회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면서 주셨다.
하지만 다윗도 이 세상에서 지은 죄값을 이세상에서 치뤘듯,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 외친 그들의 죄값은 그들과 그들의 자손이 당할 것이라 그들 스스로가 외치지 않았나?
2024년 12월 1일 그들은 나와 상의 없이 제멋대로 스스로 정한 시간을 또한 어길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희생시킨 나를 보면서 욕심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행한 것에 대해 통곡하며 뉘우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 계기가 될것이나, 그 뉘우침은 이세상에서 댓가를 필요로하고, 뉘우침이 없다면, 본인들은 감당할 수도 없고 본인들의 자식이 당하면 하늘에 그 원망이 닿을 듯한 일을 자신들의 욕심을 채워가며 내게 행했으니, 적어도 저승에서 상응하는 벌이 있지 않겠나!
2024년 12월 01일 .. 이날이다. 장자의 죽음이 이르기 까지 약속을 번복하다 자신들의 장자가 죽은 후에야 욕심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에서 해방시키지 않았음을 애굽사람들이 후회했던 날이 있었던 것처럼.
그들이 다시 또 약속을 지키지 않아 그 결과로 이세상 또는 저승에서 그 댓가를 치를 것을 예감하며 후회할 그날이 바로 2024년 12월 01일이다.
그들이 약속과 양심을 어기고 자신들이 지은 죄로 인한 벌을 그들이 피해갈 수 없음을 느끼고 통곡하며 무지했던 자신과 돌이 킬 수없는 자신의 무능력을 탓할 날이 이날이다. 결국엔 할 것 다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박던 자들처럼, 자신의 잘못들을 뉘우칠 계기를 느끼겠지만, 그때까지 쌓아 놓은 벌은 어찌하겠는가? 이세상에서 그 댓가를 치를 마음도 없이 저승에까지 가져갈려하는가?
이 날은 내게 아무일이 생기지 않는 또 다시 전보다 더 깊은 절망에 빠지는 평범해 보이는 날이 되겠지만
그들에겐 언젠가 저승에서 죄값을 치를것을 예감하면서 뼈저리게 후회할 그들이 또 약속을 어기는 날이거나, 저승에서 받을 벌이라도 피하기 위해 이승에서 받을 벌을 예감하고 그 벌 이외에 이자까지 불어나 제대로 값을 쳐줘야 하는, 도무지 저승에서 받을 벌이 두려워 값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날임을 직감하는 날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직감을 잊고 싶고 그죄를 저승까지 가져가려 하지 않겠나 생각해보지만.
그들이 니느웨이 사람들처럼 돌이키는 마음을 갖고 그들에게 벌이 임하는 것을 지켜보려는 나를 하나님이 책망하시는 날이 될 수 도 있지 않겠는가!
이날에 나는 죽지 않으려니와 마치 내가 죽은 것과 같고 모든 희망이 없고 절망에 가득하리니, 그들은 죽지않은 나를 보면서 마치 내가 이미 죽은 것처럼 돌이킬 수 없음에 쌓아놓은 벌을 예감하는 날이 되지 않겠는가?
가난한 자들에게, 권력이 없는 자들에게 복이 임한다면 그 이유는 그들이 이세상에서 지은 죄값을 피하지 못하고 그 댓가를 치뤄 저승까지 그 벌들을 가져가지 않음이 아니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