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보화와 진주” 宝と真珠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천국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천국에는 아직 우리가 가보질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해주신다 하더라도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는 마치, 인터넷은커녕 컴퓨터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고 전화기도 없었던 조선시대 사람들한테 스마트폰에 대해서 설명하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한테는 상식인 컴퓨터나 인터넷이 상식이지만, 그와 같은 단어를 아무리 그 당시 사람들한테
말을 해 봤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당연히 그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단어를 빌어서 설명해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바로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천국에 대한 비유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설명해주고 계신데, 오늘 본문을 보면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두 사람을 예로 드십니다. 한 사람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한 진주 장사를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 두 사람을 예로 드셨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두 사람을 예로 말씀하시는 것이 천국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첫 번째 사람을 보시겠습니다. 그가 발견한 것은 밭에 감추어져 있던 보화였습니다. 그는 이를 발견하고 너무나도 기뻐했습니다.
그러고는 어떻게 했대요? 이를 숨겨두고 돌아가서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진주 장사꾼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침 지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했다고 해요. 그래서 어떻게 했냐 하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고서 그 진주를 샀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러면 이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합니다만,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공통점과 두 가지 의문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 두 사람의 공통점부터 보겠습니다.
첫째 공통점은, 이 두 사람은 모두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밭에서 값진 보화를 발견했고요, 두 번째 사람은 지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둘째 공통점은 이 두 사람들은 자신이 발견한 보물을 얻기 위해 자기 소유를 다 팔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두 가지 공통점,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발견한 두 가지, 즉 밭에서 발견한 보화와 값진 진주는
모두 천국을 상징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이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야 했다는 것이지요.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시나요? 하지만 이를 좀 더 확실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의문점에 대해서 해결해야지만 합니다.
두 가지 의문점이란 무엇인가 하면, 첫째 의문점은, 그 사람들이 그 보화나 진주를 발견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은 그것들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둘째 의문점은, 도대체 그 보화나 진주는 얼마나 비싸길래 자기가 가진 소유를 다 팔아야지만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먼저, 첫 번째 의문점입니다. 첫 번째 사람이 발견한 보화는 밭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람이 발견한 것은 진주였습니다.
앞에서는 보화가 발견된 장소는 명확하게 밭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밭>이라고 한다면 보통 바닷가에 있을 리가 없을 테니, 아마도
내륙이나 산이겠지요. 하지만 구체적으로 보화가 무엇인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반면에 두 번째는 어떤가요? 반대로 두 번째 사람에 대해서는, 그가 발견한 물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지극히 값진 진주라고는 설명이
있는 반면에, 그 발견된 장소가 바다인지 아니면 귀금속방인지 어디인지는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왕 말씀해주시려면 좀 더 알기 쉽게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을, 왜 이렇게 헷갈리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사실 이것은 일부러
우리가 알아듣기 힘들라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실 리가 있겠어요? 이는 오히려 우리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옛날 조선시대 때 같았으면, 이른바 <성공적인 삶>을 사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무엇이에요.
남자는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급제 하고 벼슬길에 오르는 것이 목표였을 것이요, 여성은 곱게 키워서 좋은 집안으로 시집 가서 아들 딸
낳고 잘 사는 것이 인생 목표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떻습니까. 이른바 명문대학 나와서 고시패스 하지 않더라도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도 시집 가서 가정 일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진출도 상당이 늘어서, 이제는 여성 없이는 사회가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천국이라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은 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닷가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천국에 가려면 신학교를
나와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에서 높은 직분을 받아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천국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한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어떻게 해야지만 얻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이 두 사람이 어떻게 해서 밭에 있는 보화와 지극히 값진 진주를 찾을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답은 예수님께서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7장 7절~8절을 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与えられます。捜しなさい。そうすれば見つかります。たたきなさい。そうすれば開かれます。
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사람들이 보화와 값진 진주를 발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닙니다. 바로 이를 얻기 위해 열심히 찾아 다녔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진을 찍으려면 핀트를 잘 맞춰야 하지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기계가 좋아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그냥 갖다 대고 누르기만 하면 사진이 잘 나오고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건 가까이 있고, 어떤 건 멀리 있고 할 때, 가까이 있는 것을 찍고 싶다면 어떻게 해요? 그냥 가까이 갖다 대고 찍는다고 잘
나오지는 않습니다. 손가락으로 터치를 해서 핀트를 맞춰야지만 합니다. 그렇다면 핀트를 맞추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냐 하면, 당연히
무엇을 찍어야 할지를 확실하게 정해야 할 필요가 있겠지요. 무엇을 찍을지 결정하지도 못했다면 핀트를 맞출래야 맞출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 사람들은 바로 그 보화, 그리고 그 진주한테 핀트를 맞춰서, 이를 얻기 위해 열심히 찾아
다녔겠지요. 아마도 눈에 불을 켜고 찾아 다녔을 것입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어요? 예, 마침내 발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우리 삶 속에서 천국이라고 하는 보화, 천국이라고 하는 값진 진주에 핀트를 맞추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예, 다른 사람들은 그게 보화인지 몰랐습니다. 자신들이 직접 보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렇게 정말로
값어치가 있는 진주인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누구는 이렇게 말해요. "아니, 남의 밭에서 보화를 발견했다면 그 주인한테 알려줘야지, 그걸 몰래 숨겨두고 그 밭을 샀다는 것은 나쁜
사람이 아니냐" 라고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ㅎㅎ
그것은 역시 성경을 오해한 것입니다. 이건 마치 무슨 그 밭에 금덩어리가 있었는데, 그걸 비밀로 하고 주인 몰래 숨겨두었다가, 모르는
척하고 그 밭을 샀다고 생각해서인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생각해보세요. 어떤 밭이 있는데, 그 밭은 다른 농작물은 잘 안
되는데, 자기가 알고 있는 농작물은 그 밭에 심으면 정말 잘 될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밭을 샀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도 역시
그 밭에서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보화를 발견한 것이겠지요. 여기서 숨겨두었다는 것은, 무슨 나쁜 의도가 아니라 그만큼 중요하게,
그만큼 소중하게 여겼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보화도 그렇고 진주도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진정한 가치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 보화와 진주를 열심히 찾았던 그들은
단번에 이를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고등학교나 대학교 야구나 축구 그리고 육상경기 감독 같은 경우에는, 물론 선수 육성이나
지도도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유망한 선수를 발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우리가 얼핏 보면 다 그
선수가 그 선수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유능한 감독이나 스카우트를 하는 사람들은 벌써 사람을 보는 눈이 남다릅니다. 그 안목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바로 그 팀의 몇 년, 어쩌면 몇 십 년을 좌우하는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 보화와 진주는 어떨까요. 앞서 말씀 드렸던 것처럼 이 보화와 진주는 천국을 뜻합니다. 하지만 이 천국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예, 많지 않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狭い門からはいりなさい。滅びに至る門は大きく、その道は広いからです。そして、そこからはいって行く者が多いのです。いのちに至る門は小さく、その道は狭
く、それを見いだす者はまれです。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 보화야말로 진정 가치가 있고, 이 진주야말로 참으로 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가져가려 하지
않아요. 아무도 그 진정한 가치를 알려 하지 않습니다.
천국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일요일에 교회를 가? 그렇잖아도 노는 날이 적은데 일요일에 교회까지 가면 그걸로 하루가 다
가버려. 그 시간에 돈을 벌든가, 아니면 잠이라도 더 자야지, 무슨 소리야.
이 천국의 가치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사실 별 것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렇잖아요? 더구나 직장인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계속 시달리고, 잘못하면 야근이다 회식이다 하면서 몸 상하고 마음 상하면서 다녔다면, 주말쯤은 집에서 잠이라도
푹 자고 싶어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일요일마저도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라고 해요. 그리고 무슨 직분이라도 맡는
날에는 무슨 회의다, 무슨 봉사다, 무슨 전도다 해서, 그 금족 같은 일요일에 제대로 쉬기는커녕, 잘못하면 출근하는 것보다 더 일을
많이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좁은 문이라는 것이지요. 그 좁은 문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별로 없대요. 오히려 넓은 문으로 가는 사람들은
많다는 것입니다. 어디 그 뿐이겠어요. 좁은 문으로 가려는 사람들을 넓은 문으로 가는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저런 예수쟁이들을 봐라.
일요일에 쉬지 않고 저렇게 교회에 가서 하루 종일 일하다가 온다. 회사라면 월급이나 받지, 교회는 돈을 받기는커녕 헌금이다 십일조다
바쳐가면서까지 저런다. 저게 제정신이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혹시 천연수정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반짝이고 아름다운 보석 중 하나이죠. 하지만 그 수정이 들어
있는 돌 표면을 보면요, 그냥 길가 어디에나 있는 그런 돌멩이입니다. 저 같은 비전문가가 보면 전혀 알아볼 수가 없어요. 하지만
전문가가 보면 어떻습니까. 우리 눈으로는 전혀 알아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는 무엇이 천연수정이 있는 돌이고, 무엇이 그냥
가치 없는 돌멩이인지를 구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천연수정이 있는 돌을 갈라보면 그 안에는 아름다운 수정이 빼곡히 차
있는 것이지요.
일요일에 교회를 가요? 거기서 예배다 봉사다 하면서 하루를 보내요?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안 하려고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정말 그 안에는 귀한 천연수정이 가득 들어 있는데,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한테 이것을 가져가라고 하면, 에이, 집도
좁아 죽겠는데 이런 볼품없는 돌멩이를 가져다가 뭐합니까……이렇게 하는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가치를 아는 사람, 진정으로 그 천국의 귀하다는 것을 알고, 말씀과 복음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모합니다. 예수님 알기를 갈망합니다.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영과 진리로 주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기도원에 갑니다.
금식을 하면서 주님 만나기를 힘쓰고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립니다. 예배를 드리면 드릴수록 은혜가 넘칩니다.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주님을 알면 알수록 찬송이 넘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나를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주님,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나를 위해서 죽으신 주님, 나를 위해서 부활하신 주님, 나를 위해서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 나를
위해서 성령님을 보내주신 주님이 너무나도 감사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시는 보화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값진 진주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께서도 이와 같은 천국이라는 이름의 보화, 천국이라는 값진 진주를 발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이렇게 보기만 좋고 듣기만 좋은 보화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주님을 믿는다는
것으로, 주님의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수모를 당하기도 합니다. 멸시를 당하기도 합니다. 전도지를 한 번 돌려보세요. 그러면요,
어디를 들어가면 정말 반갑게 맞이해주는 곳이 있나 하면, 어디를 들어가면요 금방 그 분위기가 싸하게 느껴지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래도 뭐,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제가 매주 한국이나 일본을 비롯해서 전세계에 우리 교회 소식을 담아서 메일을 보냅니다. 그러면 그 중에는 격려메일을 보내주시는 분들,
선교후원금으로 섬겨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지금 우리 교회의 재정이 열악한 상황인데, 그와 같은 손길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하지만
꼭 그런 분들만 계신 것은 아니지요. 이런 메일 보내지 말아달라……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래도 강제로 또 보내요? 아니요.
전도나 선교는 사람이 억지로 강제로, 아주 귀찮게 하거나 못살게 굴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도나 선교는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지요.
그래서 제가 보내드린 메일을 받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저는 괜찮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 인도하실 줄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미리 메일을 보낼 때에는 <이 메일 수신을 원하지 않는 분들은 ‘수신거부’라고 적어서 답장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해드려요. 그리고 답장이 오면 그 분의 메일 주소는 목록에서 삭제를 합니다.
그런데 더 이상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냥 <수신거부>라고 적어서 보내면 될 것을, 참 여러 가지 다양한 글과 표현으로 답장을
주십니다. 왜 받기 싫은데 자꾸 메일을 보내느냐, 이런 메일을 보낼 거면 미리 양해를 구하고 보내야 하지 않느냐……아니, 어떤 걸
보낼 것인지도 모르는 분한테 어떻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보내요. 그러면서 이런 메일 더 이상 보내지 말아라, 한 번만 더 보내면
고발할 거다, 하면서 참 다양하게 답장을 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리고 또 보면 이런 메일을 보내주시는 분들 중에는 안 믿는 분들만 그러냐 하면, 이미 신앙이 있는 분들, 더 나아가서 교역자나
선교사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면 이런 분들이 또 답장을 보내면서요, 이런 게 선교냐, 왜 이렇게 귀찮게 하냐, 이런 메일 보낼 시간이
있으면 기도나 해라, 하고 역시 또 참 다양한 글과 다양한 표현으로 답장을 주십니다.
이런 메일을 받고 그러면요, 정말 반박답장을 보내고 싶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저라고 하고 싶은 말이 왜 없겠어요. 입이
근질근질 거립니다. 머리 속으로 문장을 몇 번이나 적어갑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마태복음 5장 11절~12절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わたしのために人々があなたがたをののしり、迫害し、ありもしないことで悪口を浴びせるとき、あなたがたは幸いです。喜びなさい。喜
びおどりなさい。天ではあなたがたの報いは大きいから。あなたがたより前にいた預言者たちを、人々はそのように迫害したのです。
사도행전 5장 40절~41절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使徒たちを呼んで、彼らをむちで打ち、イエスの名によって語ってはならないと言い渡したうえで釈放した。そこで、使徒たちは、御名のためにはずかしめられるに値する者とされたことを
喜びながら、議会から出て行った。
그리고 또 성경은 또 다른 보화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1장 24절~26절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信仰によって、モーセは成人したとき、パロの娘の子と呼ばれることを拒み、はかない罪の楽しみを受けるよりは、むしろ神の民とともに苦しむことを選び取
りました。彼は、キリストのゆえに受けるそしりを、エジプトの宝にまさる大きな富と思いました。彼は報いとして与えられるものから目を離さなかったのです。
이와 같은 말씀들을 떠올리면요, 그래,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은 잘못 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인도해주시는 길을 가고
있다……하고 확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주님께서 주시는 일을 감당하실 때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주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두 번째 의문을 살펴보아야겠지요. 이 두 사람들은 보화와 값진 진주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천국이라는 보화는 얼마나 비싸길래 내가 가진 소유를 다 팔아야 하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또
잘못 이해하면, 무슨 천국에 들어가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교회에 갖다 바쳐야 한다 뭐 이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게 뭐겠어요. 그야말로 사이비 종교가 되는 것이죠.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은, 과거에 청년 엘리트였습니다. 좋은 학교를 나와서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인물이었지요. 그의 출세는 이미
보장된 거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는 출세가도를 달리기 위해서 나라에 충성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신념에 충실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을 탄압하고 짓밟고 잡아들이고 죽음에 몰아넣었습니다. 이것이 그러면 바울이 나쁜 사람이라서
그랬나요? 아니요. 세상적으로 보면 바울은 나쁜 사람이거나, 하물며 범죄자가 아니었습니다. 유능한 인물이었고 충실한 관료였습니다.
바울이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습니까. 하지만 믿음이 없는 그가,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그가 나라와 국가를
위해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결국 예수님을 박해하고 탄압하고 복음을 방해한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복음을 받아들인 그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입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なぜなら私は、あなたがたの間で、イエス。キリスト、すなわち十字架につけられた方のほかは、何も知らないことに決心したからです。
갈라디아서 6장 14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しかし私には、私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以外
に誇りとするものが決してあってはなりません。この十字架によって、世界は私に対して十字架につけられ、私も世界に対して十字架につけられたのです。
빌립보서 3장 8절~9절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それどころか、私の主であるキリスト。イエスを知っていることのすばらしさのゆえに、いっさいのことを損と思っています。私はキリストのためにすべてのものを捨てて、それらをちりあくたと思っています。それは、私には、キリストを得、また、キリストの中にある者と認められ、
律法
による自分の義ではなくて、キリストを信じる信仰による義、すなわち、信仰に基づいて、神から与えられる義を持つことができる、という望みがあるからです。
이게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노력, 내가 이루어온 성과, 내가 가지고 있던 업적, 실적들을 다 모아보아도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많은 지식을 얻었지만,
주님의 십자가에 대한 지식과 지혜에 비하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에 대해서 자랑할 것이 많았지만, 이
모든 자랑은 주님의 십자가에 비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지식보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야말로 가장
으뜸되는 지식이요, 구원과 생명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바로 자기가 그 동안 가지고 있던 소유를 다 팔아서 보화와 지극히 값진 진주를 얻은 바울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기까지 말씀 드렸다면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보화가 무엇인지 아시게 되셨나요? 하지만 아직까지도 진정한 보화가 무엇인지
모르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를 어쩌면 좋을까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이와 같은 분들을 위해, 이 보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2장 2절~3절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それは、この人たちが心に励ましを受け、愛によって結び合わされ、理解
をもって豊かな全き確信に達し、神の奥義であるキリストを真に知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このキリストのうちに、知恵と知識との宝がすべて隠されているのです。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최대의 보화이자 유일한 보화는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다른 것은 잃어버려도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은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보화, 유일한 보화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좌절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슬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좌절이
없습니다. 낙심이 없습니다. 슬픔이 없습니다. 왜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좌절과 낙심과 슬픔은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이라고 하는 보화를 굳게 잡고,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굳게 잡고, 성령님과 함께,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기쁨과 감사와 즐거움으로 힘차게 나아가며, 하루하루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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