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여행을 다녀온 지 3개월이 지났다. 다녀온 후에도 여전히 마음은 남해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눈을 감으면 남해의 잔잔한 바다와 굽이치던 산이 떠올랐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렇게 그리워하면 한 번 더 가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저번 여행은 더운 여름의 끝자락에 다녀왔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겨울의 중반이라서 다른 분위기의 여행을 즐기기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지 않은 시간차를 두고 같은 여행지를 또 가는 일은 우리에게도 퍽 드문 일이었다. 그만큼 남해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 남해에 이끌리나, 생각했더니 이유가 있었다. 남해에는 예전의 제주도에서 느껴지는 여유와 감성이 있다. 이미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진 제주도는 여행하긴 편하고 좋지만, 예전에 비하면 아쉽다. 어딜 가나 사람이 붐비고 바쁘기만 하다.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야만 할 것 같은 조급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남해에는 그런 조급함이 아직은 없다. 남해는 모든 것이 여유롭고, 지역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세련되지 않지만 오히려 투박하고 풋풋해서 싱그러운 분위기가 있다.
남해에서 가볼 만한 곳은 지난번 여행에서 충분히 가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여행을 준비하려고 남해를 둘러보니 그 생각은 오산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너무나 많았다. 특히 오랜 시간 동안 버려져 있던 곳을 개조한 곳, 지역의 예술가들이 만든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 지역 주민이 힘을 합쳐 지역 활성화를 만들어나가는 곳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교통이 불편한 먼 남쪽의 지역이라고만 여겼는데, 현재의 남해는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 재생산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남해의 지역색을 느낄 수 있으며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곳들을 소개한다.
남해대교를 제대로 구경하려면
남해각
남해를 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한다. 여러 다리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다리는 바로 붉은색이 눈에 확 들어오는 '남해대교'다. 1973년 6월 22일 준공되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남해대교는 한국 최초의 현수교로도 유명하다. 이 대교로 인해 남해도가 육지와 연결되며, 남해는 물론이고 한려해상국립공원 지역의 발전을 이끌었다.
남해대교 앞에 있는 '남해각'은 남해대교를 통해 남해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으로, 남해 사람들에게는 정서적으로 매우 상징적인 건물이라고 한다. 수학여행지, 신혼여행지가 되기도 했으며 격식을 차려야 하는 모임, 상견례 자리로도 활용되었다. 그야말로 남해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나누는 중심이 되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남해대교는 오랜 시간 동안 남해의 관문으로, 남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였었다. 그러나 2000년 대에 들어서면서 남해 섬에 창선·삼천포대교와 노량대교가 놓이며 남해대교는 점차 유휴화되어 갔다. 이런 남해대교와 더불어 남해각 또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이었다. 이에 남해군은 2019년부터 남해각 재생사업에 들어갔다. 휴게소의 특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남해에 부족한 문화예술을 선보일 수 있는 공간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지난해 5월에 정식 개관된 남해각은 건물 외부 및 내부를 대부분 보존하면서 남해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진 것이 인상적이다.
남해각에 들어서면 먼저 그동안 남해대교와 남해각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모두 수집하여 아카이빙 한 전시관을 만날 수 있다. 남해대교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겼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새삼 이곳의 황금기를 되새길 수 있게 된다. 이와 더불어 남해각에 대한 다양한 뉴스와 시각적 자료들을 보며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이와 더불어 남해각과 남해대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다양한 작품들이 눈을 홀린다. 조각, 영상, 설치미술, 회화 작품 등 다양한 작품들을 보며 지역의 소소하지만 감동적인 이야기가 예술로 탄생하는 과정을 만날 수 있게 된다.
남해각의 새로운 변신과 함께 남해대교 또한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변화할 예정이다. 남해군은 관광자원화 사업을 통해 도보교로 기능을 전환하여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관광자원으로 탈바꿈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주탑 상하부에 브리지 클라이밍 시설과 전망대, 하늘계단, 캡슐 바이크 등을 설치하고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남해를 찾는 이들에게 독특한 경험을 선사할 남해대교와 남해각은 처음 생겼을 때처럼, 남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남해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미술관
바람흔적 미술관
남해의 관광지에 비치되어 있던 여행책자를 보며, 남해에 새삼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뮤지엄남해&동창선아트스테이, 남해문화센터, 남해바래길 작은미술관, 해오름예술촌, 남해유배문학관,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 지방이기에 문화예술 공간이 적을 것이라 여겼던 것은 너무나 안일한 생각이었다. 여기에 남해군이 남해각과 같은 문화예술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산업을 진행하고 있다. 자연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을 즐기러 오는 곳으로 남해가 사랑받을 일만 남은 것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바람흔적 미술관'이었다. 내산 저수지 주변에 자리 잡은 이곳은 놀랍게도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입장료 또한 무료다. 미술관의 이름처럼, 이곳은 바람이 빚어낸 모든 것과 더불어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덕분에 여유롭게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눈길을 끄는 커다란 바람개비는 설치미술가 최영호의 작품이다.
평면 공간, 입체 공간, 조각 공원으로 구성된 이 미술관은 입장료가 무료인 동시에 대관료 또한 무료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대관하여 전시회를 열 수 있기 때문에 지역에서 활동하는 지역 예술가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매달 새로운 전시가 진행되어 관람객들을 불러모은다.
전시 관람도 매력적이지만, 미술관 주변의 풍경 또한 이곳을 찾기에 충분하다. 수려한 저수지의 풍경, 풍파에 깎인 듯한 거친 바윗돌, 정겨운 분위기의 작은 골짜기, 바람 소리가 인상적인 대나무 숲 사이로 독특한 분위기의 벽화들이 조화를 이룬다. 전시 관람 후 차분하게 주변을 산책하며 자연을 만끽하다 보면 어느샌가 모르게 남해에 오랫동안 머물고 싶어지게 된다.
오래된 공간이 새롭게 탄생하다
더 풀, 남해촌집 화소반
지역의 오래된 공간이 젊은 감성과 만나 새롭고 독특한 분위기의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은 다른 지역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남해에서는 특히 이런 공간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아무래도 다른 지역에 비해 개발의 진척이 느린 것도 있겠지만, 남해 특유의 분위기가 이런 조화를 살리기에 그만이었다. 버려져 있던 공간이 생각지 못한 쓰임으로 생명을 얻은 곳들은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을 이끌고 있었다.
햄버거를 판매하고 있는 '더 풀 (The Pool)'은 버려진 수영장을 개조해 만든 곳이다. 해변가의 낡은 건물이 빈티지한 분위기의 햄버거 가게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가게가 만들어졌기에, 새로운 즐길 거리를 찾는 이들에게는 꼭 들려야 하는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육즙 가득한 햄버거는 가게 안에서 먹어도 맛있지만, 가게 옆 수영장이나 해변가에서 즐겨도 더 맛있다. 겨울이 되어도 따스한 남해의 날씨 덕분에, 야외에서 더 맛있게 햄버거를 맛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남해에서 꼭 들려야 하는 곳으로 유명한 상주의 은모래비치에도 낡은 건물을 개조해 만든 카페들이 성업 중이다. 특히 그중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은 70년이 된 구옥을 개조해 만든 카페, '남해 촌집 화소반'이다. 옛 기와집을 깔끔하게 개조한 이곳은 해변의 모습과 빈티지한 분위기가 어우러져 휴식을 취하기 그만이었다.
카페 곳곳에는 오래된 시골집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소품들과 영국, 미국, 독일 등지에서 공수한 앤티크 도자기 잔이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동서양의 빈티지한 분위기가 풍기는 카페에서는 드립 커피와 더불어 정과, 한과, 양갱, 모나카 등 한국의 전통 디저트를 판매한다. 보는 것뿐만 아니라 입도 즐거운 카페로 은모래 비치에 사람들을 모으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오래된 것은 버려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게 하는 곳이다.
*여행지 정보
남해각
위치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남해대로 4216
운영시간 09:00-17:00 / 월요일 휴무
바람흔적 미술관
위치 경남 남해군 삼동면 금암로 519-4
운영시간
동절기 (11월-2월) 매일 10:00-17:00
하절기 (3월 - 10월) 매일 10:00-18:00
더 풀
위치 경남 남해군 서면 남서대로1517번길 50 더풀
운영시간 매일 11:30-16:00 (재료 소진시 마감) / 화요일 휴무
https://www.instagram.com/the__pool__burger/
남해촌집 화소반
위치 경남 남해군 상주면 상주로74번길 6
운영시간 매일 11:00-18:00
https://blog.naver.com/chswlqghkthq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