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6080 추억 속으로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기영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기차는 미끄러지듯 달린다. 차창 밖에서는 눈발이 날리고 있다. 산과 계곡을 지나고 터널을 통과하면서 펼쳐지는 풍경은 어느 화가가 이보다 더 아름다운 한국화를 그릴 수 있을까? 고목에서 핀 복사꽃처럼 주름진 얼굴에서도 웃음꽃이 활짝 피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매일 만나는 부부지만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고 즐거운지 그칠 줄을 모른다. 그래서 여행은 언제나 누구와 어디를 가든지 즐겁다. 더욱이 다정한 친구들 부부가 기차여행을 떠나면서 고목이면 어떻고 묘목이면 어떠냐며 마냥 즐거워 웃음꽃을 피운다. 자주만 다니면 좋다고 한다.
대학 동기 10여 명이 만나는 모임에서 부부간에 2014년 12월 16일, 순천 시티여행(city tour)을 하기로 하고 떠나는 날이다. 나는 이 모임의 총무를 맡아 계획을 세우고 사전예약을 하는 등 주관하는 입장이다. 이른 시간이라 아침 식사용 도시락과 개인별로 간식거리를 준비하여 아내와 둘이서 나누어주고 다녔다. 기차 속에서 도시락을 먹었던 기억은 없는 것 같다. 학창시절에는 소풍을 가서 산과 들에서 도시락을 먹었고, 기차에서는 성인이 되어 친구나 가족끼리 여행을 가며 음료수와 달걀을 사서 먹은 기억뿐이다. 같은 밥이지만 달리는 기차 속에서 아내와 나란히 앉아 먹는 도시락은 집에서 먹는 밥보다 훨씬 즐겁고 꿀맛이었다. 전주역에서 한 시간 십분 정도 되니 순천역에 도착하여 곧바로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랐다. 우리의 일일 관광코스는 드라마촬영장, 송광사, 낙안읍성, 순천만 정원, 순천만으로 되어 있었다. 버스 안에는 우리 일행 20여 명을 포함하여 35명이 함께 관광을 하게 되었고, 중년의 여자 해설사가 자세하게 소개를 해 주었다.
역에서 십여 분을 달려가니 드라마 촬영장이었다. 주차장 옆에는 이곳에서 촬영한 드라마 장면의 사진들이 세워져 있어 많은 작품이 촬영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늘 촬영하는 모습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2006년 SBS에서 ‘사랑과 야망’을 촬영하기 위해 4만㎡에 국내 최대의 세트를 지었다. 소도읍 세트장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순천 읍내의 뒷골목과 순천시 번화가를 재현하였다. 또 서울 관악구 봉천동 달동네의 모습은 200여 채의 건물로 재현했다. 단지 촬영장으로서가 아니고 다음 세대들에게는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되짚어보는 장소로 만든 것이다. 순천 옥천 냇가와 읍내 거리, 가게 등을 정확한 고증을 거쳐 재현함으로써 문화적인 가치를 가진 오픈 세트다. 이곳은 제빵왕 김 탁구, 빛과 그림자. 복희 누나를 비롯하여 영화 13편과 드라마 15편 등 30여 편의 작품이 촬영되었다. 요즈음 상영된 영화 ‘허 삼관’과 ‘강남 1970’을 촬영하여서 많은 관광객이 몰려와 순천시에서는 지역주민의 소득과 연계하려 노력하고 있다.
번화가를 걸어서 지나는 동안 양편에 있는 가게들이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의 완주군 삼례 시가지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했는데 그 당시 자전거상회 옆에 책방이 있었다. 중고자전거를 타고 비포장 자갈길을 달리다 보니 자주 고장이 나서 수리를 했다. 수리하는 동안 책방에 가서 만화책을 보았던 60년대 후반으로 빠져 들었다. 순양극장 앞에 오니 극장 전면에 붙어있는 커다란 광고 그림은 요즘에는 볼 수 없는 그림이다. 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해 선정적으로 잘 표현한 그림들이다. 웃음이 나는 그림이지만 영화 내용이 혹시 이상야릇한 것 같아 몰래 영화관을 갔다가 선생님께 발각되어 꿀도 못 먹고 도망친 일도 있었다.
달동네 앞에 가니 일만이천 제곱미터의 산비탈에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동네여서 오르고 내려가기 힘든 곳이었다. 슬레이트 지붕에 시멘트 벽돌로 지은 건물들, 판자로 얼기설기 붙인 울타리에 녹슨 양철 대문들은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듯 겨우 비바람만 피할 수 있는 집들이었다. 옛날 서울 관악구 봉천동 달동네는 재개발되어 지금은 모두가 아파트단지로 되어버렸다. 그곳의 원주민들은 변방으로 밀려나고 대부분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 사는 곳이 되어버렸다. 전주에서도 완산구 동서학동 임업시험장 동편 산비탈동네를 연상하게 했다. 1960년대 후반 대학 시절 친구가 그곳에서 자취를 하고 있어서 가끔 방문했던 기억이 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물을 길어 밥을 짓고 세수를 하며 생활용수로 사용했다. 연탄은 힘들다고 배달을 잘 안 해주어 손수 운반했야 했다. 화장실은 앞에서 순서를 기다렸다가 일을 보았다. 대문도 없고 울타리도 없이 건물들만 지어져 있어서 여름에는 문을 열고 생활하기에 모든 생활이 공개되었다. 옛날 친구 집을 다시 찾아온 것 같았다. 지금 경기도에 사는 그 친구에게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일부 관광객은 계단을 따라 동네 꼭대기까지 올라가면서 이곳저곳을 살피고 다녔다. 우리는 날씨가 고르지 못하여 눈발이 날리고 추워서 광장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되돌아 나오는 도로 양편에 있는 가게와 소품에 눈길이 끌려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등장했던 모습이 떠올라 옆에 가서 연기를 펼치며 사진을 찍었다. 미장원과 양화점, 담배가게, 복덕방, 소방서, 파출소, 여인숙, 국밥집 등 가게의 모습과 진열된 소품들이 6080년대로 끌고 갔다. 일행들 모두가 간판과 소품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추억의 사연들을 꺼내어 펼치며 웃음이 터뜨렸다. 당시에는 모두가 좋은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되돌아가고 싶은 일도 아니지만 4.50년 전의 추억이 그리워 발길을 쉽게 옮기지 못했다. 일정관계로 세차게 뿌리치고 다음 코스인 송광사로 가서 관람하고 점심을 먹고 오후 일정을 마쳤다.
집에 돌아와서도 가끔 스마트폰에 담아둔 드라마 촬영장의 모습을 보며 6080년대의 추억 속으로 빠져 들어가 혼자 웃곤 한다.
(2015, 2, 26.)
첫댓글 제목과 첫문단이 너무 좋습니다. 드라마 촬영장을 돌아보며 60년대 작가의 시절을 회상하며 쓴글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석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