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3 “복이 있도다.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이여! 천국이 너희 것이다.”
II. 하나님은 크리스챤들이 풍요롭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임한 대표적인 3가지 저주를 걷어 가셨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죄와 사망의 저주를 걷어 가셨습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질병의 저주를 걷어가셨습니다 (사53:5).
셋째, 예수님께서는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사심으로 우리의 가난의 저주를 걷어 가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8:9).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풍성한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요 소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크리스챤 사업가들과 재벌들이 많이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물질세계의 힘인 물질을 가지고 복음 전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 확장에 풍성하게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크리스챤들이 사회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로 진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가 있는 분야에서 1인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가족이 HongKong에 갔을 때 주일 날 교회에 나가니까 우리 직장 직원 부인 한 분만 교회에 나오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주재 이사가 불교 신자였습니다. 그래서 직원 부인들은 이사 사모님을 모시고 절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사가 바뀌었습니다. 크리스챤 이사가 오셨습니다. 사모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그러자 직원 부인들중 나도 기독교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크리스챤들이 출세하여야 합니다.
가게를 open 합니다
주인이 크리스챤이면 불신자 종업원들도 함께 개업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주인이 불신자면 종업원들 중에 크리스챤이 있어도 귀신에게 고사를 지냅니다.
크리스챤들이 잘 되어야 하고 출세하고 돈도 많이 벌어야 합니다. 그리고 베풀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에서 가난의 저주가 물러가고 예수님을 통한 부요가 임하느냐?는 것입니다.
그 통로는 바로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우리가 가난이 저주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이 우리 물질의 주인이라는 신앙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물질의 주인이 되셔야 우리가 가난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 옵니다. 돌아 오면서 이들은 풍성한 토지 소산과 부요함에 대한 꿈과 기대를 가지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들은 크게 실망합니다. 농사를 지었는데 기후도 불규칙하고 바람도 많이 불고 황충들이 다 갉아 먹어서 소출이 형편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앞에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 해도 너무 하십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불순한 일기와 황충으로 농사가 다 망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풍요는 어디에 있습니까?”하면서 항의합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이 말리기서입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3:8, 9).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나의 것을 훔친 도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내 것을 도둑질한 도둑을 축복할 수 있겠느냐?”고 항변하십니다. .
우리 크리스챤들가운데 십일조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계신 분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십일조를 나의 소득의 1/10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라면 나의 소득은 내 것이 아니라 10개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벌어도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가 다 주인인 하나님이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1개는 남겨놓고 9개는 네가 가져다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것 10개중에서 9개는 내가 가져오고 1개는 남겨 놓고 오는 데 그것이 십일조입니다.
그런데 주신 9개를 가져오다가 남겨진 1개가 탐이 나서 가져오니 그것은 도둑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내것 10개 중에서 1개를 드리는 것을 안 드린다면 그것은 도둑이 아니라 믿음이 적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일조는 돈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나의 물질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라는 신앙 고백이 십일조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신앙으로 십일조 생활을 하는 사람은 부요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만일 부족함이 생긴다면 물질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따지고 책임을 물으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 3:10-12).
그래서 사단은 우리의 십일조에 대해서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아까운 마음, 손해보는 마음이 들도록 만들어 못 하게 만들고 또 십일조에 대한 비판하는 글이나 책들을 보고 부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만들어서 못 하도록 방해하여 가난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록펠러라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재벌입니다. 록펠러는 어머니로부터 십일조에 대해 철저한 신앙 훈련을 받았습니다. 록펠러가 최초로 드린 십일조가 50센트였다고 합니다.
장성하여 사업가가 된 록펠러가 금광 개발에 뛰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파고 들어가도 금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러면서 회사는 자금난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주지를 않습니다. 그러자 광부들의 월급이 밀리면서 폭동이 일어날 지경까지 갔습니다.
사방이 꽉 막힌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때 록펠러는 담요 한 장을 들고 금광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앞에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기도라기 보다는 따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약속을 지키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까? 아니면 사기꾼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께서 잘 아시는 것처럼 저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지금까지 하나님의 것에 절대 손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예물까지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파산 직전입니다. 제가 빈손으로 이 금광을 나가는 순단 저는 광부들에게 맞아 죽을 것입니다. 하나님,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그 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계속 파라!”
록펠러가 항변합니다. “아니, 계속 파라구요? 하나님, 지금 나가서 광부들에게 계속 파라고 하면 저는 맞아 죽습니다. 은행에서 융자가 나오던지 무슨 다른 방법을 말씀해 주십시요!”
하나님께서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답답한 록펠러가 다시 기도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립니다. “계속 파라!”
록펠러가 기도합니다. “하나님, 하나님 말씀대로 그대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저는 광부들에게 맞아 죽을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셔야 합니다!”
그리고 록펠러는 금광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기다리던 광부들을 모아 놓고 금광속에서 있었던 일들 다 이야기 합니다.
그러자 광부들 가운데서 “별 수 없네. 그러면 속은 셈치고 한번 파보자!”라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나오면서 다시 파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얼마후 "펑"하면서 시커먼 것이 터집니다. 바로 검은 황금리고 하는 석유였습니다.
이렇개 해서 세워진 회사가 미국 석유시장의 80%이상을 장악한 “Standard Oil”이고 록펠러는 일약 재벌이 됩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한번도 펑크내신 일이 없는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가난의 저주에서 해방되는 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