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려나간 손이 발견된 강화도 선착장 근처에서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2006년 10월 11일 오후 3시경 경기도 강화군 길상면 선두5리 선착장에서 갑자기 비명이 터져나왔다.
단풍 관광철을 맞아 평화롭게 바닷바람을 즐기고 있던 관광객들이 그 소리를 듣고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어, 저거 사람 손 아냐?
에이 설마 마네킹이겠지.
한 목격자의 손짓에 따라 선착장 모서리에 끼여 있던 이상한 물체를 발견한 사람들은 일제히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신고를 접수한 해경이 현장에 도착해 살펴본 결과 ‘괴물체’는 표피가 벗겨져 나간 사람의 오른손으로 판명됐다.
신체에서 잘려나간 손을 놓고 해경의 수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2주 만에 이 엽기적 사건은 토막살인극으로 밝혀지게 된다.
대체 누가 왜 이토록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던 걸까.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인천해양경찰서 김대한 반장이 전하는 숨가빴던 수사 현장 속으로 들어가보자.
수사팀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잘려나간 오른손’의 주인을 찾는 일이었다.
해경은 경찰청 과학수사팀에 이 손에서 채취한 지문의 신원확인을 요청하는 한편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에 문제의 손에 대한 정밀감정을 의뢰했다.
해경은 이 손에서 50여 점의 지문을 채취했지만 엄지손가락만 ‘와상문’으로 확인됐을 뿐 나머지 손가락 지문의 문형을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해경은 손을 발견한 현장에서 반경 5㎞ 안에 있는 해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사체의 또 다른 부분은 발견되지 않았다.
인근 상인들을 상대로 한 탐문수사도 성과가 신통치 않았다.
모두들 고개만 내저을 뿐이었다. 목격자는 물론 사건과 연관지을 만한 정황을 기억하는 이도 없었다.
신원 확인을 위해서는 나머지 지문의 문형을 밝혀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끓는 물에 담가 지문감식을 실시했던 터라 나머지 지문을 확인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수십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가운데손가락과 넷째손가락의 지문 문양을 밝혀낸 해경은 2000여 건에 달하는 경인지역 실종자 및 가출인의 지문과 이 지문을 일일이 대조·분석했다.
그 결과 잘린 손의 주인은 고양시에 거주하던 박 아무개 씨(여·44)로 밝혀졌다.
선착장에서 손이 발견된 지 9일 만의 일이었다.
다음은 김 반장의 설명.
박 여인은 남편 김 아무개 씨(47)와의 사이에 장성한 아들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신원이 확인되기 한 달여 전인 9월 19일 밤 11시 16분경 남편에 의해 이미 서부경찰서에 가출인 신고가 돼 있는 상태였다.
서부서 담당자에게 은밀히 알아본 결과 남편 김씨는 ‘아내가 젊은 남자와 바람이 나서 가출했다’고 했으며 당시 별다른 범죄혐의점이 없어 수사에 착수하진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
그 순간 치정이나 불륜에 의한 토막살인일 것으로 직감했다.”
먼저 해경은 박 여인의 통신내역 조회를 통해 그녀와 가깝게 지내던 인물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박 여인은 8개월 전부터 A 씨(37)와 내연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A 씨와의 통화건수는 9월 한 달 동안만도 무려 145회(수신통화 제외)에 달했다.
당시 카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던 A 씨는 평판이 좋았다.
지켜본 결과 그는 시종일관 차분하게 자동차 정비에 열중하고 있었다.
박 여인과 가까운 사이인 것은 확실했지만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용의자로 단정지을 수는 없었다.
또 범인일 경우 도주의 우려도 있었다.
우리는 ‘대포차 내사’ 등을 핑계로 조심스레 접근했고 마침내 A 씨에게서 ‘박 씨의 남편이 집으로 찾아와 소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본처와 이혼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휴대폰 발신지 추적 결과 A 씨는 박 여인이 가출한 당일인 9월 14일부터 이튿날 오후 8시경까지 박 여인과 같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더욱 의심을 샀다.
하지만 A 씨는 “가출 당일 경북 영덕으로 함께 여행을 갔다.
하지만 9월 29일 통화가 마지막이었다.
9월 30일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아 친구찾기’까지 해봤지만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말했다.
확인 결과 실제로 A 씨는 9월 29일 오후 4시경 통화를 끝으로 박 여인과 통화한 내역이 없었다.
또 그의 진술대로 9월 30일 친구찾기를 이용한 것도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당시 A 씨는 박 여인의 손이 발견된 강화도 인근을 배회한 사실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연스레 그는 용의선상에서 멀어졌다.
수사팀이 두 번째로 지목한 용의자는 남편 김 씨였다.
하지만 주변인물을 통해 알아본 결과 김 씨에게서도 특이점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바람난 처로 인해 평소 고민이 많았지만 조용하고 착한 인물로 평이 나 있었던 것.
도대체 누가 범인이란 말인가.
뭔가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답답한 나날이 이어졌다.
하지만 전화 통화기록 분석 결과 남편 김 씨는 유력한 용의자로 급부상하게 된다.
자신이 가출신고를 한 지 열흘이 지난 9월 30일에도 김 씨는 아내와 통화를 했으며, 휴대폰 위치추적 결과 10월 4일 박 여인의 손이 발견된 강화 일대를 배회했다는 사실이 파악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증만으로 김 씨를 무작정 추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증거를 잡아야했다.
수사팀은 김 씨의 가게와 주거지 주위에서 그의 동향을 면밀히 살폈다.
혹시 작은 단서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김 반장의 눈에 박 여인이 살던 아파트 1층에 있는 재활용품 수거함이 쑥 들어왔다.
“혹시 증거가 될 만한 물품이 들어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수거함에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자 한 남자가 받더라.
경찰 신분을 밝히고 ‘언제 수거해 갔느냐’고 묻자 그 남자의 입에서 ‘그 피 묻은 청바지 때문에 그래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피 묻은 청바지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서둘러 그 재활용품 수거업자를 만났다.
예의 수거업자는 10월 18일 새벽 1시경 아파트 수거함에서 이불과 청바지를 함께 수거했다고 말했다.
리바이스’ 제품이라 자신이 입으려고 가져갔는데 웬 피가 그리 많이 묻어 있는지 버리려고 했다면서 청바지까지 갖고 나왔다.
하지만 이불은 성남에 있는 수거센터에 납품한 뒤였다.
수사팀은 수거센터에 쌓여 있던 수십 톤의 이불 중 다량의 이물질이 묻어 있는 이불 5개와 베갯잇 1개를 찾아냈다.
범인은 김포대교 밑에 몸통을 던져버렸다.
현장검증 모습.
수사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하지만 섣불리 범인을 단정짓기에는 아직 무리였다.
청바지와 이불에 묻은 이물질은 육안상으로는 혈흔 같았지만 버려진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듯 완전히 말라붙어 감식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청바지 등이 김 씨의 것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
또 그가 범인이라면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아파트 수거함에 넣어두는 바보 같은 짓을 했을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 청바지와 이불은 형사들에게 등잔 밑이 어둡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혹시 박 여인이 자신의 집에서 살해된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아파트에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을까.’
김 반장은 이미 한 차례 판독에 실패했던 아파트 CCTV에 마지막 ‘승부’를 걸어보기로 결심했다.
청바지와 이불에 대한 정밀감식을 의뢰한 수사팀은 아파트 CCTV 분석에 매달렸다.
하늘이 도운 것일까.
1차 판독 때는 미처 드러나지 않았던 결정적인 장면이 포착된다.
10월 2일 오전 10시 10분경 박 여인과 남편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장면이 화면 한 구석에 잡힌 것.
그것이 CCTV에 담긴 박 여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남편 김 씨가 무언가를 싼 이불을 들쳐메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자신의 차량에 싣는 장면이 나타났다.
이어서 김 씨는 다시 검은 비닐봉지들을 들고 내려와 황급히 차에 싣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럴 수가!
형사들의 입에서 나즈막한 탄식이 동시에 쏟아져나왔다.
잔혹한 토막살인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해경은 10월 25일 새벽 6시경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자신의 차량에 탑승하는 김 씨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그리고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아파트 내부와 차량에 대해 감식을 실시했다.
그 결과 화장실 모서리와 배수구, 김 씨의 승합차에서 범행을 입증하는 ‘루미놀 반응’(루미놀 용액이 혈흔과 접촉하면 형광을 발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어지는 김 반장의 회상.
체포한 뒤에도 김 씨가 너무나 태연해서 수사관들이 놀랄 정도였다.
처음에 김 씨는 범행을 부인했는데 그동안 수집한 증거를 들이대자 갑자기 얼굴이 상기되며 잠시 호흡을 제대로 못하더라.
정신을 차린 김 씨는 찬물을 한 잔 마시더니 범행 일체를 자백하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밝혀진 끔찍한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25년 전 김 씨 부부는 22세와 19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하지만 맞벌이를 하던 탓에 둘이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았고 출퇴근 시간이 다르다보니 부부간 대화도 점차 줄어들었다.
특히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박 여인은 일밖에 모르는 남편과 가정을 갑갑해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박 여인은 8년 전부터 몇 차례 외간 남자와 바람을 피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깰 수 없었던 김 씨는 매번 아내를 용서했고 오히려 다독여가며 가정을 유지해왔다는 것.
그러나 사건이 벌어지기 10여 개월 전 박 여인은 A 씨와 또다시 ‘위험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김 씨는 아내를 붙들고 사정을 하는 등 갖은 노력을 다했다고 한다.
집안일 한 번 시키지 않은 것은 물론 아들과 함께 내연남 A 씨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ㄷ
아내를 돌려달라’고 사정도 했다는 것.
하지만 박 여인은 ‘그 사람을 사랑한다’며 완강히 이혼을 요구했다.
급기야 박 여인은 9월 14일 A 씨와 가출하기에 이른다.
당시 김 씨가 수차례 전화를 했으나 박 여인은 받지 않았다고 한다.
40여 회에 걸쳐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16일 만인 9월 30일 처음으로 전화연결이 됐다는 것이다.
결국 이혼을 하기로 한 두 사람은 이틀 후인 10월 2일 오전 9시에 만나 이혼 서류를 발급받고 10시 10분경 집으로 같이 들어갔다.
그런데 김 씨가 아내를 한 번 더 잡아보려는 생각으로 설득한 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
김 씨는 ‘왜 떨거지 같은 놈이랑 살려고 하느냐’며 따졌고 박 여인은 ‘자기도 착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그 사람도 착하다.
그 사람 부인은 깨끗이 이혼을 해줬는데 왜 당신은 안해 주냐’며 거세게 이혼을 요구했다.
내연남을 두둔하는 아내에게 격분한 김 씨는 순간적으로 박 여인의 목을 눌러 살해하게 된 것이다.
아내를 살해한 김 씨는 사체의 양 손과 양 발, 목 부분을 절단한 후 자신의 승합차에 싣고 파주와 양주 일대를 다니다가 양손과 양발을 강화대교 끝단 동락천에, 몸통은 김포대교 밑에 던져버렸다.
특히 김 씨는 12일 동안이나 머리를 승합차에 싣고 다니다가 자신의 가게 보일러실에 유기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그 이유에 대해 김 씨는 “아들에게 먼저 용서를 구하고 자백을 하려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 반장은 김 씨의 가게 보일러실에서 박 여인의 머리를 찾아내는 것을 끝으로 사건을 종결지었다.
이어지는 김 반장의 소회.
현장감식을 갔을 때 김 씨의 아들은 혼자 빈집에서 울면서 ‘지금도 못믿어요.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어요’라고 했는데 그간의 자세한 사정을 듣고나니 그 이유를 알겠더라.
그간 박 여인은 아들에게 결혼생활의 답답함을 자주 피력했다고 한다.
아버지 김 씨는 그런 아내를 끝내 잡으려 했고….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후 김 씨는 아들 앞에 무릎을 꿇고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 김 씨를 끌어안고 볼을 비비며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를 오히려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불쌍하다’며 통곡하는 아들과 ‘후회한다.
아내와 아들에게 미안하다.
여전히 아내를 사랑한다’는 김 씨를 보면서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특히 아들이 갈등을 빚는 부모 사이에서 조율하느라 적잖은 마음고생을 했다는 것과 어머니의 머리와 오른손만으로 장례를 치렀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의 그 심정이란….
한편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고 한다.
유력한 단서로 여겼던 청바지와 이불에 묻어 있던 이물질이 감식결과 혈흔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것.
하지만 김 반장은 “그 청바지와 이불이 CCTV를 다시 확인하게끔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사건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청바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8일만 수사를 더 끌었어도 CCTV 자료는 다 지워졌을 것이다”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 김 씨는 얼마 전 법정에서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