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견(愛犬) 장사 지내고 나는---. / 이원우
금명 중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11월 27일 두 시간 동안 3학년생 전체를 대상으로 진로에 대한 강의를 해 달라는----.초등학교에서 43년 동안 근무하다 퇴임한 지 6년 만에, 중학교 학생들 앞에 서게 되다니 꿈만 같다. 담당 진로 부장과 의논이 되었다. ‘다양한 직업군(職業群)’을 주제로 하자고. 표현이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아직 시간이 있어서 고치면 되겠다.
이상하게도 내 머리 속에 ‘애견 장례사’라는 다섯 글자가 맨 먼저 떠오른 게 아닌가? ‘다양한’이란 형용사를 앞세웠다면, 거기 걸맞는 도입 단계에서의 매체가 있어야 하는데 개의 죽음을 들고 나오다니, 몇 시간이 지나도 얼떨떨하다. 그러나 수백 명의 관심을 한 군데로 집약시키기 위해서는 바야흐로 뜨는 직업의 대명사 하나가 맞잡이 구실을 충분히 하겠거니 싶다. 그래 조금 안심을 한다. 나는 때로 ‘개 같은 내 인생’이라며 떠들고, 녀석들과 더불어 지내왔지 않은가, 자그마치 30여 년 동안.
내일 당장 기장에 있는 애견 장례식장 ‘파트라슈’를 찾기로 하였다. 114에 문의를 했더니 친절하게 대답해 줘서 전화를 걸었다. 박헌수! 7년 전 내가 딸처럼 아끼던 후로다 2세가 죽었을 때, 염하고 화장하고 유골까지 수습해 가져다 준 바로 그 사람! 그는 전혀 돈 되지 않을 일에 여태껏 매달려 온 것이다.
홈페이지 ‘파트라슈’는 애견 문화를 선도하고 있었다. ‘파트라슈’의 뚜껑을 열기 무섭게 우군(友軍)을 얻은 기분이 되었다. 개는 이미 거기서 애완이라는 낡은 옷 대신 반려라는 새 브랜드를 입고 있었다. 너무나 눈물겨운 사연들이 많아 나 자신의 누선이 막힐 것 같다. 옮긴다, 이 땅의 견공들을 위하여.
동물 병원 의사 과실로 갑자기 하늘나라로 간 강아지, 아직 ‘아이’는 병원에 있단다. 부모(?)의 입장에서 너무 억울해하고 있다. 그러는 중 정신을 차려 파트라슈에서 장례를 치러야 하겠다는 생각 들지만, 여럿을 한꺼번에 화로 속에 집어넣지나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절대 그런 일 없다니 나 자신이 가슴을 쓸어내린다. 우리 집 후로다가 죽었을 때 나와 아내도 마음이 안 놓였었다.
어이쿠 다음엔 기절초풍할 사연이다. 개가 아니고 50그램짜리 햄스터가 ‘영면’에 들었다나? 절차와 비용에 대해 물었는데, 파트라슈의 대답이 기가 막힌다. 그러나 아름답다, 적어도 뭇 생명을 예찬하는 입장에서 보면. 염습하고 알코올로 사체를 깨끗이 닦은 뒤 삼베로 수습한다. 장례비용은 기본 20만 원.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이나 물건을 같이 관에 넣어도 되느냐는 또 다른 견주의 질문이다. 갑자기 내 가슴이 저며지는 듯한 느낌이다. 후로다 2세의 어미 후로다 1세가 의사 과실로 숨을 거두었을 때, 백양산 중턱에 매장하면서 그 가슴에다가 빗과 먼저 죽은 혈육을 품겨 묻은 적이 있어서다. 파트라슈 측은 이런다. 옷이나 간식은 되는데, 플라스틱 종류나 재가 많이 생기는 장난감 등은 불가, 관은 만들어 와도 되고 예식장 측에서는 오동나무로 짠단다.
화장한 초롱이 사진을 보내 줘서 고맙다는 인사. 그런데 유골 뿌린 곳을 찍은 게 없어서 섭섭하니 빨리 찾아 메일로 보내 줬으면 하는 간절한 사연을 덧붙였다. 파트라슈는 정중한 사과 다음에 몇 마디 적었다. 사진이 회사 컴퓨터에 분명히 입력되어 있으니 안심하고 기다리라고. 그러고 보니 우리 후로다 2세는 내가 쓴 유머 수필집 <개가 들어도 웃을 일> 날개에 남아 있다. 부산 일보 옥상에서 이상일 차장이 촬영한 건데, 정말 명견답게 잘 생겼고 영원히 이 세상에 남게 되었다. 다행이다.
2년 전에 땅에 묻었던 강아지를 화장할 수 있느냐는 애타는 사연이다. 나 정말 개를 사랑하노라 하는 사람도 몇 달만 지나면 잊어버리던데, 이 여자분 대단하다. 파트라슈 왈 가능하긴 하지만 섭섭하게도 알코올로 닦지는 못한단다. 과연 유골이 남아 있을까?
외국에 머무는 회사원이 급박한 메일을 보냈다. 10년 동안 길러 왔던 애견이 갑자기 죽었단다, 자기 어머니가 근처 야산에 묻었다며 울먹이는 소릴 적었다. 며칠 안에 귀국해서 장례식을 치르고 화장을 하고 싶으니 도와 달라고. 9월 초순 이야기다. 아직 여름인데 사체가 부패했을 것도 같지만 고집을 꺾지 않는 걸 보니 어지간하다. 알코올로 닦고 염습하는 거 외는 모든 게 가능하단다.
강아지가 아파서 불길한 예감이 든다고. 유골함을 미리 걱정한다는 사연이다. 도자기로 만든 것을 선택할 모양인데, 어쩌면 좋겠느냐 묻는다. 그런데 8월 18일 올린 글 치고는 조회수가 너무 많다. 우리 문인 협회 홈 페이지를 능가한다. 애견가가 문인보다 더 홈페이지 활용도가 높다? 그런 가정도 가능하겠다. 파트라슈는 식장에 한번 방문하여 의논하기를 청한다.
‘아이’가 암에 걸렸다니 이를 어쩌나? 온 가족이 눈물을 흘리며 지켜보는데, 1개월 시한부 생명이란다. 만약 아무도 없는 시간대에 이승을 하직한다면?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밤중에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출장을 와 줄 수 있느냐고 한다. 파트라슈에게 이번엔 내가 실망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하기 때문에, 그 아홉 시간 외는 움직이기 힘들다는---. 다만 사정에 따라 조절은 가능하다니 그걸로 위안을 얻을 수밖에.
12년 동안 길러 온 두 마리 애견이 근래 기운이 없고 잘 먹지 않는단다. 그러면서 만약 그 둘이 유명을 달리하면 쓸쓸할 거 같아서, 그제 다른 강아지 한 마리를 분양 받아 왔단다. 나는 처음엔 적이 놀랐다. 두 마리가 아직 살아 있는데, 새로운 녀석과의 사랑? 나 같으면 불가하다. 파트라슈의 입을 바라보자. 사람도 늙으면 식욕도 떨어지고 전신이 쇠약해지는 법, 건사하기에 따라 회복될 거란다! 12살이라면 사람으로 쳤을 때 여든을 넘긴 나이다. 나도 두 마리의 애견과 그 주인을 위하여 기도에 동참하겠다.
어느 누구는 6년 전에 땅에 묻은 강아지가 아직 눈에 밟힌다는 사연, 그로 인해 우울증을 앓고 있다나? 다시 화장하고 장례를 치르고 싶은데----.어쩌면 좋겠느냐고. 유골 안치는 하지 않고 산이나 바다에 뿌리고 싶다는 것, 이럴 경우에는 파트라슈가 눈에 번쩍 뜨일 정답을 못 내는 모양이다. 그저 비용만 간접으로 언급해 두었다. 위로의 이야기가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어쨌든 나는 쾌재를 불렀다. 이만하면 됐다! 제목과 조회수를 보고 눈에 확 들어오는 경우를 예로 들었는데, 모두가 상상을 초월하는 애틋함으로 점철되어 있지 않은가? 짐작하건대 어떤 수업에서도 애견 장례사의 경우를 도입 단계에서 적용시킨 경우가 없었으리라. 어느 정도 수업에 자신감이 붙는다. ‘개타령’을 배워 불렀으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마지막 덧붙이고 싶은 얘기. 나는 내가 죽고 난 뒤의 장례에 대해서만은 이상할 정도로 태연하다. 딸 내외나 아들, 손자 종빈이에게 불효라는 죄책감을 갖게 하지만 않는다면, 장기며 사체 다 기증하고 1년 뒤에 극비리에 화장터로 가고 싶다. 유서에도 그렇게 적어 뒀다. 나는 지금 결코 저녁 굶은 시어머니 상을 하고 이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지극히 편안한 마음으로 이 졸고의 매듭을 짓는다.
이 세상 모든 생명에 대한 예찬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마치 소신이나 피력하듯이 적어도 여기서만은 우쭐대고 싶지 않다. 그저 나 자신 애견과 한 방에서 지낸 30년 세월의 무게가 느껴질 따름, 그 여파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직업관에 조그마한 영향이라도 미치게 하고 싶은 몸부림일 따름이다. 그거 하나 믿고 이리저리 뒹굴어 보았다. 내일 현장에서는 좀음 절박한 심경에 빠지리라.
(2010년 10월 20일 저녁)
* 60자씩 69행 2백자 원고지 20장
<창작 후기> 평생을 개와 더불어 살아왔다. 따라서 소위 브리짓드 바르도의 주장에 손뼉을 보낸다. 그는 동물 보호 정신을 앞세워 차기 대원에 도전한단다. 나는 가톨릭 신자다. 神父가 사목을 바로 하려면 입에 보신탕을 대지 않아야 한다며 목이 멘다.
애견 후로다 2세가 죽었을 때 거룩한 장례를 치러줬다. 그 사장을 다시 만났다. 근 10년 만에---.그가 일러 주는 대러 홈 페이지에 들렀다가 너무나 충격적인 사연들을 읽었다. 50그램짜리 햄스터, 개는 아니지만 그 녀석의 주검을 장사 지내겠다는 사연도 떴더라. 애견에 대해서는 하 많은 사연들이 가슴을 저미게 한다.
11월 27일 금명 중학교 3학년 전체를 강당에 모아 놓고 수업을 한다. 연거푸 두 시간. 직업의 다양함에 대해. 그 도입 단계에서 엉뚱하게도 애견 장례사를 들먹이기로 했다. 앞으로 뜨는 직업이 되리라 전망하면서. 수필이랍시고 적어 보았다. 부끄럽다. 나는? 엄마가 생각날 때마다 가끔 흉내 내는 팔만대장
마지막처럼 후세에 환토상봉하면 보살님 은혜--사신 보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원우(<한국 수필> 추천/ <한글 문학> 소설 신인상/ 전 초등학교장/ 30년 개 사육/ 74년도 한국 애견상, 자랑스런 부산 시민상-봉사 본상/ 지은 책 16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