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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다시 한 번 박수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옆에 계신 분들과 부활 인사 나누겠습니다.
좋아요. 즈파크 부활을 축하합니다. 찬양을 들으면서 그냥 설교 안 하고 계속 찬양만 들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얼마나 좋은지 정말 감동적인 찬양이었습니다. 마지막 곡의 가사가 안 나온 것이 좀 아쉬웠는데 미완성 그거 말고는 정말 매우 감동적이었고 우리 칸타타가 끝날 때마다 그렇게 준비하고 은혜롭게 불렀는데 우리가 마음껏 함께 화답하면서 박수하고 축하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시간을 우리가 갖지 못하고 빨리 찬양 끝내고 이렇게 내려가는 늘 아쉬웠는데 오늘은 마치 바스티에 온 것 같은 느낌. 여러 번 인사하고 또 화답하는 게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여러분 안 그랬습니까? 우리 잘 준비해 주신 우리 찬양대, 또 기도원 찬양대 앙상불에게 우리 다시 한 번 감사의 박수 한번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예수님과 두 명의 강도가 십자가에 달려서 처형되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째 되는 적막한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오늘 칸타타 가사대로 주님이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사나 무서운 마음으로 두려운 마음으로 그들은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 거예요. 그 육중한 돌문이 옮겨져 있고 그 자리에 하얀 옷을 입은 천사가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를 지키던 사람들은 마치 죽은 것처럼 그 공포에 질려서 죽은 것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사모하면서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움직이는 사람에게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는 이런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때 천사가 참으로 놀라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예수께서 살아나셨다. 예수가 부활하셨다. 자 와서 봐라. 무덤을 보여주면서 너희들이 찾는 그 주님은 여기 계시지 않고 약속하신 대로 갈릴리로 가셨다. 거기 가면 주님을 만날 것이다.
이 여인들은 그 소식을 듣고 무서움과 기쁜 마음, 이 두 가지 감정에 뒤얽혀서 급히 갈릴리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도중에 또 주님이 나타나셨어요. 9절 10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들은 깜짝 놀라서 주님을 붙들었습니다. 경배했습니다. 그때 주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볼 것이다. 오늘 이것이 부활 보도입니다. 부활에 대한 마태가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부활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최초로 하신 말씀이 평안하냐 너희들 평안하냐 이렇게 물으신 겁니다.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주님이 부활하신 주님의 일성, 그리고 최초의 음성이 뭐냐 너희들 평안하냐 너희들 나 배반했지. 내가 그걸 그때 힘들 때 너희들 어디 갔어
얼마나 무섭고 부담스러운 말씀일까? 그런데 주님은 그런 두려움에 빠져 있는 그런 죄송한 마음에 빠져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첫 번째 말씀 평안하냐 안녕하냐 잘 지내냐 물으셨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샬롬입니다. 샬롬 가장 아름다운 단어예요. 히브리인들만 이 단어를 쓰는 게 아니고 북아프리카를 가니까 아랍인들도 샬롬이라는 인사를 해요. 샬롬이 얼마나 그들의 삶에 소중한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평안을 잃고 두려워하며 모여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또 나타나셨어요. 제자들은 정말 살벌한 장면을 봤습니다. 주님을 따라다니는데 그 주님이 잡혀서 십자가에 처절하게 달려 돌아가셨어요. 뭔가 엄청난 일을 낼 것 같았는데 너무나 무기력하게 돌아가셨어요. 그들을 죽인 사람들은 살기가 등등합니다. 지금 잡히기만 하면 제자들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두려움이 그들을 가득 채워서 그들은 어딘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어요.
요한복음 20장 19절에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의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보인 곳의 문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서서 가라사대
그리고 하신 말씀
평안하냐?
부활하신 주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와 같이 물으실 것입니다. 평안하냐 부활하신 주님이 원하신 그 평안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심령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평안은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최고의 축복이고 최고의 선물입니다. 가장 좋은 거니까 가장 먼저 주시는 거예요. 사람의 마음에는 평안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을 가졌어도 평안을 잃은 사람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거예요. 누릴 능력이 없어요. 권력과 건강과 재물과 명예를 다 가졌어도 평안이 없어 마음이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고, 불만으로 가득 차 있고, 불행으로 가득 차 있고, 우울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어요. 평안이 없어요. 그러면 그 모든 것은 허상에 불과해요. 내 것 같지만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닙니다. 지금 제자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평안이었어요.
저와 여러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뭡니까? 많은 재물입니까? 명예입니까? 성공입니까? 그런 것 같지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평안이에요. 주님이 주시는 평안 그게 있어야 내가 가진 것도 누릴 수 있고 내가 가진 것이 내 것이 되는 거예요.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달라요. 세상도 우리에게 평안을 줍니다. 돈 많이 벌었을 때, 합격했을 때,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 명예의 자리에 올라갔을 때 참 좋죠. 그날 밤 정말 너무너무 기분 좋고 행복해서 잠자리에 들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환경과 조건과 상황에 좌우됩니다. 그것이 없어지면 금방 우리 마음속은 평안에서 불안으로 바뀌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영원합니다. 환경 조건을 초월합니다. 사람이니까 잠시 흔들릴 수는 있어요.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다시 우리를 지배합니다. 인생의 거친 파도가 밀려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이 빼앗아갈 수도 없습니다.
지금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평안이었어요. 부활하신 주님이 주신 그 평안 그 평안을 다 받아서 마음에 장착하는 순간 그들을 두렵게 하던 것들, 겁나게 했던 것들, 무서웠던 것들, 그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됐어요. 마음이 평안한데 뭐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된 거예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힘은 평안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그 평안이 오늘 여러분들에게도 저에게도 넘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다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시고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10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버리라 하시니라.
갈릴리가 어떤 곳이에요? 주님의 고향이고 제자들의 고향이고 제자들이 부르심을 받은 곳입니다. 주님의 사역의 3분의 1을 하신 곳이에요. 그리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있었던 곳이며, 또 한 가지 기억해야 될 것은 주님이 살아계셨을 때 말씀하신 곳이에요.
내가 살아난 후에 갈릴리로 간다. 거기서 만나자. 내가 살아나. 그리고 갈릴리로 갈 거야. 거기 오면 돼.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그 순간 충격을 받고 주님의 약속을 잊어버린 거예요. 갈릴리를 잊어버린 거예요. 그리고 거기 안 간 겁니다. 그리고 숨어서 두려워 떨고 있었어요. 그들은 약속을 잊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약속을 잊어버리면 마음에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만약에 그들이 그 주님의 약속을 기억했다면 살아나실 것이다. 약속대로 갈릴리로 가실 것이다. 약속대로. 그러면 예수님 돌아가시자마자 갈릴리에 가서 대기하고 있어야 돼요 싸그리 잊어버렸어요. 주님의 약속은 갈릴리에 있었어요.
그러면 왜 갈릴리인가 왜 하필이면 갈릴리에서 만나고 하셨냐? 예수님 예루살렘에 돌아가셔서 바로 그 기들은 내가 바로 반대편에 묻혔다가 그냥 거기서 부활하셔가지고 즉시 만나주시면 얼마나 한것지고 편하고 좋습니까?
제자들이 저 북쪽까지 갈릴리로 가시도록 하신 거예요. 그래서 이 왜 갈릴리인가 이거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왜 갈릴리로 가라고 하셨을까 제자들의 고향이어서 제자들이 부름받은 곳이니까 거기서 그 옛날 그것을 회상하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주로 사역 갔던 곳이라 아니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있었던 곳. 예수님은 그들만 사랑하기 때문에 거기가 더 소중하니까.
사실 갈릴리는 그런 곳이었어요. 들판은 풍요롭지만 거기는 그 강대국들의 각축전이 이루어졌던 말발국에 짓밟혔던 곳이고 권력자들은 예루살렘에 있었어요. 출세 못한 사람들이 거기 살았어요. 소외된 곳입니다. 그래서 그곳으로 가라고 하셨을까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솔직히 말하면 몰라요. 이건 주님 앞에 가서 한번 여쭤봐야 될 퀘스천 중에 하나예요. 왜 갈릴리에서 만나가지 하셨어요?
이렇게 한번 물어봐야 돼. 여쭤보셔야 돼. 이해가 안 돼 해석만 분분할 뿐이에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거예요. 우린 그것만 기억하면 돼요. 따지지 말고 갈릴리에서 만나자. 그러면 그냥 거기로 가면 돼요.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토를 다는 습관이 있어요. 이유를 알고 싶어 해요. 주님 나를 설득시켜주시면 나는 순종하겠습니다. 그렇잖아요. 토를 달아요. 꼭 이해가 되지 않아서 못 믿겠다고 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믿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주님 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냥 주님이니까 그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주님의 마음이고 주님의 결정이고 주님의 약속입니다. 그게 중요한 거예요. 그냥 그 말씀을 믿고 따지지 말고 거기 가면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뭐냐? 여러분 신앙생활은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뜻이 이해되지 않아도 액면 그대로 믿는 거예요. 굉장히 무식한 얘기 같죠. 굉장히 영적인 얘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따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은 내 좁은 두뇌로 다 이해가 되는 건 아니에요. 어떤 부분은 이해되지만 많은 부분은 내 이해를 초월하는 거예요. 믿음이 뭐냐 이해되지 않지만 주님이 말씀하셨으니 따르겠나이다. 마리아에게 내가 이 성령으로 잉태하리라 이해되지 않지만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리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아들이 잉태되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그걸 어떻게 이해합니까? 말도 안 되는 얘기지 그게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주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지막 교부였던 어거스틴은 나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 이해하고 믿는 것이 아니라 이해돼서 믿는 게 아니고 믿어보니 이해가 되더라.
이거 많은 일들이 그래요. 사실 믿음 말고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금 내가 나한테 지금 당장 부딪히는 일이 이해가 안 되는 게 많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하나님은 왜 내게 이런 일을 허락하셨을까 나는 받아들일 수 없어.
그런데 시간을 지나서 보면 하나님 맞구나 그래서 이 일을 허락하셨구나 이렇게 고백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짧은 편견과 이해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순종하면 이해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제자들처럼 주님의 말씀을 믿고 갈릴리로 달려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부활 주님을 만날 수가 있어 부활 주님을 만난 제자들의 인생은 변화됐습니다.
여러분 변화 설교의 목적이 뭐냐? 변화입니다. 설교를 잘 들었어 우리 설교학에서 하는 얘기예요. 설교의 마지막 목적이 뭐냐 변화 체인지 잘 들었어요. 막 은혜롭게 듣고 오늘 막 감동도 받고 은혜 받았다고 막 이렇게 또 인사도 하고 나갔는데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런 그렇게 감동을 받고 안 변하는 게 기적이에요. 변화가 일어나야 돼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결과가 뭐냐 인생이 변화해야 되는 겁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말씀대로 갈릴리로 갔고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거기서 만났습니다. 그 만남은 그들의 인생을 완전히 뒤집어 놨어요. 변화 정도가 아니고 완전히 뒤집어버렸어요.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은 이런 폭발력이 있습니다. 인자로 주님이 오셔서 3년 동안 계시는 동안 제자들은 주님과 동거동락을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어요. 수천 명, 수만 명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웠고 감동을 받았지만 금방 자연인으로 돌아갔어요. 뭔가 일을 낼 것 같았는데, 소수 말고는 다 그냥 자연인으로 돌아가 버렸어요. 그들은 다짐하고 맹세했지만 결국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쳤어요. 결정적인 순간에 하지만 갈릴리에서 부활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인생이 뒤집어져 버렸어요.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거예요.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그 속에서 일어난 거예요.
예수를 만난다는 건 그런 변화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맨날 교회만 왔다리 갔다리 하고 밖에 나가서 아무 변화가 없다. 수십 년을 믿어도 변화가 안 되는 인간들이 있어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주님을 만나지 못했던 지 그 사람이 엄청난 사람이요. 변화 안 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있어요. 부활 주님을 만나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분에게는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폭발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부활,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헌신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부활.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주님을 위해서 죽기로 결단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초대교회의 기둥이 됐고 12사도가 됐습니다. 그전에 며칠 전 그 사람과 이 사람이 같은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부활 주님을 만난 다음에 그들은 그렇게 인생이 바뀌어버렸어요. 우리도 한 번은 뒤집어져야 되지 않겠어요. 맨날 교회를 왔다 갔다 하고 저도 이제 60년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믿었으니까 그 조금 더 됐네요. 아이 뒤집어져도 어려서부터 이렇게 수도 없이 수십 번은 뒤집어졌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도 여기 이제 1년 된 분도 있고 10년 된 분도 있고 어떤 분은 평생 믿은 분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부활절마다 부활 주님을 찬양하고 막 칸타타를 드리고 부활을 축하하고 그런데 변한 게 없어.
그럼 부활 주님을 고백은 했는데 뭔가 변화가 일어나야 될 거 아니에요? 주님을 못 만난 거예요. 그냥 종교 행위만 한 거예요. 신앙생활은 영적 실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살아계신 줄 믿으십니까? 주님이 부활하셨다고 믿으세요? 그 부활 주님이 지금 이 자리에 함께하신다고 믿으세요? 그럼 우리 인생이 변해야 되는 거예요.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됐는데 하나도 변한 게 없어 더 이상해져 주님을 만나지 못한 겁니다.
여러분 기왕 예수 믿는 거 한번 이 주님을 만나 이 파워풀한 주님을 만나서 이 생명이 넘치는 주님을 만나가지고 그냥 확 한 번 뒤집어지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어요? 젊을 때는 모르지만 사람이 오래 살다 보면 진짜 중요한 가치가 뭔지가 보여요. 20대 때는 이게 가치 있고 30대 때는 이걸 추구하는 가치 있다고 보지만 인생의 황운역을 향해서 갈수록 본질을 붙잡습니다. 그때 남는 게 진짜예요. 그때 후회하지 않는 게 뭐냐? 내가 기왕 예수 믿었는데 그 부활 주님 만나서 한번 내 인생이 뒤집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평범하게 평안하게 별일 없이 오래 사는 것도 괜찮아요. 그것도 감사한 일이에요. 그것만도 그러나 한 번 내 인생이 확 하면 뒤집어져 가지고 말이죠. 진짜 크리스찬답게 정말 후회 없이 한 토막이라도 살아본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부활 주일은 부활하신 주님의 사건을 기억할 뿐 아니라 그분을 인격적으로 다시 직면하는 날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런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