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수행!!!
번뇌가 뭔지 모르면 사실상 불교 수행을 하는게 불가능합니다.
해탈이란 번뇌에서 벗어나는 걸 말합니다.
그러므로 불자들께서는 반드시 번뇌가 뭔지 아주 잘 알아야 합니다.
불교 수행이란 번뇌를 없애는 것인데,
그 번뇌를 모른다면 어찌 번뇌를 없애는 수행을 하는게 가능하겠습니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번뇌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쳐부셔야할 적인 그 번뇌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일반 중생들은 번뇌가 뭔지 전혀 모릅니다.
불교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알게 되지요.
"아, 그간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고 사랑했던게 번뇌로구나" 라는 것을요...
부처님 가르침 만난다는게 그야말로 <백천만겁난조우>입니다.
이런거 그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겁니다.
불교를 만나서야 알게되는 것들입니다.
불교를 만나서야 자신의 불행의 근원인 번뇌를 버리기 시작하는 것이니까요.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
번뇌가 뭔지 아래의 부처님 말씀에 잘 나와 있으니, 아주 자세히 보고 잘 이해하십시요.
아래에서 <오염원>이 바로 <번뇌>입니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마음의 오염원들인가?
탐욕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분노가 마음의 오염원이다.
원한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위선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무자비가 마음의 오염원이다.
질투가 마음의 오염원이다.
인색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속임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못된 꾀(사기)가 마음의 오염원이다.
완고함(고집)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격정(격앙)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교만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거만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자만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부주의(방일/게으름)가 마음의 오염원이다.
이러한 번뇌들이 자신을 괴롭게하고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기에 버리는 것 입니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탐욕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탐욕이라는 마음의 오염원을 버린다.
'분노가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분노라는 마음의 오염원을 버린다.
'원한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원한이라는 마음의 오염원을 버린다.
'위선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위선이라는 마음의 오염원을 버린다.
'무자비가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무자비가 마음의 오염원을 버린다.
'질투가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질투라는 마음의 오염원을 버린다.
'인색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인색이라는 마음의 오염원을 버린다.
'속임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속임이라는 마음의 오염원을 버린다.
'사기가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사기라는 마음의 오염원을 버린다.
'완고함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완고함이라는 마음의 오염원을 버린다.
'격정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격정이라는 마음의 오염원을 버린다.
'교만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교만이라는 마음의 오염원을 버린다.
'거만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거만이라는 마음의 오염원을 버린다.
'자만이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자만이라는 마음의 오염원을 버린다.
'부주의가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알아 부주의라는 마음의 오염원을 버린다."
번뇌란 무엇인가? 맛지마니까야 옷감의 비유 경 해설. 사진 : pinterest.co.kr
화내는게 번뇌이고,
질투가 번뇌입니다.
아셨죠?
인색함도 번뇌요,
잘난척도 번뇌며,
고집부림도 번뇌이고,
게으름도 번뇌입니다.
이런 것들이 나 자신을 아주 괴롭게 만드는 것임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근데 모르잖아요.
모르니까 안 없애는 겁니다.
그래서 알아야 하지요.
번뇌가 나에게 아주 큰 해악을 끼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중생들은 번뇌가 자신들을 이롭게하는 아주 소중한 보물로 여깁니다. 그래서 번뇌를 더더욱 키우고 살아가지요.
이런 이유로 밥먹듯이 화를 내고, 쉴새 없이 질투하고, 인색하고, 고집부리면서, 잘난척하며 살아가지요.
이런거 그 어디에서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로지 불교에서만이 가르치지요.
그래서 불교가 해탈의 종교이며, 출세간의 종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