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미문은 진실을 호도할 위험을 내포한다.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주장, 맛깔나지만 난삽하지 않는 언어의 선택, 물 흐르듯 자연스런 문맥의 흐름을 통해 다 읽고 나서도 왠지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여운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비빔밥에 마지막 넣는 한 방울의 참기름처럼,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맛을 내기 위해서는 각고의 훈련을 거쳐야 한다.
삶에서 빚어지는 슬픔과 외로움을 자기 자신의 체험을 통해 진실하게 그려낸 글만이 감동과 공감을 획득한다. 내면의 깊은 감성을 건드리면서 냉철한 이론의 합일을 이룬다 해도 진실하지 않으면 감동을 주지 못한다. 진실이 담겨 있지 않은 글은 번쩍거리지만, 가치 없는 이미테이션과 다르지 않다. 당장은 화려함에 눈길을 받게 되지만, 곧이어 외면당하게 된다.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는 가치는 ‘진실’이라는 보석이다.
자기만의 빛깔과 향취를 품은 작품을 창작하기 위한 고뇌는 수필 작가의 소명이고 시대를 밝히는 소임이다.
난을 치는 사람에게는 신의 손짓으로 불리고 있는 ‘석파란’이라는 것이 있다.
흥선 대원군이 난을 능란하게 그렸다 해서 그의 호를 따라 ‘석파란’으로 불리고 있는 이 기법은 ‘좌란 삼십 년, 우란 삼십 년’의 각고의 세월을 거쳐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고 한다. 한평생을 바쳐야 이를 수 있는 경지이기에, 범인(凡人)은 감히 도전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삼전지묘(三傳至妙)’의 기법이다.
난 잎이 세 번 자연스럽게 휘어져 돌아가는 모습을 붓으로 묘사해야 하는데, 중요한 것은 마음에 욕심이 있으면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기교가 뛰어나다고 해도 ‘삼전지묘’가 되지 않으면, 난 잎이 아니라 풀잎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필도 자신의 기량을 기교로만 연마하려고 하면, ‘난을 그리려다 풀잎을 그리는 격’이 된다. 완전한 글은 기교를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고심해서 쓴 글은 독자에게 쉽게 읽혀지고, 쉽게 쓰여 진 글은 뜻도 애매해 어려운 글이 되어버리는 이치라고 할 수 있다.
2좋은 글은 평이하게 읽히는 글이다.
현학적인 수사와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관념들을 거르지 않은 채 쏟아놓은 글은, 밤에 쓴 연애편지처럼 조악하고 애상으로 흐르게 된다. 수필은 객관적인 입증을 거쳐 명확함으로 고증되어야 하고, 뜻이 애매하지 않아야 되며, 일관된 주장으로 촌철살인의 명쾌함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 같은 일련의 과정은 끊임없는 훈련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개울에 물이 있을 때와 물이 흐르지 않을 때의 모습은 천지 차이다.
항상 가슴 속에 맑은 물줄기가 흐를 수 있도록 심신을 갈고 닦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러한 훈련을 거듭할 때 자기 수양과 인격의 형성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글은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 남과 공유하는 것이므로, 혼자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아집에서 벗어날 수 없다. 폭넓은 사유와 멈추지 않는 자기 성찰이 있을 때, 좋은 글은 저절로 다가오게 된다.
한 편의 수필을 창작하기 위해서는 작가적인 창의력이 필수요건이다.
글쓰기는 누구나 훈련에 의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창작은 떠오르는 영감 없이는 불가능하다. 늘 멈추지 않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잠자고 있는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그 감흥이 배가되어야 창조의 에너지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