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통합)창원가정어린이집연합회 원문보기 글쓴이: 성산구1지역우등생
어린이집을 바라보는 시선
어린이집을 처음 개원했을 때, 내가 어린이집을 운영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돈 좀 된다지? 어린이집이? 무상보육이잖아! 라고 장애 아이들을 받는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또 이야기한다.
아! 복지사업 팍팍 밀어주니까 장애 아이들이 돈벌이가 된다면서?
장애아 학부모가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말한다.
원장님도 우리 같은 아이들 때문에 돈 많이 버시잖아요.
개원 이래 제대로 된 월급한번 받아간 적 없는 나로서는 이 사람들의 이런 확신 찬 질문이 어디에서 나온 확신인가 궁금했다.
지나서 보니, 언론을 통한 사람들의 세뇌. 어린이집 회계관련 모르는 게 있어서 화성시청 담당 공무원에게 전화해서 문의했다.
질의 내용은 어린이집 운영비가 조금 부족해서 내가 가진 돈으로 차입금을 넣으려고 한다.
차량 할부금이 못나가서 신용거래가 중지된다고 하니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나에겐 시급한 사항이다.
퇴근 5분전 민원상담이라 그런지 그 공무원은 예민하게 쏘아붙였다.
운영을 어떻게 했길래 차입을 항상 넣었다 빼냐고 말이다.
원장 개인 통장도 아닌데 매번 이러시면 곤란하지요.(물론 난 처음 질의한거다.)
그리고 교사인건비, 아이들 급간식비 외에는 차입을 넣을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도대체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 돌아온 답변은 영유아보육법에 있단다
몇항 몇조에 있는지 물었더니 그제서야 권고사항이며 지침이라고 한다.
권고사항, 지침은 법이 아니다.
화성시 8급 공무원이 그 정도도 모를 리 없겠지만, 왜 그렇게 대답하느냐고 상관 바꾸라고 했더니
보건복지부 장관한테는 직접 전화하란다.
이런 민원 통화를 할 때 마다 난 어린이집 운영자의 일인으로 심한 모멸감을 느낀다.
어린이집 원장들이 다 돈이나 가로채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런 시선으로, 편견으로 사람을 보지 마라 이야기하니, 자기는 그런 의도로 이야기한적 없다
도둑이 제발저리냐 한마디도 지지않고 또 응수한다.
화가 나서 일단 용건만 이야기하고 내일 다시 통화하기로 했다.
비단 어제 일만은 아니다. 운영 3년째 매년 한 두 번씩 울분을 삭히는 일이 있다.
지도점검 나올 때도 말이다.
일단 지도점검 오면 수업중이고 애들이 예민하건 다 원장의 핑계일 뿐이라 생각하는 가보다.
수업중 문 벌컥열고 들어가서 여기있는 아이들 이름 선생님자필로 다 쓰라는둥,
수업중인 애들한테 가서 니 이름이 뭔지 묻는둥, 도대체 이게 무슨일인가 싶었다.
애들이 예민해서, 낯가림도 있고, 안된다 제지했더니
다른 원에서 이렇게 해도 막는 사람이 없었는데 나보고 과민반응이란다.
그날 지도점검 끝나고 세시간이 채 안되어 장애아반의 뇌병변 아이가 경기로 구급차에 실려갔다.
화가났다. 민원을 제기했고 사과는 받았지만, “우리도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가
무슨 사과인지. 한심한 공무원들. 학교에서 감사과정에서는 겪지 못한 모멸감.
나는 학교에서만 근무를 하다 내 아이를 위해, 내 전공인 특수교육을 위해 어린이집을 차렸다.
그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어린이집에서의 아동 체벌 사건, 어린이집 보육료 횡령사건, 특수학교에서 아동 학대, 장애인 성범죄,
보육 교사처우에 대해 매일 같이 뉴스에 나온다. 속상하다.
우리원은 안 그래. 난 안 그래. 수없이 외치고 소리 질러 보아도, 이건 내생각일 뿐이었다.
원장님 어린이집의 체벌 동영상이 부모님들 사이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아파트 주민들의 소문이 있어요.
웃었다. 있으면 저도 좀 보고 싶네요. 우리원에서 체벌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행동을 하는 건 저밖에 없습니다.
물론 구차한 핑계일 뿐이지만, 나도 국공립 특수학교에서의 아동 학대에 대해 알고있다.
대학시절 가장 좋은 특수학교에서 실습을 하고 싶어서 내가 고른 학교였다.
그 학교에서 실습을 하고 나왔지만, 여태 교사들이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행동수정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장애아이들을 개처럼 취급하는것은 아닌지,
내가 현장에 있을 때 수없이 나에게 던진 자문이었다.
특수교육에서 배운대로 아이들에게 단호하게 말하는 게 듣는이에 따라서는 협박이 될 수 있고,
특수교육에서 배운대로 부적강화를 제공하는것이 보는 이에 따라, 당사자에 따라 학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되돌아 생각해 봐도, 나는 나에게 훈육을 받고 있는 이 아이를 사랑한다. 바르게 컸으면 좋겠다.
하지만 보는 이들은, 어린이집에 대한 편견이 이토록 만연해 있는 사회에서 그런 내 마음이 읽혀질리 만무하다.
운영초 보건복지부 행정 시스템 개선 과정에서 일부 장애아가 누락되었지만 재 등록이 되지 않았다.
모르고 있던 총정원에 20%만 장애아가 등록 가능한 보건복지부 사업지침을 몰라서 생긴,
우매한 나로 인해 생긴 일이었다.
바보같은 원장을 두었으나, 나의 이런 무지로 인해, 장애아도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구나
하고 반겨주시던 부모님들의 얼굴을 또 눈물 젖게 할순없었다.
그래서 운영위원회를 통해 회의를 하고 등록이 안 된 장애아 3명을 다니게 하기 위해
시간연장반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기로 했다.
그 당시는 영유아보육법 제일 첫 조항, 모든 보육기관은 영유아의 이익이 우선해야 한다.
라는 조항을 실낱같이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운영하는 시간연장반이다 보니, 서류가 딱딱 맞을 리 없었다.
그래서 영유아 보육법 위반으로 2011년 내 보육교사 시설장 자격은 3개월 자격정지를 당했다.
반환금 900여 만원과 함께.
내 나이 당시 32세.
가난한 장애인 아버지 아래 넉넉하지 못한 성장기를 거쳐 4년제 대학을 돈이 없어 매년 장학금으로 일부 부담하고,
조기졸업을 목표로 공부했던 나였기에, 물론 어린이집을 개원할때도 돈이 없었다.
돈이 많은 남자보다, 같은 곳을 보는 남자를 고르는 게 내 결혼의 목표였다 보니,
내 남편도 정신적인 힘은 되어주지만, 경제적인 소소한 도움 외에 큰 도움은 서로가 어려운 일이었다.
900만원의 돈은 내가 마련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태도는, 화성시청공무원의 태도는 일시불 상환하지 않으면 강제집행하겠다.
등의 협박 일관. 바보원장에 대한 눈꼽만큼의 배려는 없었다.
더 놀랬던 것은, 이런 사실을 인터넷에 속상한 마음을 담아 글을 올리자,
나에게 다른 원장들에게 걸려오는 전화와 메일들이었다. 구구절절 속상한 마음을 담았지만,
그분들과 통화하면서 그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아이고 이 원장님이 백번 잘못하셨네.
나랑은 경우가 다르잖아. 같은 생각들 뿐이었다.
진심 보육료를 횡령해놓고도, 자긴 아니라고 억울하다 하소연 하는 꼴이라니.
하지만, 그 모습이 세상 사람들이 보는 나의 모습이겠지.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치며, 깊은 우울감에 빠졌다.
부모에게 운영의 투명성을 제공하기 위해 타 보육시설은 1년에 한 두 번 하는 운영위원회도 꼬박꼬박 열었다.
쓸떼없는 짓이라고 주변 원장님들이 만류했지만,
세상은 바뀌어진다 믿는, 편견은 바뀔 수 있다 믿는 특수교육과 학생 불타는 투쟁의식이 아직
뇌리에 남아있는 탓일까? 여태 멈추지 않은 운영위원회, 노출될수록 인식의 변화는 쉽게 바뀔 수 있다
믿는 신념 때문에, 돈이 없는 이유기도 했지만,
최근까지 우리원은 창문에 썬팅이 없었다. 수업장면이 동네사람들에게 노출이 되고,
아이들의 울음 소리를 듣고 아랫집 가게에서 원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와서 보고 가신적도 있다.
장애 아이들과 있다 보니, 상황에 맞지 않는 말과 놀이를 하는 것을 아이들을 체벌하는 것으로 오인하고
아동학대 센터에 신고를 하겠다는 지역주민의 “관심”도 받아봤다.
(아이가 물놀이를 하면서 한 아이가 “살려주세요”를 외치는 바람에 생긴 일이지만, 부모님들과는 오해가 없었다.)
걷지 못하는 아이와 있다 보니 우리아이가 무서워서 말을 안 하는 것 같다는
20개월 남짓한 아이의 학부모도 만나보았고, 하원 가방 챙기는 사이 아이가
다른 교실에서 놀았다고 교사를 보고 내 아이 안보고 지금 뭐하는 거냐고 쏘아붙이는 부모와 맞짱(?)도 떠보았다.
보육교사들을 인식하는 부모수준이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하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 먹는 약을 오전 간식먹고 먹이고, 점심먹고 먹이고,
오후간식 먹고 먹여달라는 엄마자격이 없는 엄마도 만나보았고,
집에서 실컷 맞 고 온 아이를 보고 부둥켜 안고 펑펑 울다,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있으면
아동학대로 고발하겠다고 학부모를 협박한 적도 있다. (물론 아동학대센타의 상담을 받았다.)
하지만 세상의 편견은, 모두 어린이집 원장, 그것도 민간 어린이집 원장을 향해있다.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화가 나는 순간은, 기사 자체가 아니라 기사에 딸린 댓글이다.
교사처우 안 좋은거, 보육료 횡령하는 것 모두 어린이집 원장주머니로 들어간다는 글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지혜로울까?
2009년 12월 첫 개원이후 하루에 한번 이상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정당에 가입해봤다. 그 당시. 민주노동당.
당원들의 첫 모임에서, 고용주가 왜 민주노동당을 택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나는 잘살고 싶은데, 내가 잘 살려면, 선생님들이 먼저 잘 살아야 하는데,
이놈의 보육교사들은 노동조합도 하나 없다. 사회적인 최 약자. 보육교사.
처음 어린이집을 하면서 정당한 근무시간에 정당한 보수를 약속했는데, 지켜주지 못했다.
늘상 운영적자에 허덕이면서 국공립수준의 인건비는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물론 얼마지나지 않아 교사들도 민간에서는 애초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말해주었고 괜찮다 했다.
힘내라 했다. 고맙다 했다. 내가 더 미안했다.
노동조합을 만들어 보라고 신년 모임 때 마다 말해오길 3년째,
내가 알기론 우리나라에는 아직 보육교사 노동조합이 없다. 교사들에게 노동조합을 만들어 주고 싶다 말했다.
내가 아는 몇 안되는 원장님들의 비난을 받았고, 물론 내 지지층은 극소수라 지금도 외롭다.
보육의 근본은 인권이다.
배울 권리, 먹을 권리, 친구를 사귈 권리, 인간답게 살권리.
하지만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보호받아야할 최약자였다.
이 들의 인권을 지켜주는 것은 현장의 최전방에 있는 교사들이었다.
원장으로서의 나의 역할은 아이들의 인권을 자신의 교권처럼 지켜줄 교사를 만드는 것.
어떻게 해야 보육교사 아닌 스승의 마인드를 가질 수 있을까,
평생을 두고 아이들을 지켜 보는 큰 눈으로, 넓은 시야로 아이들을 볼 수 있을까?
정당한 보수와 정당한 근무시간, 그리고 원내에서 불필요한 신경전을 하지 않는 것..?
이전 근무지였던 학교에서 참 좋으신 교장선생님이 매번 나에게 했던 말씀.
안에서는 칭찬하고, 밖에서는 자랑하면 교사들은 최선을 잘하게 되어있다는.
삶의 지침.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진심을 담은 칭찬.
물론 선생님들의 평가에 따르면 천상 드센 경상도 아줌마의 칭찬기술은 지금도 야박하기 그지없지만,
밖에 나가면 우리선생님들 칭찬 잘해요.
수업도 잘하고, 애들도 잘보고, 얼마나 싹싹한지.
(열 가지를 동시에 해내는 능력이 있어도 어느 것 하나 완벽한 게 없는
내 기준으로 보면 진심 우리 어린이집 교사들은 슈퍼우먼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수많은 어린이집 중에서 우리원 만큼은, 투명하다 믿고
또 그렇게 만들어 가려고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본다.
몰라서 저지른 실수는 있을지라도 알고 저지는 만행은 없도록 말이다.
교사는 삶을 통해 모범이 되어야 한다 믿는 바보 같은 개똥 철학 때문에.
물론 주위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어떤 것이 정답일까? 어떻게 해야 하지. 수없는 내 고민. 장애인 아버지는,
내가 특수교육과를 선택했을 때 그러셨다.
아빠 보면서 지겹지도 않니? 00 들을 가르치는 것은 쓸 떼 없는 일이다.
아빠는 입이 삐뚤어져서 능력에 맞는 취업도 안 되고, 형제들도 비웃고, 동네사람들도 손가락질 한다.
사회가 그런 사회인데, 니가 어쩌려구. 돈도 없고 백도 없는 니가..
한 학기를 고민하다. 아빠에게 쓴 긴긴 답장에는, 겁 없이.내가 세상을 바꾸겠다 했다.
세상의 편견에 대항해 내가 세상을 아빠도 살만한 세상으로 바꾸어 놓겠노라 약속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대학을 졸업해, 여기까지 왔다.
편견에 대항하는 일. 내 가치관을 타인에게 전하는 일,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
지금도 믿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먼저 구분하고 할 수 있는 일 부터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지치지 않게 실천하면 된다 지금도 믿는다.
힘들 때 마다 내 핸드폰으로 들어오는 어린이집 매매전문 김실장들의 문자를 보면서
수없이 쓸떼없이 흔들려도 보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장사를 할 것인지, 장수를 할 것인지의 고민은,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보면서 접었다.
어린이집에 교사는 스승이 될수없다고 하지만, 혹여나 이 아이들이 초등학교 가는 길목에서
나를 보고 인사해준다면, 중학교 가고 고등학교 가서도 ‘내가 다니던 어린이집이야.
’ 혹은 아이를 낳아 데리고 와서 ‘아빠가 다니던 어린이집이야’ 라고 찾아왔을때,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늙은이같은 생각을 하며 장사대신 장수를 택하기로 마음을 접었다.
하지만, 서른넷의 톡톡 쏘아대는 하이톤의 목소리를 가진
(어제 공무원의 발언, 갑상선이 없어서 뒤끝이 길어졌다. 예민해졌다 믿을란다.)
경상도 바보원장에게는 참 끝도 안보이고, 답도 안 보인다.
어린이집 부실 운영을 비난하던 화성시 공무원처럼, 도대체 언제 정상화 시킬거냐고 묻는 질문 앞에 상처를 받고,
내가 생각해도 운영적자는 한 번에 메울 방법이 없다.
도무지 앞이 안보이고, 끝도 안 보인다.
내 삶은 지쳐가는지, 아니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4년동안 속병 앓이가 심했는지
올3월 갑상선 암 진단도 받아 얼마전에 수술을 받고 방사선치료를 앞두고 있다.
갑상선이 없으면 예민하다던데, 내 성격이 예민해진것은 아닌지 어제 공무원과의 언쟁이 밤새 나를 괴롭힌다.
같은 곳을 바라보자 하던 남편은, 한창 힘들 때, 시설장 자격박탈로 타 시설에서 밤늦게까지 치료수업을 하며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바둥대는 때에 사정을 아는 한 학부모님이
후원금으로 내 통장으로 몰래 넣어주신 100만원을 일말의 고민도 없이 돌려드리는 나를 보며, 속상해 했다.
길다면 긴 4년간의 여정에 조금씩 곁길을 가고 싶은지도. 나도 아직도 답을 모른다.
어린이집에 대한 편견과 싸우는 일, 그래서 나도 직장여성이지만,
어떻게 해야 애를 낳으면 쿨 하게 ‘어린이집에 보내면 되지, 왜 잘나가는 일을 그만둬!’ 라고
말해도 세상의 나쁜 엄마라는 비난을 안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오후 2시가 되면 주교사는 오롯이 수업준비와 기타 서류업무만 하고
종일반교사가 출근해 나머지 시간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바르게 훈육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아프리카의 속담처럼 우리마을 전체가
아이를 키우는 일을 온 동네 사람이 관심을 갖고 팔 걷어 붙이고 함께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어린이집 원장을 바라보는 도 둑 놈 색안경을 벗길 수 있을지.
세상 사람들은 말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계란을 수만, 수 십 만톤 지원해줄 사람들이 내편이라면 가능하지도 않을까? 바보같다.
보육 현실의 편견에 대한 진정한 답은 아직도 못 찾았다.
파랑새처럼, 그저 그 답은, 하루에 한번 날 보고 웃어주는 아이들의 웃음일 뿐이라는 동화 같은 믿음밖에는~~~~
첫댓글 정말 가슴이 먹먹해 지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