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환·최재성·최민식·조재현의 공통점은? ‘매력있는 배우?’ ‘잘나가는 스타?’. 일단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정작 앞에 따라 붙어야 할 수식어는 따로 있다. 바로 끊임없이 리바이벌되는 화제의 연극 <에쿠우스>에서 ‘앨런’역을 맡았다는 사실이다.
1975년 ‘극단 실험극장’이 초연해 국내 최초 1만 명의 관객을 모았고, 장기 공연을 통해 소극장 운동의 시발점이 된 <에쿠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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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구연 기자 |
| 이 연극을 말할 때는 반드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이어령 교수로부터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신동”이라는 극찬을 받은 ‘초대 앨런’ 강태기(56)씨가 그 주인공이다.
제24회 경남연극제 심사위원으로 참가해 현재 김해에 머무르고 있는 강태기씨를 만났다. 경남연극제가 시작된 지 3일째 되던 지난 22일. 김해문화의 전당 로비에 등장(?)한 강씨는 간편한 캐주얼 복장에 운동화와 모자 차림이었다. 모자를 벗자 손질되지 않은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마산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경남 지역에 지인들이 많아요. 그래서 여행도 겸해서 한 달에 1~2번 꼴로 옵니다. 일전에 천상병 시인 역을 맡았을 때는 그분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마산 시내를 돌아본 적도 있습니다”라며 인터뷰에 응했다. 이틀 간 연극을 관람한 소감부터 물었다.
“좋습니다. 서울과 지역이 평준화되고 있는 느낌이에요. 서울과는 달리 전문배우가 많이 부족하다는 한계 때문에 프로근성이 떨어지는 느낌도 있지만, 연극에 임하는 태도와 열정은 대단하더군요. 오히려 서울을 능가하는 것 같아요”라고 찬사를 보냈다.
“전문배우 부족하지만 연극에 임하는 태도 좋아
그러면서 ‘배우’라는 직업의 고달픔은 지역이나 서울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연극배우협회 이사직을 맡고 있기도 한 강씨는 지난해 문광부로부터 15억~16억원의 지원금을 따냈다고 한다.
“실력 있고 나이가 든 배우들은 출연료가 높아요. 그래서 제작비 때문에 잘 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런 분들은 무대에 설 기회가 줄어들고, 기회가 줄다보니 연기 수업도 못하게 되죠. 그렇게 도태되고 녹이 스는 겁니다. 이런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원로배우들에게 한 달에 50만~60만원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재 서울에만 1100명의 배우가 등록되어 있습니다. 등록되지 않은 배우들이 아마 더 많을 거예요. 특히 지역에서는 미등록 비율이 더 많을 겁니다. 이 중에서 실력 있는 분들을 발굴해 다양한 지원사업을 벌일 계획도 있습니다.”
‘배우’들의 어려운 현실을 이야기하는 도중 “배우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라는 ‘우문’을 던지고 말았다.
그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질문이 부끄러웠지만 대답은 시원했다.
“삶을 그려내는 역할을 해야 하잖아요. 그렇게 하려면 거짓이 없어야 해요. 배우가 진실되지 못하면 관객은 연극을 외면합니다. 배우의 진실은 노력한 만큼 나타납니다. 얼마나 작품분석을 치밀하게 했고 그에 따라 어떻게 해당 인물에 몰입하느냐, 곧 ‘배우의 진실’입니다. 아무리 배우가 뛰어나다고 해도 관객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배우의 거짓은 여과 없이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문제는 배우의 진실은 어떻게 획득되는가인데… 저는 후배들에게 먼저 인간이 되라고 합니다.”
그는 자연과 친해지고 사람 곁에서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생활하는 것, 그것이 곧 ‘사람되기’의 기본이라고 덧붙였다. 그와 함께 있는 동안 내내 “…참 재미있어요”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참 재미가 있어요”라는 말 앞에 붙는 단어를 포착할 수 있었던 건 시간이 좀 지나서였다. 그 단어는 다름 아닌 ‘연극’이었다. “연극만큼 재미있는 게 없어요”라는 말에서 수십 년을 무대에서 보내온 중년 연기자의 여유와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원로배우 발굴 지원사업, 지역까지 확장할 계획”
“에쿠우스를 공연할 때였어요. 그때 삼각팬티만 입고 연기를 했잖아요. 그런데 안기부에서 공연을 하지 말라고 하데요. 어이가 없는 건 둘째 치더라도 그 이후의 일이 가관인데… 삼각팬티가 너무 야하니까 사각 반바지를 입으라고 하잖아요. 어떻게 합니까. 삼각팬티 대신 반바지를 입고 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죠. 하하하.”
1970~80년대라는 질풍노도의 시절과 90년대 이후의 ‘포스트모던’한 자본주의 시대를 거치며 무대를 오르내린 그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가난한 배우’다. 그는 그가 출연하는 연극이 돈이 될 때도, 돈이 안될 때도 언제나 무대에서 웃고 울었다.
단지 돈의 많고 적음을 따져 그를 ‘가난한 배우’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연기에 배고프다는 것이 ‘가난한 배우’의 첫 번째 이유고, 아직도 서고 싶고 가지고 싶은 무대가 많다는 것이 ‘가난한 배우’의 두 번째 이유이며, 예술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우가 열악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 ‘가난한 배우’의 세 번째 이유다.
무대에서의 폭발할 듯한 카리스마가 무대 밖에서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편안함으로 변한 듯했다. 별다른 가식도 없었다. 그리고 ‘까놓고’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까놓고 말해서 배우가 배우들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제가 이렇게 심사위원을 맡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안 맞아요. 연출에 따라 배우의 특징에 따라 연극은 변하는 거죠. 다만 최대한 ‘좋은 작품’이 수상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별다른 수가 있겠습니까? 하하.”
사람좋은 털털한 모습이던 강태기씨는 연극을 관람키 위해 공연장으로 들어갈 때 순간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번쩍 하고 불꽃이 튀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과연 착각이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