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 좀 떨 게요 ㅎㅎ
전 요즘 영어를 대충 읽는 습관을 고쳐보고자 뒤늦게 영문법을 공부하고 있는데, 얼마 전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영어가 주어 다음에 바로 동사가 나오는 언어잖아요. 예를 들어 ‘나는 수원에 갈 것이다.’라는 문장을 영어로 만들면, 먼저 주어 ‘I’를 쓴 다음 ‘will go’를 붙여 ‘I will go~’ 이런 식으로 가잖아요. 그런데, 그 다음에 수원 앞에 우리 말에 없는 전치사가 옵니다. 여기서는 to를 붙여 ‘I will go to Suwon.’ 이라는 문장을 만들어야 하겠지요.
이와 다르게 ‘나는 수원에 산다’에서는 to가 아닌 in이 붙어 ‘I live in Suwon.’ 이라는 문장이 완성됩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이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고민해보지 않았는데, 전치사가 달라지는 원인은 주어, 그러니까 화자가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로부터 파생되었다고 하네요.
‘수원에 간다’에서는 수원을 화자가 ‘점’으로 보아 방향을 나타내는 ‘to’를 쓴 것이며, ‘수원에 산다’에서는 수원을 ‘3차원의 공간’으로 인식하여 ‘in’을 쓴 것이죠. 이와 동일한 맥락으로 I am ‘at’ the airport에서는 화자가 공항을 점으로, I am ‘in’ the airport에서는 공항을 3차원의 공간으로 인식하여 사용한 말이라고 하네요. 시간전치사, 다른 추상화 수준이 높은 전치사 모두 공간을 나타내는 전치사로부터 파생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삶에 스며든 공간의 영향력이 매우 크네요.
학교 다닐 때 워낙 공부와 먼 삶을 살아서 영어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는지 모르겠으나, 이를 처음 알게 된 저로서는 놀라운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말의 조사 ‘에’를 이렇게 다양하고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볼 때, 영어는 공간에 대한 인식론이 매우 발달한 언어인 듯합니다.
지리교육 또한 at(지점이나 구획), to(위치나 방향), on(접촉), across(이동이나 교류), in(존재나 삶) 등 공간 앞에 다양한 전치사를 동반합니다. 어쩌면, 지리교육은 특정한 공간에 대한 학생들의 심적 표상을 at이나 to에서 in으로 전환시키거나, 학습자들의 생활공간을 더 넓은 맥락에서 다른 at이나 to들과 연결시켜 주는 것을 도와주는 과정이기도 하지 않을까 하는 무협지식의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모든 곳이 그러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처음 두드렸던 학교도 이곳도, 앞으로 방문할 그 어떤 곳도...
첫댓글 선생님의 통찰력 놀랍습니다. 맨날 지리만 생각하시나 봐요. 전치사에서도 지리를 찾으시고..
그런데 질문이 있어요.
이와 동일한 맥락으로 I am ‘at’ the airport에서는 화자가 공항을 점으로, I am ‘in’ the airport에서는 공항을 3차원의 공간으로 인식하여 사용한 말이라고 하네요. 시간전치사, 다른 추상화 수준이 높은 전치사 모두 공간을 나타내는 전치사로부터 파생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문단은 이해가 되는데, 이 문단은 잘 이해가 안되네요^^;; 제 짧은 지식에 도움을 좀 주시죠~~
지리에 대한 애정이 태동샘만이야 하겠습니까^^ 부족하나마 답변을 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너 어디에 있어?’라는 질문에 흔히 ‘공항에 있어’라고 답변을 하지요. 조사 ‘에’에는 화자와 공간의 관계가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에 공항과 맺은 화자의 관계는 청자의 몫이 되지요. ‘공항에 있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어떤 청자는 공항을 점으로 표상하여 공항의 위치를 떠올리고, 어떤 청자는 공항을 3차원의 공간으로 인식하여 공항 안에 있는 화자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영어는 우선 ‘나(I) 있어(am)’라고 말한 다음, 화자가 공항을 나름의 방식으로 인식하여 적당한 전치사를 가지고 옵니다.
그래서 화자와 공간의 관계가 우리말보다 명시적으로 드러내게 되죠. ‘at’을 쓰면 공항을 점으로 인식하여 ‘나의 위치는 공항이다. 그럼 됐지’ 정도로 전달하는 것이고, ‘in’을 쓰면 ‘나 지금 공항 안에 위치하여 그곳을 돌아나다고 있다’는 식으로 자신과 공간이 맺고 있는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나태내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간전치사가 공간전치사로부터 유래한 것은 시간이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형체를 지닌 실체로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시간적인 것을 공간적인 것으로 치환하여 상상합니다. 이에 따라 전치사 역시 공간전치사가 거의 비슷한 맥락으로 따라오게 됩니다. 다시 ‘to’로 예를 들자면, to는 어느 지점을 향해 가는 것이기 때문에 미래 앞에 붙습니다. ‘내 삶은 노년을 향해 가고 있다.’는 ‘My life goes “to” old age.’가 되는 반면, ‘난 지금 유년시절을 뒤돌아 보고 있다’는 ‘I am looking “back” on my childhood.’가 되어 뒤를 나타내는 공간전치사 ‘back’을 소환하게 됩니다.
to가 추상적인 영역으로까지 확대된 것은 to부정사의 목적을 나타내는 부사적 용법(맞나? 그렇게 부르나?)을 떠올리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지리를 공부하기 위해 산다’를 영어로 옮기면 ‘I live to study geography.’가 되는데, 이때 study 앞에 붙은 ‘to’는 특정한 방향으로의 지향을 나타낸고 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화자의 의지가 담겨 있지요. 그래서 동사를 to부정사나 동명사로 바꾸어 주어로 쓰는 경우, 화자의 의지가 담겼을 때는 to부정사로 객관적인 것을 나타내는 경우에는 동명사를 쓰는 것이 좋은 영어라고 하네요.
지리적 감수성 있다면, 영어도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주장을 해 봅니다. 특정한 공간을 향해 가는 모습을 표현할 때 필요한 to가 그곳을 넘어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든 것으로 볼 때, 인간은 분명 호모지오그라픽쿠스입니다.
선생님 설명이 정말 자세해서 영어 공부를 하는건지, 지리 철학을 공부하는 건지 모를 정도입니다.
정말 감사해요.
그런데
나는 공항에 있어. 이걸 영어로 하면 I am at the airport 라고 쓸 것 같아요. in the airport 라고 쓸 수 있는지 전 이걸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특정 장소에 놓일 때, 공항이라는 장소를 초점으로 말할 때는 at the airport 라고 쓰는 게 영어에서 정해놓은 게 아닌가요?
재미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