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풍령 휴게소 차승호(1962년~)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으면 추풍령 휴게소에 가야 한다. 낙타를 타고 서울방향 경부선 길을 가다보면 사람 그리워지는 순간 있다. 그런 순간이 오면 추풍령 휴게소에서 멈춰야 한다. 오래된 고속도로 완공탑과 늙은 원두막이 전부인 추풍령 휴게소. 초 행이어도 낯설지 않다. 당신은 이미 가수 배호의 노래 한 자락에 길들 여졌으므로. 사시사철 가을바람만 부는 추풍령 휴게소. 구부정한 원두막 난간에 낙타를 매고 의자에 앉는 순간 제일 먼저 엽서를 쓰듯 문자를 하고 싶 은 사람, 전화를 걸어 대구와 김천 날씨를 얘기하며 오늘 컨디션이 어 떤지 묻고 싶은 사람 있다면 그 사람이 결국 사랑하는 사람 아닐까. 당신은 지금 누구를 사랑하는가? 버석거리는 세월의 담요를 털고 게으른 낙타에 안장을 얹어 당신은 어디쯤 가고 있는가? 추풍령 휴게 소는 멀다. 사무실 유리창에 비친 저녁 햇살 등에 지고 터벅터벅 타클 라마칸 사막을 건너는 당신은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가? ■감상: 누군가 술을 먹다 “지금 당신은 누구를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우스갯소리로 “아내만 빼놓고 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아내가 밉거나 꼴 보기 싫어서 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아내는 아내다. 때로는 아내가 엄마가 되고 여자가 되고 딸이 되기도 한다. 이런 말에 대한 논리성 없는 변명을 해 본다면 아내를 하나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 없을 뿐더러 사랑이라는 단어로 묶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첫눈이 내리면 가슴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랑’이 있다. 그 대상은 실체가 없어 만지지도 못하고 바라볼 수도 없다. 그냥 마음 한쪽에 자라잡고 있는 허상 같은 것이다. 실체가 있었다면 이렇게 긴 시간 마음에 품지도 못했을 것이다.
시인은 추풍령 휴게소에 가면 알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곳에 간다고 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시인도 이미 실체가 없는 대상을 향한 마음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분명이 존재하고 보인다면 시인은 휴게소에 가지 않아도 사랑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대상이 없기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에 목이 멘다. 그게 운명과 같이 인간이 품은 변하지 않는 사랑이다.
| | | ▲ 김희정 |
◇<미룸에서 만난 詩>는 김희정 시인의 안내로 시 한 편 감상하는 코너입니다. 미룸은 미(美) + 룸(Room) =아름다운 방이라는 뜻이 담겨 있고, 순순 우리 말로는 미루다(어떤 일을 미루고 삶의 여유를 찾아보자) 이런 뜻도 있습니다. 김희정 시인은 2002년 < 충청일보> 신춘문예, 2003년 <시와정신>에 당선돼 문단에 나와 시집으로 <백년이 지나도 소리는 여전하다>, <아고라>, <아들아, 딸아 아빠는 말이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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