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스트
Sophist 诡辩者
소피스트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에서 수사법, 웅변술, 토론과 설득의 기술을 포함한 각종 지식을 가르치던 세속적 사상가들이다. 원래 소피스트는 현명한 사람이라는 뜻이었지만 훗날 이상한 논리를 펴는 궤변가(詭辯家)로 잘못 알려졌다. 소피스트들은 페르시아 전쟁(Greco-Persian Wars, BCE 492~BCE 479) 이후 안정과 번영을 누리던 아테네에서 출현하여 중세까지 존재했다. 그런데 소피스트들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비판으로 인하여 진리가 아닌 현실적 이익을 추구하는 선동가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소피스트는 현대 사회의 변호사, 정치가, 교사, 기술자의 역할을 하는 등 여러 층위의 지식인을 지칭하기 때문에 단순화하여 지식 장사꾼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 소피스트는 고대 그리스어 ‘지혜를 좋아하는 사람’인 소피스테스(σοφιστής, sophistḗs)의 영어식 어휘다. 소피스테스는 ‘현명하게 되다(σοφίζω, sophízō)’에 명사형 어미(-τής, -tḗs)가 붙은 것으로 ‘현명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소피스트의 어원 소포스(σοφός, sophós)는 지혜, 소피스테스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지혜는 심오한 철학적 지혜가 아닌, 기술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호머는 ‘탁월하게 뛰어난 아레테(ἀρετή, aretḗ)’를 지혜라고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술은 지식, 지혜, 현명으로 바뀌었다. 이런 언어적 변화에서 보듯이 페르시아 전쟁 이전의 소피스트는 지혜로운 사람, 현명한 교사, 뛰어난 기술자, 박학한 지식인이었다. 그런데 소피스트는 페르시아 전쟁 이후 이상한 논리를 주장하는 사상가였고,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궤변가로 바뀌었다. 당시 소피스트들은 단정하고 현실에 필요한 지식을 강조했다. 아테네를 중심으로 여러 곳을 옮겨 다니던 그들의 교육방법은 수사법, 웅변술, 처세술, 토론과 설득의 기술을 비롯하여 의술, 산수, 기하학 등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것이었다. 소피스트들은 왜 이런 교육을 했을까?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BCE 479년 이후, 아테네에는 낙관적 전망과 번영의 기운이 감돌았다. 오랜 전쟁을 거치면서 인간의 실존을 중시하는 인간중심주의가 대두했고 신중심주의가 약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삶에 직접 도움이 되는 실용적 지식이었다. 한편 아테네는 직접민주주의가 발달했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설파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소피스트들이 출현한 것은 이런 사회적 상황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렇다면 현명한 지식인이라는 긍정적 이름이 세속적 지식 장사꾼이라는 부정적 이름으로 바뀐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것은 소피스트들이 경험에 근거한 감각적 지식을 우선하면서 객관적 진리, 보편적 원리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의 대가로 명성을 얻고 재화를 받았기 때문에 부정적 평판이 증가했다.
소피스트들은 절대적 진리, 보편적 원리, 영원불변한 본질을 부정했다. 그 대신 상대적 진리, 특수한 원리, 일시적 본질을 인정했다. 모든 것을 인간의 관점에서 상대적으로 보면서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했다. 소피스트들은 (객관적 진리나 원리가 없기 때문에)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대중들의 환심을 샀다. 당시 활동했던 소피스트의 대표적인 사람은 프로타고라스와 고르기아스다. 플라톤은 [대화] <프로타고라스>에서 프로타고라스를 비교적 호의적으로 묘사하면서 그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를 인용했다. 이 말은 인간 자체 가치와 의미 즉 상대성을 강조한 것이다.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BCE 490?~BCE 420?)에 의하면 신이 아닌 인간이 우주자연의 중심이다. 프로타고라스는 개인적 상대성(Individual relativity)을 강조했다. 그의 이런 태도는 ‘신은 만물의 척도다’를 부정한 것이다.
고르기아스(Gorgias, BCE 483?~BCE 376)는 회의주의의 관점에서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설령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인식할 수 없으며, 인식하더라도 설명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의 관점은 존재론적 회의주의였다. 언어인 로고스를 강조하여 수사학에 기여한 고르기아스 역시 인간중심주의와 상대주의의 관점을 취했다. 그 밖에 트라시마코스(Thrasymachus), 히피아스(Hippias of Elis), 프로디코스(Prodicus) 등 수 많은 소피스트들이 있다. 소피스트가 교묘한 말장난으로 대중을 현혹하는 지식의 장사꾼으로 오인된 이유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을 비롯한 주류 철학자들의 비판 때문이다. 이데아의 세계에 절대적 본질, 보편적 원리, 불변의 진리가 있다고 믿었던 이들에게 소피스트는 세속적 교사, 선동적 사상가일 뿐이다. 하지만 소피스트의 학설은 논리학, 수사학, 철학, 웅변술, 정치학을 비롯한 여러 영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김승환)
*참고문헌 Plato's Protagoras, translated by B. Jowett, Gutenberg Project.
*참조 <고르기아스>, <물리주의>, <민주주의>, <소크라테스>, <소피스트의 출현>, <수사법[프로타고라스]>, <영원불변한 세상[파르메니데스]>, <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은 만물의 척도>, <인식론>, <절대⦁상대>, <존재론>, <플라톤>, <피타고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