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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 이제민의 시에 차운하다 11수 〔次李西澗□□韻 十一首〕
불 때는 시루 위에 앉아 있는 듯 살갗에 땀이 질펀할 적에 홀연히 아름다운 시를 읊으니, 이에 상쾌하여 옥으로 양치하여 얼음물을 마시고 맑은 바람이 두 겨드랑이에 부는 듯하였습니다. 어찌 백붕지석(百朋之錫)일 뿐이겠습니까. 고마운 뜻을 헛되이 저버릴 수가 없으므로 거칠고 졸렬함을 헤아리지 않고 삼가 차운하여 돌려보내니, 한 번 보고 웃기를 바랍니다.
악한 이를 미워하는 것은 공신을 흠모하였고 嫉惡欽公信
허물 들으면 기뻐하는 것은 중유를 사모하였네 喜聞慕仲由
시대를 바로 잡는 데 무슨 계책 있겠으며 匡時寧有策
고을을 다스림에 꾀할 일도 없다네 莅縣自無猷
삼생 동안 정처 없이 떠도는 병 있어 雲水三生癖
십 년 동안 전원으로 돌아가기를 도모하였네 田園十載謀
진실로 재주가 매우 졸렬함을 아니 固知才拙甚
미관말직도 일찍이 부끄럽지 않네 微宦不曾羞
남쪽 고을의 수령이 되어 南州作守宰
친구와 둘이 담소 나누었지 偶與故人談
술 마시니 노쇠한 뺨은 붉어지고 把盞赬衰頰
시 읊으며 쇠한 수염을 쓰다듬네 吟詩攢老髥
모든 일에 거칠고 게으른 것 가련하나 自憐疎懶最
오히려 성은의 깊음에 기뻐하였네 猶喜聖恩覃
한 번 작별에 다시 회한을 더하니 一別還添恨
안부 편지에 답장을 하지 않으랴 肯違叩鴈龕
꿈은 끊겨 쇠한 봉황을 노래하고 夢斷歌衰鳳
마음은 어긋나 상서로운 기린 위해 울었네 心違泣瑞麟
매번 귀악에 뜬 달 바라보고 每看龜嶽月
길이 석계의 봄을 점치네 長占石溪春
약초 재배하니 향기는 아직도 남아 있고 蒔藥香猶在
책을 뒤지니 말은 절로 펼쳐지네 披書舌自伸
대단하도다, 그대가 세상의 그물을 벗어나 多君超世網
꽃 언덕에서 윤건 비스듬히 쓰고 지내시니 花塢岸綸巾
쓸모 있는 재능 오랫동안 헛되이 던져두니 利器長虛擲
어느 때에나 재주 펼칠 것인가 騁才定幾時
뒤늦게 홍진의 길 험함에 놀라 晩驚塵路險
일찍이 공자의 문하에서 대답하였네 早對孔門唯
가슴속의 말은 옥가루 같고 玉屑胷中語
붓으로 쓴 시는 봄 구름 같네 春雲筆下詩
명성 빛난 후에 만나 보더라도 會看名照後
어찌 비석에 공적을 새길 필요 있겠는가 何必勒勳碑
나에게 후사가 없다고 말하지 말게 莫謂我無繼
벽돌을 가지고 노는 아이가 있다네 弄甎有小兒
황제의 은혜를 어떻게 보답할까나 皇恩何可報
백성 기르는 일 어찌 하찮다 말하겠는가 字牧豈云卑
시냇물은 정자 앞에서 모이고 溪水亭前合
병산은 비온 뒤에 아름답네 屛山雨後宜
밭의 푸성귀에 보리밥 차려 먹으니 園蔬供麥飯
오히려 관아에서의 굶주림 면하였네 猶免在官饑
일찍이 한강에서 曾於漢水上
자리 함께하니 기뻐 두 눈썹 펴졌네 一席展雙眉
외로운 이전 모습 그대로이고 孤露依前樣
청고한 옛 위의는 완연하였네 淸高宛舊儀
남쪽 하늘 별은 흩어진 지 오래고 南天星散久
북쪽 변방 기러기는 더디게 나네 北荒鴈飛遲
이런 날 정은 오히려 친밀해지니 此日情猶密
그대 같은 이 다시 누가 있을까 如君更有誰
그대는 도의가 넉넉하고 道義君能富
나는 기구함을 홀로 근심하네 嶔崎我獨憂
어지러운 구름은 악현에서 피어오르고 亂雲花嶽縣
가을비는 강가의 모래톱을 깊이 감추네 秋雨蕫江洲
말 타고 가면서 읊조리니 유유자적한데 吟鞭要自適
아름다운 만남 어찌 도모하기 어려운가 佳會詎難謀
다만 늙음 재촉하는 나이를 한스러워하니 祗恨年催老
서로 만나면 흰머리만 빛나겠지 相逢照白頭
퇴락한 관청은 산기슭에 기대어 섰고 殘館依山麓
뜰의 소나무는 높이가 몇 층이나 되나 庭松高幾層
옛 동산은 꿈속에서 절로 기억하고 故園夢自記
구황 정책은 졸렬하니 어찌 능하겠는가 荒政拙何能
눈이 어지러우니 자주 술 생각나고 攪眼頻思酒
시를 읊조리며 억지로 지팡이 옮기네 哦詩强寫藤
마음 한가로우니 대은과 같아져서 心閒同大隱
관청이 마치 시골집과 같네 公舍似村塍
우물 가 오동나무 모든 잎 떨어졌고 井梧一葉落
가을 기운은 그윽한 흉금 상쾌하게 하네 金氣爽幽襟
앞 들녘의 시내는 비단을 나눈 듯하고 練分前野水
먼 산봉우리는 비녀를 꽂은 듯하네 簪揷遠山岑
북극성은 볼수록 더욱 멀고 北極看逾迥
남쪽 구름은 생각할수록 더욱 깊네 南雲思轉深
한 해가 지금 다시 다하니 一年今更盡
차가운 다듬이 소리 차마 듣겠는가 忍聽報寒砧
낙동강은 해구와 접하였는데 洛江接海口
강가에 나의 집이 있다네 江渚有吾廬
서호에서 학을 기르는 것과 같고 養鶴西湖似
율리에서 문을 닫은 것과 같다네 關門栗里如
주묵을 갈아 십 괘에 점을 찍고 硏朱點十卦
여러 책 뒤지며 옛일을 논하네 論古對群書
평소의 마음 지금 저버리니 宿心今剩負
반평생 동안 헛된 명예에 힘썼네 半世役名虛
나라에 어려운 일이 많기도 하여 王室比多難
무신이 대관을 거느리네 武臣摠大官
임금의 조서가 오늘 이르니 璽書今日至
유새는 어느 때에 닫힐런가 楡塞幾時關
오활한 선비 홀로 단심 간직하고 迂儒心獨赤
근심스런 얼굴로 옛 단심을 새롭게 하네 愁頰改舊丹
끝내 무슨 일로 분개하는가 憤惋終何事
턱을 괴고 푸른 산을 마주하네 支頤對碧巒
원운을 붙임
이서간(李西澗)
가하도다 병산의 수령이여 可是屛山守
고상한 담론 백유와 같네 高談似伯由
소매에는 나라를 빛낼 솜씨 숨기고 袖藏華國手
마음속에는 백성 구제할 계책을 감추었네 肚閟濟屯猷
뜻을 크게 하여 벼슬 한 뒤에 志大宦居後
재주만 높이고 도는 도모하지 않았네 才高道不謀
지금까지 운명의 현달함을 미워하였으니 從來憎命達
남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지 말게 莫作向人羞
백유(伯由)는 조종도(趙宗道)의 자이다.
어제 귀산각에서 昨日龜山閣
술잔 들고 소소한 얘기 나눴지 把杯作小談
나는 새로 난 흰머리를 탄식하였는데 吾嗟新雪髮
그대는 아직도 옛날의 검은 수염이었지 君尙舊烏髥
벼슬길은 재주 펼치기 어려운데 雲路才難展
뇌봉의 교화는 이미 미쳤네 雷封化已覃
오래된 약속 저버리지 않는다면 宿期如不負
절을 찾아 이야기 나눌 수 있겠지 可叩道禪龕
굽은 가지 양지쪽에서 봉황 울고 枳屈鳴陽鳳
숲에는 상서로운 세상의 기린 숨어있네 林藏瑞世麟
몸을 단속함에 맑기가 물과 같고 律身淸似水
은혜를 보니 따뜻하기가 봄과 같네 照惠暖如春
겨우 재주 펼칠 수 있으니 祗可才隨展
도를 펼치지 못한다고 어찌 싫어하랴 何嫌道未伸
산 남쪽과 물 북쪽에서 山南與水北
머지않아 윤건을 씻을 것이네 早晩洗綸巾
타고난 바탕은 증자와 같아 天質同參也
남명 선생에게 입설하였네 南冥立雪時
세 가지를 살펴 스스로 반성할 줄 알았고 省三知自反
하나로 꿰뚫는다 하니 또한 능히 대답하였네 貫一亦能唯
재주 많은데 학문까지 겸했고 多藝兼聞道
문장에 능한데 시까지 잘 짓네 能文又善詩
선정의 명성 많은 입에 오르내리니 政聲銘衆口
어찌 비석을 세우겠는가 何用豎螭碑
처음 낙사에서 만났는데 刱逢于洛社
구미에서 다시 보았네 重見在龜眉
빼어난 시구는 사람의 간담을 놀라게 하고 秀句驚人膽
고상한 담론은 사람들의 위의를 진작시켰네 高談振群儀
문장은 능히 숨기지 않는데 文章能不閟
현달함은 유독 어찌 더딘가 宦達獨何遲
끝내 그 종지를 얻은 자는 終得其宗者
이 사람이 아니면 그 누구겠는가 非斯人在誰
만약 크고 작음을 논한다면 若將論小大
지금의 위치 누가 뛰어난가 地步孰能優
서간은 나의 호이고 西澗爲吾號
병산은 그대의 고을 屛山是子州
나는 세상을 구할 계책이 없으나 我無干世策
그대는 시대를 구제할 계책이 있네 君有濟時謀
막역한 교우는 물과 같으니 莫逆交如水
백발이 될 때까지 서로 기약하네 相期到白頭
[주1] 이제민(李齊閔) : 1528~1608.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은(景誾), 호는 서간(西澗)이다. 1552년(명종7) 사마시를 거쳐, 1558년(명종13)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조 정랑, 양주 목사를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대사간ㆍ대사헌을 맡아 국론을 조정하여 국가를 안정시켰다.
[주2] 백붕지석(百朋之錫) : 고대(古代)에 패각(貝殼)을 화폐로 사용할 때 오패(五貝)를 일관(一串), 양관(兩串)을 일붕(一朋)이라고 했는데, 전하여 백붕은 많은 보화에 비유된다. 《시경》 〈소아(小雅) 청청자아(菁菁者莪)〉에 “무성하고 무성한 쑥이, 저 구릉 가운데 있도다. 이미 군자를 만나고 보니, 나에게 백붕을 준 것 같도다.〔菁菁者莪 在彼中陵 旣見君子 錫我百朋〕”라고 하였다.
[주3] 공신(公信) : 공신은 백이(伯夷)의 자이다. 《논어주소(論語注疏)》에 “백이(伯夷)는 성이 묵(墨)이고 이름은 윤(允), 일설에는 원(元)이다. 자는 공신(公信)이며, 백(伯)은 맏이라는 뜻이고 이(夷)는 시호(諡號)이다. 숙제(叔齊)의 이름은 지(智), 자는 공달(公達)인데 백이의 아우로 제(齊)는 시호이다.”라고 하였다.
[주4] 허물 …… 사모하였네 : 중유(仲由)는 공자의 제자로,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이다. 자는 자로(子路)이며, 용감하기로 이름났다. 《맹자》 〈공손추상(公孫丑上)〉 “자로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허물을 말해 주면 기뻐하였다.〔子路 人告之以有過則喜〕”라고 하였다.
[주5] 삼생(三生) : 전생(前生)ㆍ현생(現生)ㆍ후생(後生)을 말한다.
[주6] 쇠한 봉황을 노래하고 :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광인(狂人) 접여(接輿)가 난세(亂世)에 도를 행하려고 애쓰는 공자를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공자의 곁을 지나면서 노래하기를 “봉이여, 봉이여. 어찌 그리도 덕이 쇠했느뇨. 지나간 일은 탓할 수 없지만 앞으로의 일은 고칠 수 있으니, 그만둘지어다, 그만둘지어다.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은 위태로우니라.〔鳳兮鳳兮 何德之衰 往者不可諫 來者猶可追 已而已而 今之從政者殆而〕”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微子》
[주7] 상서로운 …… 울었네 : 노 애공(魯哀公) 14년에 서쪽으로 사냥하여 기린을 얻었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의하면, 기린은 인수(仁獸)로서 왕자(王者)가 있으면 나오고 왕자가 없으면 나오지 않는 것인데, 공자가 기린이 나오지 않을 때에 나와서 잡혀 죽은 것을 상심하여 “누구를 위해서 나왔느냐, 누구를 위해서 나왔느냐.”라고 하면서 소매를 들어 눈물을 닦았다고 한다.
[주8] 병산(屛山) : 현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의 옛 이름이다.
[주9] 대은(大隱) : 대은(大隱)은 중은(中隱)이나 소은(小隱)과 달리 참으로 크게 깨달아 환경에 구애받음이 없이 절대적인 자유를 누리는 은자(隱者)를 말한다. 《문선(文選)》 〈반초은(反招隱)〉 주(註)에 “소은은 산속에 숨고 대은은 저자 거리에 숨는다.〔小隱隱陵藪 大隱隱朝市〕”라는 말이 있다.
[주10] 서호(西湖)에서 …… 것 : 송나라 때 은자인 임포(林逋)는 서호의 고산(孤山)에 은거하여 20년 동안 성시(城市)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으며, 서화와 시에 능하였는데 특히 매화시가 유명하다. 장가를 들지 않아 처자 없이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며 즐기니, 당시에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하였다. 《宋史 卷457 林逋列傳》
[주11] 율리(栗里) : 동진(東晉) 때 고사(高士) 도잠(陶潛)의 고향으로, 강서성(江西省) 성자현(星子縣)에 있다. 《南史 卷75 陶潛列傳》
[주12] 유새(楡塞) : 산해관(山海關)의 별칭으로, 유현(楡縣)에 있으므로 유관(楡關)이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북쪽 변방 요새를 가리킨다.
[주13] 병산(屛山) : 현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의 옛이름이다. 이로는 병산 현감을 지냈다.
[주14] 뇌봉(雷封) : 작은 고을의 수령을 뜻한다. 사방 100리 정도 되는 고을이 현(縣)인데, 천둥이 치면 그 소리가 100리쯤 진동한다 하여 현령(縣令)을 뇌봉이라고 하였다.
[주15] 양지쪽에서 봉황 울고 : 《시경》 〈대아(大雅) 권아(卷阿)〉의 “봉황새가 우네, 저 높은 언덕에서. 오동나무 자라네, 해 뜨는 동산에서. 무성한 오동나무 숲과 봉황새 소리 어울리네.〔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 菶菶萋萋 雝雝喈喈〕”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덕이 출중하여 조정에서 직언을 하며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인사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주16] 입설(立雪) :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송나라 유작(游酢)과 양시(楊時)가 처음 정이(程頤)를 찾아갔을 때 마침 정이가 눈을 감고 앉아 있으므로 두 사람은 인기척을 내지 않고 밖에 서서 기다렸다. 정이가 눈을 뜨고서는 “아직까지 있었는가. 우선 나가서 쉬라.”라고 하므로, 문을 열고 나오니 밖에는 그 사이 눈이 한 자 가량이나 쌓였다고 한다. 《宋史 卷428 楊時列傳》
[주17] 세 가지를 …… 알았고 : 증자가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살피나니, ‘남을 위하여 도모함에 마음을 다하지 못했는가? 벗과 사귐에 미덥지 못했는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히지 못했는가?’라는 것이다.〔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라고 하였다. 증자는 이 세 가지로 날마다 자신을 살펴 다스렸다고 한다. 《論語 學而》
[주18] 하나로 …… 대답하였네 : 공자가 이르기를 “삼아, 우리의 도는 하나로써 관통하느니라.〔參乎 吾道一以貫之〕”라고 하니, 증자(曾子)가 “예.” 하고 대답했는데, 공자가 밖으로 나간 뒤에 다른 문인이 증자에게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증자가 이르기를 “부자의 도는 충서일 뿐이다.〔夫子之道 忠恕而已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里仁》
[주19] 낙사(洛社)에서 만났는데 : 낙사는 보통 한양에서 벌어진 시사(詩社)나 주연(酒宴)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이로가 비안 현감으로 부임해 있을 적에 낙동강 근처에서 만난 것을 두고 한 말인 듯하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저는 송암 이노 선생 13대손 입니다
관심 가져 주신데 고맙게 생각합니다
선생님!
저 폰번호는 010-2033-1987이고요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송암선생께서 비안현령으로 재임하시는 동안의 행적을 찾아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