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219) 시시(時時) 생각하니
중앙일보 입력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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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시시(時時) 생각하니
강강월(생몰연대 미상) 시시 생각하니 눈물이 몇줄기요 북천(北天) 상안(霜雁)이 어느 때에 돌아올꼬 두어라 연분이 미진(未盡)하면 다시 볼까 하노라
-병와가곡집 |
누구에겐 독(毒), 누구에겐 향(香)
강강월(康江月)은 18세기 평안도 맹산의 기생으로, 널리 알려진 시조 두 수를 남긴 빼어난 예인(藝人)이었다.
이런 시인이 님을 잊지 못해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북쪽으로 날아간 기러기가 다시 돌아오면 떠나간 님도 오시려나.
인연이 아직 다하지 않았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슬픔을 못 이겨 울고 또 울다가 체념에 이른 것일까?
그녀가 남긴 시조 한 수를 마저 읽는다.
기러기 우는 밤에 나 홀로 잠이 없어 /
잔등(殘燈) 돋워 켜고 전전불매(輾轉不寐) 하던 때 /
창밖에 굵은 빗소리에 더욱 망연(茫然)하여라
그리움에 잠 못 이루는 밤,
꺼져 가는 등잔불을 돋워 켜고 이리저리 뒤척이는데
창밖에 굵은 빗소리마저 들리니 아무 생각 없이 멍할 따름이다.
예나 지금이나 가슴 아픈 그리움은 많은 명시들을 낳기도 했다.
고통은 고통 자체로는 괴롭지만
견디고 다듬으면 예술이 되기도 한다.
누구에게는 독이지만,
누구에게는 향이 되기도 하니 우리네 삶의 오묘함이여.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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