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맞는 재의 수요일이지만 이를 맞이하는 느낌은 매년 같지 않다. 아마도 마음에서 털어내지 못하고 남은 개운치 않은 앙금의 분량에 따라 달라지는 듯하다.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사순 시기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다가오는 부활 축제를 충실하게 준비하는 기간으로 거룩하게 지내야 마땅하다. 하지만 파스카 축제 때까지 건너야 할 고비가 곳곳에 놓여 있다. 우선 재의 수요일 첫 날부터 금식과 금육재를 지켜야 한다. 어쩌다 보니 금식재는 관면을 받는 처지가 되었으나 금육재는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한다니 대략난감이다. 그런데 하필 재의 수요일 당일 고기를 먹을 약속이 잡혔으니 이를 어쩐담?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 약속이 자연스레 미루어졌으니 이는 올 사순 시기를 무사히 지나가라는 성령의 도우심이 아닌가 짐작하며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감사의 성호를 긋는다.
이렇게 첫 번째 고비를 무사히 넘기며 앞으로 남은 사십 일을 이것 한 가지만 지키기로 다짐한다. 그건 바로 복음서에 나오는 유명한 황금률의 逆(역)을 지키는 것.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 황금률을 역으로 풀이하자면... "네가 싫어하는 것을 남이 너에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도 남이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아라."
재의 수요일 미사에서 사제는 신자들의 머리에 재를 얹으면서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 하여라." 또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고 말한다. 올해 우리 신부님은 간단하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고 하신다. 지난 세월 동안 내가 싫어하는 것을 남이 나에게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남이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별 생각없이 한 잘못을 회개하는 게 올 사순 시기 나의 첫째가는 다짐이다.
재의 수요일 다음 날인 오늘 아침부터 내린 눈으로 온 천지가 하얗다. 아직도 내 마음에서 털어내지 못하고 남은 개운치 않은 앙금이 있다면 이 눈으로 하얗게 덮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황금률의 역을 지키려는 나의 회개와 다짐이 파스카 축제 때까지 무사히 넘어갈 수 있기를 하얀 눈을 맞으며 두 손 모아 빌어본다.^^
첫댓글 좋은 글과 사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성가단장님. ^^-
신부님, 감사합니다.
기쁜 부활 맞을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