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하늘나라의 별이 되신 달도 4월이다. 4월이 내겐 더욱 잔인하고 슬픈 달이 되었다.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그해에 처음 가침박달 나무 꽃을 만났다.
가침박달 나무 꽃이 핀 범박골 번들에는 한겨울 흰 눈이 쌓인 듯, 고향 집 앞마당 빨랫줄에 널린 하얀 이불 홑청처럼 그저 하얗기만 했다.
하얀 수건을 쓰고 쌀풀 냄새 풍기며 서걱서걱 소리를 내는 앞치마를 입은 어머니처럼 화려함도 없이 나를 안아 주는 것 같았다. 화장사로 가는 언덕길을 천천히 걷는다. 입구에서부터 온통 순백으로 어머니의 하얀 앞치마가 널려 있는 듯 황홀했다. 온 세상이 다 환해 보였다.
대웅전 앞마당에 도착했다. 절 마당 텃밭에 스님이 혼자 앉아 고추 모종과 가지 모종을 심고 있었다. 밀짚모자 밑으로 보이는 스님의 뽀얀 얼굴에는 가침박달꽃 같은 미소가 연신 보인다. 오늘보다 미래를 더 생각하는 자비의 미소 같았다. 내 어머니도 그러셨다. 몸이 부서져라 힘들게 일을 하셔도 자식들 입히고 먹일 것을 생각하면 언제나 행복하다고 했다. 고추 모종을 웃으며 심던 스님의 모습에서 그리운 어머니 모습을 보았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하얀 광목 앞치마를 입고 부엌에 계신 모습과 흰 수건을 쓰고 붉은 고추가 주렁주렁 달린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천 평이 넘는 밭에 가득한 고추를 키우시느라 발에 무좀이 생겼을 정도였다. 밭에 풀을 뽑고 소독하고 발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결국 어머니의 발은 모두 헤져서 퉁퉁 부어올라 신도 신지 못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셨지만 그해 여름이 끝날 때까지 고추밭 일을 하고 또 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스님을 올려다보았다. 뽀얀 스님의 피부는 가침박달꽃을 똑 닮았었다. 그저 순수하고 깨끗해 보였다. 마지막 가지 모종까지 심고 힘겹게 일어서는 스님은 힘들어 보였지만, 얼굴의 환한 미소는 잃지 않고 있었다. 스님의 행복한 얼굴을 보면서 아무리 힘들고 바쁘셔도 책만 손에 들고 있으면 심부름도 시키지 않으셨던 어머니 얼굴이 환하게 다가왔다. 나 같이 땅 두더지처럼 힘들게 일하는 사람 말고 조금 더 편안한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하시던 그 어머니가 깨끗한 깨침꽃 위에서 나를 보고 계신 듯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침박달꽃의 은은한 향기가 코끝에 와 닿았다. 흰 광목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부엌에서 나오시는 내 어머니의 가슴에서 나는 젖 냄새와 밥 냄새 같았다. 나는 어머니가 분 바르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저 여인들에게서 흔하게 나는 화장품 냄새가 아닌 우리 어머니만의 향기로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는 없지만 엄마 냄새는 참 좋았다. 가침박달 나무 꽃의 향기가 그랬다. 크게 자극적이지 않고 진하지도 않으며 바람결에 살짝살짝 느껴지는 향내였다.
초록 숲에서 일어나는 잔잔한 바람에 일렁이는 가침박달 나무 꽃은 흰 앞치마를 벗지도 못하고 광주리에 들밥을 이고 논둑길을 부지런히 걷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이 나풀대는 것 같았다. 흰 수건을 머리에 쓴 어머니의 모습처럼도 보였다.
난 가침박달꽃을 보면서 어머니를 생각했다. 집안일과 밭일이 아무리 고달프고 힘드셔도 우리만 보면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바람에 나풀대는 꽃은 어머니의 미소처럼 느껴졌다. 가침박달 나무 꽃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슬픔에 빠져있을 때 향기로 나를 안아 주고 위로해 준 꽃이었다. 그 깨침꽃이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다시 한번 깨우쳐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침박달꽃은 봄의 경지를 깨닫고 불교의 최고경지인 깨달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어머니의 깊은 사랑이 더 크게 느껴졌다. 어머니의 영원한 사랑과 형제간 우애를 잊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어머니가 보고 싶고 그리울 때는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화장사의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꽃잎처럼 하얀 앞치마를 입은 어머니를 생각하고 물을 길어 올리는 나비 떼 같은 가침박달 나무의 꽃을 생각하며 하얀 꽃과 향기가 춤추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