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햇살이
바람에 일렁거리는 논밭에서
하루 일을 끝마치고
하얀 연기 피어나는 집으로 돌아가려는
늙은 농부의 얼굴엔
행복이 그려져 있었는데요
"젊은 스님….
그리 걷다가 똥구멍에 해 받치겠소"
"좀 태워 주시겠습니까?"
"얼른 탔슈"
그렇게
소달구지에 몸을 실은 젊은 스님은
이마에 흐른 땀을 소매 끝으로 말리며
고슬고슬 내리던 봄비가 머물다 간
산과 들녘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쉬어가던
그때
어디서 풍겨온 똥내가 진동해
이리저리 살펴보던 젊은 스님의 눈에
똥지게를 어깨에 메고 가는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들어오는 게 아니겠어요
"어휴…. 냄새"
똥이 길바닥에 흘리는 것도 모르고
앞만 보고 가는 남자에게 선뜻 말을 걸긴
뭣했는지
"길가에 똥을 흘리면 어쩌자는 거요
다른 사람 생각도 해야잖소"
젊은 스님은 달구지에 앉아
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했는데요
" 잘 안 들리나 본데 스님께서 가셔서
말해 보시는 게 어떻겠소?"
"그러죠…."
젊은 스님은 거칠게 없다는 듯
당당하게 걸어가더니
"아니…
똥을 길바닥에 흘리면 어떡해요"
그 말을 들은 남자는
피씩 웃음을 짓더니 보란 듯이 갈지자로
걸으며 여기저기 똥을 더 흘리며 걸어가는
모습에
" 스님 이리 오슈
이 노인이 한번 말해 보리다."
늙은 농부는 달구지에서 내려
험상궂게 생긴 남자의
귀에 대고 몇 마디 건네고는
태연히 돌아 와 달구지에 앉자마자
앞서 걸어가던 남자가
똥물이 길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젊은 스님은 늙은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뭐라고 말씀하셨길래
망나니 같은 저 사람이 저리도
얌전해진 겁니까?"
"난 그냥 내 마음을 말한 것뿐이외다"
냄새가 너무 심해 이 늙은 농부가
많이.힘들다는 별말 아닌 말에
포악한 남자의 행동이 바뀐 게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젊은 스님에게
"스님은 그 사람의 행동을 지적했고
이 늙은이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말한
차이를 아직도 모르겠소?"
남의 행동을 지적하기 보다
내 마음을 먼저 말하는 게 좋은 행동으로
이끄는 방법이란 걸
뒤늦게 깨우친 젊은 스님에게
"아이의 나쁜 버릇을 고친다고 매를 들면
그 행동은 멈출 순 있지만
좋은 행동으로 이끌 순 없는 것과
같은 거지요"
라고 말하곤
껄껄 웃고 있는 늙은 농부에게
"어디서 그런 지혜를 배우신 겁니까?"
"스님은 부처님이 스승이지만
저에겐 세월만 한 스승이 없더이다"
"오늘 어르신과 똥에게 한 수 배웠습니다"
절이 있는 산으로 올라가기 위해
달구지에서 내린 스님은
길에 떨어진 똥을 보며
두 손 모아 합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찮은 것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살겠노라며…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첫댓글 "세월만 한 스승이 없더이다"
그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