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할 수 없는 분홍의 밑줄
-김분홍 시집 ‘눈 속에 꽃나무를 심다’
1
노란 원피스의 시집을 펼친다. 아지랑이 서체로 가득한 김분홍 시집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시집을 관통하는 분위기는 노랑이지만 시들이 품고 있는 향기는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시집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언뜻 드는 느낌은 사유의 전복과 욕망의 변주이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본 사물에 대한 사랑이고 신선한 감각으로 잘 포장된 욕망이다.
사람의 얼굴은 그 표정에 따라 강아지상과 고양이상으로 분류한다. 김분홍 시인은 단연 고양이상이다. 따뜻하고 살가운 강아지가 아니라 도도하고 시크하고 차가운 고양이 말이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얼굴 표정이 아니라 시의 표정이다. 시집의 얼굴과도 같은 첫 시를 대면하면 그 말뜻은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저 지우개는 고장 난 시간
저 단추는 자물통의 비밀번호
저 무늬는 빗소리
저 율동은 언덕을 오르는 당나귀
저 주름은 음모가 많은 가방
저 배경은 버려진 우물
저 뒷모습은 봄날의 의자
저 향기는 눈구멍만 뚫린 복면
-「원피스」전문
시는 일상 너머의 언어로 일상을 재구성한다.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보편적 감정을 시적 언어로 재구성한 것이라 그 표정은 무궁무진하다. 흔히 떠오르는 원피스의 이미지는 아름답고 상냥하고 조신한 여인상이다. 하지만 시인이 생각하는 원피스는 이와 상반된 이미지이다. 그것은 고장난 시간이고 음모가 많은 가방이며 버려진 우물이다. 이 돌연한 상상이 시의 재료이며 자물통의 비밀번호이다. 눈구멍만 뚫린 복면처럼 예측 불가능한 사유의 전복이 시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다.
귀를 잘랐어
피어싱을 한 귀
수족관에는 잘린 바다의 귀가 자라지 귀가 자라면 전복이 자라지
수평선에 걸린 노을이 꿈속과 꿈 바깥의 절취선을 용접하고 있지 전복의 진주광택에 음각된 파도소리는 몇 톤일까
귀가
그리움이라서
제 귀를 자르는 바다
-「전복」부분
수족관의 전복들을 바라본다. 꿈틀거리는 모습이 동이근을 가진 귀와 닮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귀는 피어싱을 한 흔적 같다. 그러고 보니 전복에는 귀뿐 아니라 이빨도 있고 내장기관도 있다. 감각을 득한 파도소리는 바다의 귀로 흘러가 그리움이 된다. 결국 귀를 자른다는 것은 그리움을 잘라내는 것이다. 시인이 시를 쓰는 행위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눈이 멀어야 득음을 하듯 전복의 청력에서 갈매기 소리를 적출해야만 시(詩)의 피어싱은 완성되는 것이 아닐런지.
2
손바닥을 펼쳐본다어디선가 발원한 길은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고손바닥엔 길의 흔적이 선명한데지금 탑승한 기차는 감정선일까 운명선일까 아니면 생명선일까손바닥에 새겨진 손금은앞서 살다간 사람이 지우지 못한길의 노선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내 손바닥에 새겨진 운명선을, 나 아닌 누군가가 대신 살고 있는 느낌 -「내 손바닥 속 추전역」부분
시인은 지금 기차를 타고 인생이라는 여정을 달리고 있다. 어디선가 발원한 길은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고 손바닥엔 길의 흔적이 선명하다. 그런데 그가 탑승한 기차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출발역도 모르는데 경유하는 역은 또 어디인가. 그런데 왜 하필 추전역일까? 추전역(杻田驛)은 강원도 태백에 위치한 간이역이다. 역사의 위치가 해발 855m로 철도역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지금 시인은 손금의 노선을 따라 인생의 가장 높은 고지를 향해 무작정 달리고 있는 것이다. 내 손바닥에 새겨진 운명선을, 나 아닌 누군가가 대신 살고 있다는 이 느낌. 내 안의 욕망을 조금만 내려놓는다면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욕망은 가벼워요 허공을 흔들어 놓고 사라지는 연기처럼 욕망이 피어오르고 있어요 나를 구불구불한 길에 가두고 있어요 나는 불길이 되어 가요
···중략···
한 방향을 고집하는 풍차와 한 사람만 생각하는 나는 취향이 같습니다 저 풍차는 아찔했던 순간들을 몇 번이고 견뎌 냈겠죠 멈추지 않고 풍경을 돌리고 있는 풍차의 시간은 굴절입니다
-「아지랑이 서체」부분
하지만 욕망이란 그리 간단치가 않다. 만약에 우리 맘속에 욕망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죽음과도 같다. 아니 죽음에도 욕망이 존재한다. 누구나 욕망의 덧없음을 말하지만 모든 욕망을 내려놓기는 불가능하다. 한 방향을 고집하는 풍차나 한 사람만 생각하는 나 역시 지독한 욕망을 욕망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시인이 욕망의 도피처로 선택한 것은 풍경이다. 풍경은 있는 그대로의 욕망을 드러낼 뿐 욕망으로 꿈틀거리진 않는다. 김분홍 시에 유독 풍경에 대한 언급이 많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의 유년시절을 대표하는 풍경이 바로 다락방이다.
다락방에는 북극성이 없고 지킬과 하이드가 없네 다락방에는 술병의 솟구침이 없고 낮달의 환멸이 없고 성경책의 논리가 없고 엄마의 잔소리가 없고, 담배의 조언이 없고, 무지개의 오독이 없고 아홉 시의 환청이 없고 약봉지의 눈물이 없고 나도 없고 아버지도 없는데 실제로 있어야 할 나도 없고 실제로 있었던 어제의 아버지가 없네 다락방은 있지만 없네 있지만 없는 것처럼, 없지만 있는 것처럼, 다락방은 있지만 없네 모두 떠나고, 없네
-「없다」부분
다락방엔 희망이 있고 비밀이 있고 상상이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돌이켜보면 꿈은 사라지고 상실감만 남아 있다. '있다' 보다 '없다'를 생각하는 게 더 편하다. 북극성도 없고 지킬과 하이드도 없다. 저급한 욕망이지만 술병의 솟구침도 담배의 조언도 사라져 버렸다. 삶이라는 현실적 욕망이 앞을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욕망의 주체이자 욕망의 대상인 다락방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욕망의 대타자인 아버지의 부재는 존재 자체의 의미를 상실한다.
3
시인은 필명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왜 필명을 분홍이라 했을까. 분홍이야말로 에로스적 욕망을 그대로 드러낸 상징이 아니던가. 시집의 제목인 '눈 속에 꽃나무를 심다'도 마찬가지다. 꽃들은 대개 붉다. 장미가 그렇고 동백이 그렇고 칸나가 그렇다. 제 생의 가장 화려하고 열정적인 순간은 레드이다. 하지만 김분홍의 시에서 핑크빛 기류를 찾기는 쉽지 않다. 설령 그 기류를 감지하더라도 사물과의 관계로 치환되기 때문에 아둔한 머리로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분홍은 빨강과 노랑의 혼합이다. 섞임이고 스며듬이다. 하지만 김분홍 시인은 스며들지 않는다. 한사코 섞이기를 거부한 시인이 선택한 색은 오히려 노랑이다.
누군가 당신의 눈 속에 꽃나무를 심는다
온몸에 꽃나무가 뿌리를 내린다 노랗게 꽃이 만개한다 꽃이 만개할수록 당신은 의식을 잃어 가는 횟수가 잦아진다
당신은 서서히 병아리가 되어 간다 어쩌다 당신은 병아리가 되었을까
병아리가 깃털 속에 머리를 묻는다
뭉쳤다 흩어지는 땀에 젖은 깃털
뻣뻣했고 무거웠고 추웠다
- 「몸에 핀 개나리」부분
표제작에 해당하는 시 구절 '눈 속에 꽃나무를 심다' 에서 시인이 택한 색깔도 노랑이다. 노란 꽃나무는 개나리이고 개나리는 병아리로 치환된다. 마침내 당신은 서서히 병아리가 되어 간다. 황달이 들어 누렇게 변한 당신의 눈을 바라보는 심정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중환자실에 누워 의식을 잃는 횟수가 많아져도 곁에서 바라보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은 차라리 악몽이다. 중환자실에 피어 있는 개나리엔 노란 피가 흐르지 않는다고 탄식할 뿐이다.
4
김분홍 시인이 줄기차게 사용한 시적 기법은 언어유희이다. 언어유희란 발음은 같거나 흡사하지만 의미가 다른 단어들을 이용하는 말장난으로, 그 출발은 언어의 청각적 효과를 근거로 언어에 대한 진지한 태도에서 시작된다. 김분홍 시인이 사용하는 언어 역시 단순한 수사나 말장난에 그치지 않고 사회를 통찰하는 시적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광장은 조롱의 서식지, 지친 자들에게 쉽게 날아든다
조롱에 갇힌 새를 보면새의 발목에 편지를 매달아 이 세상에 없는 아이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은데
아이들의 주머니 끈에 매달려있던 조롱이 내게로 날아온다
단식 농성하는 사람들 앞에서굶은 사람들을 피자로 조롱하면조롱이 조롱한 자에게 부메랑이 되어 날아간다
-「조롱에 관하여」부분
단식농성 중인 세월호 유족을 조롱하며 그 곁에서 피자를 먹는 인간의 잔인함을 경고한다. 조롱이 조롱한 자에게 부메랑이 되어 날아간다. 누가 자유인이고 누가 사유의 조롱에 갇힌 구속인 인가. 조롱은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언어유희이지만 그것이 시사하는 사회적 의미는 묵직하다.
인간의 기억은 유한하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기억을 보존하려 한다.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위령탑을 세운다. 시인들은 시를 써서 아픔을 몸속에 새겨 넣는다. 오래토록 4,19로 기억되었던 사월이 이제는 세월호 참사로 각인된다. “사월의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질 때, 사월의 장미가 레드카드를 꺼낼 때, 방은 배제된다. 내가 탑승한 방이 내게서 탈주하고 있다”「사월의 방」 오랜 세월이 흐르면 세월호도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질지도 모른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기억의 탈주이다.
미래는 밀애의 오독 내가 철봉에 매달릴 때 당신은 뿌리 없는 외발이 전부죠
구름은 무거워지고 싶을 때 외발을 감춰요
철봉과 나는 수직이라서
쇄골에 접혔던 밤을 펼친 철봉은 내 몸을 휘감고 나는 오늘밤도 철봉에 매달려요
구름이 피 묻은 손가락으로
하늘에 밑줄을 그어도 철봉은 상대를 바꿔가며 표지뿐인 이불을 넘겨요 내 몸이 뜨거워질수록 철봉은 차갑게 식어가요
거절당할수록 쌓여가는 집착
펼쳐보고 뒤집어보고 돌려봐도 당신은 퇴고할 수 없는 나의 밑줄
-「리아트리스」부분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바라보는 세상은 정상적이지 않다. 미래는 밀애의 오독이 되기도 한다. 거절당할수록 쌓여가는 집착일 뿐이다. 욕망이란 영원히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존재한다. 충족된 욕망은 더 이상의 욕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란 욕망은 영원히 “퇴고할 수 없는 나의 밑줄”일 지도 모른다. 시를 다 읽고 나서도 제목과의 연관성을 알 수 없어 '리아트리스'를 검색해 본다. "국화과에 속하는 구근성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Liatris' 이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이며, 자주색 또는 분홍빛이 도는 자주색의 두상꽃차례가 모여 달려 마치 키가 큰 수상꽃차례처럼 보인다."
나는 분홍빛이 감도는 꽃들을 유심히 관찰한다. 그런데 꽃의 모양이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시인의 사진과 닮아 깜짝 놀랐다. 꽃말은 고집쟁이 고결이다. 그녀가 분홍이라는 필명을 고집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