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도 어느덧 20여일이 지난 어느 맑은날 일본으로 여행가기 위해 강원도 동해로 떠난다.
몇일전부터 가방을 챙겨왔건만 언제나 그러하듯이 여행길은 언제나 설레인다.
그 장소가 특히 아테나를 촬영했던 환상 그 자체인 일본의 돗토리.
비행기가 아닌 크루즈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간다는 것이 보통일인가.
일본은 두어차례 가봤지만 이번은 일본의 유명관광지나 중심가가 아닌 일본에서도 변방인 곳이기에
일본 자체를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지인들에게 말했다. 일본간다고..와우!
근데 돗토리라 하니까 뭐하는 곳이냐, 도토리 따러 가냐는 둥, 못미더운 눈치를 보이기도 한다.
그제서야 아테나 촬영지라 하니 아키타에 이은 일본의 떠오른 여행지를 기억해준다.
근데 돗토리현에 눈이 180cm나 왔다는데, 설경 제대로 느끼고 올 수 있겠구나하는 상상을 해보면서
오지 않는 잠을 청해본다. 동서울터미널에서 12시에 동해로 가는 버스에 오르니 3시간도 못돼
동해터미널에 도착한다. 금방이구나! 서울에서 3시간만 가면 동해바다와 싱싱한 회도 한점!
여객터미널에 모이는 시간은 4시이니 아직 1시간정도의 여유가 있다.
터미널에 내려 건너편 정류장 앞 편의점에서 물으니 21-1번 버스를 타란다.
동해국제여객터미널까지 걸린 시간은 줄잡아 25분정도 동해시내를 휘휘돌아 여객선터미널 앞에 친절한
기사의 안내로 우둑하니 내렸다. 터미널앞에는 썰렁 그 자체. 뭐, 어떠랴. 터미널로 가니 대합실에는
벌써 사람들로 북쩍거린다. 방학을 맞은 학생들이 단체로 일본탐방을 가는것 같기도 하고 가족이나
동호회, 친목회 등 사람들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다. 마음은 벌써 일본 어느 항구에 내린듯한 기분이 든다. 햇살은 그지없이 맑고 우리를 일본으로 데려다줄 DBS크루즈는 여행객들을 모실 준비를 끝마치고 여유롭게
바다위에 둥실 떠있다.
동해항 국제여객터미널로 들어가본다.
국제여객터미널이란 이름이지만 규모는 수원시외버스터미널 정도로 크지는 않다.
배가 많이 운행하지는 않으니 그리 클 필요는 없겠지만 생각보다는 조촐하다.
크루즈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과 일본 사카이미나토를 정기적으로 운행한다.
동해여객터미널에는 안내창구도 있고 환전할 수 있는 곳도 있다.
하지만 터미널내에는 먹을거리가 없다. 아직 여행객들이 많지 않아서 인지.
매점하나라도 있더라면 좀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을텐데.
일단 5천엔정도를 환전한다. 천엔짜리 5장. 별로 와닿지가 않는다. 일본물가가 워낙에 비싸니.
동해시에서는 이렇게 러시아와 일본을 연결해주는 중형 크루즈의 기항이다.
터미널로 들어가니 이렇게 크루즈훼리가 반겨준다. 일본시간도 별 차이는 없구나.
4시30분정도부터 입장하여 수속을 끝마치고 드디어 뱃전으로 올라간다.
이제 일본으로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난다.
크루즈는 500여명정도를 태울 수 있는 규모인데, 사실 이렇게 큰배를 타본적이 없다.
홍도, 승봉도, 선유도를 갈때 탔던 배들과는 규모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배에는 자동차와 화물도 실을 수 있고 다양한 객실도 보유하고 있다.
제일 좋은것은 갑판으로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15시간을 가야하는데 답답한 실내에만 있으란것은 꽤나 고통일게다.
배에올라 바라본 여객터미널 주변의 풍경이다. 원래 동해항에 있기 때문에 특별한 시설은 없다.
이곳이 근해 여객터미널이나 포구와 같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주로 상품이나 원재료의 수출입항구니 주변에 상가는 별로 없다.
안으로 입장하니 오렌지색 티셔츠를 입은 직원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일단 룸키를 받기위해 2층 프론트로 올라간다.
메인홀 2층으로 올라가는 곳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계단이 있다.
크루즈내에는 호텔처럼 급에 맞는 다양한 객실이 있는데 이번에 이용한 객실은
2층침대가 4개 있는 8인실이었다.
8인실인데 꽤나 넓고 커텐과 개인등이 구비돼있어 꽤나 쾌적했다.
잘있거라 동해야! 3일후에나 보자구.
황혼이 들무렵 크루즈는 힘찬 기적소리를 내며 일본으로의 여정을 실행한다.
동해항에서 보는 해와 일본 사카이미나토에서 맞이할 아침의 해는 또 어떻게 다를지
심장이 두근두근 마구 떨어댄다.
3층 갑판으로 올라간다. 동해항과 동해를 둘러싼 늠름한 산들이 한눈에 잡힐 듯 하다.
멀리 보이는 동해바다는 앞으로의 항해를 암시하듯 검푸른 바다와 수평산만이 아득하다.
갑판에는 여행의 떨림으로 초조한 듯 보이는 여행객들도 보이고 일본여행의 즐거움으로 웃으면서
이리저리 노니는 학생들도 보인다. 갑판 중앙에 있는 공룡은 크루즈의 상징물.
밀어주면 해룡이 되어 바닷속을 헤엄칠 듯한 기세다. 비상시를 대비한 쾌속정도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대기하고 마스트는 레이다를 휘휘 돌리면서 항해를 준비한다.
이제 시간이 어느덧 6시에 근접해간다.
동해는 황홀한 석양속에 점점 그 모습을 감추어가고 졸고있던 가로등도 깨어나 뜨겁게 열기를 뿜어낸다.
일단 침실로 간다. 어릴적 좀 산다는 집에만 있다는 2층침대.
물론 연수받을 때나 군대에서도 가끔 사용은 해봤지만 이렇게 둥둥 떠가는 바다위 배에서의 2층침대에서의
잠은 또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2층위로 올라가니 꽤나 높은것이 잠은 잘 올것같다. 하지만 많이는 못잤다.
시트는 꽤나 청결했고 이불은 따듯했다. 내부에는 스팀이 잘 들어왔지만 약간은 건조했지.
바다를 보면서 갈 수 있는 패밀리룸도 있고 80인 다인실에 프레지던트, 로얄 스위트 등 고급룸도 있다.
스위트룸도 구경한번 해보고팠지만 여행객들이 있기에..
2층에는 안내데스크와 편의점, 면세점, 레스토랑이 있다.
레스토랑에는 러시아인으로 보이는 몇분이서 맥주한잔으로 긴 여정을 생각해보며 담소를 나눈다.
2010년 미스코리아들도 이배에 승선했나보다.
직접 배를 타고 갔는것일지는 모르겠고 그냥 승선기념으로 사진만 남긴것 같기도 하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화려한 조명들이 불을 밝히고 있고 로비 의자와 쇼파에는 일본여행을
어떻게 할지를 구상중인 사람들의 이야기로 한껏 분위기가 업된다.
공중에 떠있는 샹들리에는 자신의 몸을 한껏 태워 밝고 어여쁜 자태를 뽐내고,
알알히 켜진 작은 전구들로 이어진 계단 한켠은 아직도 연말의 분위기를 내는듯 하다.
3층으로 꾸며진 내부의 메인홀에는 크루즈의 기분을 만끽하려는 여행객들로 활기가 넘친다.
왠지 대형 샹들리에와 그리스 신전풍의 부조가 그로테스크한 풍경을 보여준다.
밤이 되면 저 벽화의 신들이 살아나 이 배를 지배할지도 모르겠다.
크루즈에서의 제일 즐거운 시간이라하면 뭐니뭐니해도 뷔페식 저녁.
배가 동해항을 떠나자마자 선내방송에서는 뱃머리 푸드레스토랑으로 저녁을 먹으러 오라고 한다.
식원을 주머니에 콱 넣고 뱃머리에 있는 식당으로 잽싸게 간다. 벌써 만찬을 즐기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맥주한잔과 함께 먹은 석식으로 배는 어느덧 동해 복어마냥 한껏 부풀어 오른다. 힘든밤이 되겠군.
하늘이 약간 흐려졌다. 하지만 수평선 저멀리 맞이할 일본여행, 돗토리 풍경에 한껏 맘이 설렌다.
여행 앞에서는 어린이도 어른도 같은 맘이 되나보다.
가끔 돌고랜지 참치뗀지 멀리 바다위에서 빠른속도로 수면을 날듯이 헤엄쳐가는것이 보인다.
밤이 깊어가니 오징어잡이배의 환한 조명도 보이고.
이 거친파도와 얄궂은 날씨속에서 조업하는 어부들에게 경의를 표해본다.
저녁을 맛나게 먹고 객실로 들어오니 따듯한 공기에 살짝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잠깐 하얀 시트위에 몸을 살포시 놓였다가 왠지 잠을 청하기에는 아까운 시간이기에
선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3층에 있는 사우나실로 들어간다.
검푸른 동해의 찰싹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하는 사우나는 어떤 기분일까.
창을 면한 곳에 있는 소형 히노끼탕에는 물이 철철 넘친다. 일단 발을 담가본다. 워메, 차갑다.
뜨거운 물일줄 알았는데 왜리 차가운겨. 그래도 옆 샤워부스에는 뜨거운 물이 콸콸콸 흐른다.
히노끼탕에 뜨거운 물이 나왔으면 제격인데 약간 고장이나서 현재 수리중에 있단다.
냉탕에서 사우나를 즐길 여유가 있음 한번 해봤겠지만 좀 추워서 포기.
배가 떠난지 어언 5시간이 흘렀다.
선내는 어느덧 침묵속으로 흘러가고 깨어있는 여행자들은 잠을 못이루고
선내 곳곳에서 잡담을 즐기면서 시간을 보낸다.
크루즈는 이제 스스로 생물체가 되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푸른 동해바다를 마당삼아
한발한발 일본쪽으로 선미에 하얀 포말을 내뿜으 숨가뿌게 달려간다.
너무 고요한것이 왠지 유령도시를 운행하는 배같기도 하다.
아무도 없는 배가 혼자 둥둥 떠가는 것처럼 느껴지는건 얼마전 본 버뮤다삼각지대란 영화때문인가.
모두 잠든시간, 조용히 일본여행에서의 만남을 자축하며 술한잔에 회포를 풀어본다.
아! 달다. 역시 여행에서의 작은 술자리는 언제나 즐겁다.
비록 안주도 술도 부족하여 아쉽지만 아쉬울때가 제일 좋다.
이야기꽃도 피우고 슬슬 잠자리를 청하는 분위기.
2층침대에 올라 잠을 청하지만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일단 갑판으로 나가본다.
사방에 보이는것이라곤 밝게 떠오른 달과 망망대해를 알려주는 검은 바다,
올때 보이던 육지의 불빛들은 어느덧 한점이 되었다가 사라진지 오래다.
들리는건 뱃전을 부딪치는 파도소리요, 보이는건 한겨울의 음침하고 외로운 보름달뿐이다.
칠흑같은 어둠속에 뚜렷히 보였던 수평선은 자취를 감춰버렸다.
밝은 달빛에 반짝이던 바다의 물결도 서서히 흐려진 구름속으로 들어가버렸다.
끝모를 바다위에 수호자처럼 여전히 초롱초롱한 빛을 내고 있는 별빛만이 태평양 어디론가
향해가고 있음을 넌지시 말해줄 뿐이다.
심연을 내달리는 외로운 배한척은 동해의 검은 그림자위에 깊은 잠을 청한다.
박지원이 열하를 건널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보이는것이 없으니 마음이 초연해지고 담담해짐을 느낀다.
망망대해에서 바라보는 달빛은 왠지 서글픔이 먼저 다가온다.
맨날 보는 달이지만 애처롭게 다가오는 것은 여행자의 마음을 비춰주는 슬픈 심사련가.
달무리가 바다를 비추니 그에 맞춰 동해바다의 물결이 살짝 살짝 일렁인다.
밝게 비추는 보름달은 내 마음을 아려는지. 그저 새색시 볼같은 수줍은 웃음만을 보낸다.
배가 잠깐 멈추었음 더 좋은 풍광을 볼 수 있겠지만 홀로 항해하는 철선을 멈추게 할 힘은 없다.
그저 바다와 배에 몸을 의지할 뿐. 비행기에서 승용차에서 언제 이런 홀가분한 여행의 맛을 즐길 수 있을까.
비록 멀고 먼 항해길이지만 또다른 멋과 맛을 느끼게 해주는 크루즈여행.
여유롭게 바다를 사랑하고 품안으로 끌어들일 준비만 한다면 나쁘지 않다.
훌훌 털어버리고 싶거나 슬픈일, 안좋은 일이 있을때 이렇게 뱃전위에 올라 달님에게
그 맘을 털어놓는다면 조금이나마 속이 후련해지겠다.
그렇다고 동해 용왕님께 인사드리지는 말고. 크루즈는 연인끼리 오면 더 좋겠다.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면서 밤물결을 헤치는 배의 뒤척임도 들으면서 떠나보는 크루즈여행!
잠깐 잠을 청하다 또 깨어 밖으로 나왔다.
시간은 다섯시를 조금 넘겼다. 쉬이 오지 않는 잠이지만 머릿속은 맑아져온다.
바람은 꽤나 거세졌고 눈발도 살짝 날린다.
바닷공기는 짭짜름하고 동해포구에서 느끼는 그것과는 색다르다.
설악산과 알래스카에서 느끼는 기분이 다르듯이 깊게 폐로 숨을 들이켜본다.
차가운 공기가 뱃속을 휘젓고 몸의 음습한 기운들을 빨아들이듯 하여 다시 진한 여운으로 내밭게한다.
아~ 시원해.
아침을 먹고나니 시간은 7시정도. 공해를 벗어나 일본으로 거의 다 왔는지 안보이던 갈매기들이 배를 따른다.
일본갈매기들도 일본어를 쬐끔 하려나.. 멀리 육지들이 간간히 보이는데 산위에는 하얀눈들이 덮여 있는것이
꽤나 이국적인 풍경이다. 아! 이제 일본이구나 ~ 하지메마시떼~ 반가워...